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A: CATCH ME IF YOU 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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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0이 숨소리를 흘렸다. 흐음. 며칠 전보다 확실히 바람은 신선해졌다. 오히려 서늘하기까지 했지만, 며칠 전 하늘이 무너질 듯 내린 비의 여운이 남아 있는지 몸에 닿는 공기의 습함도 묻어나왔다. 그럼에도 00은 뽀송한 얼굴과 손으로 반지를 사뭇 매만졌다.
멍청한 새끼들. 경비가 이렇게 허술하면 쓰나. 00의 손에 다이아몬드가 쥐어졌다. 조명을 받아 반짝, 빛이 났다.
블루 다이아몬드. 요즘 한창 말이 많았다. 재벌가 주인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이 보석을 손에 쥐려 안절부절이었다. 그러니, 이번 경매에 이렇게 참여를 한 거겠지. 하여간 아름다움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00이 혀를 츳 찼다. 저녁 일곱 시, 보석 경매가 시작된다. 당연히 오늘 경매의 주인공은 이 블루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반지였다. 13캐럿짜리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라. 그것도 블루 다이아몬드의 크기는 세계 최대다. 심지어 팬시 비비드 등급을 받은. 00이 장갑을 낀 손으로 유리상자를 톡톡 쳤다. 생각을 할 때의 버릇이었다.
경매 낙찰 예상가는 최대 258억. 역시나 이런 곳에서 그대로 팔리기에는 아까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역사적 가치와 이것저것 다 붙여 놓으면 최대 350억까지 뛸 수도 있는 보석을. 00이 반지를 검지와 엄지를 이용해 높이 들어 보였다. 설치된 조명에 의해 반짝이는 모양새가 확실히…….
턱.
“안녕, 레이디.”
“…….”
“아름다운 밤이야. 레이디께서 들고 계신 그 반지만큼이나. 그렇지?”
00의 목덜미를 시작으로,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총.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맞닿은 총구가 지나치게 차가웠다. 00이 욕지거리를 읊조렸다.
00은 진심으로 기분이 나빠 보였다. 정호석 이 새끼. 호석은 걸음을 00의 옆으로 옮기며 00의 뒷목에 들이민 총구를 옆으로 옮겼다. 드러난 목선이 예쁘다.
“속으로 내 욕 하고 있는 거 다 알아.”
이거 봐. 호석이 재수 없는 이유는 타당하다. 눈치가 너무 빠르잖아, 쓸데없이. 00이 입술을 씹는 사이, 호석이 반지를 다시 유리 상자 안에 손수 집어넣었다. 00은 가까워진 호석과의 거리에 한 발자국 물러났다.
“어, 움직이지 마.”
“야.”
“진짜 쏴. 빵, 하고.”
호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00이 눈을 빛냈다. 그것은 분명 주체할 수 없는 장난스러움이었다. 움직이지 말라는 호석의 경고 따위는 들어 본 적 없다는 마냥 행동하는 모습이 위태롭다. 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호석은 겁 없는 00에 놀라울 지경이었다. 동시에, 불안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아무 짓도 못한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한 마디로 약점을 잡혀 버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 움직였는데.”
“…….”
“왜 안 쏴요, 형사님?”
00의 입꼬리가 시원시원하게 말려올라갔다. 거 봐, 넌 나한테 아무것도 못해. 호석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00은 손을 들어 호석의 볼을 쓸었다. 둥글한 느낌이 강한 광대부터 잘 빠진 콧대까지. 호석이 내뿜는 숨이 뜨거웠다. 00이 호석의 콧망울을 톡, 건드렸다. 호석의 눈이 게슴츠레 가늘어졌다.
“내가 너한테 잡히면…….”
“…….”
“밝은 데서 너 봐야 할 거 아니야. 나는 어두운 데서 보는 게 제일 섹시한데.”
“고작 그거야?”
“고작 그런 거라니. 중요한 거라고.”
