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향타는 소재 주의. (차학연 죽어있음)
! 불쌍한 이홍빈 주의.
현관문 제대로 잠가두라고 몇 번을 신신당부 했는데. 홍빈은 너무도 쉽게 돌아가는 문고리를 잡으며 한숨을 푹 내쉬고는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예상했던 대로 집 안은 불을 켜두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이제는 익숙해진 손놀림으로 스위치를 찾아 누르니, 어제 자신이 와서 정리해준 그대로의 모습에 눈에 들어왔다. 쇼파 위에 죽은 듯 누워있는 택운의 모습에 홍빈은 다시 한 번 더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부터 유난히 하얬던 피부는 생기를 잃어 보기 싫은 창백함을 띠고 있었다. 입술도, 눈 밑도 온통 빛을 잃고 푸석푸석해보였고, 제대로 챙겨먹지 않아 앙상하게 말라버린 손목에 홍빈은 속이 타들어가는 듯 했다.
“형, 저 왔어요.”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택운은 단지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려 자신의 앞에 다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춘 홍빈을 멍하니 보고 있을 뿐이었다. 밥은 좀 챙겨먹었어요? 대답이 없을 걸 알면서도 홍빈은 부러 계속 말을 걸었다. 현관문 잠가둬요. 이상한 사람 들어오면 어떻게 하려고. 택운은 한참이나 홍빈을 쳐다보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홍빈은 그의 머리카락을 몇 번 쓰다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밥이라도 만들어 먹이고 가야겠다. 몇 술 뜨지 않을 게 뻔했지만.
택운이 특히 좋아하던 반찬들을 만들어 정성스럽게 상을 차린 후에 홍빈은 다시 거실로 돌아가 그의 볼을 톡톡 건드렸다. 형, 일어나요. 자신의 손길에 멍하니 시선만 보내는 그를 일으켜세웠다. 먹지 않아서 그런지 예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무게에 괜히 가슴 한구석이 턱턱 막혀왔다.
“형 좋아하는 거 많이 만들었어. 맛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먹어요.”
혹여나 싫다고 고개를 저을까 필사적으로 말하는 홍빈에게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행동에 홍빈은 안심한 듯 포옥 미소를 지으며 그를 식탁으로 이끌었다.
“잘 먹겠습니다.”
“…….”
“…형.”
홍빈의 재촉에 택운도 간신히 젓가락을 손에 쥐었지만, 음식을 입가로 가져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홍빈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밥을 한 숟갈 푸고 반찬을 얹은 후, 그에게 제 수저를 내밀었다.
“형. 이거 한입만이라도. 응? 나 팔 떨어져요.”
택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벌려 홍빈이 내민 것을 겨우겨우 받아먹었다. 그 후로도 홍빈은 택운이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좌우로 저을 때까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오늘은 5숟갈. 저번보다 조금 더 많이 먹었네.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으려해 병원까지 실려 갔던 때를 생각하면, 지금 이 정도로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다시 거실 가도 괜찮아요. 저 뒷정리 좀 할게요.”
자신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힘없는 걸음으로 쇼파까지 돌아가 아까와 같은 자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홍빈은 식탁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가 이렇게 변한 것은 차학연의 죽음 때문이었다. 셋은 평소에도 아주 친한 사이였기에 학연의 죽음을 알게 됐을 때는 홍빈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러던 중, 홍빈이 정신을 퍼득 차릴 수 밖에 없었던 건 택운때문이었다. 셋중에서, 택운과 차연은 특별한 사이, 그래, 연인이었다. 장례식장에서 택운은 끝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학연아, 학연아…. 틈새로 새어나오는 이름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장례절차가 모두 끄나고 학연의 뼛가루를 납골당에 안치한 후, 택운은 평생 쏟은 눈물을 다 쏟아낸건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모든 게 텅 비어버린 듯 했다.
“집….”
“네?”
“집에 가야 돼.”
“형…?”
“차학연…. 학연이가 올 거란 말이야.”
납골당을 뒤로 하던 그 때, 너무 울어서 잔뜩 쉰 목소리로 택운이 했던 말을 홍빈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집에 가야해. 택운은 몇 번이고 그 말을 중얼거렸다. 마치 기다리고 있으면 학연이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택운은 두 사람이 함께 살았던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뒷정리를 모두 끝내고 홍빈은 쇼파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택운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는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홍빈은 조심스럽게 택운의 얼굴선을 더듬었다. 살이 빠져 더욱 날카로워진 턱선, 까슬해진 입술, 꿈에서라도 학연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늘 감고 있는 눈……. 택운은 아직도 이 집에서 학연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직도 학연의 추억과 함께 이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걸까.
“형…. 이제 그만해요.”
보고 있는 내 쪽까지 아파진단 말이야. 홍빈은 닿지 않을 말을, 닿았다고 해도 절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말을 중얼였다. 언젠가는 이 집에서, 학연이 아닌 자신과 그가 온전히 둘이 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떠올린 의문에 답을 준 건 잠든 택운의 입술에서 새어나온 이름이었다. 그렇지. 늘 그렇지. 그는 이런 사람이지. 홍빈은 한숨과도 닮은 웃음을 흘리고는, 택운의 볼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좋은 꿈 꿔요. 내일 또 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