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는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걸 알면 어떤 반응일까, 화를 낼까, 욕을 할까, 더럽다고 피할까. 무슨 반응이든 날 피하지만 않으면 좋겠다. 이현수가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더럽다고 해도 그 후에 깔끔하게 잊고 다시 친구로 지내는 그런 전개를 원했다. 이현수와 지금 더 멀어지는건 싫었다. 병희새끼가 그렇게 가고 이현수를 더 찾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이현수는 나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그냥 친구였을까, 아니면 밴드의 멤버? 그것도 아니라면 안구정화의 기타리스트? 도대체 이현수가 나에게 뭘까.
![[닥치고꽃미남밴드/지혁현수] Walking on 下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file/20141201/0/c/6/0c6d5cdcc6fc71f6e4efd43ada5503db.png)
남자가 남자새끼를 좋아하는게 말이 되는걸까. 내가 게이새끼인걸 내가 인정하는게 맞는걸까. 지혁은 제 마음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현수를 좋아하는 제 마음을,제상태를.
그래서 일부러 하진을 따라가 클럽도 가보고, 여자도 만나봤지만 뜨끈한 제 마음을 누를 수 없었다. 이제 현수만 봐도 미칠 것 같았다. 이현수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나만
이현수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이현수가 장난이라도 걸면 예전처럼 받아주지 못하는걸까, 그 사실을 깨끗하게 인정하지 못했다. 유치하게 이현수에게 시비도 걸어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나아지는건 없었다. 점점 심해지는건 현수를 향한 제 마음,
"이현수."
"왜 자꾸 불러싸냐ㅡ"
"너 자꾸 그 부분 틀리잖아, 똑바로 안 할래?"
"그래서 요즘 남아서 연습하잖아."
"그래ㅡ 현수 이노무 자식 요즘 현지도 안 놀아주고 억수로 연습한다 아이가."
시발, 뭐라고 말만 하려고 하면 저새끼들이 나서서 이현수를 보호한다. 이현수가 제 입꼬리를 올려 피식 웃는다. 그 모습에 또 딩, 하고 머리가 울리는 지혁은 정말 제가
돈게 맞다고 인정했다. 다시 연주를 시작하고 노래를 불렀다. 주병희에게 줄 마지막선물을 유승훈의 밴드에게 고대로 빼앗기고 다시 시작한 것이다. 이번엔 후회 없이
끝내고싶었다. 곡이 끝나는 무렵 이현수의 연주가 밀리자 차례대로 리드기타가 밀리고, 베이스가 밀리고 키보드가 밀리고 드럼이 밀렸다. 연주를 중단하고 이현수의 기타를
빼앗았다. 제대로 연습한거 맞아? 이현수에게 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싶었다. 아니면 변명이라도 듣고싶었다. 아직 손이 덜 풀려서 그래, 라는 변명이라도 듣고싶었다.
주병희 다음으로 제가 가장 믿는 이현수에게 한 실망은 더이상 하고싶지 않았다.
"미안하다, 요즘 현지가 유치원에서 장기자랑 해서…"
"그만해, 너 연주 오늘 여기서 그만하고 가."
그래? 어디 나 없이 니들끼리 잘하나 보자. 현수가 제 기타케이스에 기타를 넣고 나갔다. 현수가 나가자 조용해진 지하연습실, 다시 연주를 리드한 지혁이 노래를 시작하자
하진이 연주를 멈춘다. 시발, 이현수 없으니까 임팩트가 없잖아! 하진이 지혁을 향해 빽 소리 쳤다. 여태 가만히 있던 도일도, 제 손가락을 만지고 있던 경종도 모두 지혁에게
한마디씩 한다. 그래도 그렇지 현수 동생 엄청 아끼는거 알면서, 응? 동생빠돌이가 뭐냐 이 생각없는 새끼야? 하진의 말에 지혁이 제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래, 내 입이
병신이다, 병신이야! 현수가 나간지 얼마 후 연습이 끝났다. 그래도 너 현수한테 사과는 해야지. 도일이 지혁을 달랬다. 삐딱하게 도일의 말을 듣던 지혁도 하는 수 없이
-타의라고 말하지만 실은 자의로- 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번의 통화연결음이 가고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끊은 지혁에 하진이 한번 더 해보라고 재촉했다.
이새끼는 현수한테 항상 시비 걸더니 없으니까 난리야. 지혁이 다시 현수에게 전화를 걸자 꺼져있다. 현수 임마 이거 진짜 화났네, 화났어. 정말 주병희가 간 후로 제대로
풀리는게 없다. 밴드도, 음악도..이현수도.
"현수는?"
"너랑 같이 오는거 아니었나?"
"현수 하진이랑 같은 동네 살지않아?"
"난 너랑 같이 오는 줄 알았지!"
