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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시기 전에 

1. 우울한 얘기가 될 것 같아요. (전 흑순영을 사랑합니다. 몹시 나쁜남자가 될 예정이라서 싫으신 분은 패스하시길) 

2. 진도가 잘 안나가서 일단 질러놔야 의욕이 생길 것 같아요. 혹시 맘에 드시면 응원좀... 

3. 팬픽은 처음입니다. 부족해도 이해해주세요. 

 

 

 

우주 01 

 

 

 

우주. 

니 눈에 보이는 세상도
니 귀에 들리는 세상도
니가 들이마시는 그 공기까지도.
나야.
나여야만 해. 

내가 곧 너의 세상이야.
너의 우주야. 


똑똑.. 또르륵... 

무거운 정적을 깨고 수도꼭지에서 몇 방울의 물이 흘러나왔다. 

너무 아프다. 

이 숨막히는 고요 속에서 너는 매일 나를 기다렸겠지. 

내 생각만 했겠지. 

나만 바라봤겠지. 

그런 니가 어느 순간 부터 너무 숨이막혔다. 


처음에 내가 너의 세계를 장악해 들어갈 때 

짜릿했었지. 흥분되고. 

난 마치 선봉장에 선 장군처럼 의기양양 했었다. 

너의 그 자그마한 세계를 발로 밟고 부수고 돌진할 때에 

너는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도 

내가 내미는 손을 단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결국 내 손아귀에 온전히 떨어졌던 그 날에도 

무자비한 침략자에게 넌  

고맙다... 고 했던가. 


이미 너의 세상따윈 소멸해버린지 오래고 

버려진 너는 어디에도 갈 곳은 없어. 

내 세상 가장 어두운 구석 어딘가에 처박힌 채로 그렇게 살아가겠지. 

나는 너의 우주야. 

너를 망가뜨리러 온 너의 아름다운 구원자. 

그게 나야. 

 

 

 

 

새벽 3시. 

카페인이 필요했다. 

술술 풀리는 날에는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쏟아져 나오듯이 

영감이 마구 떠오르는데 

오늘처럼 한 번 막혀버리는 날에는 무슨 짓을 해도 진척이 없다. 

쥐어짜내보려다 오히려 슬럼프에라도 빠지면 곤란하지. 

이럴 때는 잠시 멈추는게 낫다. 

월말 평가가 3일 남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여야만 한다. 

"집에가" 

3년을 매일같이 새벽별을 보며 죽어라 연습하고 있지만 

그 한 마디를 듣게된다면 가야된다. 정말로. 

지난 평가 때도 호평은 못받았는데. 

다소 정체기인 것 같아서 불안하다. 

"나 잠깐만 나갔다 온다" 

다들 못들은건지 대구해 줄 기력도 없는건지 하던 일에 열중 할 뿐이다. 

 

이제 새벽엔 바람이 서늘하다 못해서 차갑다. 

점퍼를 걸쳤지만 땀에 젖은 티셔츠 때문인지 목덜미가 서늘하다. 

입김을 불어보니 뽀얀 입김이 스러진다. 

곧 겨울이 온다. 

해도 금방 바뀌겠지. 

도대체 이 생활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아, 쓸데없는 생각은 치우자. 

월말평가를 3일 남겨놓고 감기 따위에 걸린다면  

그딴 고민 할 것도 없이 이 생활이 끝날지도 모른다. 

흠뻑 적신 땀이 식어 차가워진 머리카락을 귀찮은 듯 슥슥 털어내고는 

어두운 거리로 걸음을 재촉한다. 

역시 카페인이 필요해. 

 

연습실에서 큰길 쪽으로 세 블럭 정도를 걸어 나오면 

24시간 영업하는 커피전문점이 하나 있다. 

대로변도 아니라 거리가 어둠에 잠기는 새벽이 되면 

편의점 처럼 혼자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곳. 

