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민윤기] 나의 아찔한 다섯번째 남자 : DANGER ROMANS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1/02/17/a825695370f310f0fbfeda1f41a32f08.jpg)
나의 아찔한 다섯번째 남자 :
열 여덟, 스물 여덟
"헤어지자."
"응."
둔탁한 도시의 소음들이 카페 안까지 들려오는 오후였다. 바삐 차가운 아메리카노 여덟잔을 부랴부랴 시켜서 챙기는 신입사원도 있었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조별 레포트를 작성하는 대학생 새내기들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느닷없는 나의 네번째 남자에게 이별소식을 접한 가엽지만 가엽지 않는 한 여자가 있었다. 나는 헤어지자는 통보를 받았음에도 별로 아무렇지 않은 듯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에 입을 댔다. 뜨겁고 싸한 게 참 나의 현재 마음과는 달라보였다. 그는 나의 태평한 행동에 어이가 없었던건지 코웃음을 쳤다. 뭐가 그렇게 웃기냐...헤어지자고 했잖아. 그럼 그냥 가라. 나 바쁘다. 이 말이 참 목 깊숙히 박혀있었다.
사실 난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냥 돈이 많아 보여서,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은 다 가지게 해주어서. 단지 이 두가지 이유만으로 만난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이 남자와 헤어져도 나에게는 첫번째,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남자가 있다. 아,갑자기 미안해진다. 이 네번째 남자한테.
"나 회사에 들어가봐야 돼."
"넌 그 말 밖에는 나한테 할 말이 없냐?"
"그럼 뭐 어떡해. 니 바짓가랑이 붙들고는 질질 짜면서 가지 말라고 뭐 동네방네 나 이별했어요 소문내야되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아니, 난 그런 말처럼 보여. 전형적인 답정너. 헤어지자며? 그럼 깔끔하게 너 갈길 가."
"넌 참 독해. 독해빠졌어. 못됐고."
"그거 모르고 나 만났던 거 아니잖아. 길게 얘기할 거 더 이상은 없지? 나 간다."
더 이상 저 자리에 있고 싶지가 않았다. 길게 아까운 시간을 끌어봤자 저 녀석은 나와는 말이 절대 통하지 않을 것이고, 더 큰 싸움으로 번질 것이 뻔했다. 뭐이리 이 놈의 연애는 이렇게 힘드나... 카페 밖으로 나왔을 땐 그가 앉아있는 쪽으로 몸을 돌려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았다. 운다. 울고있었다. 진짜로 그는 날 사랑했나보다. 안쓰럽기도 했었다. 하지만 어떡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데. 동정의 감정만 계속 품고만 있는데. 차라리 이럴 바엔 완벽히 그에게 내가 나쁘게 보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는 방법이였다. 그렇게 한숨을 푹 내쉬고는 시계를 봤을 땐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이였다. 아,짜증난다. 늦으면 백퍼센트 과장은 나한테 야근을 시킬 것이다. 내 인생 명줄이 그의 단 몆 분 때문에 뚝뚝 끊어지기 시작한 거 같다.
***
![[방탄소년단/민윤기] 나의 아찔한 다섯번째 남자 : DANGER ROMANS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6/06/16/22/6f3a14b6e2735cef1a568f16f2ba22eb.gif)
"김탄소 씨, 오늘 선약있어요? 저랑 저녁 드실래요?"
"아...죄송해요. 저가 오늘은 좀..."
저녁은 개뿔. 족히 밤 10시를 넘어가고 있는 시간이었다. 그건 저녁이 아니라 야식이나 밤참이라고 부르는 거에요. 아 참, 이 사람을 설명해주자면 우리 회사 최고의 자랑 박 대리님이다. 착하고 매너도 넘쳐서는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한테까지 참 인기가 좋다. 어떻게 저런 삶을 살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난 예외로 저 사람에게 관심 하나 없었다. 동물의 몸통이 있다면 그 몸통 중 꼬리만 보자면 나는 모두에게 '남자 밝히는 여자'로 인식이 될 것이 뻔하다. 하지만 꼬리말고 몸통과 다리 그리고 머리부분까지 본다면 난 까다로운 여자로 인식이 된다. 그만큼 박 대리님은 모든 여자에게 정이 많았고 이 세상과 타협할 만큼의 그런 넓은 마음을 지녔다. 그래서 별로랄까? 재미가 없다. 남자가. 사실 이런 말 하면 진짜 멍멍이 년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데 나는 모든 남자들을 바라볼때 계산하고 있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답은 없다. 그냥 이게 내 천성이다.
