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백도] 백도이야기6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9/c/1/9c1a492c84b4a9b19b08e4639f0471e0.jpg)
라디오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새벽. 가로등 불빛으로 비춰지는 세상이 뿌옇다.
잘게 떨어지는 가는 눈발이 풍경을 더욱 스산하게 만들었다. 벤 안에 내려앉은 침묵.
자동차가 굴러가는 소리와 곯아떨어진 김종대의 숨소리.
백현아
도경수가 말을 건다.
왜
눈 온다
나는 도경수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도경수는 창밖을 보고 있다. 어쩐지 힘없어 보이는 눈꺼풀.
백현아 눈 와
뭐 대단한 거라고 도경수는 다시 한 번 말한다. 나는 알아, 라고 무뚝뚝하게 대답한 뒤, 도경수의 옆으로 몸을 바짝 붙였다.
도경수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차창, 그 너머의 풍경. 녀석과 같은 시선에서 무언가를 본다는 건 기분이 묘하다.
좀 펑펑 내리면 좋겠는데
도경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수북이 쌓인 눈을 상상한다.
새하얀 눈밭이 머릿속에 떠오르니 이상하게 짓궂은 마음이 피어오른다.
너한테 먹이고 싶다 눈
나는 피실 웃음을 흘리며 생각한대로 말했다. 그에 도경수는 휘둥그레한 눈으로 나를 돌아본다.
네 얼굴에 부비면 좋겠다
넌 맨날 나 괴롭힐 생각밖에 안하지?
그야
괴롭힘당하는 넌 되레 내가 괴로울만큼 귀여우니까.
큼, 나는 헛기침을 하며 스스로가 원망스러운 닭살스런 생각을 속으로 삼켜버린다.
그야 뭐
우리 됴도르한테 맞는 건 행복하다고 했잖아
흐어 진짜 이상해
내가 킬킬 소리내어 웃으면 도경수는 핏 헛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다시 조용해진 벤 안. 색색, 김종대의 숨소리. 위잉, 차가 달리는 소리.
여전히 가늘게 흩날리는 눈발. 하지만 아까와 다르게 그리 스산하지 않다.
도경수가 입을 다물고 예의 그 조용하고 진중한 표정을 짓고는 차창밖을 응시한다.
나는 그런 도경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뜬다.
도경수 말대로
눈이,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 펑펑.
새해가 밝았다. 우리는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1년이 눈깜짝할 새에 지나간 것 같지만, 실상 바뀐 것은 그다지 없다.
우리는 좀 더 유명해졌고, 좀 더 많은 노래를 불렀다. 좀 더 바빴으며, 아마 좀 더 바빠질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건, 좋은쪽으로도 나쁜쪽으로도 전혀 변화하지 않는다.
도경수는 언제나처럼 해맑고, 나는 언제나처럼 삐뚤어져있다.
새해가 밝았다. 도경수가 내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웃었다. 나는 마냥 웃어줄 수 없었다.
시간은 흐른다는 사실은 해가 바뀌니 더욱 선명히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변함없는 하루하루. 언제나 늘 그렇게, 나는 대체 언제까지.
새해가 밝았다. 또 다시 한 해가 시작되는 날.
나는 하는 수 없이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아, 라고 도경수에게 말한다.
해가 바뀌어도 아직은 겨울.
피부 안쪽까지 징하게 춥고, 뻣뻣한 마음은 모가 난다.
도경수는 꽤 자주, 내 손을 만지작거린다. 손가락을 당겨보기도 하고, 손바닥을 쿡쿡 찔러보기도 하고.
무척 신기한 것이라도 된다는 듯이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곤 내 손을 가지고 논다.
그럴 때의 도경수는 눈도 깜박이지 않으며 내 손에 시선을 고정한다. 나는 그런 도경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손이 간질간질하고, 마음도 간질간질하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웃을 수 없다.
넌 참 손이 예뻐
도경수는 말한다. 남자 손이 예쁘다는 건 칭찬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데.
또 그 소리냐
그치만 볼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만 좀 주물럭대
내가 손을 거두려하니 도경수가 내 손을 꼭 붙들어 잡는다. 눈에 힘을 준 도경수.
그 짙은 눈썹이 강단있어보여 나는 작게 웃었다.
손 놔라
왜
아 좀 그만 만져
뭘 그러냐 닳는 것도 아니고
닳진 않지만 좋을 것도 없지
네가 손을 내주면 나도 하나 줄게
뭘
내 신체중에 아무거나
필요 없어
그럼 그냥 네 손 줘
쓸데없이 비장한 얼굴인 도경수.
아 왜 내 손가지고 난리야
나는 짐짓 짜증을 부려보지만, 녀석은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도경수는 정말 아무래도 좋을 일에 고집을 부린다.
진짜 예뻐서 그래
그 놈의 예쁘다는 말. 창피하지도 않나, 다 큰 남자놈이.
오글거리는 건 죽도록 싫어하면서 도경수는 이렇게 또 낯간지런 말을 자각없이 내뱉는다.
나 참
네가 졌지?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도경수는 산뜻하게 웃는다.
좋냐
고 물으면,
응 좋아
해맑게 즉답.
'나는?' 이라고 묻고 싶다.
미친 놈
응?
아냐 아무것도
오글거리는 걸 싫어하는 건 도경수만이 아니다. 나도 못지않게 그런 건 질색이다.
그래서 죽겠다. 자기 때문에 스스로가 창피한 인간이 되어버리는 날 도경수는 알기나 할까.
정말 날이 갈 수록.
도경수 때문에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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