HA:TFELT Nothing Lasts Forever inst
X 같은 선배와의 전쟁
by. 탄덕
05
미쳤어 미쳤어, 손바닥으로 뺨을 연속으로 때리고서 넓은 집 안을 두 눈으로 쫓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난 낯선 사람의 집에 있었고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른 데다가 심지어 밤에 무슨 일을 벌였는지도 모른다는 완벽한 사실에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감싼 얼굴 사이로 어떡하냐는 말만 계속 중얼거리다 혹시나 하고 스쳐 지나가는 불안감에 손톱을 물어뜯으며 소파를 뒤졌다. 그리고 누군가 방에서 걸어나온다는 암묵적인 신호를 보내듯이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만 현재의 나에겐 전혀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이내 걸어나오는 소리가 멈췄고 얼마 지나지 않아 뭐하냐는 시큰둥한 목소리가 그것을 대신해 집 안에 울렸다.
" 뭘 그렇게 찾냐고."
" 잠깐만요."
잠시만, 존나 익숙한 목소리인데. 소파를 뒤지던 급한 손길이 허공을 스쳤고 밑으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단번에 위로 젖혔다. 정호석? 이 집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반사적으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머리를 벽에 기대고서 오른 손에 신문을 들고 비딱선으로 서 있는 모양새가 누가 봐도 그라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그나저나 나 방금 뭐란거야, 선배한테 면전에 대고 심지어 호칭도 떼고서 이름 석 자를 불러버린 이 주둥아리를 탓하며 입을 앙 다물었다. 내 말에 선배는 뭐, 정호석? 이라는 대꾸와 함께 미간을 지푸렸다. 그에 난 이불을 온 몸에 꽁꽁 감싸 얼굴만 빼꼼 내놓고서 고개를 슬쩍 뒤로 빼며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 정신 말짱한 거 보니 술은 깼네."
" 저 혹시.....우리.... 그... 그런 건 아니죠? 보니까 아닌 것 같긴 한데 제가 이런 적이 없어서- "
" 그랬다면."
" 네? "
" 우리가 그랬다면 어떡할 건데."
경황 없이 아무 말이나 주저리 내뱉던 내 멘탈은 선배의 견고한 두 마디에 바스러져 힘 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으스러졌다. 조심스럽게 뱉어지던 숨덩어리가 아무렇지 않게 밖으로 튀어나온 문장들에 의해 간간히 내뱉어졌다. 초조함에 갈 곳을 잃어버린 나를 태연하게 응시하던 선배가 팔짱을 풀더니 벽에 기대던 머리를 바로 세우고서 자세를 고쳤다. 그의 사뭇 진지해진 표정과 덤덤한 태도에 공기의 흐름이 적막감과 긴장감으로 둘러싸였고 약간의 야시시함 또한 알게 모르게 섞여들어가고 있었다.
" 너 주사가 위험하긴 하더라. 옆에 있는 자식이 어떤 놈인 줄 알고 그렇게 안겨? 미친 놈이었어봐."
" 죄송해요."
" 집 주소도 몰라서 결국 우리 집에서 재웠어. 그리고 난 결혼할 여자 아니면 안 건드려, 특히 너같은 애기는 더더욱."
" 애기는 무슨- 저 성인인데요."
" 이것 봐, 문제야. 성인이면 주량도 봐가면서 알아서 먹어야지. 여자애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자칫하다 큰일난다."
선배는 의도치 않게 혼이 나 불만으로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는 나에게 집어넣으라며 이마에 아프지 않은 딱밤을 날리고서야 따금한 충고를 끝냈다. 그러고선 밥이나 먹고 가라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는 부엌으로 몸을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속이 허했는데 단번에 소파에서 일어나 부루퉁한 낯빛으로 그의 뒤를 따라갔다.
" 그렇다고 여자를 소파에서 재웁니까? 좀 실망이네요, 선배."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그의 뒤에서 물을 마시며 재잘재잘 불만 거리를 털어놨다. 그러자 칼질에만 향하던 시선이 곧바로 나에게로 옮겨졌다. 그래서 내 옆에서 자고 싶었다야 뭐야. 왜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요? 여자가 침대에서 자고 남자가 밖에서 자는 거죠. 만약 네가 추진하고 있는 꼬시기 목표가 성공하면 그렇게 해줄게. 넓지 않은 어깨를 애써 으쓱이며 당당한 표정을 짓던 난 그의 말에 마시고 있던 물을 죄다 뿜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그는 단번에 더럽다는 듯 표정을 굳히고는 옷을 털어댔다.
