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less Love 03
w.노츄선녀
전정국과 한 침대에 누워 있다는 사실보다, 아마 내 인생을 통틀어 역대급으로 추한 몰골을 가장 보이기 싫은 사람에게 보였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고 공포였다.
하필이면 직경이 큰 렌즈라, 한 쪽만 렌즈가 빠진 짝짝이 눈은 거울을 보지 않더라도 개그물이 따로 없을 테구. 지우지 않은 화장은 다크닝이란 현상과 함께 밤새 분비된 개기름에 뭉쳐 환상의 콜라보를 자랑하며 번들번들 얼굴 떡칠했을 거구.
빗자루가 울고 갈 부시시한 머리털은 앞의 둘에 비하면 그나마 애교수준일까… 하, 하, 하.
“다… 당장 나가!!!”
베개로 얼굴을 가리며 발로 전정국 복부를 퍽퍽 찼다. 아 진짜 눈물 나. 죽고 싶어. 왜 전정국은 자다 깬 얼굴마저 잘생기고 난리야? 사람 비참하게. 어, 근데 있어봐. 방금 내가 꿈인 줄 알고 말한 잘생겼다고 한 소리도 들었겠지? 아아아악 쪽팔려! 쪽팔려! 쪽팔려!!
“미안, 소파가 너무 불편해서. 알다시피 몸이 재산인 직업이라 몸 관리를 잘해야 하거든.”
“나가란 소리 안 들려?!!”
“나가, 나가. 근데 난 양심에 손을 얹고 너 손끝 하나 안 건드렸어. 진짜 잠만 잔 거….”
“나가 이 변태새끼야!!!!!!”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집어 던졌다. 이미 낱낱이 들통 났지만 그래도 최대한 고개를 숙여 얼굴을 감춘 채로 베개, 이불, 핸드폰을 날렸다. 내가 침대 매트리스까지 뜯어 던질 기세를 보이자 그제야 전정국이 꽁무니를 뺐다. 탁- 나간 방문이 닫히자 드디어 지랄발광쑈가 끝났다. 나는 흐트러진 숨을 헉, 헉 골랐다. 한 박자 뒤늦게 숙취가 몰려오는지 머리가 띵해졌다. 아침부터 너무 신경을 쓰고 기를 빼놓으니까 빈혈 끼도 느껴졌다.
“내가 이런 꼬라진데… 여자로 보이겠냐구.”
굳이 전정국이 입으로 확인 사살 시켜주지 않아도 뼈저리게 알고 있다. 나처럼 못난이를 탑아이돌께서 뭐가 아쉬워 건드리겠어. 내가 정말 화가 난 건 그쪽이 아니다.
갑자기 눈물이 핑 고여 아랫입술 씹고 벌떡 일어섰다. 비비크림과 틴트를 챙겨 방문을 열고 화장실로 직행했다. 그 잠깐 사이도 손바닥으로 얼굴을 철벽 방어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거울로 마주본 민낯의 상태는 생각보다 더 처참했다. 기름에 다 녹아 지워진 메이크업. 렌즈를 끼고 잔 바람에 붉게 충혈 돼 눈곱이 덕지덕지 붙은 눈. 입가엔 말라붙은 침 자국까지. 작정하고 못 생기려 해도 이렇게까지는 쉽지 않을 텐데. 세면대를 붙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차라리 전정국을 죽일까?
이런 내 얼굴을 본 사람은 마땅히 지구상에서 지워버려야 하지 않을까?
나는 폼클랜징 거품을 만들며 전정국을 소리 소문 없이 죽일 101가지 계획을 궁리했다.
***
이미 밑바닥까지 들켰지만 마지막 자존심으로 세안을 마친 뒤 비비크림을 바르고 입술은 체리 빛 틴트를 칠했다. 정말… 이게 무슨 소용이겠냐만. 한숨을 이백만 번쯤 쉬다가 나왔다. 전정국은 티브이 앞에서 폰을 만지작거리다 인기척 소리에 고갤 들었다. 침대에선 그렇게 빤히 쳐다보더니 정작 씻고 난 뽀송한 얼굴은 보는 둥 마는 둥이다.
“배고프지? 뭐 시켜먹자. 피자 시킬까, 짜장면 시킬까? 아님 한식?”
“야.”
전정국의 순진무구한 눈빛에 붕어처럼 입술만 뻐끔뻐끔, 말문이 턱 막힌다. 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우리 집에서 아침까지 먹고 가겠다고? 나랑 장난해? 미쳤니? 돌았니? 너 나 알아? 설마 동창들한테 돌아가면서 민폐 끼치는 게 취미야? 따질 말은 소설을 써도 될 정도로 많았다. 그치만 머릿속에서 최종적으로 정리되어 나온 답변은.
