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씨.. 지금 뭐라 그랬어?”
바로 좋다고 난리 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놀란 눈이다. 내가 본 중 가장 당황한 얼굴로 황망히 나를 바라본다. 좋아서 방방 뛰면 어떻게 대처할지 준비했던 나는 덩달아 당황해서 열심히 준비한 명대사들을 머릿속에서 날려 버리고 어버버 거리기 시작한다.
“그니까. 하겠다고. 결혼.”
약속했던 한 달이 지났다. 녀석을 한 달 동안 보면서 많은걸 느꼈고 생각했으며 결심했다. 처음에야 잘못 들었으니까 그런 반응을 보인거겠지 그랬다. 하지만. 내 말을 다시 들었음에도 녀석의 표정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방긋 웃으며 잘 생각했어 경수씨. 난 도저히 입에 올릴수 없는 느끼한 미사여구를 덧붙여 가며 좋아해 줄거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표정이 어두워진다. 미간을 조이고 쓰게 웃으며 하아. 속 깊은 한숨을 내쉰다.
“...왜...? 싫어? 다 잡은 물고기 되니까 흥미를 잃었어? 관심 없으니까 싫다 이거냐?”
당황스런 마음에 말이 거칠게 나갔다. 입으로 내뱉고 나니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왜 그렇다 잖아 내게 아닐 땐 그렇게 간절히 갖고 싶고 탐나던 것이 막상 손에 들어오면 시시해지고.. 하찮아 지고. 내가 너한테 그런거냐? 삐딱하게 받아들이며 퉁퉁 거리는 나를 가만히 보다 고개를 숙인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낮게 중얼거린다. 언제나 둘이 있으면 말이 끊이지 않았다. 저 놈은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으니까. 경수씨 뭐가 좋아? 지금 기분은 어때? 뭐 불편한건 없어? 덥지? 뭐 마실래? 나에 대한 호기심이 항상 넘쳤고. 난 그것에 응해주기 바빴다. 에라. 도경수 너 너무 싸게 나갔어. 좀 튕기고 덜 알려주고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비싸게 굴었어야지. 멍청한 놈.
한 달 전만 해도 몰랐다. 내가 직접 이 놈한테 이런 말을 할게 될 줄이야... 언제나 매달리는건 종인이이었고. 난 밀어내거나. 종인이의 애정공세에 불편해하기 바빴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성큼 다가간다. 먼저 청혼을 했고. 녀석이 거절한다면 난 매달려서라도 이 결혼을 꼭 성사 시킬 계획이다. 네가 싫대도 난 할거라고 어른들게 말씀 드릴거야. 그렇게 알고 있어. 자리에서 일어난다.
“잠깐.”
어쩐지. 잔뜩 흔들린 녀석의 목소리가 날 붙잡는다.
“잠깐만.”
정략결혼
03 “우리 결혼할까요?”
“....후우.”
“너무 긴장 하지마 경수씨. 인정하기 싫지만 나랑 우리 집 영감 취향이 아주 비슷하거든. 내가 좋아하는 만큼 분명 영감님도 경수씨 좋아할거야.”
어젯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어마어마한 말을 듣고 난 뒤 난 꿈처럼 녀석의 집 앞에 서있다. 오늘이 오지 않기를 바랬는데.. 정말 이 놈 집에 내가 오게 되다니.... 우리 할아버지와 아웅다웅 하시지만 그만큼 오래 알고 지낸 친구사이인지라 어린 시절엔 자주 놀러 오곤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난 놀러간거라 생각한 그 왕래가 사실 할아버지 두 분이 으르렁 거리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그만큼 낯설지 않은 집 앞에서 난 망부석이 되었다. 저기... 들어간다 이거지. 오랜만에 다시 여기 오는게... 제가 이집 아들이랑 결혼할 사람인데요.. 이런 용무일지 몰랐다.
녀석의 할아버지 얼굴이 또렷이 기억나지 않아도 어렴풋이 우리 집 호랑이 영감 만큼이나 무서운 기억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집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절 앞에 있는 사천왕 만큼이나 부리부리한 인상과 위압감의 할아버지님이 날 기다리고 계신다. 흐끅. 눈이 마주치자마자 나도 모르게 딸꾹질이 튀어나가고 거칠게 깎였지만 기품 있는 나무 상 같은 할아버님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처음..부터 찍힌건가? 아.. 오히려 잘 보이는게 나한텐 안 좋은 건가? 찍히는 쪽이 나중을 위해 더 좋을지도 몰라 -장난스럽게 이대로 결혼까지 골인 하는 건가 하는 생각 했지만 진지하게 결혼할 생각이 없던 당시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더듬더듬 걸어가 풀썩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넘어진 어린애 마냥 어리벙벙하게 자리에 앉았다. 또 눈썹이 꿈틀 거린다. 슬쩍 눈을 봤다 바로 꼬리 내리고 시선을 내 손가락 끝에 고정시킨다.
