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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우유의 비밀


어색한 동행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을 맺었다. 민윤기의 걸음이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종종 거리며 쫓아가려 애를 쓰던 내가 결국 뒤처졌고, 뒤처지고 뒤에서 따라가니 어색하게 나란히 걷는 것 보다는 이게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는 생각으로 아예 천천히 걸으면서 민윤기를 보고 있으니 하얀 피부와 넓은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어깨가 진짜 넓구나. 저러니까 그 때 내가 하나도 젖지 않을 수 있었던 건가? 근데 키도 생각보다 크네.

안나랑 호연이가 민윤기가 잘 때 깨운 남자애를 아예 묵살냈다고 했을 때는 안 믿었는데, 저 정도 피지컬이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카드병정 같은 몸매인데 가능한 건..어?

왜 그러지?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관찰하듯 민윤기를 바라보며 걸음을 옮기고 있는데 민윤기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뒤돌아 나를 바라봤다. 그 시선에 지레 찔린 나는 급하게 눈을 이리저리 굴리는데.


"거기서 뭐 하냐."


민윤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내가 안 보여서 멈춘 거구나. 


"아, 네가 너무 빨라서."


처음으로 민윤기의 질문에 삑사리도 더듬거림도 없이 타이밍도 제대로 맞춰서 대답했다는 기쁨에 들떠서 눈까지 마주치니 자신도 눈을 마주쳐온 민윤기가 말없이 날 빤히 바라보다가 고갯짓으로 자신의 옆을 가리켰다. 어. 옆에 서라는 건가? 갑작스런 턱짓에 의아해하면서도 착실히 걸음을 옮기자 민윤기의 시선도 걸음을 따라서 날 따라오던 시선은 내가 자신의 옆에 선 뒤에야 사라졌고 민윤기는 조금 전보다 확실히 느려진 걸음으로 걷기 시작해서 우린 다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으면서도 유난히 보이지 않는 연구실을 속으로 욕하고 있을 때, 붉어진 민윤기의 귀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니까 그 때도 저렇게 귀가 붉었던 것 같은데. 

붉어진 귀를 보며 다시 떠오른 여름날의 기억에 얘가 그 날 자신이 구한 애가 나란걸 아는 건지, 알면 제대로 사과도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해야 하는 건지.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그날의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고민들에 힐끔힐끔 민윤기를 쳐다보고 있으니 여전히 붉은 귀를 한 채 머리를 긁적인 민윤기가 입을 열었다.


"너 작년 여름에 걔 맞지.“


ㅅㅂ 얘 진짜 기억하나 봐. 하긴 나도 기억하는데 물에 쫄딱 젖을 정도의 임팩트를 잊어버리겠냐고 그냥 자수하고 광명 찾으라고 애들이 말했지. 심지어 김호연은 민윤기가 날 안 찾아다닌 게 용하다고 했는데. 그냥 작년에 민윤기가 다 나아서 등교했을 때 사과할 걸. 괜히 민윤기 감기 걸리게 한 애 가만 안 둔다고 이 가는 여자애들 무서워서 피해 다니다 이게 무슨 개쪽이야. 미치겠네.

잠시 쪽팔림과 함께 밀려오는 후회에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깔끔하게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든 내가 어느새 보이기 시작한 일본어연구실을 두고 걸음을 멈추자 민윤기도 멈춰 서서 날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저기 그거 나 맞아. 그땐 내가 진짜 정신이 없어서. 그렇게 가려고 한 건 아니었어. 나 때문에 감기까지 걸렸는데, 찾아가보지도 못하고 정말 미안해.”

"그럼, 그 바나나우유도 너 맞지."


너무 갑작스런 상황에 횡설수설하면서도 사과를 건네는데 성공하고 한숨을 내쉬는데 확신에 찬 얼굴로 바나나우유에 대해 묻는 민윤기를 보고 있으니 사과는 하고 싶은데 용기는 없어서 끙끙 앓던 때가 떠올랐다. 그러니까 그건 작년 여름 민윤기와 강렬했던 첫 만남 후 점심시간에 쫄딱 젖어서 돌아왔던 민윤기가 감기에 걸렸다는 소문이 무성해지고 있을 때였다.