이 시간에 갈만한 곳이 여기 뿐이기도 하지만 

회사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는다는건 썩 괜찮았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들르는 곳이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밤을 새우다 싶이 한다는 뜻이고. 

 

짤랑 

새벽시간에는 거의 손님을 못본 것 같다. 

우리 같은 연습생들이나 스텝들이나 이용하는 듯. 

오늘은 손님이 한 명도 없다. 

그리고 아무도 없다? 

평일 새벽에는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결국 데뷔를 못하고 

군대에 다녀온 작곡가 지망생 형이 근무를 하는 시간인데. 

어디 가셨나... 

"형~ 저왔어요" 

..... 

대답이 없다. 

화장실이라도 가셨나... 

"형~~~" 

한 번 더 부르니 백사이드 커튼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형~ 커피주세요 커피!!" 

인기척은 내 소리를 듣고도 커튼 뒤에서 움찔거리기만 하고 나올 생각을 안한다. 

아니 그 뒤에서 뭐하는거야. 혼자 야동이라도 보고있나~ 

더욱 짖궂게 부르기 시작했다. 

"형~~~? 형~~!! 뭐해요? 커피줘요 커피~~" 

머뭇거리던 인영이 그제서야 커튼을 젖히고 우물쭈물 걸어나온다. 

아.. 그 다음날 쓸 재료손질 한다던 야간 알바생 여자애다. 

몇 번인가 새벽시간에 얼핏 마주친 적이 있었지. 

그러고 보니 연습생 1년차 때 처음 봤으니까 쟤도 여기서 일한지 꽤 오래되었네. 

그런데도 항상 백사이드에만 있어서 제대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몇 번인가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왔을 때 스쳐가듯 본게 전부였다. 

"아, 형이 아니네요. 오늘은 혼자 있어요?" 

"!!!" 

별 말도 아닌데 혼자 흠칫 하더니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계산대 앞에 주문을 받을 것 처럼 섰다가  

무슨 말을 할까 말까 손짓을 할까 말까 혼자서 허둥대더니 

다시 백사이드로 들어가버렸다. 

"!!! 저... 저기요?" 

아니... 내가 뭐랬길래... 

뭐야... 

무슨 상황인가 잠시 벙쪄서 서있으니  

얼굴이 빨개진 그녀가 백사이드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여전히 허둥대는 표정으로 종이쪽지 하나를 내민다. 

"이게 뭐예요?" 

얼결에 받아들고 읽는다. 

[죄송합니다. 야간 담당분이 갑자기 집에 일이 있어서 가셨는데 

제가 말을 못해요. 커피는 만들 줄 알아요. 3000원이예요] 

무안한 듯 자신의 목을 매만지며 고개를 숙인다. 

너무 생각치 못한 이야기에  

이번에는 오히려 이 쪽이 당황을 했다. 

"아니 저...." 

괜찮다는 제스츄어로 양손을 다급히 흔들고  

나도 미안하다는 의미로 허리를 한 번 숙이는데 

그녀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톡톡 치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한다. 

"아.. 들을 수는 있으시구나. 아.. 그렇구나.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녀도 괜찮다고 양손을 내저으며 미소를 짓는다. 

 

그라인더 소리가 위잉~ 울리면서 고소한 커피 향이 퍼져나온다. 

그리고 금새 커피가 나왔다. 

한 모금 들이키니 이제야 살 것 같다. 

"하... 살았다." 

그러고 고개를 들어 보니 그녀가 우두커니 계산대 앞에 서있다. 

아..... 

"하시던거 계속 하셔도 돼요." 

또 내말에 화들짝 하더니 다시 안절부절 하기 시작했다. 

"아니예요. 진짜 괜찮아요 저 이거 금방 다 마시고 갈거예요." 

그녀가 가만히 시선을 겹쳐온다. 

미안해요. 정말 괜찮을까요? 하고 눈빛으로 물어온다. 

"정말 괜찮아요." 

 

사소하게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주가.
너의 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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