“…콩나물 국밥.”
일단 숙취부터 해결하고 보자.
바로 집 앞에 김밥헤븐 가게가 있는 덕에 주문한지 삼십분 이내로 금방 배달이 왔다. 전정국은 얼굴 팔리면 안 된다면서 내 손에 자신의 카드를 쥐어줬다. 그제야 나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나는 전정국의 신분이 확 와 닿았다. 소파에 앉아 뿅뿅 폰 게임 중이신 분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스라는 걸. 전정국 카드로 계산하면서 괜히 주둥이가 삐죽 나왔다. 꼴에 연회비 비싼 카드 쓰네, 라든지.
“갔어. 밥 먹어.”
배달원이 나가자 바로 전정국이 바람처럼 달려와 식탁에 세팅을 했다. 나무젓가락 딱 갈라지는 소리 한번 경쾌하다. 낯짝도 참 훤하지. 지 팬들은 아주 속이 곪을 대로 곪아 있을 텐데 밥이 입에 들어가나? 연예인들은 다 쟤처럼 뻔뻔한 걸까.
“보니까 너 D대 다니는 거 같던데.”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진짜 스토커 아냐? 의심스런 내 눈빛에 전정국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저기 전공책 보고 안 거야. 출판사가 D대학으로 적혀있어서.”
“흠흠, 근데 그건 왜?”
“난 대학 못 가니까 궁금해서. 캠퍼스 라이프는 어떤지.”
아무리 캠퍼스 라이프가 낭만적이라도 연예계만 할까. 거긴 선남선녀가 줄지어 꽃펴있는데. 내부 상황을 모르는 일반인 눈엔 그저 전정국이 속한 세계가 훨씬 더 삐까번쩍하고 휘황찬란해 보였다. 어딘가 기분이 상해 퉁명스레 답했다. 그냥 뭐,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 그 대답이 웃겼는지 전정국이 푸스스 웃음을 흘렸다.
“마음에 드는 동기나 선배는 있어? 남자친구는 아직 없는 것 같고.”
“…야.”
“있었으면 나 여기 못 들어왔겠지.”
“너 지금…!”
“탄소는 보수적이니까.”
흔들림 없는 정직한 눈동자에, 불현듯 억지로 잊고 살았던 과거가 되살아나 버렸다. 심장이 쿵쾅쿵쾅 북을 쳤다. 피가 미친 듯이 혈관을 타고 뛰놀았다. 설마 전정국도 그날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걸까? 나만이 아니라……. 그때 전정국이 벌떡 일어섰다.
“잘 먹었다. 나 욕실 써도 되지?”
“어..어??”
“땡큐.”
대답이 아니라 말을 더듬은 건데 전정국은 멋대로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걸음은 얼마나 빠른지 한 소리 하기도 전에 벌써 욕실로 사라졌다. 하.. 정말 내 선에선 도대체가 감당이 안 돼. 하릴 없이 애꿎은 빈자리만 노려보며 입안의 음식물을 우물거렸다.
혼자서 밥과 반찬을 싹싹 긁어먹은 뒤 설거지까지 해서 빈 식기를 현관문 앞에 내려놨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낯선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팝송. 소리의 근원지를 졸졸 따라가자 전정국의 핸드폰이 나타났다. 수신인은… 준이형. 준이형? 준이형이 누구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머릿속에 불이 번쩍였다. 방탄소년단 리더 김남준. 본능적으로 이 전화가 끊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냉큼 전화를 받았다.
- 너 지금 어디야! 아무리 그래도 형이랑 상의도 없이 잠수타면 어떡하냐! 곧 잡지 촬영-
“여, 여보세요.”
- …….
“여보세요?”
- …….
“저기, 이 폰 전정국 씨 핸드폰 맞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침묵에,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랩몬스터의 얼굴이 그려졌다. 전정국 이 나쁜 놈. 어쩐지 수상쩍다 했더니 대책 없이 스케쥴을 다 펑크 낸 거구나. 그리고 여기로 피신했고. 한참 만에야 수화기 너머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전해졌다.
- 실례지만 누구시죠?
“아 저는 정국이 동창이에요.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
불안해 할까봐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전정국이랑 친한 척 성까지 떼어 불렀다. 방탄소년단의 리더는 그제야 하아- 안도의 한숨을 깊게 쉬었다.
- 지금 그 자식 어디 있어요?