여자애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민윤기를 쫄딱 적셔서 감기에 걸리게 한 주인공인 난 그때 죄책감과 공포에 시달리다 못해 잠도 못잘 지경에 이르렀고, 유일하게 사실을 알고 있는 마리를 찾아가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었고 마리는 


‘탄소야. 그냥 찾아가서 사과하고, 병원비든 감기약이든 해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일단 민윤기는 등교도 안하고. 여기서 민윤기 찾아가면 나인 걸 알게된 여자애들이 날 뒷산에 파묻지 않을까.’

‘그러게 왜 거기서 도망을 쳐. 손수건 건네주고 다 닦는 거 확인하고 양호실에 데려가서 감기약이라도 먹이지.’

‘그거 좀 맞았다고 감기에 걸릴 줄 몰랐지.’

‘내 생각엔 그걸 네가 맞았으면 지금 학교에 못나오고 있는 건 너일 것 같은데.’

‘그건 그렇지. 그렇다고 이제 와서 사과를 할 수도 없고. 나 진짜 어쩌지.’


같은 대화 끝에 더 우울해진 내 눈에 내가 먹던 바나나우유가 들어온 건 지금 생각해보면 절대 행운이 아니지만 그때 난 바나나우유를 보면서 방법을 떠올렸다.


‘마리야. 민윤기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맨날 민윤기한테 선물 준다고 했지.’

‘어. 왜?’

‘좋은 방법이 생각났어. 민윤기 내일부터는 등교한다고 하니까. 자리에 감기약을 사다가 넣어두는 거야. 미안하다고 써서.’

‘하. 야, 걔 다 나아서 등교하는 건데?’

‘그럼 미안하고 편지라도 써서.’

‘러브레터인 줄 알고 안 읽겠다. 차라리 네 손에 든 바나나우유를 갔다두는 게 더 좋겠네. 그러다 들키면 짝사랑하는 여자애 밖에 더 되겠냐.’


바나나우유를 보면서 여자애들이 민윤기한테 주는 선물을 떠올려 감기약을 건네겠다는 내 의견을 가차 없이 쳐낸 마리의 말은 분명 직접 만나서 사과하란 말을 돌려한 거였겠지만. 


‘그거 좋은 것 같아! 아침 일찍 등교해서 바나나우유를 올려두는 거야! 미안하다고 써서. 한 일주일 하면 되나?’


다만 이 계획엔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학교의 모든 문을 전산에 등록한 학생증이나 교원증으로 열고 닫는 보안 시스템 상 민윤기와 다른 반인 내가  아무리 아침 일찍 등교해봐야 바나나우유를 민윤기의 책상에 올려둘 수 없다는 점이었다.

놀랍게도 이 문제를 해결해준 건 당시 민윤기와 같은 반이던 마리였다. 마리는 아무리 빨라도 지각 10분 전인 네가 성공할 수 있겠냐며 실패하면 민윤기에게 자진납세를 하는 걸 조건으로 자신의 학생증을 빌려줬다.


‘일단 문 열어두면 누가 다시 잠그지 않는 이상 등교할 때는 필요 없으니까 빌려줄게. 1교시 끝나면 서쪽계단에서 만나서 돌려줘. 대신 실패하면 자진납세 하는 거야.’

‘응, 걱정 마. 할 수 있어.’


라고 그 날의 대화를 마무리한 난 정말 그 다음날 한 시간 넘게 일찍 등교해서 밑바닥에 미안하다고 적어둔 바나나우유를 올려두는 데 성공했다. 다만 우유를 올려두면서도 난 민윤기가 그걸 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민윤기는 이제껏 건네지는 모든 선물을 거절해왔으니까. 그리고 이건 그날 학교에 등교해서 책상 위의 바나나우유를 본 마리네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등교한 민윤기가 그걸 버리거나. 다른 애한테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등교해서 바나나우유를 살피던 민윤기는 내가 둔 우유를 그 자리에서 마셨고 학교는 난리가 났다. 물론 나도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해서 원래 계획대로 일주일만 지킬 생각으로 계속 올려뒀는데 민윤기는 둘째 날에도 셋째 날에도 우유를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부터는 내가 우유를 올려둔 후 과자나 우유를 올려두는 아이들이 조금씩 늘어갔지만 민윤기가 먹는 건 여전히 바나나우유 하나였다. 그것도 우유를 전부 살펴서 딱 하나만 집어서 마셨는데 그걸 보고 마리가


‘너 혹시 바나나우유에 아직도 미안하다고 써?’

