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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괜찮습니다.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국왕은, 먼저 이민형에게 입을 뗐다. 그의 근황과 각 나라들의 상황을 물었다. 이민형은 평소 내가 알던 친구 이민형과 좀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잊고 있었다. 그는 장사치 정도가 아닌, 무역 정도의 큰 스케일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국왕의 물음에, 이민형은 능숙하게 여러 나라들에 대해 대답했다.
내 두 손은 자유롭지 못했다. 국왕과 이민형이 얘기하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엉켜있었으며, 이제는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손톱을 입으로 가져갔다. 물어 뜯지는 않고 그저 손톱을 깨물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때는, 이동혁이 손톱을 깨무는 나를 보고 작게 인상을 찌푸렸을 때였다. 그의 시선에, 나는 입에서 손톱을 거두었다.
이민형과 국왕은 꽤 많은 얘기를 했고, 그 동안에도 이동혁은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는 손톱이나 탁자만 보고 있을 뿐인데도, 그의 시산이 다 느껴졌다. 괜히 국왕이 눈치라도 챌까 두려웠다.
"다행이네요." 로 말을 마친 국왕이, 이제는 이동혁에게 시선을 두었다. 앞의 차를 한 입 마시고는 웃어보였다. 할 얘기가 많은 느낌이었다.
나도 궁금했다. 그가 이동혁에게 할 말은 무엇인지. 그리고 아까 짧게 들었던, 오랜만에 듣는 이동혁의 목소리도, 궁금했다.
"이젠 불러도 전처럼 찾아오지 않으셔서 조금 서운합니다."
"송구하오나, 일이 많이 바빴습니다."
"제가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지 아십니까."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많이 갈라져 있었다. 많이 피곤해 보였다. 마치 며칠동안 잠을 못 자서 결국 밤을 샌 사람처럼. 국왕의 마지막 말에 그는 앞의 찻잔을 들어 입술 앞으로 가져간 뒤 차를 한모금 마셨다. 찾아오지 않았다고, 원래는 자주 왔는데, 찾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국왕의 부름에, 그가 오지 않았다고. 이 궐에.
두 모금의 차를 마신 이동혁이, 앞의 탁자에 다시 찻잔을 내려놓고 국왕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혼인 후 많이 행복해 보이십니다."
그리고 그의 말은 나의 가슴을 철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찌 저런 질문을 던진 것일까. 괜한 죄책감이 나를 감쌌다. 국왕은 잠시 밑을 보며 한 번 웃었고, 그 덕에 잠시 이동혁의 얼굴에 피어났던 작은 웃음을 보지 못했다. 그 쓴 웃음을.
"얼굴만 잘 보는 것이 아니라, 표정까지 잘 보시나 봅니다."
국왕은 그를 부정하지 않았다. 이동혁의 말에 이어진 그의 대답도 내 심장이 뛰기에 충분했다. 가슴이 또 한번 철렁거렸다. 왜일까. 그의 대답이 설레서? 아니면,
앞에 앉아있는 이동혁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급속히 냉각화 되어서?
하하 하며 웃는 국왕을 보다가, 탁자 밑으로 이민형을 콕 찔렀다. 그러자 내게 시선을 둔 이민형에게 입모양으로 소리없이 아주 작게 물었다.
'왜 왔어?'
내 질문에 이민형은 어깨를 한 번 올렸다 내리더니, 다시 내게서 시선을 거두어 갔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모를 불안함에 풀어두었던 두 손중 한 손을 내 입으로 다시 가져다 댔다. 무의식 중에 나온 행동이었다.
이민형은 거두었던 시선을 내게로 두더니, 국왕에게 물었다.
"중전마마의 옥체가 혹 미령하시기라도.."
이민형의 그 말에, 국왕은 물론이고 이동혁의 시선까지 내게 향했다. 지금 이 상황이 불편한 나를 위한 이민형의 배려였다. 나는 입에 물고 있던 손가락을 뺀 후, 자연스레 내려놓았던 한 손을 내 배 위에 얹고 쓰다듬었다. 학교다닐 때 보충을 빼려 많이 쓴 내 거짓말을, 여기서 써먹는구나 싶었다.
"..배가 좀."
내 대답에 국왕은 조금 놀란 듯 밖의 최상궁을 불러 나를 교태전으로 데리고 가라 명했다. 이 자리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민형에게 고마운 감정을 가진 채, 나는 강녕전을 빠져나와 교태전으로 옮겨졌다.