그렇게 단호하게 식사 거절을 했다. 무안한지 어색하게 웃으며 나에게 '그럼 다음번에는 꼭 비워둬요' 라고 말을 하는데 참 웃기다. 난 그런 그를 뒤로 하고는 서류작성을 하다가 시간을 바라보았더니 어느 덧 10시 50분이었다. 이 망할 과장이 내가 고작 1분이 늦었다고 야근을 시키는데 얼마나 짜증이 나던지...참 그 태평한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박 대리님은 나를 바라보더니 시간이 너무 많이 됐다며 피곤할텐데 집에 먼저 들어가라며 역시나 나에게 먼저 배려를 해주었다. 원래같으면 다른사람들은 '아니에요. 괜찮아요.'라며 대답했겠지만 나는 진짜 이대로 가다간 회사 때문에 죽을수도 있겠구나 싶어서는 '예,감사해요.' 라는 짧은 말만 남기고선 짐을 챙기고 회사를 나왔다.
***
역시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올때가 가장 행복하다. 오전에는 피곤해서 웃지않고 오후에는 힘들어서 웃지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나에게 나만 보면 있던 힘도 다 빠진다면서 웃으라고 하지만 난 전혀 웃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간대에는 저절로 웃음이 난다. 나에게 내 자유시간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이니까.
나는 집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한 맥주와 안주거리를 사들고는 우리 집 좁은 골목길 쪽으로 지나가다 발을 멈췄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달이 동그랗게 떠서는 나를 비춘다. 좁다보니 가로등 하나없다. 달이 유일한 길을 비춰주는 역할을 했다. 나는 검은봉지를 내려다놓고는 쭈구려 앉아선 내 작은 가방에 깊숙히 박아두었던 담배 하나를 꺼내들었다. 꺼내들으면서 휴대폰도 나왔던건지 혹시나 몰라 휴대폰을 한번 켰다. 부재중 전화 20통 싹 다 나의 세번째 남자의 전화. 난 별로 받기가 싫어서 그냥 폰 전원 자체를 꺼두었다. 휴대폰을 끄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타들어가는 담배 연기 속에 오늘 모든 스트레스가 이 안에 다 들어가있는 거 같았다. 나는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내 자신을 다독이며 꺼진 휴대폰 까만 액정 속으로 조심히 입꼬리를 올렸다.
담배를 태우던 도중 골목길 안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난 애초에 그런거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그저 내 할 것만 하며 그대로 있었다. 발걸음이 점점 가까워지더니 끝내 내 옆에서 뚝하고 멈춘다.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직장인이겠구나 싶어서 담배라도 하나 꺼내줄까 하는 마음에 위로 올려다보았다. 밤이라서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였다. 그리고 되게 쨍한 민트색 머리에 얼굴은 되게 하얗고 하얀 얼굴에 맞지않게 여기저기 반창고가 붙어져있었다. 그러더니 자신도 내 옆에 쭈구려서 앉는다. 미성년자인 거 같은데... 자연스럽게 자신의 찢어진 청바지 뒷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들고 입에 물더니 나에게 말을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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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입고 그렇게 야밤에 쭈구려 앉아 있으면 누가 성추행해요."
"그쪽이 그러고 싶은 거겠죠."
"저를 뭘로 보고...직장인이에요?"
"딱봐도 그렇게 보이지 않는가."
"저 불 좀 주실래요? 라이터 안 가지고 와서."
"미성년자 아니에요?"
"글쎄요. 다음번에 만나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다음번에는 안 만날건데?"
"그거야 모르죠."