‘아니. 미안하다고 쓴 건 첫 날밖에 없는데. 그냥 아무거나 집어 마시는 거겠지.’

‘아니야. 내 생각에는 걔가 네가 준 걸 골라서 먹는 것 같아.’

‘에이. 야, 걔가 바나나우유만 먹는 것 보고 이젠 다 바나나우유만 둔다며. 다 똑같이 생겼을 텐데. 무슨 수로 구분해. 나도 모르는데.’

‘아닌데. 내 촉이 얘기하고 있는데.’


같은 대화를 하긴 했지만 그냥 흘려들었는데. 지금 민윤기가 한 ‘그 바나나우유도 너 맞지’는 꼭 마리의 감이 사실이라고 얘기하는 것 같잖아. 게다가 나 때문에 책상이 바나나우유로 가득찬 것 같아서 2학기가 끝날 때까지 바나나우유를 올려두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내가 누군지 확인하려는 여자애들도 있어서 맨날 등교시간 앞당기고.

아무것도 없이 일찍 등교하면 들킬까봐. 일찍 등교해서 자습하는 척 하다 성적도 오르고! 아, 이건 좋은 거네. 덕분에 엄마가 내가 아침 먹고 입가심으로 먹는다고 생각한 바나나우유를 끝없이 공급해줘서 용돈으로 산 건 처음 일주일이지만. 아니 근데 얜 무슨 근거로 바나나우유가 나라고 확신하는 거지?


“어. 내가 맞긴 한데. 어떻게 알았어?”


일단 부정할 일은 아니라 순순히 대답하는 대신 어떻게 알았는지 이유를 물었다. 지켜본 것도 아니고 내가 바나나우유를 둔 건 어떻게 알았는지. 

도끼병 같지만 진짜로 내가 둔 바나나우유를 골라먹은 건지 궁금해져서 그것도 물어보려고 하는데 내 긍정과 함께 내가 민윤기를 봐온 이래 가장 환하게 웃는 모습과 마주했다. 이게 저렇게 웃을 일인가? 혹시 불편했나.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였나? 하긴 나 때문에 책상에 맨날 바나나우유가 쌓였다는데. 물론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다 반애들한테 나눠줬지만. 그래도 기분 나빴겠지.


“그게, 나 때문에 감기 걸린 것 같은데, 사과하기는 늦은 것 같아서 둔 건데. 혹시 불편했으면...”


“아냐, 아냐. 나 좋아해, 바나나우유”


뒤늦게야 내가 둔 바나나우유가 기분 나쁠 수도 있단 생각에 궁금함은 뒤로 미뤄두고 사과를 건네는데 여전히 환하게 웃는 채로 민윤기는 바나나우유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복도의 창을 통과해 들어온 아침 햇살이 민윤기를 더 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눈에 담으며 나는 물벼락을 맞은 민윤기에게 횡설수설 아무말대잔치를 벌이다 도망치고 그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이불을 차던 모든 순간을 지워내는 대신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하이틴 로맨스로 다시 채웠다.

암호닉

땅위, 초록하늘, 빙구, 지안, 가슈윤민기, 쫑냥, 온기, 둘리, 스케치, 윤맞봄, 태태, 찹쌀모찌, 

찌밍 드 팡떠크 모치스 3세, 뷔스티에, 둘리맨, 레드, 분홍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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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96.74
땅위입ㄴ디ㅏ!!! ㅜㄲ에에엥에유ㅠ 와... 윤기완전 예명처럼 달달해서 녹아버릴거같아요ㅠㅠ 빨리 다음 편이 보고싶네요ㅠ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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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22.189
분홍라임이에요! 아 윤기 마지막장면 상상하니까 심장이 막 아파여진짜ㅜㅜㅜ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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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이런 윤기가 좋다... 윤기도 윤기이지맘 제목이 사대천왕이라 그런지 ㅎㅎ 윤기편끝나고 다른 사대천왕도 기대되네요 ㅠㅠ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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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암호닉 신청할게여
처음부터 다 보고 왔어요!! 내용 귀여워여 ㅠㅠㅠㅠㅠㅠ 윤기는 어떻게 알고 먹은 걸까요 ㅠㅠㅠ
다음 화도 기다릴게요!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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