" 어떻게 아셨어요? "
" 네가 직접 네 입으로 전해줬잖아, 나 꼬실거라고."
" 술김에 나온 거에요. 진심 아니에요."
" 취중진담이라는 말은 딱 너한테 쓰라고 만들어진 것 같은데."
그의 의미심장한 말에도 도저히 오류가 생겨 작동되지 않는 기억 장치덕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저를 준비하는 그를 위 아래로 훑어봤다. 그 순간만 잠시 궁금했지 식탁 위로 차려진 군침이 도는 음식들을 보자 곧바로 사라지는 의심에 숟가락을 들어 밥을 우적우적 먹어대다 국물까지 다 비워내고는 손수 엄지척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내 행동에 못 말린다는 듯 선배가 한 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식사를 마친 후, 여러모로 신세를 많이 지는 것 같아 설거지는 내가 한다며 그에게 들려 있던 고무장갑을 뺏어들었다. 나보다 더 깔끔하게 사네, 설거지를 하다 아깐 정신이 없어 미처 둘러보지 못 했던 집 안을 둘러보았다. 깨끗하게 정돈된 느낌이 누가봐도 선배의 성격이 묻어나오는 듯해 베시시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유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는 기분 나쁜 소리가 내 고막을 관통했다. 돌겠네, 하면 할수록 괜히 민폐만 더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함에 질끈 감던 두 눈을 뜨고서 파편으로 어질러진 유리 조각들을 줍기 시작했다. 고무장갑 때문에 작은 조각들이 손에 잡히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결국 장갑을 벗고 맨 손으로 유리 조각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살이 베어버려 피를 보고 말았다. 잠시 방에 들어갔다 나온 선배가 부엌 귀퉁이에 쪼그려 피를 흘리고 있는 나를 보다 짜증난다는 듯이 머리를 쓸어넘기곤 되려 나에게 성질을 냈다. 바보야? 그거 하나- 그의 성난 음성에 기가 죽은 난 웅크리던 몸을 더 움츠리고는 그에게 잡혀있던 손을 빼내려 했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그는 내 손을 더 세게 잡아쥐고서 방으로 이끌어 날 침대에 앉혔다. 구급상자를 꺼내오는 그에 두 손을 뻗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럼에도 그는 말 없이 약을 상처 위에 덧발라 밴드를 그 위에 붙였다. 뻣뻣해진 분위기를 풀어보기 위해 괜히 죄 없는 침대를 탕탕 치며 조심히 입을 열었다.
" 아, 선배는 이런 침대가 있으면 여기서 절 재웠어야죠. 푹신하네요."
" 난 다른 사람 내 침대에서 못 재워. 내 침대에서 자려면 내가 네 알몸정도는 봐야하는데 그것도 괜찮으면 다음번엔 그렇게 해주고."
" 선배 되게 의외시네요. 농담도 받아칠 줄 알고."
앞에 서 있던 그를 보다 고개를 힘 없이 아래로 떨궈 살짝 미소 짓고는 시선을 그에게로 다시 올렸다. 처음엔 정말 거지같았는데 어째 점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는 내가 퍽 어이가 없었다. 엇갈리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사이 좋게 좀 지내죠, 우리. 먼저 화해의 신청을 했다. 너만 잘하면, 그러자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은 채로 그가 화답했다. 그럼 그렇지, 단 한 번을 나한테 져줄 리가 없지. 고개를 두어번 대충 끄덕거리고선 침대에서 일어나 아까 선배가 가지고 나온 구급 상자가 있었던 서랍장으로 가려다 책장 안에 고이 박혀있는 하나의 액자 앞에 섰다. 그 속에는 서로를 안고서 해맑게 웃고 있는 두 명의 앳된 소년들의 모습이 보였고 사진 모서리엔 누군가 나오려다 시간차로 찍히지 못한 옷 자락이 아주 희미하게 보였다. 아직까지도 소년일 때의 얼굴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호석 선배의 얼굴이 사진 위로 겹쳐져보였다. 여전하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져 들뜬 목소리로 선배를 불렀다.
" 우와- 동생도 있었어요? 그나저나 선배는 변한 게 하나도 없네요. 누가 찍어준 건지는 몰라도 정말 잘 찍었네."
그리고 언제 온 건지 그는 내 손에 들려 있던 액자를 뺏어들어 책상 서랍장을 열어 액자가 위태로운 마찰음을 낼 정도로 거침없이 던졌다. 그의 거친 행동에 놀란 것도 잠시 별 거 아닌 일에도 예민해지는 그에게 나 또한 그 못지 않게 민감해졌다.