*
이곳에 와 해가 질 때까지 한참을 생각했다. 나는, 지금 무엇이 두려워 이렇게 불안정한 것일까. 국왕이 알게 될까봐? 아니면,
국왕과 행복한 모습을 이동혁이 알게 될까봐?
결론은 둘 다였다. 이동혁 뿐이 아니라 국왕까지 신경쓰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그와 혼인을 했고, 국왕이 알면 큰일 날 일이었다. 과연 나는 국왕과 혼인한 사이만으로 이동혁과의 사랑을 들키면 안 된다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다른 질문을 만들어 내기에 충분했다.
나는 국왕을 사랑하는가. 그리고
나는, 이동혁을 여전히 사랑하는가.
그 질문에 아니라고 답을 하지 못했다. 둘 다. 고등학생 때나 중학생 때, 철없이 사귀었던 것 말고 이런 사랑은 처음이라 그런가 싶었다. 이렇게 마음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한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무책임하고도 멍청한 짓이었다. 사람 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야. 두 사람에게 마음을 동시에 품는다는 것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 짓인 줄 알면서도 나는, 내 감정 하나 제어하지 못한다.
먼저, 첫 번째 질문에는 많은 고민을 했다. 그를 좋..아하는 감정은 분명 있는 것 같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있었다. 아니, 이제는 인정해야 할 정도였다. 그저 몸에 베인 그를 싫어해야 한다는 옛날 습성 때문에, 그를 편견을 가지고 보고 억지로 싫어하려 했던 것 같아서. 그리고 나는 인정했다. 나는 그를 좋아하는 감정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끝은 곧 사랑이 될 것 같다는 불안감을.
두 번째 질문에는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다. 분명했다. 나는 이동혁을 봤을 때, 반가워서인지 놀라서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심장이 뛰었다. 많이 놀란 것도 사실이고 반가웠던 것도 사실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곳에서의 내 첫 정인. 그는 이동혁임에 틀림없다. 내 일상이 되었던 사람, 내가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 이동혁이었다. 그것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국왕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해서, 그에게 마음이 식은 줄로만 알았는데. 또 그를 보니 속도 없이 심장이 마구 뛴다.
내가 뭐라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이런 감정을. 두 사람에 비해 나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었다. 처음 국왕을 내쳤던 것도, 매일 밤 이동혁을 그리워하며 그에게 상처를 준 것도, 이동혁에게서 멀어진 것도. 모두 다 나였다. 내가 뭐라고. 그들에게 이런 아픔을 주고 상처를 주는 것일까. 허탈함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탁자 앞 내 자리에 앉아 한숨을 작게 내쉬고 있을 때였다.
창문 사이사이로 작게 들어오던 져 가는 해의 마지막 흔적인 노을이, 문이 열림으로써 잠시 방 안에 크게 졌다. 그리고, 문이 닫힘에 의해 다시 노을은 창문 사이로, 아주 작게나마 들어오고 있었다. 노을이 들어왔다 간 그 짧은 시간 동안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 방 안으로 들어온 한 사람. 발 끝부터 위로 시선을 올렸을 땐,
"보고싶었어."
"나도."
이동혁의 그 말에, 나도. 하며 대답한 것은 억지가 아니요, 진심에서 나온 말이었다.보고싶었어 동혁아. 단 하루라도 네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어. 국왕을 만나고 돌아오고 나면, 늘 달을 보며 기도하며 너를 잊지 않으려 노력했어.
내 말에, 이동혁은 이 궐 안에 와서, 처음으로 웃어보였다. 작고 쓴 웃음이 아닌, 크고 활짝 핀 웃음을. 진심에서 나오는 웃음을 얼굴에 보였다.
"어떻게 지냈어."
"..그냥 뭐.."
이동혁에게 궐의 생활에 대해 얘기했다. 밥은 언제 먹고 잠은 언제 자고 ..같은. 이동혁은 그저 덤덤히 내 얘기를 들을 뿐이었다.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비록,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신분적으로 많이 다르지만.
얘기를 하다, 급 국왕이 떠오르는 바람에 이동혁에게 죄책감이 들어, 이제는 네 얘기를 해 보라고 했다. 그 짧지 않은 시간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냐고. 살은 왜 이렇게 많이 빠졌냐고. 전보다 야윈 그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
"..나는,"
"응."
"바쁘게 살았어. 전에 안 받았던 일들을 모조리 받고, 아주 바쁘게 살았어."