할아버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종인이를 통해 대충 통성명을 나누고 인사를 나눴다. 딱히 나를 탓하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고 혼나는 상황도 아니지만 누가 위에서 꾹 누르듯 가슴을 턱 막는 답답한 공기에 뜨거운 차를 벌컥 벌컥 마시다가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소리 없이 몸을 버둥거리는 등 멍청한 실수를 했다. 그와중에 종인이는 당황해서 경수씨 괜찮아? 물 여기 있어. 찬물을 내밀고. 벌컥벌컥 마시고 하아.. 살았다 한숨을 돌리다 또 무서운 눈과 눈이 마주치고 반사적으로 히끅 딸꾹질이 튀어나간다. 아.. 도경수 멍청한 자식.
“....저...기.”
기왕 한심하고 이상한 놈으로 찍힌거. 에라 모르겠다. 열심히 준비한 멘트를 쏙 빼고 알맹이만 슥 할아버님께 내민다. 파이를 받아든 할아버지는 신기할 정도로 표정의 변화 없이 날 보는 시선만으로 이게 뭔가? 물어오신다.
“제가 만든 파이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이미지에 맞지 않게 달달한걸 매우 좋아하신다. 달달한걸 좋아하시는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난 제빵 쪽으로 진로를 선택했고. 어떤 선물을 드릴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학생인지라 뭘 사든 내가 가진 범위 안에서 선택해야 할 테고. -할아버지 귀에 들어갔다간 괜한 경쟁심에 분명 말도 안되는 물건을 사주실게 뻔해서 가족들에겐 알리지 않고 왔다.- 그랬을땐 선물 선택의 범위가 좁아져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의 있는 선물을 준비했다. 종인이 한테 물었을 때 다행히 할아버님도 단걸 좋아한다고 하셨고.
파이를 받아든 할아버지는 내가 실수를 했을 때 보다 더 심각한 표정으로 파이를 받아 들고 종인이를 시켜 차와 그릇을 내오신다. 급하게 만드느라 재료도 충분히 않았는데 입맛에 맞으시려나... 진풍명품에 나와 자신이 내온 골동품이 얼마로 감정되는지 잔뜩 긴장해서 지켜보는 출연자 마냥 쩔쩔 매며 할아버지가 어떤 평가를 내리실지 기다린다.
“자네 할아버지 말대로군”
할아버지 말대로라면..
“그 영감쟁이가 지랄 염병을 떨면서 자랑질 할만 해”
“....예?”
우리.. 할아버지가 뭘 했다고? 자...랑? 나 지금 똑바로 들은거 맞아?
“이런걸 그 영감탱이는 매주 처먹는다 이거지?”
지금까지 하하호호 어색하게 예의를 지키며 말하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할아버님의 편안한 말투에 당황해 아.. 네. 뭐.. 실습 끝나면 가져다 드리니까요. 대답한다. 할아버님은 느긋하지만 어쩐지 공격적으로 파이를 공략해가며 그놈의 영감쟁이 볼 때마다 어찌나 자랑질을 하던지 자기 손자 솜씨가 자네도 거기 알지 블루벨? 블루벨 파티쉐보다 났다느니, 야무지다느니 귀에 딱지가 앉을 뻔 했다니까. 말씀하신다. 블루벨이면 우리 할아버지 단골집인데. 세상천지 그 집 파티쉐 만큼 야무진 놈 없다고 니 놈은 그 놈 발톱의 때만큼도 못하다고 비교를 하시곤 했다. 근데.. 할아버지가 그 집 파티쉐보다 내가 더 났다고 그랬다고?
“에이. 설마요.”
우리 할아버지는 다른건 몰라도 거짓말은 안하신다. 자존심이 세시지만 없는걸 거짓으로 꾸며서 칭찬하시는걸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신랄하게 비판을 하면서 못난 점을 인정 하면 인정 했지.
“그 염감쟁이 성격 지랄 맞은거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어디 사람 면전에다 대고 칭찬하는 성질 머린가? 욕을 했으면 했지. 자네 앞에선 뭐라 했는지 몰라도 내 앞에선 자랑도 자랑도. 말도 말게나. 어디 나만 들었을 라구. 종인이 저 놈도 귀에 딱지가 앉잤을걸”
고개를 돌려 종인이를 본다. 녀석은 어색하게 웃는다. 뭐야. 하긴. 종인이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는 일은 드물지만- 내가 방학 때가 아니면 집에 붙어있질 않아서.. 밤늦게 들어가 할아버님이 왔다 갔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직접 마주친 적은 없다- 우리 할아버지는 자주 마실을 나가시곤 했다. 저 자식. 나에 대해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그 지랄 맞은 성격 때문에 정애씨가 얼마나 고생했다고”
정애씨면... 우리 할머니? 아.. 맞다 젊은 시절에 두 분이 연적이셨다고 했지. 아직도 할아버지는 그 시절 이야기를 할머니와 하시곤 한다.