지혁이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하고 제 머리를 쥐어 뜯었다. 아오, 이현수! 지혁이 던진 핸드폰을 주운 경종이 아무 말 못하고 어버버거리자 하진이 지혁의 핸드폰을
확인하고 지혁의 머리를 한대 때렸다. 리더라는 새끼가 사고는 제일 크게 쳤어! 지혁에게 온 현수의 문자는 그렇게 내 연주가 듣기 싫으면 새 멤버 들여, 였다. 즉, 밴드를
그만 둔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현수의 잠적. 실바에겐 아프다고 둘러대긴 했지만 빨리 이현수를 찾아야했다. 이 학교 교칙상 열흘 결석이면 자동 퇴학처리, 현수를 보내기
싫어도 보내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에 현수를 찾아야 했다.
"어이구? 대회 망친 새끼는 어디 갔냐?"
"알아서 뭐하게."
"아ㅡ 이 밴드는 한명씩 사라지는게…"
지혁이 표주의 멱살을 잡았다. 뭐라고? 다시 한번 지껄여봐, 이 새끼야. 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표주에게 물었다. 아, 이제 이 새끼 귀도 먹었나보네. 이 밴드는 한명씩
사라지는게 특징인 것 같다고. 그리고, 승훈이 표주를 말렸다. 지혁이 아닌 승훈이 표주를 데리고 나갔고 지혁은 자리에 앉았다. 눈 안 까냐? 지혁의 날카로운 말에 반
아이들은 지혁을 보던 시선을 돌렸다. 이현수..이현수..이현수! 현수가 보고싶었다. 문득 현수를 좋아하는 제 마음을 인정한 것이 된 지혁이 제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친구를 찾고싶은건지, 사랑하는 현수를 찾고싶은건지 그 이유를 찾고싶었다. 정말 현수는 제 친구가 맞는건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어디 가?"
"이현수 잡으러."
"야, 잡으러 가긴 가도 수업 끝나고 가라, 벌점 쌓이면 너 퇴학이야."
"아오, 되는게 없어!"
지혁이 다시 제 자리에 앉았다. 수업이 시작하자 교과서도, 칠판도, 선생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제 머리를 지배한 현수에 지혁은 책상에 엎드렸다. 자면 좀 괜찮아지겠지.
그리고 꿈을 꾸었다. 이현수를 처음 만난 꿈, 조용하고 말이 없었지만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중학생 현수를 만나고 같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생 때 제 옆에 있던
현수는 그 전보다 밝아졌고 말도 많아졌지만 병희를 만나고..그래, 병희를 만나고 이현수랑 있는게 적어지긴 했다. 하지만 이현수랑 멀어진건 아니었다. 이현수는 아니어도..
"현수 어쩔끼가."
"찾아야지 이 병신아, 그럼 그냥 두냐?"
"근데 얘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내가 찾으러 갈게."
니가? 하는 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넌 그새끼랑 싸웠잖아~ 하진의 말에 도일이 끼어들었다. 싸움 낸 당사자가 가는게 낫지. 도일의 말에 수긍한 하진이 지혁을 보냈다.
리더 없다고 농땡이 까고 있지말고 연습 잘하고 있어라. 지혁이 뒤 돌아 말하니 하진이 능글맞게 맞받아쳤다. 하여튼 저새끼는 지는게 없어요. 지혁이 현수가 지금 집에
없다고 확신한건 현수 엄마의 전화때문이었다. 현지도 안 데리러 갔다는 현수 엄마의 전화. 지 동생은 끔찍히도 아끼는 현수여서 동생을 안 데리러 갔다는건 정말 크게
화가 났다는 뜻일지어다, 라고 도일이 말했다. 나이트도 뒤지고, 동네 골목도 뒤지고 하다못해 모텔도 뒤졌지만 현수는 보이지 않았다. 이새끼 꽁꽁 숨었네 진짜.
"현수 찾았냐?"
하진의 전화였다. 못 찾았다고 말하면 분명 이새끼들이 지랄 할거고, 찾았다고 거짓말을 치기엔 제 양심이 찔린다. 모..못 찾았어. 지혁의 말에 이번엔 경종이 화를 낸다.
너 빨리 현수 안 데리고 올래 이 간나야! 소리치는 경종에 잠시 제 핸드폰을 귀에서 뗐다. 아오, 넌 또 왜 그러냐. 진정해, 진정. 핸드폰 너머로 하진이 경종을 진정 시키는
소리가 들렸다. 아오, 끊는다. 지혁이 하진의 전화를 끊고 벤치에 앉았다. 이 새끼는 어디로 숨어서..가만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주병희 이 또라이같은 새끼야, 너같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냐? 대답이 없는 하늘에 물었다. 또라이 리더 주병희는 어떻게 이걸 해결했을까.
갑자기 병희가 보고싶었다. 가장 행복하게 죽지 못한 주병희가 보고싶었다. 아니, 행복하다면 행복한 죽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제 친구들을 보고 죽었으니까. 그리고 그곳에
가면 이현수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죄책감과 자괴감에 방에만 틀어박혀있다 학교에 나온 이현수는 또 다시 주병희를 보러 갔을까. 우리 또라이 리더 주병희를 보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 주병희가 안치 되어있는 납골당을 가자 이현수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멍하게 있는 이현수, 납골함에 있는 주병희의 사진을 보고 있는걸까.
