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바퀴가 돌았다. 느릿하게. 찬열은 한숨을 내뱉었다. 제 손에 잡혔던 작은연인의 온기가 아직도 남아있는것만 같았다. 경수가 없어진지도 벌써 두 달째 접어들고 있었다. 경수에게는 가족이 없었다. 경수에게 의지 할 사람이라곤 찬열, 자신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찬열도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짜증이었다. 계속 반복되는 패턴과 똑같은 일상. 또 주위 사람들의 묘한 시선. 이런 것들에 지쳐 경수를 '놓고싶다.'라고 했던 것이 짜증으로 표출되어 싸움이 일어났던 것이었다. 우발적이었다. 며칠만 되면 우리는 멀쩡해질 수 있다. 돌아 갈 수 있다. 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어느 날, 경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째깍째깍 움직이는 톱니바퀴는 아직도 귓속에서 맴돌고 있었다. 찬열과 경수의 톱니바퀴. 그 두개가 맞물려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것이 맞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경수의 톱니바퀴가 멈춰 찬열의 톱니바퀴만 억지로 움직이고 있었다. 키기긱. 마찰이 울렸다. 움직이지 않는다. 찬열은 자리에 쓰러지듯 앉았다.
찬열의 친구는 종인이었다. 대학 졸업 이후, 종인은 경찰이 되었다고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같이 나온 동창생이었고, 불알친구라 할 만큼 친했지만 대학생이 되고나서 어째서인지 연락이 끊겼었다. 그렇게 종인을 잊고 산 지 몇 년. 동창회에 나간 어느 날 종인과 찬열은 연락이 닿게 되었고 그 이후로 몇 년간의 공백기는 없었던 것처럼 그렇게 지내게 되었다. 그 즈음일테다. 종인과 만나게 된 날 이후로 점점, 찬열에게는 회의감이 들었다. 자유스러운 종인과 달리 찬열에게는 연인이 있었다. 점점 경수에게 소홀해지게 되고 싸우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경수는, 차차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초기엔 찬열이 집에 늦게 들어오면 왜 늦었냐고 했던 물음도 더 이상 묻지 않게 되었다. 밥상에는 먹다 남은 반찬들이 놓여 있었고 경수의 얼굴을 보기도 힘들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었다. 경수의 고삐가 없으니 찬열은 그 날 이후로 종인과 이곳저곳을 함께 쏘다녔다. 클럽으로, 모텔로. 경수와의 사이는 더 소원해졌지만 마음만은 홀가분했다.
어느날이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술을 먹고,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왔는데 티비를 보던 경수가 표정없이 물어왔다. ' 왜이렇게, 늦었어? ' 한계였던 모양이었다. 찬열은 말 없이 겉옷을 벗어 아무렇게 던져두었다. 경수는 보고있던 티비를 끈 후 찬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왜, 늦었어? 다시 한 번 묻는 경수에게 찬열은 겉잡을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비아냥대고 말았다. '알아서 뭐 하게? 나가지 말라고라도 이야기 해 보려고? 재수없는 소리 하지 마. 이제 너랑 사는것도 치가 떨려 죽겠으니까.' 진심? 그 순간에는 진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속에서 꾹꾹 눌러참던 무언가가 툭하고 끊어진 기분이었으니까. 경수는 찬열의 비아냥대는 소리에 표정없이 대답했다. '아, 그래?' 간단한 말. 그 말소리에 더 부아가 치밀어 찬열은 경수를, 때렸다.
