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오메가 팬픽
Gainloss
지호는 숨을 멈췄다. 은으로 코팅된 액자에 껴있는 것만을 제외하면 지호가 기억하고 있던 그대로였다. 지호는 조심스레 다가가 손바닥으로 넓게 더듬어보았다. 까끌까끌한 캔버스 면이 아닌 차가운 유리의 감촉이 안타깝게 손끝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지호는 목숨 걸고 맹세할 수 있었다. 저건 틀림없이 자신의 그림이라고.
“왜 그래요?”
말없이 뚫어져라 그림을 노려보는 지호가 이상했는지 지훈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흐렸던 지호의 얼굴이 한없이 진지해져선 차갑게 가라앉아있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칼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지호를 보며 지훈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너 이 그림 어디서 났어.”
“예?”
못 알아듣는 지훈에게 다소 짜증 섞인 어투로 지호가 말했다. 여전히 시선은 그림을 향한 채였다.
“이거 그림, 어디서 구했냐고.”
살갗을 찌르듯이 차가운 지호의 물음에 지훈은 그가 최하층인 오메가임에도 잔뜩 긴장하며 말았다. 모래라도 한 움큼 삼킨 듯 목이 껄끄럽다.
“자주 가는 화방에서 샀어요. 이 그림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예요?”
지호는 그림 맨 구석에 있는 자신의 싸인 위로 동그라미를 덧그린 뒤 고개를 돌렸다. 담색의 눈동자와 농색의 눈동자가 정면으로 맞부딪친다. 잔뜩 심각한 얼굴을 한 지훈을 찬찬히 뜯어보던 지호가 돌연 입꼬리를 올렸다. 오래돼 바래버린 색처럼 아주 흐릿했지만 그것은 명백한 즐거움, 기쁨이었다. 시종일관 표정에 변화가 없던 지호가 미소를 지으니 달콤하고 황홀한 향기가 빠르게 공기를 타고 확산한다. 정신을 몽롱하게 하고 영혼을 훔쳐가는 로즈마리 향.
“아니, 궁금해서.”
그렇게 대답하는 지호는 어쩐지 좀 들떠보였다. 순식간에 팽팽하게 얼어붙었던 공기가 부드럽게 풀린다. 지훈은 한순간에 180도 변한 분위기에 얼떨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호형도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어?”
지호형. 마치 어릴 적부터 오래 알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부르는 호명ㅡ '형' 이라는 단어에 지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러나 지훈은 그런 반응을 긍정이라고 받아들였는지 신나서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했다.
“사실 저는 예술에 대해선 잘 몰라요. 완전 문외한이죠. 어머니께서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시긴 하는데, 워낙 관심 밖이니 놀러가볼 생각도 못했으니까요. 분명히 그랬었는데… 우연히 어머니를 따라 간 화방에 이 그림을 보게 된 이후로 가치관이 통째로 변했어요. 운명 같아요. 그토록 예술작품에 관심 없었던 제가 어째서 첫눈에 이 그림에 반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요.”
“…….”
지훈의 눈빛은 한없이 진지했다. 그는 지호의 옆에 있는 그림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어서 말했다.
“그림에 신비한 마력이 있어서 저를 끌어 당겼다고 밖에는 설명이 안가요. 종이가 문들어질 정도로 거친 붓 자국이 남은 수채화……. 기괴한 그림 속 풍경은 마치 인간의 어두운 면을 닮았어요. 저만의 이익만을 좇는 기성세대를 마음껏 조롱하는 듯한 울분이 느껴진달까. 하하. 물론 전 전문가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인이지만요. 그냥 제 마음대로 추측한 거니까 흘겨 들으세요. ……아, 창피해.”
지훈은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시선을 땅바닥에 깔았다. 이런 말한 거 처음이에요. 친구들한테 말했으면 잔뜩 비웃음 샀을지도 몰라요. 중얼거리는 지훈의 귀 끝이 딸기처럼 빨갛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사고가 멈추고 시야가 한없이 길게 멀어졌다. 늘 무시당하고, 천대 받고, 쓰레기 취급만 당하던 자신이 처음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더러운 오메가의 피, 저주받은 몸뚱어리와 돌연변이 괴물이 자신의 정의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그가……. 그것은 어둠 투성인 세상에 내려온 하나의 빛줄기고 희망이었다. 24년 동안 찾지 못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찾을 수 없을 줄 알았던 자아. 지호의 빈 깡통 같던 허전한 몸이 환희로 가득 차올랐다.