이현수에게 다가가 앞에 섰다. 제 시야가 가려지자 금새 인상이 구겨진다.
"뭐야, 어떻게 찾았어."
"아오, 이 바보같은 새끼..삐져서 학교도 안 나오냐?"
"지랄도 가지가지다, 어떻게 왔냐?"
"미친 새끼, 온다는게 여기밖에 없냐?"
"그래, 이 새끼야."
현수의 손목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가자, 이 병신새끼야. 지혁이 제 손목을 잡자 잡힌 손목을 뿌리친다. 내가 기집애냐, 손목 잡히게. 현수가 지혁을 지나쳐 갔다. 하여튼
새끼 쉽게 받아주는게 없어요. 현수의 뒤를 따라간 지혁이 다시 한번 현수의 손목을 잡았다. 뭐야, 왜 잡냐. 현수가 묻자 현수의 손목을 세게 쥐고 제 옆으로 끌어당긴 지혁이
현수의 어깨에 제 팔을 둘렀다. 너 또 도망갈까봐 그런다 왜. 지혁의 말에 현수가 소리내어 웃는다. 이 새끼 말하는거 보게, 이게 도망 온거냐? 지가 먼저 시비 건거면서.
그게 그거지 이 새끼야, 묻는 말에 지지 않아요, 이 새끼는. 현수의 머리를 한대 친 지혁이 현수의 손을 잡는다.
"기집년들도 아니고 손은 왜 잡냐?"
"내 맘이다, 왜."
결국 지혁의 손을 놓지않은 현수가 연습실로 돌아오니 멤버들은 없었다. 지혁에게 잘해보라는 문자를 남기고선, 목을 가다듬으며 현수의 옆에선 지혁이 현수를 앰프 위에
앉혔다. 뭐하게. 현수가 지혁을 향해 묻자 지혁이 앰프를 켜고 기타를 멨다. 잘 봐라, 지혁이 마이크를 쥐고 노래를 시작했다. 대회에서 부른 곡이었다. 병희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곡이기도 했다. 현수가 지혁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새끼는 노래도 잘 불러요. 아무도 없고, 오직 현수만이 지혁이 부르는 곡을 듣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고 마이크에 제 입을 댄 지혁이 현수를 향해 말했다. 놀라지마라, 로 입을 뗀 지혁이 뜸을 들였다. 뭔데, 이새끼야. 현수가 재촉하자 지혁이 현수의 앞으로
다가왔다. 아오, 내가 미친 놈으로 보여도 잘 들어라, 나 너 좋아해. 지혁의 말이 끝나자 현수가 피식 웃는다.
"응, 나도 너 좋아해."
"뭐?"
"나도 너 좋아한다고."
지혁이 멍하게 있자 현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혁의 앞으로 다가온 현수가 지혁의 볼을 늘어뜨렸다. 이거 꿈 아니라고 병신아. 현수가 지혁의 볼에 제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병신새끼 그것때문에 나한테 그렇게 까칠하게 굴었냐? 현수가 지혁의 앞에서 제 입을 쫑알거렸다.
"너 그거 아냐."
"뭐, 이 호구새끼야."
"너 내앞에서 그렇게 쫑알대니까.."
"뭐..뭐 이 새끼야."
지혁이 현수에게 다가가 현수의 허리를 붙잡았다. 이 새끼가 갑자기 미쳤나..왜이래..현수의 허리를 제 팔로 감은 지혁이 현수와 눈을 맞췄다. 존나 꼴려 현수야. 지혁이
현수의 아랫입술을 깨물어 현수의 입을 벌렸다. 현수의 도망다니는 혀를 붙잡은 지혁이 현수의 안쪽 연한 살을 핥았다. 현수의 한쪽 어깨를 잡고 현수의 치열을 훑었다.
제 어깨를 미는 현수의 손을 잡았다. 결국 현수를 벽으로 밀었다.
"이 새끼들 뭐야, 그 때는 그렇게 서로 으르렁대더니?"
"가만히 내비둬라 쫌! 저렇게 화해 하는게 낫제~"
현수를 제 옆에 꼭 두고 등교하는 지혁에 실바가 시비를 건다. 너네 그렇게 꼭 붙어다니면 풍기문란으로 벌점이야! 실바의 강한 압력에도 지혁은 실실 웃으며 현수의 어깨에
제 팔을 둘렀다. 그까짓거 그냥 주세요! 지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침내 소리 내어 웃는 지혁의 배를 현수가 주먹으로 치자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다 다시 현수를 제 옆에
둔다. 현수 어디 안가, 이새끼야. 하진이 지혁의 머리를 한대 내리쳤다. 이새끼는 이해 할 수가 없어요 진짜. 교실에 들어온 지혁을 비롯한 하진, 현수가 자리에 앉자
승훈이 말을 걸어온다. 지혁 자신도 승훈과 친하게 지내는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승훈이 자신과 어느정도 관계를 회복한 뒤 표주도 더이상 시비를 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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