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호형,저 왔어요."
"...응."
짤막한 대화이후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않았다.정적만이 둘 사이에 어색하게 침범해 가라앉은 공기를 더욱 차갑게 만들기만할뿐.어제와 달라진것없는 집안 풍경에 한숨만 나왔다.차라리,어질러져있다면 그게 더 마음이 놓일텐데.어제와 같이 깨끗하게 정리되어있는 집안의 풍경은 더욱 답답해졌다.그가 또 아무것도 안하고 그저,지금처럼 소파에앉아 가만히 눈을 감고있었을것을 알기에.
약봉투를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슬쩍 그를 쳐다보았다.언제나처럼 눈을 감고 무릎을 꼬옥 안고있는.품에 안아 금방이라도 달래주고싶은듯 그는 그렇게 안쓰러워보였다.신발을 구겨신으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물론 대답은 돌아오지않거나,짤막한 소리뿐이겠지만.
"형,저 갈게요."
"....."
"...오늘도 행복해줘요."
대답이 돌아오지않을것을 안다.항상 이 말을 해왔지만 그의 목소리는 들리지않았기에.그래도,이말은 언제나 그를 향해 돌아갔다.오늘도 그가 제발 행복하길바라니까.
창밖에는 하얀 눈이 내리고있었고 즐거워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그 상황과 전혀 상관없다는듯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둘.사실 이미 알고있다.지금은 사랑과 우정사이도 아니다.그저,밋밋하게 헤어질만한 그런 위태로운상황.헤어지자,라고 말하기엔 괜시리 무언가가 걸리고 계속 사귀기엔 서로에게 시간이 낭비인것같은.핸드폰에서 잠시 눈을 떼고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보는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꿎은 핸드폰 화면만 툭툭 치는 그에 어쩐지 화가 났다.답답하다.나에게 말한마디 하지않는 그가 답답한 것인지 먼저 말도 못건내는 내가 답답한것인지.괜히 앞에 놓여있는 커피잔을 톡톡 치다가 그에게 말했다.나가자.날 살짝 쳐다본 그가 코트를 챙겨 일어났다.
커피숍 문을 열고 나오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닿았다.왠지 지금 나와 그의 상황을 피부로 느끼는것같아 기분이 나빴다.그는 내리는 눈을 잠시 쳐다보더니 또 핸드폰을 한번 쳐다보았다.
"나 갈게,태일아."
"응."
"..혼자 갈수있지?"
"....응."
미련없이 돌아선 뒷모습을 바라보다 나도 발걸음을 옮겼다.소복소복 밝히는 눈의 촉감이 좋았지만 그와 달리 머릿속은 더럽게 헤져만갔다.만나도 만나지않은것같은데,이 만남을 계속 이어가는게 맞는걸까.행복하게 웃으며 지나다니는 커플들이 괜히 싫어졌다.
"아저씨 어디에요?"
'엘리베이터.끊어.'
"네."
뚝-끊긴 전화기를 두 손에 꼭 잡고있다가 곧 청아하게 울리는 도어락 소리에 현관으로 뛰어갔다.현관에는 피곤한듯 인상을 구긴 그가 있었고 차마 말을 걸수없었다.그를 보면 무슨말을 할지,전부 생각해놓고 혼자 웃으며 좋아했는데.그의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니 또 철없이 굴고싶진않았다.
"많이 피곤해요?"
"응,오늘은 바로 잘게."
"...아저씨,언제 시간있어요?"
"..글쎄,딱히 언제라고는 말 못하겠다."
"그 일들 그렇게 중요해요?"
"...."
자켓을 벗으며 옷걸이에 걸던 그가 가만히 동작을 멈추었다.그리고 돌아보지도,대답도않는 그에 더욱 무언가 울컥하여 맘대로 말해버리고말았다.
"아저씨 엄청 잘나가고 유명한거 아는데,그럴수록 난 더 답답해지는거 알아요?"
"..권아,"
"그일이 그렇게,저보다 중요해요?"
"김유권."
"...."
약간 화가 난것인지 날 돌아보며 언성을 높인 그가 낯설어보였다.그도 그에 흠칫한 나를 보았는지 열었던 입을 다시 닫았다.정적이 흐르고 눈물이 날것같아 고개를 숙였다.또 철없이 굴어버렸어..
"..피곤하다.다음에 얘기하자."
"...."
방문을 쾅 닫으며 들어가버리는 그에 더욱 울컥했다.우린 아직,모르는것도 많고 해야할것도 많은데.시간은 우릴 차단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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