“정애씨가 얼마나 착하고 예뻤는데 어찌나 뻣뻣하고 감수성이 매말랐는지 곱다는 말도 재대로 안해줬다니까. 청혼할 땐 또 어떻고. 반지 그거 하나 사겠다고 온 동네 금은방이란 금은 방은 다 뒤졌던 주제에 막상 건네 줄때는 눈에 띠길래 샀소. 그래도 청혼인데 구색은 갖춰야 할 것 같아서.. 그랬다니까. 그렇게 멋없는게 그 영감쟁이야. 정애씨 한테 그랬는데 손자한테는 오죽 하겠어”
세상에 그랬구나. 할아버지가 할머니한테 어떻게 청혼한지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는건 전혀 몰랐다. 내가 의외의 사실에 놀란 사이 할머님이 집안에 들어오셨다. 헤에.. 종인이 누구 닮았나 했는데 할머님을 닮았구나. 세월이 흔적에 고스란히 보임에도 아름다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인상이시다. 할머니가 집안으로 들어오자 마자 그 무섭던 분 인상이 바로 풀어지신다. 종인이와 놀랍도록 닮은 웃음으로 할머니에게 다가가 손에 들린 가방과 코트를 받아 드신다.
“어이구 갔다 왔어요? 밖이 많이 춥진 않았고?”
“괜찮았어요. 어떻게 된거예요? 손님 온다는 말은 없으셨잖아요.”
“임자 신경쓸까봐 그랬어요. 어차피 간단하게 얼굴만 보자고 부른 자린데, 온다 그럼 임자 새벽 바람 부터 밖으로 나가서 진수성찬을 차리고 나갔을 것 아니에요. 오랜만에 놀러나간다는데 수고스럽게 할 순 없잖아요”
“그게 무슨 수고라고.”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마치 노랫소리처럼 즐겁게 들린다. 서로 존대를 쓰는 커플을 보면 서로를 존중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더니. 이런 느낌인가? 종인이 녀석이 나이답지 않은 말본새라던가 느끼한 멘트가 그토록 자연스러운 이유를 알겠다. 우리 할아버지라면 할머니 고생하실까 걱정하시면서도. ‘자넨 그냥 가만하 있어. 속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어디 상전 모시는 것도 아니고 집에 있는 걸로 대충 차려 먹이면 돼지 잡채는 또 뭐고 꽃게탕은 또 뭔가? 돈이 처 남아 도는가 보이.’ 툴툴 거리셨을 거다.
“정애 손자 맞지요? 어쩜 정애를 쏙 뺏네. 영감님은 좋으시겠어요. 첫사랑 정애씨를 쏙 빼닮아서.”
“에이~ 무슨 소리를. 첫사랑은 정애씨라도 마지막은 임자라니까. 내 눈엔 임자가 제일이에요.”
“애들 앞에서 망측스럽기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화를 종인이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지켜본다. 저런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 포근한 저 성격은 이런 환경에서 나온거구나. 뭔가 숨기는거 아냐? 영화에서처럼 사이코페스라거나.. 하는 생각까지 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할아버지는 점심을 차리겠다는 할머니의 손에 내가 만든 파이를 들려주시며 본인이 하시겠다며 할머니를 말리셨다. 두분이 투닥 투닥 하시며 차린 점심 상 앞에 앉았다.
“어째 음식은 입에 맞나요?”
“예 아주 맛있는 데요.”
“그거 하난 마음에 드는구만. 그 영감쟁이는 신경써서 음식을 내줘도 이게 마음에 안 든다 저게 마음에 안 든다. 어찌나 까탈스러운지.”
나도 심히 공감하는 부분이다. 다른 부분은 허허 넘기셔도 유독 음식에 관한 부분은 까탈스러우셔서 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아니면 잘 드시지 않으신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외식한번 하기도 힘들고. 여행 떠나는건 더더욱 힘들다. 그 지역 맛집이라는 곳에 함께 가도 할아버지 입에 맛기란 하늘에 별 따기 같으니까. 할머님은 할아버님이 말씀에 적당히 하세요 손자 앞에서 흉보는건 아니죠. 말씀하신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입맛이 까다로운건 저도 잘 아니까요. 할머니가 얼마나 고생하시는데요.”
“그렇지? 아~ 그렇다니까. 뭐 그렇게 따지는게 많은지.”
할아버님 앞에서 완전 굳어있던 내 입이 풀린건 그때부터 였다. 주로 난 듣기만 하고 할아버님의 말에 맞장구 치는게 전부였지만. 내가 우리집 영감님 한테서 느꼈던 묘한 불만들을 속 시원하게 꼬집어 주시니 손자 된 입장으로 그러면 안돼는걸 알면서도 공감하게 됐다. -과한 험담 같은 느낌이었다면 화가 났겠지만 정말 친한 친구끼리의 투닥 거리 인지라 이야기를 듣는게 즐겁기 까지 했다.- 거기다 내가 모르던 영감님의 과거사 까지 알게 되니. 시간 가는줄 모르고 할아버님과의 대화에 몰두하게 됐다.
“종인아.”
“네”
“경수라는 놈 괜찮은 것 같으니. 원래 계획대로 이번년도 안에 확 식을 올려 버리는게 어떻겠느냐?”
“저도 그렇고 싶지만... 경수씨 마음은 아직 정확하지 않아서요.”
“원참 녀석도 그럴땐 자빠뜨려서라도”
“푸읍.”
맛있게 밥을 먹다가 제대로 얹힐 뻔 했다. 아니 저런 대화는 당사자가 없는 대서 하는거 아닌가요? 컥컥 거리는 나를 두 남자는 전혀 이해 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본다. 할머님은 농담도 정도껏 하세요. 순진한 새 아가.. 아니지. 도서방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새사람이라고 할께요. 새사람 당황하게... 라고 천진한 얼굴로 마지막 한방을 먹이신다.
