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는 꽉 감아 얼얼했던 눈을 살며시 떴다. 까맣게 물든 자신의 방은 그의 시야또한 물들였다.
잊은줄 알았던 그 끔찍한 기억들은 문득문득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앳된 찬열의 얼굴또한 생생히 그려진다.
그러나 남자의 첫사랑은 지울수 없다고 했던가. 경수는 그토록 증오 했던 찬열의 소식을 궁금해하곤 한다.
그일이 있은후 경수는 일주일 만에 전학수속을 밟고 이사를 갔다.
원래 계획되어있던 이사지만 엉망이 된 얼굴로 집으로 들어와 3일내내 울며 전학을 요구하는 경수에 그의 어머니는 속이 미어지듯 아파 그의 요구대로 이사 날짜를 앞당겨 전학을 시켰다.
그녀는 경수에게 무슨일이 있었냐고 간곡히 물었지만 번번히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흘리는 경수에 쓸쓸하게 방문을 닫고 나오기 일수였다.
경수는 무슨일이 있어도 절대 엄마에겐 알리고 싶지 않았다.
첫사랑이 있었다.
그는 남자다.
고백을 하자 그는 그의 선배들을 불러 나를 성폭행하였다.
그리고 난 또 다른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
잠시나마 엄마에게 커밍아웃할 생각을 했던 경수는 자신을 질책하였다. 누가 들어도 정신병자 같잖아.
경수는 팔을 들어 두눈위로 덮었다. 그러나 이 곪아 문드러진 자신을 이해해줄 누군가는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자신의 인간관계에 한탄하며 한숨쉬던 찰나, 낮에 시연이 말해주었던 동성애자 카페가 생각났다.
경수는 얼른 몸을 일으켜 자신의 가방을 뒤지고는 급하게 자신의 낡고 바랜 천필통을 가방에서 꺼내들었다.
천필통의 지퍼를 끌어내리자 샤프와 연필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떨어진 필기구들 사이에 깔려진 하얀쪽지를 보자 그는 빠르게 그것을 집어들었다.
그 쪽지엔 자잘하게 적혀진 영어 주소들과 사이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그 사이트 이름이 뭔데?'
'응? 그 사이트 이름은 왜?'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 시연에 경수는 잠깐 우물쭈물하면서 아무말이나 둘러대었다.
'내 아는 동생도 게이거든.'
'진짜?'
'그래. 걔한테 알려주면 좋겠다 싶어서.'
경수는 자신의 책상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윙윙 돌아가면서 켜지는 컴퓨터 소리에 놀라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방문을 잠그곤 다시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쪽지를 키보드 앞에 놔두고 손톱을 뜯으며 온 신경을 방문으로 쏟았다.
마치 야밤에 몰래 야한 동영상을 보기위해 눈치를 보는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 그는 힘이 빠지게 웃었다.
이게 뭐라고... 책상에 손가락을 두드리면서 초조하게 기다리자 컴퓨터 화면이 환히 밝아지며 바탕화면을 띄었다.
그는 컴퓨터가 켜지기가 무섭게 마우스를 집어 인터넷 아이콘을 두번 딸칵였다.
느릿하게 뜨는 인터넷 창에 그는 엄지손톱 끝을 물어뜯었다.
빨리빨리... 괜히 뒤쪽에 있는 방문을 돌아본 그는 로딩이 다 되기도 전에 주소창에다가 하얀 쪽지에 새겨진 영어 주소들을 타닥타닥 입력해 넣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엔터를 누르자 외부사이트로 이동한다는 알림과 함께 동성애자 카페라고 간단하게 써져 있는 사이트가 화면을 차지하였다.
"뭐야...별거 없는데 회원수는 은근 많네.."
마우스 스크롤을 내리던 경수는 사이트 밑에 조그만하게 써져 가입여부를 묻는 글을 클릭했다.
간단하게 회원가입을 마치고 가입인사글을 남겨야한다는 알림이 뜨자 그는 오만상을 찌뿌렸다. 뭐 이렇게 해야하는게 많아...
그는 짤막하게 나이와 사는곳만 써놓고 창을 내렸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슬쩍열어 집안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의 어머니는 벌써 주무시는듯 집안은 고요하게 적막이 흘렀다.
어둠으로 깔린 새벽에 자신만이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어 방을 나와 집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맨날 질리도록 보는 곳이건만 조용한 어둠을 품고있는 자신의 집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거실의 통유리로 바깥 풍경을 조용히 서서 보던 경수는 안방에서 그녀의 뒤척이는 소리에 제발저려 살금살금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잠시 꺼두었던 화면을 다시 키자 쪽지가 왔다는 알림이 떴다.
이시간에 쪽지?... 경수는 벽시계를 흘끔 바라보았다.
새벽 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분침을 보자 의아한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쪽지를 확인하였다.
-잠실? 가깝네ㅎ 나도 거기 살아-
작은 쪽지 창은 그만큼 짧은 글을 담고있었다.