호석이 잔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힘없이 떨어져 있던 손을 들어 00의 허리를 확, 감쌌다.
입술이 맞닿았다. 숨결을 빼앗고와 나누고의 반복이었다. 00은 그 간지러움에 푸스스 웃었다. 그리고는 호석의 손가락을 만지작댔다. 방금 전 00을 위협하던 호석의 총은 바닥 어딘가에 떨어져 있었다.
00은 호석의 아랫입술을 물고 늘어지며 그 총을 발로 걷어찼다. 호석의 감은 눈이 예뻤다.
거 봐, 먼저 반하면 진 거라니까.
넌, 나, 평생, 못 잡아, 멍청한 새끼야. 00이 눈을 꾹 감았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2.
“내가 왜 싫은데요.”
“연하 별로라.”
“단지 나이 때문이에요?”
지민의 물음에 00의 표정이 미묘히 움직였다.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눈썹이 쑥 올라갔다. 아. 누가 그런 모습까지. 새삼 그런 모습까지 예뻐 지민은 어쩐지 억울해졌다.
“네 나이가 아니었으면 고민해 볼 법한데, 그래도 안 싫어하진 않았을걸.”
“고작 4살 차이잖아요.”
“미성년자와 성인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는 건 생각 안 해 봤나.”
거 봐. 말문 막혀서 아무 말도 못하잖아, 너. 명백한 비웃음이 담긴 00의 말에 지민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심한 눈이 지민을 차갑게 훑었다. 지민의 교복 차림을 무시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미성년자와 성인의 차이.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어 넥타이를 조금 풀어냈다. 액면가로 봐선 사실 누가 성인인지, 미성년자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러면 뭐 하냐고. 지민은 미성년자였고, 00은 성인이었다. 몇 달 간 바뀌지 않을 사실이었다. 내년에야 바뀔. 지민의 친구들은 그런 지민을 타박했다. 굳이 지금 매달리는 이유가 뭔데? 내년에 성인되면 고백하면 되잖아. 흠 잡을 곳 없는, 완벽하게 옳은 말이었다. 그런데도 지민은 그저 한숨을 쉬었다. 지민이 품고 있는 감정은 하나의 불덩어리와도 같았다. 쏟아 내고 싶은, 쏟아 내야지만 조금 나아지는. 그러나 그 불은 식을 줄을 몰랐다.
“내가, 성인이 되면. 그땐 받아 줄 거예요?”
“피곤하게 굴지 좀 마. 아니라는 거 알면서도 그러는 건 뭐, 하나의 오기?”
”내가 그렇게 싫어요?”
하아. 00이 피곤하다는 듯 얼굴을 손으로 쓸었다. 얼굴에 닿는 손이 건조했다. 당장이라도 00은 지민의 멱살을 잡고 피곤한 내가 안 보이는 거냐며 따지고 싶었다. 올라오는 욕짓거리들을 삼키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했다. 나름 떨리는 마음으로 묻는 지민의 하얗게 질린 주먹이 꽤나 안쓰러웠다. 그러게 왜 잘못된 사람을 좋아해서. 당장이라도 혀를 끌끌 차고 싶은 마음이었다.
“질문을 바꾸자. 너 내가 그렇게 좋아?”
“네.”
대답이 매끄럽게 흘러나왔다. 너무나도 초연한 그 얼굴에 00은 잠시 놀라 호흡을 멈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00의 얼굴은 무심함을 휘감았다.
“그럼 내 대답도 응이야.”
“무슨 말이에요?”
지민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말투였다. 00은 비닐봉지에 있던 커피우유를 꺼내마셨다. 뚜껑 좀 따 줄래. 커피우유를 슥 내밀자 지민은 자연스레 받아 가 뚜껑을 따고 다시 내밀었다. 달달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커피우유보다는 흰 우유가 나았다. 뚜껑을 열어 준 탓에 손에 조금 묻은 커피우유가 찝찝했다. 00이 또다시 비닐봉지를 뒤적거려 물티슈를 건넸다.