“거기다 그 방법은 종인이랑 안 어울려요. 하려면 영감님이 저한테 수작 걸었던 것처럼 해야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할머니 한테 어떻게 하셨다고 했죠?”
내가 있음에도 저런 대화가 오가는건 상당히 민망하지만. 궁금하다. 사천왕과 어깨를 나란히 할 포스의 할아버님과 소담한 골목 어딘가에 조용히 핀 아담한 들 꽃 같은 할머님의 연애스토리가. 종인이의 물음에 할아버님은 흠흠 헛기침을 하며 할머님을 부추기시고 할머님은 호호 부드러운 눈웃음으로 옛이야기를 꺼내신다.
“내가 그때 집안이 어려워서 어린나이에 고등학교도 재대로 졸업 못하고 직장 생활을 했는데, 늦은 밤 퇴근을 했지. 우리 영감님은 매일매일 날 기다렸어. 그전에 제일 처음에 날 보고 첫눈에 반해서 좋다고 하는걸 매몰차게 싫다고 거절했었는데, 그래서인지 나한테 말 한마디 못 붙이고. 집에 들어갈 때 까지 열 걸음 뒤에서 날 쫒아왔었지. 집에까지 무사히 들어가는걸 확인하고 나서야 돌아갔었단다. 그걸 한 육 개월 했나? 처음엔 도깨비처럼 무서워 보이던 양반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묵묵히 날 지켜주는걸 보고 마음이 움직인 내가 먼저 말을 걸었지.”
아니. 얼마나 미련스러우면 육 개월 동안 손목한번 못 잡는 데요? 라고. 물으며 다가가셨다고 했다. 처음으로 말건 그날 할아버지는 굉장히 당황 하셨고. 당황하는 모습이 귀여워 오늘은 강아지 마냥 졸졸 쫒아오지 말고 제 옆에 서서 손 잡고 집 앞 까지 바래다 주세요. 라고 말했고. 처음으로 두 사람은 발걸음을 맞춰 봤다고 한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날보고 아무것도 못하고 안녕히가시게 하길래 너무 답답해서 내가 먼저 볼에 입 맞추고 내일 또 봐요. 라고 말했지.”
“그때 임자 참 당차고 멋졌는데 말이야.”
김종인의 다정 다감함과 당참이 두 분이 적절이 섞인거라는걸 알겠다. 언제 민망했냐는 듯 난 두 분의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처음 집에 들어오기 싫어서 쩔쩔 맸던 주제에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하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밖으로 나왔다. 도살장에 끌려가는줄 알았는데, 도살장이 아니라 놀이공원이었네. 기분 좋게 나와 녀석과 함께 할아버지의 단골집인 블루 벨을 찾았다.
“파이는 왜?”
“아니. 오늘 아침에 나 파이 굽는거 할아버지가 보셨거든. 안사가면 그 영감쟁이 입은 입이고 내 입은 주둥이냐? 그러실게 뻔해.”
어설픈 할아버지 성대모자에 녀석은 배를 잡고 웃는다. 미친놈. 별로 안 웃겼는데 별 시답지 않는 걸로...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들며 지나쳐 가는 내 뒤를 졸졸 쫒아오다 휙 내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온다.
“왜?”
“첫번째꺼 맛은 괜찮은데 모양이 안 예뻐서 두 번째 만든거 가져왔다며. 할아버지께는 그냥 처음 만든걸로 드려”
“우리 영감 까탈스럽다니까. 음식은 눈으로 먹은 다음 입으로 먹는 다 주의셔. 그거 줬다고 또 무슨 소릴 들으려고.”
안 들어도 라디오고 안 봐도 비디오란다. 녀석은 식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성큼 성큼 우리 집으로 걸어나간다.
“아닐걸 말했잖아. 할아버님 심할 정도로 솔직하셔도 칭찬 같은건 솔직히 못한다는거. 분명 블루벨 파이보다 경수씨가 직접 만든 파이를 더 먹고 싶어 하실거야. 경수씨 모르지 할아버지가 얼마나 경수씨 자랑스러워 하시는지. 얘기 안하려고 했는데 우리집 영감님 덕분에 다 탈로 났으니까 다 말하는 거야.”
영감님은 녀석의 집에 갈 때 마다 그렇게 우리 두 형을 비롯해 누나와 내 자랑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언제 걸음마 했는지, 엄마 아빠 라는 말을 했는지, 최고 등수는 몇 등 인지 최하 등수는 몇 등 인지 까지 다 알고 있다나? 그토록 오랫동안 녀석과 할아버지는 교류를 하고 있었다. 나 모르게. 심지어.
“나 그것도 안다. 경수씨가 몇 살까지 이불에 지도 그렸는지.”
......이런 것 까지. 우리 집 영감은 내 프라이버시를 보호하지 않은체 다 떠들었다고 했다. 지도 얘기에 아오 쪽팔려 중얼거리는 나를 보며 녀석은 말했다. 처음 나랑 만나게 됐다고 결혼허락해 달라고 집에 찾아왔던 날. 내가 얘기가 좋게 풀린 상태에서 와서 그렇지 사실 굉장히 녀석을 냉대 하시고 불편해 하셨다고. 그건 누나와 결혼 하겠다고 찾아갔어도 비슷한 반응이었을 거라나. 상상도 안되지만.
