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이었다면 내 인생에 희망 하나쯤은 던져줬을 거다. 동앗줄 하나 붙잡고 낑낑대며 사는 꼴이 퍽 재밌었을텐데. 나보다 머리 두 개는 작은 애들에게 아침밥을 먹이고,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닦아도 원장에게 눈치만 보며 사는 보육원 열아홉 살의 인생보다야 훨씬 재밌었을 거다. 삶의 의지도, 의욕도 없어, 잘하는 거라곤 애들 옷 빨리 입히기 뿐인. 아, 옷 빨리 입히는 걸론 기네스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뭐, 어쨌든 그래서 난 신을 안 믿는다. 있다면 존나 인정머리 없으신 거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신을 믿을 여유가 없다. 원래 인간은 나약해지면 허상을 믿기 시작한다는데, 나한테만 예외로 적용된다. 뭘 믿을 시간을 주던가. 일요일에는 아르바이트, 토요일에는 애들 관리. 교회고 성당이고 구경조차 해 본 적이 없으니 말 다 했지 않나 싶다. 암튼. 안 믿어요.
"너무 대답이 단호하네."
"질문이 멍청하다는 생각은요."
"별로요."
난데없이 지나가던 나를 붙잡고 신을 믿냐 묻던 이 남자에게 "뭔 신이요. 병신?" 라며 미친년 코스프레를 한 나는 얼마 안 가 손목이 잡혀버렸다. 이런 인간들은 원래 이렇게 무례한가. 손 좀 떼세요. 질린 표정으로 대답을 하곤 다시 걸음을 떼려던 찰나,
"그럼, 이건 어때요. 내가 신이라면."
"...네?"
"내가 신이라면 믿어요? 내가 당신 인생을 구원하러 온 신이라면."
아, 생각보다 더 한 미친 놈이었다.
신을 믿으십니까?
00
왜요. 나 좀 신처럼 생기지 않았나? 요즘 애들 남신, 남신 하던데. 쉬지 않고 쫑알거리며 내 뒤를 졸졸 따라오는 남자에 한숨을 쉬었다. 왜 저래, 진짜.
"따라오지 마세요."
"따라가는 거 아닌데."
"..."
도를 아십니까, 도 아니고, 그 이상한 질문에 대꾸를 해 주는 게 아니었다. 남자 없는 인생에 웬 사이비 교주가 꼬일 일이냐고. 암만 잘생겼다지만. 밀려오는 갑갑함에 마른 세수를 하다, 어. 주변을 둘러보니 길을 잘못 들은 건지, 영 이상한 골목이다. 이 동네에 이런 데가 있었나. 날 때부터 지겹게 가던 보육원 길일텐데 낯선 풍경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뭐야, 왜 멈춰요. 부딪힐 뻔 했잖아."
"..."
이 남자 때문에 정신 없어서 길을 잃은 게 분명한데, 여기 어디냐고. 지도라도 킬까 싶어 핸드폰을 꺼내들려다 어어, 하는 멍청한 소리를 냈다. 주머니에 핸드폰이 없어. 어디다 두고온 건 절대 아닌데. 양쪽 주머니를 뒤적뒤적거리다 눈을 질끈 감았다. 당최 되는 일이 없는 날이다.
"이거 찾아요?"
"어!"
"안 줄 건데."
떨어트린 걸 주운 건지, 내 휴대폰이 남자의 손에서 달랑달랑 거린다. 손을 뻗어 가져가려 하자 긴 팔을 높이 뻗는 남자. 뭐 하자는 거지. 아, 빨리 줘요. 짜증을 내며 손짓을 하자 남자가 씩 웃었다. 잘생겼네. 잘생겼는데 기분 나빠.
"대답 똑바로 하면 주지."
"뭔..."
"다시 물을게요. 신을 믿어요?"
"...미친 놈."
"빨리."
잘못 걸린 거 맞다니까. 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 네, 믿으니까 닥치고 내놔요, 하는 순간,
"진작 그러지."
하는 목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
"오빠 개새끼 아니고 신이라니까, 신."
"말 좀 제대로 들으랬지. 내 말 어기면 천벌 받는다고."
신에 더럽게 집착하는 세 인간, 아니 세 신들. 다 때려눕히고 제가 신 하겠습니다. 제발 이 화상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만 해 주세요, 제발.
야호. 큰 일을 저질러버렸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잼있게 봐 주세용...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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