지호는 턱을 떨면서 두 손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지훈이 눈을 내리깐 탓에 지호의 얼굴을 보지 못한 게 안타까울 정도로 지호는 행복에 겨워하고 있었다. 지호는 다시 한 번 입을 열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진심을 담아서, 알파 같지 않은 저 다정한 알파에게 온 마음을 가득 담아서.
“진짜 고마워.”
***
동운일보 사장의 차남 박경의 결혼식이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거하게 열리고 있었다. 각종 정치인들과 상위 1% 귀족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수많은 기자들의 셔터 속에서 선남선녀 둘이 레드카펫을 밟았다. 박경의 배우자는 대림그룹의 사장 사촌의 여식이었으며 둘 다 고귀한 핏줄인 알파였다. 지루한 주례사의 선언이 끝나자 유명한 가수가 듀엣으로 축가를 불렀다. 연예계에서 난다 긴다 하는 배우들과 모델들이 로얄 패밀리의 새 결합을 위하여 힘차게 박수를 퍼부었다.
결혼식이라는 그럴듯한 명분 뒤의 숨겨진 진실은 정치적 목적은 뻔해보였다. 국내 1, 2위를 다투는 한성그룹 사장과 대림 그룹 사장이 나란히 참석한 이곳은 넘치는 게 사치인 초호화판이었다. 샤토 무통 로쉴드 와인을 서로 건배하며 사교하는 사람들 사이로 유난히 눈에 띠는 한 사내가 있다. 깔끔하게 올백으로 머리를 넘긴 사내는 이제 갓 스물을 넘어 보였는데 또렷한 이목구비와 깎아내린 듯한 얼굴이 영화배우라 믿을 정도로 상당한 미남이었다. 가지런한 미소를 달고 다니는 그의 주변으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인파들로 북적북적했다.
“MBA 최연소 수석 졸업을 앞두고 있다지? 익히 명성은 들었네. 허허, 안사장이 자식 복 하나는 좋다니까. 앞으로 한성그룹은 나날이 번창할 일만 남은듯허이.”
“과찬이십니다.”
와이셔츠 단추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돼지의 악수를 받아주는 사내의 얼굴에는 도무지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꽥꽥 대는 돼지들의 향연. 손이 닳도록 악수를 하고 척추 뼈가 뻐근해질 정도로 인사를 한 뒤에야 간신히 숨 돌릴 틈이 났다. 장시간 웃음가면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은 상당히 짜증스럽고 피곤한 일이다.
명품과 보석으로 천한 피를 숨기려고 발악하는 돼지들의 관심이 잠시 다른 곳에 머물러있는 틈을 타 사내는 재빨리 자리에서 벗어났다. 구석에 위치한 한적한 테이블에 앉아있으니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지나가던 여직원에게 부탁한 물수건을 받은 사내는 곧장 거칠게 손을 닦았다. 박박 문지르는 것이 마치 세균에라도 감염된 것 같은 모양새다.
손을 다 닦자 사내는 물수건을 던지고 얼굴을 매만졌다. 철저하게 만든 웃음가면이 혹시라도 비틀어져있을까, 꼼꼼하게 정리하던 사내는 이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순수한 웃음소리에 그만 동작을 멈췄다. 아하하하……. 웃음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스물 초반의 남자가 또래들 사이에서 웃겨 죽겠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술을 마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품위 없긴. 사내는 눈을 찡그렸다.
남자는 대림가의 재벌 삼세, 표사장의 하나뿐인 외동아들이었다. 다음 사장의 재목감으로 가장 유력한 인물이기도 했으며 뭇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라이벌로 자주 손꼽히는 상대이기도 했다. 십년 전부터 꾸준히 치고 올라온 대림은 한성의 부동의 정상자리를 넘볼 정도로 간이 불어터진 상태였다. 사내는 시니컬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대림 측에서는 한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떠벌리지만 사내가 생각하기에 대림은 몸집만 커다란 벌레일 뿐이었다. 덩치가 불어나봤자다. 하찮은 본질은 어디가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그룹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한성그룹 하나면 충분했다.
하지만 그와 친해져서 나쁠 건 없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웃는 얼굴로 뒤돌아서서 등에 칼을 꽂아 넣는 것은 사내의 오래된 철칙이었으며 본성이었다. 사내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가면이 잘 눌러써진 듯싶다. 자, 가볼까. 사내는 영업용 미소를 입가에 두르고 벌레들의 무리를 향해 친히 걸음을 옮겼다.