순간 뭔가 싶어 잠시 미간을 구긴 경수는 자신이 올린 가입인사글에 잠실에 산다고 적어놓은게 기억이났다.
근데 뭐 어쩌라는 거지. 그의 왼쪽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
답장은 해줘야겠다 싶어 자신도 짧게 답을 보냈다.
-네 반갑네요.-
싸가지 없어 보일라나? 잠깐 고민했지만 살짝 고개를 저은 경수는 전송 버튼을 눌렸다.
답을 보내고 그는 이만 잠자리에 들기위해 창을 끄려고 마우스를 손에 쥐었다. 그 순간 다시한번 쪽지창이 떴다.
이 인간은 잠도 없나...경수는 한숨을 쉬곤 다시 손가락을 키보드 위로 올렸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다... 하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어? 학생인데 아직 안자네. 뭐해?-
-그냥요. 지금 잘려고요.-
경수는 짤막한 답장을 다시한번 전송시키고는 자신에게 쪽지를 보낸 사람의 닉네임을 훑었다.
"Kris...뭐야 크리스?...네이밍 센스하고는..쯧."
마치 금방이라도 게임에서 만날것같은 닉네임에 경수가 비웃는 사이 다시한번 쪽지가 도착했다.
"아오 시발. 시간 늦었으면 잠이나 쳐자지 무슨 말이 많아."
그가 또 한번 키보드에 손을 올려 쪽지를 확인하던중 쪽지 두 세개가 연달아서 도착하자 경수는 짜증나는 투로 말을 뱉었다.
어떤 정신나간 놈이 이 시간에 잠을 안자. 불만 많은 경수지만 자신또한 잠을 자지 않고 있기에 입을 다물었다.
얼른 답해주고 자자 라는 마음으로 네개의 쪽지들을 확인하였다.
쪽지들의 내용은 자신은 28살이고 게이라면서 소개하였다.
또 우연히 경수의 글을 보게 되었다고 자신과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눌수 있냐는 내용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웃기고 있네. 28살이나 쳐먹고 미성년자한테 관심이있냐. 순 변태새끼."
누가 봐도 작업거는 듯한 멘트들에 경수는 한심하다는듯 혀를 찼다.
경수는 아무래도 이 사이트를 탈퇴해야 될것 같다는 생각이들었다. 고민상담좀 하려고 했더니 이런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나 꼬이고.
경수는 턱을 괴며 한탄했다.
그리곤 이번엔 진짜 마지막이라는 다짐을 하곤 답을 길게 적기 시작했다.
-저 이만 자봐야되요. 그리고 그쪽 28살이신데 전 아직 17살이거든요? 관심 안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사이트 가입한 이유는 그냥 고민상담을 받기위함이지 누굴 만나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쪽지 보내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경수는 작은 쪽지창을 가득히 채워서 답을 적은뒤 전송버튼을 누르고는 바로 창을 꺼버리고 컴퓨터의 전원또한 내렸다.
그리고 바로 침대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기분나빠. 경수는 이불보를 꽉 안아 옆으로 누워 잠을 청했다. 자자 그만.... 속으로 중얼거린 그는 몇번 몸을 뒤척였다.
아무리 편하게 자세를 잡아도 잠은 쉬이 오지않았다.
몇분이 지났을까 경수는 자신의 폰을 집어들고는 시간을 확인하였다. 어느 새 2시 30분을 넘긴 시간에 그는 폰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잠이 다깨어버린것 같았다. 그 아저씨 때문이야.
"아이씨 짜증나 진짜!"
자신도 모르게 크게 나와버린 불평에 경수는 얼른 입을 틀어 막았다.
잠시 입을 틀어막은채 귀에 온 집중력을 발휘해 안방쪽 소리를 들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녀는 다행히 깬것같지 않았다.
안도의 의미로 한숨을 돌린 경수는 다시 이불에 몸을 파묻었다. 그런뒤 그는 다시 폰을 집어 들어 인터넷을 들어갔다.
그는 아까 주소를 더듬더듬 기억하며 좁은 폰 자판을 두드렸다.
다시 사이트에 로그인을 하니 3개의 쪽지가 도착해있었다. 조심스럽게 확인을 버튼을 눌렀다.
경수는 왜 자신이 계속 그의 쪽지를 확인하는지가 더 의문이었다. 그냥 무시하면 될걸.
골치아프게 몰리는 생각들을 물르려는듯 허공에다 손을 휘휘저은뒤 쪽지를 확인했다.
-아 미안 미안. 부담 됐나 보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혹시 괜찮으면 내가 그 상담 해줘도 될까?-
-자니?-
그 내용들에 경수는 코 웃음을 쳤다. 누가 변태같은 아저씨한테 고민상담을 하겠어. 그냥 무시하고 창을 닫으려던 찰나 손이 움찔하면서 멈췄다.
어차피 서로 모르는 사이니까 비밀같은건 털어놔도 되지않을까.
경수는 자신의 입술을 몇번 물어뜯더니 폰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럼 카톡보내세요.-
짧게 답을 보낸뒤 연이어 자신의 번호를 적어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