처음이었다. 찬열은 자신이 그 누구도 아닌 경수를 때렸다는 것에 놀라 손을 붙잡은채로 경수를 쳐다보다 침대에 뒤돌아 누웠다. ' 내일이면 괜찮을거야. '
내일이면 괜찮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찬열이 자고 일어난 사이, 경수는 없었다. 제 짐들도, 경수도. 모두. 경수는 그렇게 말 없이 사라졌다. 잠시동안의 방황이라고. 곧 연락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며칠이 지나도 경수에게는 흔한 연락 한 번 오지 않았다. 이상했다. 그제서야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불안했고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찬열은 종인을 찾아갔다. 언젠가, 경수와 종인을 소개시켜 준 적도 있었고, 종인에게만은 자신이 커밍아웃했다는 사실을 밝혔기 때문에. 종인은 그런 경수와 찬열을 이해해주었다. 믿을 만한 것은, 종인 뿐이었다. 찬열의 자초지종을 들은 종인은 노력해보겠다며 찬열을 다독였다. 그 한마디에도 찬열은 안심이 되었다. 경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었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점점 날을 더해 갈 수록 찬열의 마음속엔 불안감이 커져 찬열을 덮었다. 찬열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경수는, 돌아 올 수 없다. 그래도 찬열을 붙잡고 있는 것은, " 씨발. " 찬열은 작게 욕을 읊조렸다. 자신이 왜 그런짓을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찬열 본인도 답답했고 이해가 가질 않았는데, 그것을 바라보던 경수는 얼마나…. 찬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경수야, 보고싶어. 경수야, 경수야. 텅 빈 원룸 안 찬열의 목소리는 퍼질 데 없이 메아리되어 찬열의 귓가를 다시 두드렸다. 손 끝도, 몸도 모두 무거웠다. 경수를 보고싶었다. 찬열은 흐느꼈다. 경수야. 하염없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거의 포기단계였다. 경수는 돌아오지 않을거다. 그리고 그 이유는 전부, 찬열 자신 때문이었다. 찬열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불이 깜박거렸다. 부재중전화 김종인. 찬열은 휴대폰을 그대로 뒤집었다.
꿈을 꿨다. 경수는 웃고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찬열은 움직 일 수 없었다. 말도 할 수 없었다. 온 몸이 무거웠다. 누군가가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있었다. 찬열은 속으로 소리질렀다. 경수야! 경수는 듣지 않았다. 아니, 듣지 못했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있던 경수는 이내 찬열의 시야를 벗어나 사라졌다. 그 순간, 찬열은 알아차렸다. 소리지를 수 없어서 지르지 못한게 아니라, 소리지르지 않아서 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찬열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내, 하얗던 세상이 까맣게 부서졌다. 찬열의 몸이 경기를 일으켰다. 찬열은 마치 전기에 감전 된 사람처럼 몸을 파르르 떨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김종인. 밤 새 몇 번이나 전화했는지 찬열의 휴대폰은 극도로 뜨거워져 있었다. 찬열은 느릿하게 종인의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
[ 자고있었어? ] " 어…, 뭐 단서라도 나왔어? " [ 아무것도, 아직. ] 종인의 면목없어보이는 목소리에 찬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휴대폰 너머 종인도 침묵했다. 종인의 주변으로 시끄러운 목소리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만 찬열의 귓가를 웅웅 맴돌았다. 동시에 찬열의 세계가 빙글빙글 돌았다. 앞을 두 눈 뜨고 쳐다보기도 힘들었다. 찬열은 가만히 눈을 감으며 왼 손으로 제 눈을 어루만졌다. 퉁퉁부어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자는동안 울었던 모양이었다. 찬열의 목소리는 간밤에 잠겨있었다. 종인도 그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나중에, 경찰서로 와. 그 말을 남긴 종인은 찬열이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런 배려가, 지금은 고맙지 않았다. 종인이 무능력하게만 느껴졌다. 분명히 잘못 한 것은 종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종인이 너무 미웠다. 경수하나 찾아내지 못하는, 종인이. 찬열은 욕실로 들어가 자신의 몰골을 쳐다봤다. 퀭한 얼굴. 생기라고는 찾아 볼 수도 없었다. 턱에 난 수염은 깎지 않은 지 오래되어 거칠거칠했다. 찬열은 면도기를 집어들었다. 경수가 언제 돌아올 지 모른다. 그리고 또, 경수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경수를 찾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깨끗하고 정갈해야했다. 그것이 자신이 정한 약속이었다.