“안녕?”
갑작스런 사내의 출연에 왁자지껄했던 무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런, 그렇게 겁먹을 필요는 없는데. 사내는 속으로 조소하며 손을 내밀었다.
“안재효라고 해. 아무래도 연배가 있는 어르신들만 계셔서 영 부담이었는데 너희들을 만나니 마음이 좀 놓인다.”
윙크까지 하며 살갑게 대했건만 벌레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경계하기 바쁘다. 한성이 왜 대림에게 친근하게구냐 이거겠지. 안 그래도 한성과 대림은 요즘 영역문제 놓고 마법 걸린 여자보다도 더 예민한 상태였다. 그러나 재효의 주특기는 적에게 혼을 빼놓을 정도로 달콤히 대하는 것이다. 입에 꿀을 바르고 배에 칼을 숨긴다.
“아아, 그쪽 이름 많이 들었어요. 같이 와서 술 하실래요? 야야, 너희들 왜 그렇게 굳어있어. 이리 오세요. 여기 자리 비었어요.”
취기 때문에 얼굴이 붉어진 남자가 재효에게 손짓을 했다. 재효는 웃으며 그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남자의 측근으로 보이는 떼거리들이 꺼림칙해하며 길을 터준다. 벌레들 옆에 붙어사는 기생충이라.
“표지훈입니다. 여기 잔 받으시고.”
“땡큐. 편하게 반말해.”
“하하, 저보다 두 살이나 많으신데 초면에 함부로 놓는 건 예의가 아니죠.”
진짜 기분이 좋은지 자신을 앞에 두고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다. 재효는 지훈을 눈여겨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아쉽네.”
반쯤 풀린 눈으로 와인을 입에 털어 넣으며 지훈이 계속 실실 웃는다. 만약 저것이 연기라면 자신만큼이나 수준급의 이중인격자겠지만, 아무리 봐도 지훈은 그럴 성미는 아니다. 딱 봐도 약간은 다혈질 끼가 있는 순수한 마초남. 재효는 그 나름대로 평가를 하며 지훈이 따라준 와인으로 입안을 축였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나도 좀 알려주지.”
재효가 넌지시 묻자 지훈은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짓더니 머리를 긁적거린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최근에 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만 떠올리면 자꾸 웃음이 나요.”
뜬금없는 고백이었다. 네 연애사에는 관심 없는데. 속으로 무심하게 생각한 재효지만 겉으로는 퍽이나 흥미 있는 척을 하며 지훈과 자연스럽게 어깨동무를 했다.
“아하. 대림가 재벌 3세의 마음을 도둑질한 로또 1등의 주인공 아가씨는 과연 누구실까?”
재효의 물음에 지훈은 대답을 허파에 구멍이라도 났는지 피식, 피식 웃는다. 보통 술에 취한 게 아닌 것 같다. 다시 잔에 와인을 가득 부운 지훈은 다소 몽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장미요. 장미 아가씨.”
장미. 그 단어에 재효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지만 언제 그랬냐는듯이 눈꼬리를 접으며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 장미라면 이쪽에도 하나 있긴 하지. 지 주제를 모르는 아주 건방진 녀석이지만 재미만큼은 확실히 보장해주는.
“나도 장미 아가씨 하나 있는데.”
“아하하, 정말요?”
“응.”
정말 섹시하고, 야하고, 천박한 장미야. 재효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똥을 싸질렀네요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용이 산으로 가는 기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흐엉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런 제 소설을 항상 봐주시는 독자분들 정말 ㅠㅠㅠ무한 감사드립니다ㅠㅠㅠㅠ 진짜 전..ㅎㅎ... 제가 써놓고도 절망이네요
멜로디 / 망가리 / 마가레뜨 / 금귤 / 코너킥 / 쌀알 / 바나나 / 부스러기 미네랄 / 새주 / 설라 / 크림우유 / 쮸 / 탤탤 / 요플레 / 바지 / 떠불 헬리 / 치즈케잌 / 바케트 / 파인애플 / 막걸리 / 이불 / 뽀 / 쿠우 / 0201 김밥 / 떡덕후 / 순살치킨 / 백사자 / 시계
제 사랑드세요, 두번 드세요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조카 봐줬는데 새언니가 화났어요.. 이유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