" 뭐하는 행동이야, 지금? "
" 제가 뭘요. 아무 것도 안 했어요. 구급상자 제자리에 놔두려다가 액자 본 것 뿐이에요."
" 그러니까 네가 내 책장을 왜 보냐고."
그는 자신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렸다는 점에 그리고 난 억울하게 걸렸다는 부분하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하고 감정이 격해진 우리는 언성이 높아졌다. 술집에서 봤던 그 때의 감정으로 다시 제자리 걸음을 반복했다. 정작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구급상자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우리만 쓸데없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 지나가다가 볼 수도 있잖아요. 이게 그렇게 화를 낼 일입니까?"
" 어, 화 나. 네가 내 집에서 피를 흘리는 것도, 허락 없이 내 물건을 만지는 것도, 나에 대해 하나 하나 간섭하는 것, 신경쓰게 만드는 것도 그래."
" 와- 많네. 더 말해봐요, 더 있을 거 아니에요."
" 말해줘? 네가 내 눈 앞에 알짱거리는 것까지 거슬린다고."
화가 단단히 난 듯한 선배의 마지막 말에 참고 있던 눈물이 터졌다. 진짜 쓰레기야, 선배는. 어릴 때부터 억울하면 우는 버릇이 고스란히 나와버렸다. 그의 어깨를 밀치고는 그대로 방을 나와 짐을 챙겼다. 나에게 밀쳐진 그대로 고개가 살짝 떨궈지더니 들리지 않게 욕을 읊조리는 뒷 모습이 한 없이 처연했다. 입술을 깨물고서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를 참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부리나케 정신 없이 뛰쳐나오는 바람에 밖에 비가 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 했다. 하필이면 걸어갈 수도 없게 세찬 소나기가 내렸다. 평소 같았으면 맞을 수 없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해지는 감정에 발을 움직여 아파트 로비를 서둘러 나왔다. 조금씩 축축히 젖어가는 어깨를 시작으로 전체가 젖어들어갔고 그럼에도 오직 그의 마지막 목소리만이 맴돌았다. 날이 서 있었지만 어딘가 겁이 나 있었다. 서서히 멍해져가는 정신에 부산하게 움직이던 걸음이 조금씩 늦춰졌다. 뭐가 무서운건데, 생각이 마침표를 찍었고 이와 동시에 느릿해진 발걸음이 자리에 멈춰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팔을 낚아챈 누군가에 의해 몸이 돌려세워졌다. 그로 인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빗물이 멎었고 아직 남아있던 빗물로 시야가 가렸지만 목소리만큼은 알아챌 수 있었다.
" 우산 쓰고 가, 비가 오면 알아서 올라와야 할 거 아냐."
" 됐어요."
" 관심이 지나치면 선을 넘게 돼, 다시 말하지만 난 네가 그 선을 지켜줬으면 하는데."
" 관심 끄라는 얘기네요, 알겠어요. 그 대신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물어볼게요."
"...................."
" 뭐가 그렇게 무서워요? 선배는. 들킬까봐 감추려고 그런 감정을 먼저 앞세우잖아요. 근데 그거 알아요? 감추려 할수록 진실은 드러난다는 거. 선배만 모르고 있잖아, 바보같이."
" 네가 뭘 알아."
" 어른인 줄 알지만 정작 피터팬은 아이였죠, 딱 선배와 나에요. 이것만큼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엔 선배가 아닌 내가 숨기고자 했던 치부를 들켜버려 초점을 한 곳에 두지 못해 흔들리던 그의 눈동자를 오롯이 올려다봤다. 전에는 읽을 수 없던 눈빛이었는데 이제야 찾아냈다. 공허함이 아닌 불안함에 지쳐버린 어린 소년이였다는 걸, 나 또한 이 넓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만 알았던 떼 쓰는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는 것까지. 아파트를 벗어난 한적한 공원에 남겨진 우리 둘의 머리 위로 그의 손에 들린 우산이 여전히 씌어있었다. 베인 상처 위로 덧발라놓은 밴드 사이로 물이 스며들었는지 조금씩 따끔한 게 느껴졌다.
노을이 가고 어둠이 찾아온 하늘을 비춰주는 가로등만이 오직 우리를 밝혔고 그 아래에 서로를 향한 시선은 잠식되어있었다.
♥ 저의 원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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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호구 인 남사친 암호닉 분들은 제가 다 기억하고 있으니 언제든 찾아오시면 되세여!
독자님들, 그리고 저의 탄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 행복한 명절 보내시면 좋겠습니당!!
항상 함께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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