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권순영X검사 너봉_번외_1 (부제: 권순영은)
"너, 다른 사람 신분 빌려사는 주제에 요즘 너무 나댄다는 생각 안들어? 정도껏 하자 정도껏. 응? 알잖아."
"...예."
부유한 집안? 영향력 있는 부모님? 금수저? 천만에.
신이라는 작자도 생각은 있는건지 완벽할 수 있었던 내게 그래, 선심 썼다 치고 절반만 나누어 준것이라 생각했다. 명석한 두뇌, 건강한 몸, 그 외에는 딱히 내세울게 없다. 높은 빌딩들이 수두룩 빽빽히 쌓아 올려져있는 곳, 마치 미래의 모습을 미리 보는 듯 기상천외한 건물들이 널린 그곳. 나는 그곳의 뒷동네인 판자촌에서 태어났다.
마을에선 나름 난놈이라며 이웃들은 그저 저같이 명석한 아이가 이런 빈민가에서 났다며 안타까워 할 뿐이였다. 수많은 소설 속 삐뚤어진 아이의 기본 배경. 그게 나였다. 매일 술만 퍼먹다 들어오는 아버지, 집에 돌아오면 나와 동생과 어머니를 죽일 듯 패곤 했다. 일은 한순간에 벌어졌다. 여느날 처럼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돌아온 아버지의 밸트에 동생이 맞아 죽었다. 동생이 죽어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면서, 어머니는 숨이 끊겨가는 막내아들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방이라곤 하나뿐인 그 집에서 홀로 이불 속에 들어가 비명소리를 들으며 벌벌 떨었다. 아버지의 매질에 결국 어머니는 기절하셨고 그대로 아버지라는 작자는 씽크대 아래 어머니가 고이 숨겨뒀던 비상금을 들고 나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어머니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다. 동생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들려오던 소문으로는 도박으로 어머니가 몇년간 모아온 돈을 모두 탕진하고 없는 돈까지 긁어모아 어찌저찌하다 교도소에 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돈을 갚지 못해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다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그래도 어린 마음에 남은 유일한 혈육이라 그런지 차라리 교도소에 들어가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되려고 꿈꿨다.
그 이후론 아버지의 사촌동생, 그러니까 당숙이 나를 키웠다. 어린 아들과 아내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탓일까, 나를 친아들처럼 소중하게 키웠다. 영어 학원이 다니고싶다는 말에 없는 살림까지 털어 영어학원에 보내줬고,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말에 변호사 관련 책만 몇십권을 사주셨다. 삐뚤어진 나를 한번 다그치지 않고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주셨다. 내 한마디에 쩔쩔 매는 당숙에 그래서 나삐 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날에, 공장 노가다를 뛰시던 당숙께서 높은 빌딩 공사 중 추락하셔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서야 펑펑 울었다. 왜 나는 이렇게 불행할까, 아버지가 술취해 들어오셔서 우리를 매질하며 매일 했던 말이 있다.
"너희때문이다, 다 너희 때문이야. 죽어야해 니넨, 원래 태어나면 안됐어!!"
그 말이 진짜라고 생각하게 된건 그때가 처음이였다. 다 나 때문이야, 죽어야해. 그 어린 아이가 몸에 상처도 많이 냈다. 어디서 이름 모를 알약을 주워와 아무도 없는 텅빈 방안에서 한꺼번에 삼키기도 했다. 신이 날 미워하는건지 사랑하는건지, 죽을 고비를 몇번이나 넘겼지만 결국엔 살아남았다. 그럴때마다 건강한 내 몸이 미웠다.
보호자가 없어진 탓에 고아원으로 가게 됐다. 게 중에서도 가장 머리가 컸던 나는 악동짓을 선동하며 선생님들이 골머리를 앓았고, 많이 맞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초등학교에서는 급식비를 내지 못해서 아이들이 먹다 남긴 흰우유를 운동장 한 구석에 숨어서 먹기도 했고 매일 똑같은 옷만 입는다고 놀리던 다른 아이들고 시비가 붙어 선생님과 학부모들에게 호되게 혼나곤 했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성질머리에 담임 선생님조차 나를 포기했을때 즈음, 고아원으로 누군가 찾아왔다. 한번도 본 적 없는 광이나는 멋진 자동차에서 엄청 돈이 많아보이는 아줌마 아저씨가 내렸다. 그분들은 어딘지 슬퍼보였고 어딘가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차에서 내려 고아원 안으로 향하는 아줌마의 다리를 꼭 안았다.
선생님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나를 떼어내려고 애썼지만 이내 눈물을 보이며 나를 꼭 껴안아오는 아줌마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서있는 선생님들이였다.
아줌마와 아저씨는 선생님들께 무어라 말하더니 이내 나를 데리고 차에 탔다.
"아가, 네 이름은 이제 권순영이야. 알았지? 우린 이제부터 네 엄마, 아빠란다."