“서툰 것 뿐이셔. 표현을 하는 법을 모르시는 것 뿐이고. 안돼겠다. 우리집 영감이 경수씨랑 내 시간 너무 뺏어서 바로 집에 보내줄 생각 없었는데. 오늘은 경수씨 할아버님이랑 둘이 데이트 해야겠네.”
말하고 집 앞 까지 데려다 줬다. 이제껏...이라고 해봐야 네 번째 만나는 거지만. 헤어질 때 늘 인사처럼 하던걸 안한다. 그걸로 그냥 가려고 하길래 나도 모르게. 오늘은 그냥 가네? 중얼거렸다. 단연코 난 개미 눈물 보다 작게 말했는데 그걸 들은 녀석은 돌아서 가려다 바로 돌아서서 경수씨 내가 뽀뽀 안해줘서 서운했구나? 가지런한 치아를 모두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아니.. 저기.. 저.. 그러니까 서운... 까지는 아니고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 뿐인데.... 말꼬리를 주욱 늘어트리는 동안 녀석은 신이 나서 내 이마에 눈에 코에 입에 쪽쪽 입을 맞춘다. 이 자식이 할 거면 평소 하던 것만 하라고! 조여진 미간에 또 쪽 입을 맞춘 후 양손으로 내 얼굴을 꼬옥 붙들고 쪽 입 맞춘다.
“진짜 갈게. 내일 봐. 잘 자고.”
집 안에 들어오자 마자 할아버지랑 딱 마주쳤다. 오자마자 할아버지 제가 만든 파이 드실래요? 라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난 김종인이 아니다.
“만들다 남은 파이 있는데 어떻게 드릴까요?”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언제나 난 이런 식이다. 솔직하지 못하게 하고 싶은 말 꿀꺽 삼키기. 할아버님은 우리 할아버지더러 지랄 맞은 성격이라고 하지만. 난 할아버지를 쏙 빼 닮은게 분명하다. 내가 만든 파이를 받은 할아버지는 아니나 다를까 깔끔하지 못한 외간에 대해 한소리부터 하셨다. 그리곤 맛있다는 말 대신 내 파이의 부족한 점을 요목 조목 찾아내 말씀하셨다. 파이를 만들어 드리고도 혼나는게 언제나 불만스러웠지만.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에게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덕에 내 스스로 발전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찾아온 깨달음을 할아버지와 나누고.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나는 역시나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누나”
“응”
“왜 말 안했어. 누난 종인이가 처음 찾아왔을 때부터 봤다면서. 할아버지가 처음부터 종인이 받아준거 아니라며. 도대체 그놈 어떻게 할아버지를 설득 한 거야?”
난 물어보지도 않았었다. 종인이가 어떻게 할아버지를 설득 한 건지. 당연히 할아버지가 받아줄거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나의 물음에 나의 누나는 누나답지 않게 진지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침묵을 지켰다.
누나로부터 그 얘기를 듣고, 종인이를 생각하는 깊이를 달리하기 시작했다. 될대로 되라 했던 마음을 고처 먹고. 진지하게 저 녀석이랑 같이 살게 된다면. 어떤 인생이 나에게 펼쳐 질까. 난 후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나답지 않게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냈고. 난 결심했다.
“하자. 결혼.”
잠깐만. 이라고 말하고 종인이 녀석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난 그걸 거절의 의미로 받아 들이고 녀석을 닦달했다. 뚝.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미안. 이라고 말하며 빠르게 눈물을 닦아 낸다. 뭐야? 눈물 흘릴 정도로 내가 싫은 건가?
“....하지마.”
“뭐?”
“나.. 들었어 누님한테. 자세한 얘기.. 다 들었다며. 나 알고 있어. 경수씨가 아닌척 하지만 가족들을 위해 많은 부분 희생 한거. 난 어리지만. 결혼이라는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 라는건 알아. 결혼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일이잖아. 가족들 때문에. 희생 하지마. 경수씨. 나 그거 싫어.”
누나는 그랬다. 생각보다 할아버지가 많이 힘들다고.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진지하고 어렵게 종인이네 할아버지가 제안하진 정략 결혼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완강히 버티셨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반강제 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한 것과 다르게.. 할아버지는 두 사람이 맘이 없으면 하지 말자고 까지 했다고 한다. 종인인 할아버지를 찾아와 내가 맘이 없으면 절대로 일을 진행 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결혼을 한다 해도 최대한 조용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회사는 패션 쪽. 다른 업계라면 모를까. 분야가 분야이다 보니 이번 결혼이 어쩌면 마케팅 적으로 좋은 효과를 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설득 했다고 한다. 어찌 됐거나 이번 결혼이 화제가 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될 테니까. 최근에 패션업계에 화두가 그거였으니까.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패션디자이너가 커밍아웃을 하는 일도 있었고.