찬열은 씻은 후, 면도를 하며 제 얼굴을 슬쩍 만졌다. 뼈밖에 잡히지 않지만. 경수는 찬열의 볼살을 좋아했었다. 그것마저도 이젠 의미가 없지만. 찬열은 휴대폰을 들었다. 얼마남지 않은 배터리에 이름 세글자가 떴다. 같은 부서의 변백현. 한창 경수와 싸웠을 때, 바람아닌 바람을 피웠던 대상이기도 했다. 백현은 문자를 받지 않자 걱정이 되었는지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찬열은 말 없이 휴대폰을 들어 귓가에 가져다대었다. [ 찬열씨? ] " …백현씨. " [ 왜, 회사에 안 나와요? ] " 그게, 그럴만한 일이 있어서. "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고요. 이 말이 목구멍에서 막혀 나오질 않았다. 백현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다는게 맞았다. 찬열은 경수를 사랑했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백현에게 피해도, 자신의 본성도 어느 것 하나 가르쳐주고 싶지 않았다. 백현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이었다. 그럴만도 했다. 회사를 잠시 쉬겠다며 아무도 모르게 휴가를 낸 후 종인과 하는 연락을 제외하고는 경수에게서 연락이 올 까봐 다른 이들의 연락은 받지도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백현은 왜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았냐며 타박도 하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백현이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다 해도 대답해 줄 자신이 없었다. 백현은 딱 잘라 이야기하는 찬열의 말투에서 무언가 느껴졌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백현은 중얼거렸다. ' 꼭 다시 회사에 나와요. ' 그 말을 한 채로 백현은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찬열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나만 하는게 맞았다. 백현을 끊어내던가, 경수를 끊어내던가. 하나만 하는 것이 맞았다. 그런데도 미련한 자신은 백현과 경수 사이에서 위태한 줄다리기를 하다 둘 다 놓쳐버리고 말았다. 백현을, 끊어냈다면 지금쯤 경수는 제 품에서 웃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백현을 원망 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백현을 원망해야 제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이었다. 찬열은 겉옷을 걸친 후 주머니에 지갑을 넣었다. 경수의 사진이 아직도 지갑 안에 들어 있었다. 문을 열었다. 항상 똑같이 오는 아침인데도 눈이 너무나 부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찬열은 두려운 마음으로 한 발자국 내걸었다. 경수를 찾을 수 있다. 찾아야 했다. 찬열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경찰서는 평소와 다름 없이 시끄러웠다. 찬열은 익숙한 종인의 자리로 찾아갔다. 종인은, 뒷통수만 보인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어제 저녁 계속 된 전화를 하다 지쳐 잠도 제대로 못 잔 모양인데. 찬열은 그런 종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도와주는 것 뿐인데 찬열은 속으로 원망만 하고 있었다. 조금, 자게 두는게 낫겠다 싶어 주변의 커피숍을 다녀오기로 했다. 찬열은 경찰서 주변의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두 잔 시켰다. 한 잔은 종인이 자주먹는 카라멜 마끼야또. 한 잔은 자신이 자주먹는 카페라떼. 그러고보니, 종인이 먹는 카라멜 마끼야또는 경수가 자주 즐겨 마시는 것이기도 했다. 찬열은 멍한 표정으로 커피숍 안쪽에 앉아 눈을 감았다. 눈이 뻑뻑했다. 경수야, 너는 어디쯤 있을까. 찬열은 주문한 카라멜 마끼야또와 카페라떼를 들고 다시 경찰서 안으로 향했다. 언제 일어났는지 붉어진 눈의 종인이 찬열을 확인하곤 밝게 웃었다. 왔냐? 실없이 던지는 물음에 찬열은 고개를 끄덕이며 왼 손에 들고 있던 카라멜 마끼야또를 건넸다. 찬열은 고맙다며 받아들고는 찬열에게 말했다. ' 경수를 본 목격자가 있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인데, 어떤 남자랑 만났던 모양이야. 그 이후로 경수는 보이지 않았다고 하고. 아마 멀지 않은 곳에 있을거야.주변에 전단지같은거 조금 뿌리면 곧 다른 사람들이 연락을 해 올지도 모르고. ' 종인의 말에 찬열은 작게 중얼거렸다. 고마워. 종인은 뭘, 하고 대답하더니 카라멜 마끼야또를 입가에 가져갔다. 찬열은 자신이 작게 느껴졌다. 자기 연인도 챙기지 못하는 못난 놈. 그에반해, 종인은 제 연인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찬열을 도우려 애쓰고 있었다.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거렸다. 찬열은 중얼거렸다.
" 못난새끼. "
자신에게 던지는 자조적인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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