“됐어요, 친절한 척은.”
“응.”
응, 고분고분하게 대답을 하면서 살랑살랑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으려 지민이 손을 들면 귀신같이 알아채고는 휙 고개를 피했지만. 실패네. 지민이 입맛을 다셨다. 좀 전에 싸늘한 분위기는 금세 잊은 눈치였다. 멍청한 건지, 순수한 건지. 00이 제 옆을 지키는 지민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산삼보다 더 귀한 존재라는 고등학교 3학년 주제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지민이 음악을 한다는 건 잘 알았다. 그래도 그렇지 공부를 안 해도 너무 안 하는 게 문제. 물론 00은 학교가 끝난 후에 00을 따라다니려 학교에서 죽어라 공부를 하는 지민의 모습은 꿈에도 모를 것이었다. 커피우유를 벌써 반 정도 비우곤 비닐봉지에 집어넣었다. 갈증이 가셨지만 갈증이 채우고 있던 입안은 커피우유의 끈덕거림이 차지했다.
“늦게 다니는 거 좀만 조심해요.”
“무슨 상….”
“무슨 상관이냐는 말은 하지 말고. 위험하잖아, 밤길.”
나처럼 사심 있는 놈들이 누나 보고 나쁜 마음먹으면 어떻게 해. 지민은 힘 없이 달랑거리는 00의 손목을 보고는 덧붙였다. 커피우유 하나도 못 따면서. 00은 얼핏 웃고선 물었다. 그래서, 나쁜 마음먹으려고? 지민은 대답이 없었다.
“커피우유는 무슨 맛이에요?”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
“기억이 잘 안 나. 생각해 보니까 커피우유를 안 마신 지 꽤 된 것 같기도 하고.”
지민의 능청스러움에 00의 입술이 비틀어졌다. 웃는 모양새였다. 지민은 물었다. 키스할까요. 어둠이 나앉은 거리가 고요했다. 며칠 동안 빠짐없이 보이던 길고양이는 어쩐지 보이지 않았다.
지민이 손을 들었다. 손의 목적지는 00의 손목이었다. 그러나 그 손은 목적지에 닿지 못했다. 00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진심이었다.
넌 나 못 잡아, 지민아.
…….
어리잖아, 아직?
00은 그대로 지민의 손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아까 커피우유가 묻어 아직까지 끈적함이 진득하니 묻어 있는 손이었다. 00은 지민의 엄지를 혀를 내어 핥았다. 지민은 제 손가락에 느껴지는 뜨거운 살덩이가 무엇인지 의심해야 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가빴다. 시야마저 흐려졌다.
지민이 정신을 차려 보았을 때는, 이미 00이 등을 돌린 채였다. 00의 손목에 검은 비닐봉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아아, 시발. 세상에. 지민이 허탈하게 웃었다. 진한 미소를 짓던 00의 허리가 아른아른거려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안녕! #1과 #2의 000은 같은 인물일까요? 만약 같다면 호석이 보는 000과 지민이 보는 000은 같을까요, 다를까요?
#2으로 끝일까요, #3으로 이어질까요? 편린 A면 편린 B도 있을까요?
는 아직 저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글 올리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길래 그냥 질문 던져 봤어요!
현생이 너무너무 바쁘네요.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저는 비록 벚꽃구경을 못 가지면 어려분들을 가셔서 사진도 많이 찍으시길 바라요. 벚꽃 짱 예쁘니까. 흩날리는 봄이잖아요.
저는 벚꽃 대신 오늘 미세먼지가 좀 괜찮은 듯해서 하루 종일 환기를 시키는 중입니다. 바람 맞는 거 진짜 좋아요.
그럼 예쁜 새벽이 되길 바라면서, 이만 말을 줄이도록 할게요.
힘든 월요일을 맞는 우리 존재 화이팅.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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