“누가 그렇데냐. 야 넌 도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나 그렇게 착한 놈 못돼. 그래 다들 그렇게 생각하더라. 내가 할아버지 때문에 내 진로를 선택했고, 할아버지가 하라는대로 고대로 사는 착한 손자라고. 근데 아니야. 할아버지 영향도 분명 있지만. 난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았어. 이번 선택도 그래”
분명 누나의 말을 듣고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건 맞다. 말 그대로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된 계기였을 뿐이다. 이놈을 선택했을 때 후회는 없을까. 내 선택은 옳은 걸까. 한 달 동안 물었고. 스스로 답했으며. 선택했다. 기센 할아버지 밑에 있는 내가 우유부단 하고 줏대 없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 집 영감은 선택은 나에게 맡겼다. 이번에도 판을 짠건 영감님이지만. 선택은 내가 한거다.
“분명 너랑 내 감정의 무게가 같지 않을 거야. 하지만. 무조건 적으로 네가 생각한 그런 것 때문에 이 결혼 하자는거 아니야.”
“그치만. 분명 그런 것도 있는 거잖아. 내 욕심일지 모르지만. 그런 것 때문에 경수씨가 결혼 결심 하는거 싫어. 경수씨 이제 겨우 20살이고. 앞으로 더 좋은 기회가 올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뚝 녀석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에휴. 한숨이 나온다. 한달 동안 녀석은 끊임없이 보여 줬다. 날 얼마나 생각하는지. 좋아하는지. 그랬던 주제에 끝까지 내 입장에서 생각해준다. 난 한 번도 녀석의 입장에서 생각해 준적이 없었는데. 처음엔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결혼을 해야 하는지 심란했는데 이제는 나 같은 놈이 저런 놈을 잡아도 되는지 심란하다. 양심에 찔리고. 내 옆에 두기엔 굉장히 좋은 놈인걸 알기 때문에.
“야 내가 겨우 20살이면 넌 겨우 19살 미성년자거든? 누가 누구 걱정을 하는 건데? 한달 동안. 충분히 너 지켜본 다음 결정 내린거야. 너야 말로 막상 내가 결혼 한다고 하니까 무서운거지? 솔직히 말해라”
“아냐. 그런거 진짜 아니야”
할아버지를 닮은 나는 이와중에도 솔직한 진심을 말하지 못하고 이렇게 미운소리만 골라서 한다. 당황한 녀석이 손사래를 친다. 그 와중에 눈에서 송글 송글 나오는 눈물 방울이 흔들린다. 으이그. 손을 뻗어 얼굴에 맺힌 착한 마음을 닦아준다. 어쩌다 내 인생에 이런 놈이 나타났나 몰라. 끝까지 종인이는 나중에라도 아닌 것 같으면 말해. 나 경수씨가 아니라면... 놔줄 거야. 라고 말했다. 난 내가 얼마나 이기적인 놈인데. 네가 그렇게 얘기 안해도 그럴거니까 걱정마. 라고 대꾸했다.
우리가 한달동안 만나는 동안. 할아버님이 할머님에게 그러했듯 종인이는 답답할 정도로 묵묵히 내 옆을 지켰다. 몸이 아프면서도 하루 종일 내 손에 끌려 다녔던 날. 아프면 말하지 왜 얘기 안했냐? 냐며 화내는 나에게 그랬다. 걱정할까봐 그랬지. 그리고 나한테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데. 라고. 둔했던 나는 순간 이 녀석 불치명 이런거 아냐? 누나한테 진지하게 물었고. 누나는 멍청한 녀석아. 너네 한달 동안 결혼 할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며. 종인이는 네가 자기랑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다는 전제하에서 널 만나고 있는 거라고. 모르겠냐? 종인이가 그랬다며 너 좋다고. 그러니까 당연히 공식적으로 널 만날 수 있는가 하루하루가 소중한거지. 그런 종인이의 세심한 마음 하나하나에 서서히 마음이 움직인거다. 하지만 난 끝까지 종인이에서 그런 이야기를 전하지 않았다.
“.....나 차인건가 설마. 경진아아아 도경진 나 차인거 맞지?”
“이런 븅~”
“..이씨! 차였을지도 모르는 동생 위로는 못할망정 나한테 욕하는 거냐 지금?”
그 때문이었을까. 종인이는 그 후로 일주일이 넘도록 나한테 전화 한번 없다. 매일 매일 아침엔 잘 잤어? 무슨 꿈 꿨는데? 전화하고 저녁에는 잘 자 내꿈꾸라고 전화 하는거야. 전화하던 놈이. 뻔질나게 들이대던 놈이 연락한번 없으니 핸드폰이 죽은 건가 싶어서 다른 친구놈들 한테 전화해봤는데 핸드폰은 멀쩡했다. 난 차인거야. 그렇게 튕기다 벌 받는 거라고. 우울한 내 머리위에 도경진 마녀의 손이 닿는다.
“동생아 이런 띨띨한 시키야. 왜 종인이가 연락이 없는 지는 중딩도 알겠다. 아니지 한국 드라마 5편만 봐도 다 알겠다.”
여기서 드라마가 왜 튀어 나와?
“네가 먼저 프러포즈했지? 그 다음에 연락이 없어. 근데 그 취향 이상한 놈은 널 완전 좋아한단 말이야. 그럼 답은 하나지.”
“.....그니까 그게 뭔데?”
