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락비/직경] Fall in love with you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d/9/6/d967861bcfd62316a65392eaca01d5d3.png)
“헤어지자.”
너의 말을 듣는 순간 두근, 가슴이 뛰었다. 뇌가 굳어가고 피가 급속도로 빠르게 식어갔다. 무채색으로 번져가는 세상 속 유일하게 빛나던 네가, 세상이 전부 등 돌려도 끝까지 나를 믿어줄 거라 의심치 않았던 네가 나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고 있었다. 비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균형을 잃는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네 찌푸려진 미간에는 짜증과 귀찮음만이 선연하게 피어있었다. 숨이 막혀서 나는 헐떡거리며 간신히 호흡만 이어나갔다.
박경, 너는 내가 아는 박경이 아니었다.
“…왜……?”
비참할 정도로 사정없이 떨리는 내 목소리에 너는 피식, 하고 조소했다. 산산이 부서져간다. 심장도, 간도, 허파도, 내장도, 폐도 전부 부식되고 망가져간다. 암세포보다도 치명적이고 감기보다도 쉽게. 제 기능을 못하는 몸은 시체와도 다름없었고 네가 나에게 이별을 선고한 순간 나는 죽었다. 우지호는 죽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죽은 사람은 울 수도 없는 법.
“그건 말이야…….”
너의 잔인한 핏빛 입술이 벌어졌다.
***
쾅쾅쾅쾅쾅
쾅쾅쾅쾅쾅쾅쾅쾅-!
해도 뜨지 않았는데 어떤 미친놈이 새벽부터 쾅쾅 문을 두드리는지 모르겠다. 잡상인이나 옆집 알코올중독자 같아서 대충 무시하고 자려 했는데 거의 삼십분이 넘도록 문을 두드려대고 있다. 더 뻐기다간 이웃집에서 잠 좀 자자고 칼 들고 쫓아올 것 같다. 박경은 눈곱도 안 떼고 잔뜩 짜증난 채로 이불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왔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반 죽여 버리겠어. 마구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졸음에 취해 창백한 경이의 얼굴이 마치 시한부 환자 같다. 단단히 다짐을 하고 경이가 문이 열자, 아주 시커멓고 커다란 게 불쑥 자신을 덮쳤다.
“우…우지호!?”
화들짝 놀라서 상대를 살펴보니 우지호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잔뜩 겁에 질려서 우지호는 부서져라 자신을 끌어안고 있었다. 켁, 켁, 숨 막혀 이 자식아! 팔 좀 풀어! 박경이 끙끙대건 말건 지호는 경이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면서 계속해서 다행이다, 다행이다… 라는 알 수없는 말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경이의 허리를 껴안은 손이 안타까울 정도로 덜덜 떨렸다. 하아. 새벽부터 웬 난리야.
“왜 그러는데? 어?”
덕분에 졸음이 아주 싹 가셨다. 박경은 입이 이만큼 나와 툴툴 거리면서도 겁에 질린 지호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정성스러운 손길에 불안에 떨고 있던 몸이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마음이 놓이는지 지호는 경이를 껴안고 있던 팔을 풀고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나란히 지호와 얼굴을 마주하게 된 박경은 그만 숨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난생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귀신이라도 본 듯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지호의 동공을 보는 순간, 박경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찌르르르, 하고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 자신의 마음이 다 아파왔다. 도대체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경아.”
“응.”
“경아….”
“응.”
“경아…….”
고장난 테잎처럼 반복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우지호가 이토록 애절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새벽에 우리집까지 찾아온 우지호. 경이는 손을 들어 흐트러진 지호의 앞머리를 매만져주었다.
“꿈을 꿨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지호가 말했다. 갈라지고 낮은 목소리는 섬뜩하기까지 했다. 경이는 최대한 귀를 기울이면서 지호의 차가운 손에 깍지를 꼈다. 따듯한 온기가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네가 나보고 헤어지자고 했어.”
“뭐?”
경이가 어이없다는 듯 눈을 치켜뜨고 우지호를 응시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멍청아! 한심하다는 듯 채근하는 눈빛에도 지호는 씁쓸한 듯이 말을 이었다. 입에서 각혈이 나오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로 아프고 상처받은 어조였다.
“진짜 너무나 현실적이었어. 가슴이 이렇게, 막, 아파서…….”
경이의 손을 가져가 자신의 심장 부근에 대게 한 지호는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황스러웠지만 경이는 침착 하려고 노력하며 지호를 빤히 보았다. 도대체 왜 그런 악몽을 꿨는지는 몰라도 절대로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내가 우지호보고 헤어지자고 한다고? 박경은 푸하하하, 하고 크게 폭소라도 하고픈 심정이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하는 게 차라리 더 현실성 있겠다. 박경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지호에게 조곤조곤 일렀다.
“우지호.”
“…….”
“꿈은 현실의 반대래. 그러니까 그런 일은 절대 없어. 알았어?”
단정적으로 말해도 지호는 아직도 불안이 다 가시지 않은 눈치였다. 박경은 이 의심병 환자를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모르겠어서 방금 일어나 엉망진창인 머리카락을 마구 손으로 흐트러트렸다. 잘 나가도 꼭 이랬다, 우지호는.