그러더니 자신의 담배를 내 라이터쪽으로 가져다댄다. 이 남자 뭘까 싶다가도 처음본 거 치고는 참 포근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나는 피식 웃다가 라이터를 켜고는 그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분명 처음 만난건데 이 남자는 나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겉모습만 보면 딱 고등학생 양아치에 학교도 잘 안나갈 거 같이 생긴 그런 스타일인데 말을 한 두번 섞어보니 참 속내는 부드러우면서도 재미있는 구석이 있었다. 담배를 다 태우고는 옆에 있는 하수구에 버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그를 한번 쳐다보더니 순진하지만 조금은 위험한 웃음을 날리며 나에게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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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담배 다 태울때까지만 옆에 있어줄래요?"
나는 다시 한번 바람빠진 웃음을 날리고는 고개를 끄덕이곤 이번엔 그냥 옆에 다리를 쭉 펴고는 앉았다. 그러더니 그는 인상을 한번 찌푸리더니 담배를 입에 물곤 자신의 겉옷을 벗어서는 내 다리 위에 얹어준다. 다 헤진 야구점퍼에서 모양과는 다르게 좋은 향기가 났다. 그러고는 뒤이어 하는 말이 참 귀여웠다.
"여자가 그렇게 있으면 안 돼요."
"뭐가요?"
"다리 훤히 드러내고 남자 앞에서 그러면 안된다고요."
"제 애인도 아니면서 처음 만난 주제에 참 이런저런 말이 많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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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거 아니면서."
그러더니 또 장난스럽게 웃는다. 재미있다. 이런 남자는 조금 처음이었다. 나는 옆 비닐봉지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들고는 그 남자에게 건네주었다.
"맥주 마실 줄 알아요?"
"당연하죠. 오,저가 제일 좋아하는 클라우드네요?"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
그러고는 맥주를 따더니 보는 사람도 시원하게 꿀꺽꿀꺽 마셔댄다. 그 남자에 따라 나도 맥주 한캔을 따고는 마시면서 '캬'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조심히 내려놓았다. 항상 이 맘때쯤이면 혼자서 담배를 태우고 달빛 아래에서 허접하고 후줄근하게 달 관찰이나 하며 달 주위에 있는 별들을 하나,둘씩 세고만 있었을텐데 나의 첫번째,두번째 그리고 세번째 남자들은 알지도 못하는 직장 상사들도 모르는 나의 모습을 처음 보는 낯선남자와 이렇게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상대도 나쁜사람은 아니었고. 나는 맥주를 다시 두어번 들이키고는 이제 진짜 가야겠다 싶은 마음에 다리에 얹어진 그의 겉옷을 이름 하나 모르는 그에게 건넸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받지 않았다.
"왜요? 그쪽 건데."
"그걸 몰라서 얘기하는 게 아닌데?"
"그럼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인질이랄까?"
"그게 뭐에요."
"이거 집에 가지고 가세요. 다음번에 만나면 줘요. 저한테."
"참나."
"싫어요?"
"싫었다면 저는 그쪽 말 듣자마자 이 옷 버리고 갔을걸요."
"그러니까 다음번에 와서 주세요."
그러더니 자신도 자리에 일어나서는 맥주 잘 마시겠다며,고맙다고 나에게 인사를 하고는 나보다 더 먼저 일찍 자리에서 뜬다. 뭔가 이상했다. 처음 본 남자인데 살짝 설레는 감정도 없지않아있고 신선한 기분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 감정도 오래있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나는 나를 더 잘 알기에. 내 상태를 더 잘 알기에 그렇게 자부할 수 있었다. 나는 취기도 오르지 않은 상태에 살짝 추워서는 그의 겉옷을 걸치고는 집으로 향했다. 아,이러면 매너 완전 없어보일려나.
***
아침부터 과장한테 째지게 혼났다. 이유가 어제 대체 무슨 정신으로 서류작성을 했길래 이따위냐고 한다. 난 그거 제가 한 게 아니라 박 대리님이 했다며 얘기를 하고 싶어도 하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과장이 박 대리를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아끼는 것을 알기에 백퍼센트 떠넘기냐면서,덮어씌우냐면서 그렇게 얘기할 것이다. 나는 자리에 다시 들어와서는 고개를 쳐박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어제의 그 행복은 오래가지를 못하는구나... 그런 생각도 잠시 내 옆에 캔커피인지 쥬스인지 모를 물체를 누군가가 내려놓는다. 나는 고개를 들고는 누구인지 확인했다. 반갑지 않는 사람이었다. 박 대리...에효. 나는 그냥 눈인사로 대충 감사하다고 하고는 모니터에 집중했다. 그러더니 박 대리는 내 기분을 아는건지 마는건지 나에게 말을건다.