그는 내 손을 만지작거렸지만, 시선은 내게 두고 있었다. 내 눈을 응시하며 입가에는 미소를 유지한 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집에 가면 녹초가 돼서 도포를 정리하지 않고 잔 적도 많고, 불을 끄지 않고 잔 적도 많았어."
그의 대답에, 그가 귀여워 괜시리 웃음이 났다. 이동혁도, 덜렁대는 면이 있구나. 이동혁의 손은, 내 볼을 만졌고, 나를 보며 웃었다.
"잘 지내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이동혁은 그 말을 하는 도중에도 역시 웃어보였다. 분명 웃음이지만, 지금까지 그가 지어왔던 웃음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그의 말 뒤에는 왜인지 모를 대조되는 이동혁이 그려졌다. 나는 잘 지냈어 동혁아. 근데 넌, 잘 지내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
"많이 걱정했고, 앞으로도 많은 걱정이 되겠지."
"응.."
"흔들리지 않아줘서 고마워."
그의 마지막 말에는, 응. 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웃어보이며 이제 가 봐야 한다는 그를 보내기 싫어 손을 놓지 않았다.
"이제 앞으로 자주 올게."
"진짜?"
"응."
자주 온다는 그의 말에, 대립되는 두 가지 감정이 서로를 경계했다. 하나는 이동혁을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에서 비롯된 기쁨의 감정과, 국왕이 떠오름에서 비롯된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
일어난 그를,뒤에서 껴안았다. 어미의 품이 그리웠던 자식처럼, 나는 이동혁의 품이 그리웠다. 익숙한 향이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집에 온 느낌이었다. 괜히 또 눈물이 나려 했지만, 꾹 참았다. 여기서 울면, 마음이 불편할 것은 이곳에 남아있을 나보다는 집에 가는 길 내내, 아니 집에 가서도 우울해 할 이동혁이기 때문에.
문이 열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보내줬다.
잘 가, 그리고
또 보자고. 꼭.
*
네가 있는 교태전을 나왔다. 사실, 말하고 싶었던 것은 더 많았는데. 그렇게 나 편하자고 내 감정을 다 털어내고 오면 내가 가고 불편해 할 너의 감정을 생각해서라도 참자는 내 결정이 옳았던 것 같았다.
너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궁금했다. 그 사내는 어떻게 아는지.
네가 나의 근황을 물었을 때는, 굉장히 포장해서 얘기했다.
나는 네 생각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어. 네가 가고 이주 동안은 일도 하지 않았어. 네게 마음이 식어서가 아닌, 네게 너무도 큰 연심을 품고 있어서. 시도때도 없이 네가 머릿속을 휘집고 다녀서.
그래서 바쁘게 살았어. 한 사람을 찾으면 바로 또 다음 사람을 찾아야 할 정도로, 그 큰 범위 속에서 하루에 세명 네명을 찾아줄 때도 있었어. 몸이 힘들어야, 지쳐서 잠이 들 때가 돼서야 네가 적당할 만큼 떠올랐기에, 계속해서 바빴어.
늘 좋은 사람이 되라던 아버지의 말씀과 다르게, 나쁜 생각을 품었다. 너는 잘 지내 보여서. 처음에는 너도 나처럼 힘겨워 했으면 좋겠다는 어린 생각에, 달님에게 밤마다 빌었다. 제발, 네가 내 생각에 하루도 행복하지 말라고. 특히, 국왕과 함께라면.
물론 곧 그 생각은 머지않아 곧 지워졌다. 아니, 그냥 네 불행은 내가 다 가질 테니까 너는 내 행복까지 행복만 하라고. 그저 나를 잊지 않고 하루이틀 빼 먹어도 좋으니 나라는 존재를 잊지 말아달라고. 그저 너는 행복만 하라고. 궐 안에서 행복한 일만 너를 감싸안기를 바랐다.
네게 부담이 될까 차마 하지 못 한 마지막 말이 있다면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내 정인은 너라고.
! 작가의 말 ! |
안녕하세요! 작가 니퍼입니다 홍홍.. 오늘 분량 어떄요..?!? 많죠!! 많다고 해 줘요 헝헝.. 아니 막 오랜마넹 동혁이 편 쓰니까 느낌이 갱장히 이상해요.,. T^T 이제서야 동혁이 등장시킨 게 죄송하기도 하고 헝헝.. 돌 맞을 준비 하고 있으니까 바위만피해주세요 주륵. ㅋㅋㅋㅋ +) ※ 저번 화에 재현이가 한 거 단순뽀뽀 아닙니다 ^w^ ※ ♥ 많이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 |
♥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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