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경수가 책을 보고 있다. 아래로 내려진 긴 속눈썹이 눈에 들어온다.
책을 볼 때의 도경수는 어쩐지 평소보다도 훨씬 유순해보여 괴롭히고 싶어진다.
책 읽는 걸 방해하고 싶다. 도경수가 뿜어내는 저 안온한 분위기를 깨고 싶다.
책 읽는 도경수는 예쁘다. 그래서 왠지 참을 수가 없다.
탁-
결국 나는 도경수가 들고 있던 책을 쳐서 떨어뜨린다.
어
도경수는 멍청한 소리를 내고 상황을 파악한다.
백현아 왜 그래
내가 실실 웃으니, 자기도 헤실 웃으며 내 팔을 툭 치곤 책을 줍는다.
무슨 책인데 그렇게 열심히 봐
난 도경수에게 자주 바보같다며 놀리지만, 사실 그 바보같은 웃음에 무척 약하다.
그러니까 더 괴롭히는 건 그만두기로 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뭐? 그게 뭐야?
에쿠니 가오리라고 알아?
알겠냐
나는 책이랑은 거리가 멀다.
살면서 끝까지 다 읽은 책이 손에 꼽을 정도니까. 물론 양손 말고 한 손.
그런 나랑은 달리 도경수는 데뷔한 후에도, 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종종 책을 읽곤 한다.
도경수는 책과 어울린다.
꽤 유명한데
그러냐
나 책 읽을 거니까 또 방해하면 안돼
싫은데
아 변백현
나름대로 목소리에 힘을 준 것 같긴 하지만 도경수는 웃는 얼굴이다.
헤실거리며 어름장을 놓으면 그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나.
아 근데 백현아
어
넌 동성애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나는 멍하니 허공에 시선을 두다 깜짝 놀라 도경수를 쳐다봤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도경수의 얼굴은 순수한 궁금증을 담고 있다.
나는 지레 뜨끔한 것이다. 그걸 인지했음에도 심장은 쉽사리 잠잠해지질 않는다.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냐니…?
목소리가 떨린다. 스스로가 한심하다.
정말 별 것도 아닌데.
갑자기 그건 왜?
아 여기 책에 나와서 그냥
나는
응
난 싫어
응?
남자가 남자 좋아하고 여자가 여자 좋아하고 그런 거
싫어?
싫어? 하고 묻는 도경수. 의외라는 표정이다.
어 난 싫어
아… 그렇구나
왜?
아니 백현이 넌 왠지 그런 거에 관대할 것 같았거든
…그러냐
뭔가 좀 씁쓸하다
네가 왜
잘, 모르겠어
도경수의 표정이 정말, 별로 좋지 않다.
나는 괜히 불안해진다.
왜, 뭐 때문에. 네가 그런 표정을 지어.
넌 이해하는 쪽인 거지? 성소수자에 대해 우호적인 거잖아
응 난 그런 편이야
그럼 그냥 그런 거 아니냐
응?
너랑 내 생각이 다르니까, 그래서 씁쓸한 거 아니냐고 보통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단절감을 느끼기도 하니까
나는 담담하게 말하고 도경수 몰래 침을 꼴깍 삼켰다.
병신 같이 긴장은 왜 되는 건지.
그런 게… 아닌데
뭐?
그런 게 아니라고…
도경수가 작게 웅얼거린다. 나는 도경수에게 더 뭐라 말할 수 없었다.
이런 화제로 상처입거나 하는 건, 내쪽이어야 맞는 거잖아.
왜 네 마음이 상한 건데. 왜 그런 얼굴을 하는 건데 도경수.
아… 왜 이러지
도경수가 눈썹을 살짝 찌푸린다.
왜… 그러는데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물었다.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도경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날 가만히 쳐다볼 뿐이다.
언제나 쉽게 알 수 있던 도경수가, 어쩐지 무척이나 어렵다.
아무 것도 알 수 없어.
나는 목 안이 바짝 마르고, 가슴속에선 뭔가가 울렁이는 걸 느꼈다.
도경수의 얼굴에 마음이 저릿하고, 그와 함께 어떤 조바심이 생긴다.
명확히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눈 앞에서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