부드러운 목소리였고, 부드러운 손길이였다. 꼬질꼬질한 나를 쓰다듬어오는 예쁜 손에 괜히 미안했다. 인자하게 나를 보며 웃던 아저씨, 아니 아빠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도착한 곳은 전에 본적 없는 으리으리한 주택이였다. 바닥이 온통 하얀 돌로 덮여있었고, 갈색 가죽으로 덮힌 화려한 쇼파만으로도 내 넋을 잃게 하기엔 충분했다. 그곳에 어린 아이는 나 혼자만이 아니였다. 끽해야 6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구야?"
"아, 태영아, 인사해, 순영이야."
"순영이는 없어. 쟤는 순영이가 아니야."
하는 아이의 말에 퍽 자존심이 상했다.
"아냐, 난 순영이야 권순영. 그게 오늘부터 내 이름이랬어."
"누가그래? 니가 권순영이라고?"
"엄마 아빠가 그랬어"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말았어야하는데. 그때부터였을까, 내 형이라고 하는 그 사람과는 완전히 비틀어지게 됐다. 밖에서 안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집으로 돌아와 내게 화를 풀었고, 그 덕에 예전으로 돌아간 착각마저 들었다. 이, 왜 나는 항상 이렇게 맞고만 살아야 할까. 나는 저주받은걸까, 신은 나를 미워하는걸까.
그러던 어느날에 성인이 된 형이 술에 취해 돌아와 날 죽일듯이 때리며 말했다.
"넌 권순영이 아니야. 넌 내 동생 신분을 빌려사는거야. 어디서 굴러들어온 고아 새끼가 이집 막내 아들인척 하고 사는거, 되게 맘에 안들거든 난. 죽은 사람 대신 어디, 한번 잘 살아봐 새끼야."
울컥했다.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다. 매년 같은날 부모님은 어딘가에 다녀오셨고, 돌아오실 때마다 표정은 우울했다. 일년 내내 나를 아껴주시다가도 그날만은 나를 보지 않으셨다. 가끔 부모님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날엔 머리를 쓰다듬으며 "우리 순영이랑 참 많이 닮았다." 같은 이야기를 하셨고 눈치가 꽤 빠른 나는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아픈 부분을 정곡으로 찔러오는 형에 기분이 상했다. 자존심을 긁었다. 몇번이고 뺨을 맞는 동안 가만히 주먹만 쥐고 서있었다. 코피가 나면 고등학교 교복에 피가 묻을까봐 두 팔로 몸을 가렸다. 한참을 그렇게 날 때리다가 지쳐 잠이 들었나보다. 편하게 침대에 누워 잠을 자는 형의 모습에 치가 떨렸다. 하지만 건드릴 수 없었다. 실망하실 부모님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났다.
나는 공부를 꽤 잘했다. 학교에서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친구도 꽤 많았다. 왜인지 나와 친해지려고 하는 아이들이 많았고, 부모님 덕인지 몰라도, 학교에선 꽤 괜찮은 아이였다. 꿈이 무어냐는 질문엔 항상 변호사라고 답했다. 덕분에 대학도 잘 갈 수 있었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하버드 로스쿨까지 입학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형은 내게 친절하게 대했다. 왜인지 몰랐지만, 그래도 형이 나를 좋아하는구나, 하고 바보같이 그때가 좋았다.
하버드 동기중 한국인은 단 두명이였다. 나와, 최한솔. 동생이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딱 얘정도였겠지. 나를 잘따르던 아이였는데, 웃는 모습이 많이 닮아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 아이를 많이 챙겨주려 노력했고, 한솔이도 그걸 알았는지 나를 친형처럼 따랐다. 먼 타지에서 동양인이라고 무시받던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였고 어두운 길의 가로등이였다. 우리는 우수한 성적으로 함께 졸업 했고, 나는 변호사, 한솔이는 검사,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첫번째로 변호하게 된 이는 살인자였다. 형의 추천으로 맡게된 사건이였는데, 그 사람을 변호하는데 성공하면 큰 선물을 주겠다는 것이였다. 그렇게 내 첫번째 변호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승소한 것이다. 그 사건이 한솔이와 연관되어 있는 것일지는 승소하고 한참 뒤에 알게 된 사실이였다. 나를 찾아와 나를 죽일듯이 때렸다. 그렇게 화가 난 모습은 처음이였다. 내가 변호한 이의 피해자는 한솔의 어머니였고, 나조차 나를 용서할 수 없었기에, 나는 악역이 되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나를 미워하겠지. 나를 영원히 용서하지 않겠지. 살인자가 유유히 거리를 활보하는데도 그저 가만히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을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형의 선물은 '이야기'였다. 내 친아버지의 안부. 잊고 살았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살아있었고, 얼마 전 교도소에서 출소했다고 했다. 절망적인 이야기였다. 그게 어떻게 선물일까. 이런 이야기를 들으려 내가 그렇게도 소중한걸 잃었을까. 그리고 형은 동생이 죽은데에 대해 날 의심하고있었다. 변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무시했다. 그게 큰 화였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는 그가 날 찾고있다는 이야기였다.
