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나자 학연과 택운은 허리를 깊게 굽히며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을 몇 번 외쳤다. 택운은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서도 방금 전까지 닿아있던 학연의 손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냉정하게 떨어져나간 것이 신경쓰여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두 번 있는 일도 아니지만 촬영이 끝나고 학연의 태도가 돌변할 때마다 택운은 늘 학연의 눈치를 살폈다.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멤버들이나 팬들, 방송 관계자들의 눈이 있을 때, 학연은 택운에게 매우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늘 한걸음 뒤로 빠져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택운을 끌어당기며 멤버들 사이로 끼워넣기도 했고 부담스러울만큼 가까이 다가오거나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스킨쉽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하지만 카메라가 꺼지고 사람들의 눈이 사라져 학연과 택운이 온전히 둘만 남게되면 학연은 언제 그랬냐는 양 냉정한 얼굴로 변했다.
오늘은 학연과 택운만 같이, 그리고 나머지 멤버들은 따로 스케쥴이 잡혀있는 날이었다. 택운은 오늘은 어떤 말을 들을지 벌써부터 불안해져왔다. 차에 올라타고 숙소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학연은 한마디 말도, 한줌의 눈길도 택운에게 건네지 않았다. 도어락을 풀고 들어서는 학연의 뒤를 쫓아가며 택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런 학연과 이런 관계가 되어버렸는지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었다. 내뱉는 한숨을 들었는지 학연은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몸을 틀어 택운을 바라보았다. 학연의 눈길에 택운이 반사적으로 움츠러들자 학연의 인상이 사납게 구겨졌다.
“뭘 잘했다고 한숨이야.”
“…….”
짜증섞인 목소리에 택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시선을 도르륵 굴려가며 학연의 눈치만 살폈다. 어떻게 하면 덜 미움받을 수 있을지 열심히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택운을 아는지 모르는지, 학연은 하, 하고 비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전에 뭐라고 말했어?”
“……대답, 하라고….”
“그래. 바로 대답하라고 했잖아.”
우리 운이, 병신이야? 그 쉬운 거 하나도 못해먹어? 어? 거침없이 날아와 박히는 학연의 독을 품은 말들에도 택운은 한마디 반항 없이 모두 그것을 응수해냈다. 그 태연해보이는 겉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학연은 부러 더욱 잔인한 말들을 골라 택운에게 찔러넣었다.
“너 연예인 왜하냐?”
“…….”
“내가 옆에서 하나하나 안 챙겨주면 말도 제대로 못하는 병신놈.”
“……미안.”
심한 말을 들어놓고서도 택운의 입에서 나간 건,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학연은 성미에 들어차지 않는지 한참을 냉랭한 눈으로 택운을 쳐다보다 쯧, 소리를 내며 가볍게 혀를 찼다. 상황만 허락해준다면 학연은 얼마든지 택운에게 폭력을 휘둘렀을 것이다. 지금은 한창 활동을 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학연은 택운의 몸에 손을 대진 않았다. 공백기, 한참동안 휴가를 받고 평소 예능에 잘 나가지 않는 택운이 외부에 얼굴을 비출 일이 없을 때 학연은 망설임 없이 택운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온 몸 이곳저곳에 새파랗게 멍이 들었고 입술이 터져 피딱지가 앉았다. 그 몰골에 기겁을 하는 멤버들에게 학연은 태연하게 거짓말을 쳤다.
“운이가 계단 내려오다가 넘어졌거든.”
“형, 좀 조심하지 그랬어요.”
“태구니횽, 괜차나요?”
리더의 말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으며 걱정을 담뿍 담아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에 택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쩔 수 없이 학연의 장단에 맞출 수 밖에 없었다.
“조금 아프긴 한데… 괜찮아.”
아니, 사실은 어쩔 수 없이가 아니었다. 택운이 학연의 말이 아니라고 부정하지 않은 건 어디까지나 자의였다. 멤버들의 믿음을 깨뜨리지 않고 싶다는 이유보다는 택운이 학연을 마음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피해가 갈만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반대인 학연에게 택운은 마치 자석의 N극이 S극에게 달라붙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끌렸다. 언제나 밝고 생기넘치는 모습과 사람들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는 타고난 천성. 택운은 그런 학연을 부러워했다. 부러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동경으로, 그리고 그 동경은 애정으로 점점 이름을 바꾸어갔다. 가랑비에 옷젖듯, 택운은 자신도 눈치 채지 못하는 새에 학연을 좋아하게 됐다.
반면 학연은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택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치듯 느껴지는 흘깃거리는 눈빛은 자신을 자꾸 간질거리게 만들어 짜증이 솟구쳤다. 하얀 피부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도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미성도. 그 무엇보다 신경에 거슬리는 건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누가 뭐라고 한마디를 던지면 고개를 푸욱 숙이고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 학연의 가학심을 건들였다.
“제대로 해. 귀찮게 굴지 말고.”
“…….”
“운아. 알아 쳐 먹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응, 알겠어….”
곧 사그라들 듯 기어나온 대답에 학연은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택운을 한 번 훑고는 미련 없이 시선을 거두고 방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더 이상 택운을 보고 있기도 싫다는 듯. 닫힌 방문을 바라보고만 있던 택운은 밀려오는 가슴의 아릿한 통증과 시큰해지는 눈두덩이에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감쳐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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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없어요~. 이게 끝!
독방에 올라온 썰보고 엔택으로 쓸게요! 해서 써온거예요ㅇㅅ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