“하아.. 이런 돌댕이 한테 대화를 시도하는 내가 바보지.”
한숨을 내쉰다. 이씨. 그래 나 등신이다 등신이야. 모르겠으니까 말해달라고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데요? 뚱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나 저나 동생아.”
“응?”
“네가 만약 프로포즈를 받거나 한다면 어떤 게 좋으니?‘
이건 또 뭔 멍멍이 소리래. 지금까지 내가 한소리 못 들었니? 나 그 녀석한테 프러포즈 했다니까! 대꾸하는 날보고 또 마녀는 한숨은 푸욱 내쉰다. 이런 븅. 불쌍한 종인이.. 저런 닭을 대리고 살겠다고... 적어도 닭을 데리고 살면 달걀이라도 내다 팔수 있지 저 시키는... 중얼중얼 거리더니 암튼 없어? 그리고 그딴게 프러포즈냐? 우리 계약 합시다 하는 일방적인 통보지. 내 양심에 비수를 꽂는다.
“...야 그것 보다는 부드럽게 말했거든! 씨... 프러포즈? 프러포즈는.. 그거 좋던데. 그 영화알지 해리가 셀리를 만났을 때”
거기에 나오는 프러포즈 대사. 네가 나를 바보 같다며 바라 볼 때 코 끝에 살짝 생기는 주름을 사랑해. 너와 온종일 지내고 나면 내 옷에 배어오는 너의 향수 냄새를 사랑해. 그리고 내가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인 너를 사랑해. 솔직하지 못한 난 절대 못할 진솔한 프러포즈지. 나보고 하랬으면 그랬겠지. 음... 어.. 그냥. 네 행동이나 냄세에 익숙해 졌어. 난 너에 대해 잘 알고 너도 나에 대해 잘 아니까. 같이 살면 싸울 일이 적을꺼 아냐. 그러니까 우리 같이 살자. 뭐 이런 식으로 멋없게.
마녀와의 대화에서도 뽀족한 이유를 발견하지 못했다. 에휴. 먼저 전화를 하는게 가장 빠른 방법 일텐데. 난 이런 상황에서 그런걸 못한다. 친구와 싸워도 먼저 전화하고. 사과하고 하는거. 전화를 걸었을 때 날 거부하면... 어쩌지? 전화해서 확실히 확인하면 마음이 편할걸 알면서 질질질.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멍청하게 바라본다. 그 놈과 함께 보낸 한달이 없이 보낸 일주일 보다 훨씬 긴데. 녀석 없이 보낸 일주일이 훨씬 길게 느껴진다. 그 놈 없이 이십년 동안 별 일 없이 지냈는데 한 달 동안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에휴 한숨을 내쉰다. 놀아주는 친구 놈도 없겠다. 명색이 약혼자라는 놈도 날 방치하겠다... 혼자 방탕하고 신나게 놀자 했던 것도 잠시. 그것도 재미없어져서 공부나 하자 슬리퍼를 질질 끌며 재료를 사러 나선 지하철 안에서 녀석을 발견했다.
일주일 동안 잠을 안 잔 건지 턱 밑까지 내려온 다크 써클에 쪽 빠진 살. 제 멋대로 뻗친 머리에 삐딱하게 쓴 안경까지. 오랜만이네 저 얼굴. 나한테 보이기 싫어해서 불시에 학교에 찾아갔을 때만 볼 수 있었던.-내가 무슨 말을 해도 허허 넘기는 녀석이 불숙 학교에 찾아 간날에는 삐지곤 했다. 난 그게 재밌서서 방학하기 전까지 종종 그랬고- 차가 없는 우리는 언제나 차와 지하철로 이동을 했다. 내가 졸 때면 언제나 어깨를 베개로 내주던 녀석이었는데. 오늘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킥킥 웃다가 옆자리가 나자 잽싸게 가서 앉았다. 처음으로 내 어깨를 베개로 내주고 이상하게 야윈 얼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한참 졸다 일어난 내가 미안. 오는 동안 심심했지? 말하면 녀석은 언제나 아니. 경수씨 얼굴 보고 있으면 하나도 안 심심해 그렇게 대답하곤 했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구나. 한참 얼굴을 보다가 정신을 차리니 시간이 한참 흘러 있었다. 세상에 종점까지 오다니.
"김종인씨. 종점입니다.“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에 경수씨 장난 치지마. 잠꼬대처럼 대꾸한다. 나름 음성 변조 했는데 바로 알아체네.
“생각 같아선 서 번쩍 안고 가고 싶은데 기력 딸려서 그렇게 못해 일어나. 우리 바꿔 타야되.”
조용조용 속삭이는 말에 종인인 화들짝 놀라 일어난다. 어..어떻게 된 거야? 묻는 눈을 보며 대강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아...부스스한 머리를 한손으로 더 흐트러트리며 어벙벙하게 주위를 살펴본다.
“일단 가면서 얘기해.”
다시 되돌아가는 지하철에 올라 나눈 대화는 어디가? 재료 사러 너는? 아 나는 집으로. 이게 전부. 내 목적지에 도착하기 한 정거장전. 종인이를 빤히 바라본다.
“나 저기서 내리는거 알지. 나 그냥 내려?”