"탄소씨...저...제가 죄송해요."
"예,알면 됐네요. 잘 마시겠습니다. 그만 돌아가실래요?"
![[방탄소년단/민윤기] 나의 아찔한 다섯번째 남자 : DANGER ROMANS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1/26/4/cf6e8fb27fc814947e49669aad6b60fd.gif)
"아니...그...오늘은 저녁 저랑..."
또 시작됐다. 저녁 타령. 무슨 나한테 사적인 감정을 품은건가 싶어서는 모니터에 집중했던 시선을 떼고는 박 대리 그를 차갑게 올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정신으로 이러는건지 아니면 나를 놀리는건지 싶었다. 모든 상사들은 박 대리의 저녁약속을 받은 내가 부러운건지 이글이글 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눈에 레이저 나오겠다...진짜. 나는 그에게 단호하게 얘기했다.
"박 대리님. 요즘 자꾸 저한테 저녁선약을 자꾸 하시는데 혹시 저한테 사적인 감정 있으신거 아니면 좀 그만해주실래요? 진짜 부담스럽거든요."
"아니...그..."
뒤에서 '뭐야' 라며 속삭이는 여상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저녁선약은 내가 싫다고 할 수도 있는거고,좋다고 할 수도 있는거지 뭐 이리 유세를 떠나 싶어서 황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박 대리는 뭐가 그렇게 울상인지 곧 툭치면 터질듯한 눈망울을 하고서는 나를 내려다보았다. 아니 남자가 이렇게 찌질하고 멋이 없어서야 되겠나 싶기도 했다. 여기서 나는 몇 분 뒤에 있을 내 상황을 생각했다. 여상사들에게 난 그냥 개년이 될 것이고 이 남자는 울 것이다. 아, 내가 무슨 유치원생 우는 거 사탕주면서 멈추게 하는 것도 아니고 진짜 골치가 아팠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가라는 손짓만 남겼다. 박 대리는 뭐가 좋은건지 아까 그 울망울망했던 눈망울은 어디가고 다시 제자리를 되찾았다. 진짜 이 남자 너무 짜증난다...
***
오후때까지 계속 전화가 울려댔다. 요즘에 나와 기약없는 그 결혼 약속만 했는 남자들에게 계속 연락이 왔다. 첫번째 남자에게서 한번,두번째 남자에게서 한번,세번째 남자에게서 한번...진짜 머리통이 울려서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정말 요즘에 내가 놀아주지 못했긴 했지. 이 남자들에게 있어서 나는 결혼 상대녀고 나에게 있어서 그들은 별 쓸모없는 헌신짝이기도 했다. 진짜 당장이라도 헤어지자고 하고싶었다. 내가 회사인걸 알면서도 전화거는 이유가 알고 싶었다. 난 계속 퇴근시간만 기다리며 전화를 아예 무음으로 바꾸고는 일을 했다.
퇴근시간 8시가 딱 되자마자 다들 최고조로 바빠졌다. 항상 근무시간대에는 느릿느릿한 거북이가 되는 그들이 퇴근시간대만 되면 아주 물만난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된다. 물론 나도 그렇지만 오늘만은 제외... 느긋하게 짐을 싸자마자 박 대리는 나의 손목을 이끌고는 자신의 차에 태운다. 어휴...내 인생 왜 이렇게 됐나. 나는 운전을 하면서 여러가지의 질문을 하는 그에게 대충 받아쳐주다가 사고난다며 그냥 운전이나 하라고 했다. 박 대리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내 말을 들으면서 헤실헤실 웃기만한다. 진짜 재미없는 남자였다. 너무 순수해서 재미없는 남자. 만약 나에게 다른 감정을 품었던 것이라면 백퍼센트 난 그를 냉정하게 내쳐냈을 듯 하다.