같이 길을 가다가도 잠시라도 자신이 사라지면 엄마를 잃어버린 세 살배기 꼬마 마냥 잔뜩 당황해했고 꼭지가 돌아서 미친 듯이 자신을 찾아 다녔다.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다정하게 굴면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고, 자기와 대화중에 다른 사람과 전화를 하면 휴대전화를 아스팔트에 집어 던졌다. 마치 어미라도 되는 듯 첫만남부터 지호는 졸졸 자신의 뒤를 따라다녔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나무꾼과 선녀에 나오는 선녀처럼,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자신이 하늘나라로 도망가 버릴 거라고 우지호는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박경 너를 영원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박제라도 할까. 잔인하고 날카로운 말이 경이의 고막을 찔러 들어왔다. 박경은 주춤, 뒤를 물러서면서 위험할 정도로 부들부들 떨리는 지호의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스토커 같은 집착. 경이는 손을 들어 고통에 찌푸려진 지호의 미간을 조심스럽게 펴주었다. 자신이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지호가, 솔직히 말하면 싫지는 않았다.
“울지 마, 우지호.”
어느새 울고 있었다. 지호는 멍한 얼굴로 걱정하는 박경을 바라보았다. 내가 울고 있어? 울고 있는 거야? 경이는 지호의 미간을 만지던 손을 옮겨 소리 없이 주르륵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지워나갔다. 동상이 걸릴 듯 차가웠다가도 금세 화상을 입을 듯이 뜨거워졌다. 나름 우지호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한참 멀었구나. 박경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동물 같은 우지호를 보듬어 주다가 그의 팔목을 잡고 집 안으로 끌고 왔다. 일단 현관에서 이러고 서있을 게 아니라 따듯한 방 안에 앉아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봐야 할 것 같다.
“경아 내가 울고 있어. 울어서 다행이야.”
“…?”
“나, 아직 죽지 않았나봐.”
무슨 개소리야. 4차원 같은 지호의 대답에 경이가 얼굴을 씰룩이는데 갑자기 우지호가 고개를 밀고 경이의 입술을 잡아먹을 듯 덮어버렸다. 잘근잘근, 경이의 입술을 씹어가며 거칠게 키스하던 지호가 어느새 입안에 혀를 집어넣었다. 범인을 수색하듯 혀 밑, 이 뒤, 어금니 사이까지 꼼꼼하게 전부 쓸고 핥고 빨며 경이를 범해간다. 녹진하고 사나운 키스에 경이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려고 하자 지호가 재빨리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받쳐준다. 목구멍까지 혀를 들이밀며 깊은 키스를 하던 지호는 한참 후가 되어서야 드디어 만족했는지 입을 뗀다. 하아, 하아, 하아. 박경은 거칠어진 숨을 진정시키며 소매로 진득한 침이 묻어있는 입술을 닦았다. 이가 따닥, 하고 부딪칠 정도의 거친 키스에 입술이 살짝 찢어져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따가워. 눈을 내리깔고 소매에 묻어난 피를 바라보는데 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랑해.”
허무할 만큼 텅 빈 고백이었다. 가을 낙엽처럼 쥐면 바스라질 것 같은 애달프고 처참한 고백. 금방이라도 와르르 무너질 듯한 사랑 고백에 박경은 팔짱을 끼고 지호를 위부터 아래까지 샅샅이 살펴보았다. 악몽에서 깨자마자 뛰쳐나왔는지 집에서 입고 있던 잠옷차림 그대로다. 밖에 추운데 외투라도 걸치고 오지, 감기라도 걸리면 어떡하려고.
“우지호.”
“응.”
“다시 말해봐.”
박경의 주문에 지호는 기계처럼 입을 열고 성대를 움직였다.
“사랑해.”
“다시.”
“사랑해.”
“다시.”
“박경, 사랑해.”
지호의 말에 정신이 나갈 것 같다. 박경은 지호의 멱살을 잡고 이번에는 자신이 거칠게 입술을 부딪쳤다. 애무 따위는 없는 절박하고 간절한 키스. 잡아먹을 듯 난폭한 키스에 지호가 점점 뒤로 밀려나갔고, 그건 경이가 바로 원하던 바였다. 닫힌 방문을 발로 걷어차고 들어간 박경은 지호의 가슴팍을 양손으로 퍽 밀었다. 농염한 키스에 이성을 빼앗겼던 지호는 저항 없이 침대위로 털썩 쓰러졌다. 경이의 눈가가 날카롭게 옆으로 찢어졌다.
“내가 더 사랑해.”
씹듯이 내뱉은 경이는 지호의 몸 위에 올라타서 사정없이 그의 입에 키스를 퍼부으며 민첩하게 손을 움직여 옷 단추를 풀어나갔다. 적극적인 경이의 행동에 잠깐 굳어있던 지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정신을 차리고 몸을 뒤집었다. 이제 박경이 지호의 밑에 깔린 자세가 되었다.
“박경, 넌 나를…….”
“…….”
“미치게 해.”
일방적인 대화를 끝낸 지호가 경이의 부드러운 셔츠를 찢으며 짐승처럼 목덜미에 키스마크를 남겼다. 피처럼, 붉고 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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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에 붕괴가 와서 이상한 단편 하나 던지고가요...ㅜㅜ 이건 주제도 없고 감동도 없고;;; 흑흑 이럴 시간에 차라리 게인로스 한편을 쓰는건데; 팬북이 생각만큼 진도가 잘 안빠지네요..어헝헝헝
멜로디 / 망가리 / 마가레뜨 / 금귤 / 코너킥 / 쌀알 / 바나나 / 부스러기 미네랄 / 새주 / 설라 / 크림우유 / 쮸 / 탤탤 / 요플레 / 바지 / 떠불 헬리 / 치즈케잌 / 바케트 / 파인애플 / 막걸리 / 이불 / 뽀 / 쿠우 / 0201 김밥 / 떡덕후 / 순살치킨 / 백사자 / 시계 / 피치
독자분들 정말정말 사랑합니다♥ 덧글과 추천이 진짜 힘이 되요!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라뷰 ㅠㅠㅠ 누가 절 슬럼프에서 구해주세요...엉엉
※게인로스는 1월 10일 전후로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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