"니가 이름도 바꾸고 이렇게 떳떳하게 잘 살고 있다는걸 그 사람이 알면 되게 웃기겠다. 그치?"
그가 주는건 선물이 아닌 '협박'이였다. 잃고싶지 않았다.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시는 부모님, 으리으리한 집, 누구나 부러워하는 부모님의 명성. 욕심이였다.
"원하는게 뭐야?"
"니가, 내 꼭두각시쯤 되는거? 어려운건 아니고, 그냥. 내가 제시하는 사건들 맡고, 승소하면 돼. 너정도 머리론 쉽잖아."
어려운 부탁은 아니였다. 그의 말을 수락했다. 바보같이.
형이 내게 제시하는 사건들은 하나같이 강력 범죄였고, 하나같이 범죄자의 편에 서 변호하는 것이였다. 누구의 잘못인지, 잘잘못이 명확한 사건 조차도 내 손을 거치면 승소의 길로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고위급 간부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나였다. 기왕 악역이 되기로 한거, 완벽하게 하려 애썼다.
여섯살짜리 아이를 강간한 피고인을 변호하라는 말에 처음으로 형에게 안하겠다, 못하겠다며 이야기했고, 형은 나를 되려 살인자로 몰아가며 나를 쥐고 흔들었다. 결국 재판에서 승소했으나 내가 얻은것은 법조계의 손가락질, 야유와 범죄자들의 찬양이였다. 한동안 고민도 많이 했었다. 내가 이러려고 변호사가 된걸까, 이렇게 해서 얻는게 뭐지
그러다가 만난게 김칠봉 검사였다. 꽤 당돌해보였다. 아마 그녀의 첫번째 재판이였을 것이다. 별거 아닌 사건임에도 굉장히 열심이였기에 눈이 갔다. 결과는 김칠봉 검사의 패소였으나 나를 밉게 째려보던 그 얼굴이 어찌보면 사랑스러워 괜히 밉게 말을 했다.
"다음엔 꼭 이겨" 하며 이야기하면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듯 나를 째려보며 콧김을 흥- 불어댔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웠다. 그래서 여지껏 쌓아온 내 이미지와는 맞지 않는 재판을 해가며 그녀와 접점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게 형이 너한테 제시하는 마지막 사건이야."
대한그룹의 부사장이 성매매여성을 무참히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였다. 공교롭게도 피고인을 기소한 이는 김칠봉 검사였고, 나는 꽤나 반가웠다. 그녀의 팀이 한솔인걸 알고 나서는 너무 기뻤다. 많이 커서, 대단한 사람이되어서 나와 법정에서 만나는구나, 좋은검사가 되었구나. 하면서.
그녀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서툴렀다. 능글스러운 척 그녀의 앞에 힌트를 흘려댔고, 그게 나인걸 알길 바랬다. 어찌보면 그건, 형에 대한 나의 작은 반항이였다.
어쩌면, 재판을 그저 내 관심을 표현하는 정도의 '수단'으로 생각했던가보다. 그녀를 찾아갔던 날 내게 했던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그저 게임의 주최자인것 마냥 재판이 하나의 장난감인 것 마냥, 그렇게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모습이 바로 내 모습인걸 알았다. 울음을 꾹 참고 나가는 그녀에 그제서야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깨닳았다. 변호는 내팽겨치고 매일 검찰청 앞에 서서 어찌 사과를 해야할지 고민하다가도 그녀가 시야에 보이면 숨어버렸다. 어쩌면, 그 능글맞은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인지, 그녀에게 사과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날, 한솔과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건지 검찰청 앞에 가만히 서서 검찰청에 견학온 아이들을 내려다 보고있는 김칠봉 검사에 더욱 가까히 갈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아이들을 보며 그저 웃음짓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사과해야해. 그녀에게 한걸음씩, 가까히 다가가던 그 순간에,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달려오던 버스앞의 아이를 밀어내고 그대로 버스에 치인 김칠봉 검사를 본 순간, 바닥에서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몇미터쯤 공중에 떠 날아갔다. 그리고 아스팔트 위에서 피투성이가 된 그 여자가, 나를 너무 아프게 했다.
119를 불러달라는 한솔의 다급한 외침에 손에 든 핸드폰으로 구급차를 불렀다. 김칠봉 검사의 머리를 한손으로 받치고 구급차를 기다리는 한솔의 모습에 뒤를 돌아 갈 수 밖에 없었다.
아, 저기는 내 자리가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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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분량이 너무 아쉬운 듯 해서 번외편을 올려보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오늘도 재미있게 읽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