***
불편한 식사자리가 끝나고는 집까지 바래다준다는 그의 말에 손을 절레절레 저으며 됐다고 했다. 참 박대리는 좋은게 딱 한가지있다. 돈이 많다는 거? 이용해먹으면 좋을 거 같기는한데 멘탈이 딱봐도 유리멘탈이라 이용한거 들키면 울면서 사표까지 쓸수도 있는 그다. 난 그런 상황까지 가는 것에는 흥미가 없어서 마음을 접었다. 애초에 지금 곁에 있는 남자들도 이렇게나 지겨운데 저 남자가 추가되면 얼마나 더 지겨울까...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지하철까지 탈 그런 체력이 없어서 택시를 잡곤 집까지 갔다.
어느덧 시간을 바라보니 11시였다. 아,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났다. 어제봤던 그 사람. 설마 오늘 또 마주치겠나 싶어서 괜한 기대감은 버리고 어김없이 편의점에 들러 맥주 두 캔과 과자 하나를 샀다. 오늘은 어째 야근을 한 어제보다 더더 힘이 없는 거 같았다. 터덜터덜 어제의 좁은 골목길을 드러서자마자 오늘은 혼자일 줄 알았는데 어제 본 그가 이번에는 먼저 담배를 태우고 있다. 그는 나를 바라보더니 싱긋 웃고는 '왔어요?' 라는 한마디를 하곤 엉덩이를 떼고는 조금 옆으로 가더니 나의 자리를 마련해놓는다. 그러더니 손으로 바닥을 두어번치고는 앉으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난 어제처럼 쭈구려서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오늘은 저가 불 붙여줄래요."
"네, 뭐. 그러시든가."
입에 문 담배로 라이터를 가져다대더니 불을 붙여준다. 하나만 말하자면 얼굴이 가까워졌을때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아버렸다. 28년 살면서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나는 어제 의문만 남기고 간 질문들을 다시 그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몇 살이에요?"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알려주기로 했잖아요."
"그럼 그쪽은 몇살인데요?"
"스물 여덟이요."
그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다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한다. 내 나이가 그렇게 놀랄 나이인가 싶었다. 그는 뒷머리를 긁적이다가 말하기 뭐하다는 듯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러고보니 그의 얼굴에는 어제보다 더 많은 상처들이 곳곳에 있었다. 대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몇 살인지만 안다면 대충 감이 올텐데...
"놀라면 안 되는데."
"안 놀라요."
"열 여덟살이요."
어쩐지... 왜인지 모르게 앳되 보인다고 했다. 그럼 이 아이는 요새 말하는 그 음...일진? 노는 애? 그런건가? 하지만 노는 아이치고는 참 매너도 있고 착했다.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는 눈빛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공부 안하냐?"
"안하는데."
"이름이 뭐야?"
"민윤기요."
"이름은 예쁘네."
그러더니 뭐가 좋은지 한번 더 헤실헤실 웃는다. 윤기는 담배를 다 태우고 끝 꽁다리가 남았을때 발로 대충 비벼끄고는 턱을 괴곤 나를 바라본다. 뭐이리 어린녀석이 나를 뜨겁게 쳐다볼까. 참 의아했다. 시선만으로도 날 잡아먹을듯한 그 눈빛이 참 야릇하고 아찔했다. 민트색 머리와 어제와 같은 야구점퍼에 찢어진 청바지, 컨버스 차림이였다. 하지만 어제와는 뭔가 느낌이 달랐다. 담배를 태우다가 참 그 눈빛이 위험하기도 하고 부담스러워보여 난 담배를 피우던 것을 손에 끼워놓고는 윤기를 바라보았다. 바라보던 그 순간 그 틈을 노린건지 나에게 다짜고짜 입을 맞춘다. 원래 같으면 이런걸 철컹철컹이라고 하나... 밀어내야되는 것이 맞는건데 거부감이 들지가 않았다. 난 그런 윤기를 받아내고 있었다. 입술을 잡아먹을 듯이 입을 맞추다가 곧이어 입술 안에 혀까지 넣어버린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술을 떼더니 은색 실이 길게 이어진다. 아찔했다. 수많은 사람과 입맞춤을 하였지만 이렇게 아찔하고 재밌는 키스는 처음이었다. 그러더니 나를 바라보고는 웃으며 얘기하는 윤기, 작고 작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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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여기서 기다릴게요."
그냥 저가 내킬 때 연재하는 답 없는 글 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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