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은 귀여웠다. 21 세 백수 생활이 지겨워지려는 찰나, 자취방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3 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편의점에서 평일 오후 타임의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길래 냉큼 지원했다. 평소 라면을 사러 자주 갔던 터라 점장님과 안면도 있고 자취방도 가깝고 단번에 합격이었지 뭐.
편의점 주위는 원룸과 오피스텔이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에 나처럼 잠옷 차림으로 와 라면과 도시락을 사서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해가 질 때쯤엔 피곤에 쩔은 회사원들이 맥주 몇 캔 씩 손에 쥐고 나갔다.
일을 하다 보면 점장님이 나를 기억했던 것처럼 눈에 익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는데 이유는 대강 이렇다. 매일 와서, 항상 같은 시간에 와서, 같은 물건만 사서? 이런 손님들은 그래도 몇 번 와야 기억에 남게 되는 경우인데 나에게 번호를 묻는다거나 진상을 부린다거나 하는, 나와 손님 간의 어떠한 '상황'이 일어나게 된다면 첫 만남부터 각인 제대로 하는 거다. 이 남자가 그랬다.
'딸랑'
"어서 오세요."
나는 밤 아홉 시부터 쌩쌩해지기 시작한다. 한 시간 후면 퇴근이거든. 내일은 또 주말이라 다가오는 퇴근 시간을 볼 때마다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오늘은 집에 가서 영화를 다운로드 해서 볼 예정이기 때문에 핸드폰으로 괜찮은 영화를 열심히 물색하다 들어오는 손님에 잠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맥주 코너 가셨으니까 금방 골라오시겠지. 하지만 나의 예상과는 달리 냉장고 안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손님이 등을 돌려 나에게 물었다.
"코젤은 없나요?"
"....... 그게 뭐예요?"
멍청한 소리를 했다. 당연히 맥주겠지.
"아, 죄송해요. 제가 맥주를 잘 몰라서.... 우선 거기에 없으면 없을 거예요."
남자는 아쉬운 듯 다른 맥주 한 캔을 골라 카운터로 왔다. 제대로 알려 주지 못한 것이 찝찝했다. 이런 거에 오지랖이 약간 있다. 내 일 아닌데. 이따 야간 교대 오면 물어봐야지. 코..... 코 뭐랬더라. 계산을 끝낸 남자에게 메모지와 펜을 내밀었다.
"여기 이름 적고 가시면 제가 이따 알아봐 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남자는 허리를 조금 숙여 종이에 맥주 이름을 끄적였다. 보이는 동그란 머리가 조금씩 움직이는데 그게 좀 귀여웠다. 다시 허리를 펴는 남자에게서 단내가 조금 난 것 같다. 나는 메모지에 쓰인 글자를 확인했다. 코... 뭐였더라.
[박지민]
남자가 멀뚱멀뚱 날 쳐다봤다.
"......."
"......."
"아.... 맥주, 맥주 이름이죠?"
"네? 네.... 네!"
남자는 다시 숙여 자신의 이름 옆에 '코젤'이라고 썼다. 자꾸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여기요."
"네, 제가 이따 꼭 물어보고 알려 드릴게요. 내일 오실 수 있으시면 또 오세요. 지민 씨."
남자의 어깨가 움찔했다. 이내 내 가슴팍에 달린 명찰로 눈이 가더니.
"그렇게 할게요. 탄소 씨."
여하튼, 어쩌다 보니 지금은 그 지민 씨와 지민 씨의 오피스텔에서 서로 츄리닝 차림으로 함께 코젤을 마시고 있다 이거다. 많아 봐야 나랑 두세 살 차이 날 것 같았던 지민 씨는 놀랍게도 서른이었는데 딱히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놀리고 싶은 마음에 가끔 '오빠'에서 '아저씨'라고 바꿔 불렀었다. 호칭이야 지금은 존댓말에서 반말로 바뀐지 오래고 여보, 자기라고 불러도 이상할 것 없는 연인 사이지만.
"아저씨."
"....... 늘 말하지만 네가 거기 누워서 그렇게 아저씨라고 부르면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가 된 기분이라고."
"아, 나 성인이야, 성인. 늙으면 다 똑같은 아줌마 아저씨야."
오빠가 손에 쥔 남은 맥주를 한 번에 털어 마시곤 내 옆에 누웠다. 오빠의 집은 내 자취방 바로 앞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는데 자취를 시작하기 전에 자취방 구하다가 이 오피스텔 가격 보고 입을 쩍 벌린 적이 있다. 나는 언제 여기 혼자 살아 보나 했는데. 요즘은 자취방보다 이곳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오빠 손에서 단내나."
나에게 팔 베개를 해 준 손을 끌어와 킁킁 냄새를 맡았다. 처음 봤을 때도 났던 단내. 오빤 시내에 있는 개인 카페 사장님인데 가끔 사람이 몰릴 때 안에 들어가 일을 도와준다고 했다. 나를 처음 만났던 날은 갑자기 단체 주문이 들어와 진을 쏙 빼고 온 날이라고. 아, 나도 이제 거기서 일한다. 그래서 오빠를 부르는 호칭이 꽤 많다. 오빠, 아저씨, 사장님, 가끔씩 지민아.
"오빤 내가 뭐라고 불러 주는 게 제일 좋아? 역시 오빠겠지?"
"뭐라고 불러도 좋아, 나는 네가 가게에서 고무장갑 안에 물 들어가서 안 벗겨진다고 얼굴은 잔뜩 울상이 돼선 "사장님, 사장님."하고 불러도 설레."
"아, 진짜 설거지하고 있을 때 좀 오지 마. 바쁠 때도 오지 마. 바쁜 타임 끝내고 설거지하고 있을 땐 더 더 더! 오지 마! 입술 색도 없고, 머리는 산발인데 고무장갑 끼고 오빠 보면 현타 와."
오빠와 마주 보게 몸을 돌려 한껏 위로 째려보았다. 그 모습이 웃긴지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는 게 얄미워 손바닥으로 오빠의 입을 턱 막았다. 입을 막힌 채 눈만 끔뻑거리다 손에 힘을 조금 빼자 내 손목을 잡고 천천히 내렸다. 마주 보고 있는 공기가 약간 어색했다. 나 이거 뭔 줄 알아. 이거 그거야.
"키스하고 싶지."
"응."
"아저씨 아까 뭐라고 했지?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
괜히 좋으면서 이러는 거 맞다.
"성인이라며."
이내 고개가 당겨지고 두 눈이 감겼다.
+
누구로 쓰지 하다가 지민이로 썼는데 어째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나요? '아저씨'라는 소재로 쓰고 싶어서 쓰게 된 건데 아저씨라는 느낌이 딱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네요 ㅠ_ㅠ 설렘도 없고 감동도 없고 ㅠ_ㅠ 여튼 탄소랑 지민이는 결혼까지 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을 겁니다 반응이 좋다면 짧은 형식의 번외도 쪄 볼게요! (김칫국
![[방탄소년단/박지민] 박지민도 아저씨 역할 꽤 어울리잖아요 아니에요?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7/03/10/11/2ae5a7509794595e5c2e93d2b720d37e.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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