잡을 꺼야 말 거야? 묻는 말. 종인인 시선을 피하며 망설인다. 에휴. 속에서 천불이 올라오는데 너 왜 나 피하냐? 물어볼 용기가 없다. 이번 역은.... 이라는 안내 음성이 들린다.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나간다. 스크린 도어가 닫힙니다. 하는 소리가 들린다. 김종인 나쁜 새끼. 짜증이 난 강도만큼 크게 성큼성큼 걸어서 역 밖으로 나간다.
“잠깐.”
갑자기 녀석의 목소리가 들린 후 녀석의 손이 날 돌려 세운다. 탁 어깨를 잡은 녀석의 어마위엔 땀방울이 송글 송글 맺혀있다. 여기 까지 뛰어온건가? 하아하아 숨을 내쉬며 숨을 고른다.
“경수씨. 일단. 멋지게 못해서 미안.”
“..뭐?”
뭘 멋지게 못한다는 거야?
“지금 장소도 별로고. 내 상태도 별로 안 좋고. 분위기도 별로인거 아는데 지금 당장 하고 싶어서.”
하다니...? 뭘 한다는 거야?
“모르지 경수씨 곁에는 언제나 달달한 빵 냄새가 나. 꼭 안을 때 입을 맞출 때면 코끝과 혀 끝에 맴도는 달콤한 냄새를 사랑해. 본인은 무심하다고 하지만 말없이 날 걱정해주는 세심함을 사랑해. 그리고 지금처럼 내가 하는 솔직한 말에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사랑해.”
이제야. 누나가 나한테 둔탱이라고 그렇게 구박을 했는지 알겠다. 이거 였구나. 뜬금없이 도경진이 나한테 프러포즈에 대해 물어 봤던 것도. 이놈이 날 피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구나.
“언제나 달콤한 냄새로 시작하고 끝나는 나날을 보내고 싶어.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게 받아줄래?”
살짝 검지와 엄지로 원을 만들어서 내민다. 오글거리는거 정말 못견뎌 하는데. 이상하게 더 이상 저 녀석이 하는 말은 그렇게 들리지 않는다. 이게 뭐냐. 받아 달라면 뭔가 반짝이는게 있어야 되는거 아냐?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말에 경수씨 줄 반지 사려고 열심히 알바 뛰어서 돈 마련 하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나 혼자만 사서 선물 하는거 별로 안 좋아 할 것 같아서. 나중에 같이 하려고. 대답한다. 불공평하다 난 김종인에 대해서 반에 반도 모르는데. 이놈은..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안다. 뚱 하게 보는 시선에 녀석은 당황해서 뒷머리를 긁적인다. 역시.. 제대로 차려 입고 제대로 분위기 잡고 하는 거였나?
“야”
“...응?”
“재대로 맞췄어.”
“...어?”
검지 손가락을 내민다. 녀석을 얼결에 검지와 엄지로 내 손가락을 감싸 안는다.
“고마워. 이 분위기 상황 다 마음에 들어.”
녀석처럼 사랑해. 좋아해. 라는 말없이. 마음에 들어. 그 한마디로. 온 마음을 다한 프러포즈에 답했다. 참 멋없는 답이었음에도 녀석은 활짝 웃으며 나를 꼭 안고 고마워 경수씨. 말했다. 난 그것 조차 받아 주지 못한채 투덜거리며 야야아 사람든 본다. 적당히 해라 투덜 거렸고. 녀석은 아 미안 답하며 경수씨가 안 말렸으면 뽀뽀까지 할 뻔했어. 대답했다. 그렇게 본격적인 우리의 정략결혼이 시작되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가장 가까운 지인들 - 정말 최소한의 인원이라 각자 친구는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 줄수 있을 만큼 절친한 놈들 각각 한명만 불렀다.- 만 불러서 진행한 결혼식이 끝났고.
“.......나... 온 거야 신혼여행?”
“응. 온 거야 신혼여행.”
신혼 여행이라는 것에 도착해 있었다. 금전에 관한 철저하신 할아버지들은 해외로 갈거면 나중에 돈 벌어서 가라고 하시며 제주도에 갈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경비를 주셨고, 그 안에서 둘이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도착한 제주도. 저녁에 도착해 호텔에 오자마자 잘 시간이 되었다. 호텔 테라스로 나가면 보이는 바다를 보며 얼떨떨해 하는 내 볼에 입을 쪽 맞추고. 나 먼저 씻고 올게 욕실에 들어간다.
“...어? 잠깐.. 뭐 하고 온다고?”
혹시 지금 그런 상황이니? 에..헤이.. 아니지? 내가 생각하는 그런거. 아닐거야.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내 눈에. 녀석이 준비 한 듯한 와인과 촛불이 보인다. 허허허허 나먼저 씻고 올게 라는건 난 나중에 씻으라는 거고. 내가 씻으러 간 사이 저걸 준비하겠다는 계획이면 그 다음 스토리는..
“우아아아악 말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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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재밌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중반 부분은 끊으려고 했는데 어정쩡해서 이번편은 애기가 좀 길어졌네요;;;
길어도 둘이 달달한 부분은 적어서 재밌지 않을것 같아 걱정입니다.
과연 둘은 어떤 신혼 여행을 보낼까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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