“아 여기는,”
그때 폰이 위로 덜렁 들어 올려졌다. 허공을 나는 핸드폰을 따라 눈을 올리면서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자, 머리카락에서 물을 뚝뚝 흘린 채 무섭게 이쪽을 주시하는 전정국이 보였다. 주인 손으로 돌아간 핸드폰은 허무하게도 바로 통화가 뚝 끊어져 버렸다. 전정국은 흘끔 통신기기를 보다가 다시 내게 시선을 옮겼다. 삐뚜름하게 올라간 입꼬리가 굉장히 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반증했다.
“누가 남의 폰을 함부로 만지래?”
꼴깍. 침이 넘어갔다. 새삼 전정국이 나보다 키 크고 힘도 센 성인 남성이라는 사실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 같은 운동부족 말랑깽이는 언제든지 한손으로 거뜬히 제압 가능한.
샤워하다가 내 목소릴 듣고 급하게 쫓아 나왔는지 하반신만 타월로 간신히 가린 채였다. 선명한 복근과 가슴팍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에 시선을 둘 데가 없어 데굴데굴 눈을 굴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 알아? 남의 소유물에 함부로 손대는 거. 특히 핸드폰.”
힐난하고 질책하는 말투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난 곤란해 질까봐 받은 것뿐인데, 왜….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벨이 울리니까 하는 수 없어서. 수만 가지 변명이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머릿속에서만 뱅글뱅글 돌았다.
“김탄소?”
뭐야. 갑자기 왜 다정한 척 이름을 부르고 난리야.
"너 울어?"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손등으로 볼을 닦아냈다. 축축하고 뜨거운 물이 묻어났다. 아니 왜 여기서 눈물이 나오는 거야. 이놈의 눈물샘이 맛이 갔나. 나는 다급히 몸을 돌렸다.
“아 미치겠네.”
진심으로 당황한 어투. 전정국의 커다란 손이 내 어깰 잡아 돌렸다. 탄소야, 김탄소. 나 좀 봐봐. 전정국이 허리를 숙여 자꾸만 나와 눈을 마주치려 했지만, 너무 쪽팔리고 억울해서 얼굴을 보여주기 싫었다. 손바닥으로 면을 가린 채 고개를 푹 떨어트리니까 그제야 전정국이 양심 없는 사과를 뱉는다.
“미안. 내가 잘못했다. 말이 너무 심했어.”
“끅… 너 남자잖아.”
네 눈에 난 여자로 안 보일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완전 헐벗고. 여기엔 둘밖에 없는데, 끅. 흐윽.”
“어….”
“무섭다고..진짜. 근육돼지야.”
그래, 분명 너무 놀라서.. 그래서 눈물샘이 고장 난 게 틀림없었다. 전정국이 물러났는데도 계속, 하염없이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민망해. 창피해. 부끄러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좋겠어.
“근육돼지 그거 내 별명인데. 아, 미안 얼른 옷 입을게. 어..응. 내가 피해주는 게 좋지?”
북받치는 울음에 답은 못하고 고개만 끄덕끄덕. 전정국은 몇 번이나 입을 벙긋거리다, 낮은 한숨과 함께 포기하고 돌아섰다. 눈앞에서 커다란 덩치가 사라지니 그제야 비로소 안심이 됐다.
“하아….”
다리에 힘이 풀려 결국 제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한낱 여자가 버텨내기엔 장난 아니게 버거웠다. 거대한 압축기로 머리부터 꽝꽝 짓눌리는 기분이랄까. 전정국은 대체 어디서 이런 못된 것만 배워선. 답답해서 한숨만 푹 내쉬고 있으니 구겨진 옷을 갖춰 입고 나온 전정국이 슬금슬금 내 눈치를 봤다.
“미안해.”
“…….”
사과도 듣기 싫다. 내게서 아무 말도 없자 전정국은 머쓱하니 목뒤를 만졌다.
“근데 나 이만 가야될 것 같아.”
전정국은 아무 죄 없는 사람의 마음을 뿌리째 흔들어놓고, 본인은 단순한 일탈이었다는 듯 훌쩍 떠나가버리려 한다. 진짜 치사해. 분해. 왜 나만 이렇게 속앓이를 해야 하고, 뒷감당을-
“다음에 올게.”
왜 나 혼자.. 동공이 절로 커졌다. 지금 전정국이 다시 우리 집에 온다고 한 거야?
"또 보자."
볼캡을 눌러 쓴 전정국이 내게 천진난만하게 웃어 보였다.
@
넘 노잼이네요 죄송합니다..ㅠㅡ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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