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맞춤 (Acoustic Ver.) - 김이지 (꽃잠프로젝트)
2020 년 7 월
슬슬 해가 길어지는 계절. 잠깐 불어오는 바람조차 후덥지근하기만 한 이 여름엔, 참 많은 이들로부터 청첩장을 받는다. 더위가 한풀 꺾이는 가을만큼 결혼하기 좋은 계절이 또 어디 있으랴. 스물아홉,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 이 나이쯤 되니 주변 사람들로부터 청첩장을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지인이 결혼한다고 청첩장 나눠줬을 땐... 되게 신기했던 것 같기도 한데.
가끔 청첩장에 나란히 박힌 이름들을 볼 때면 부러움에 속이 울렁거리기도 했다. 연애, 결혼... 그런 사치를 누릴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올까? 지금 생각해보면 퍽이나 웃기지만, 내 어릴 적 꿈은 스물다섯을 넘기기 전에 좋은 남자를 만나 현모양처가 되는 거였다. 현모양처라는 꿈을 만들어준 것도, 잃어버리게 한 것도 전부 그 애였다. 내 청춘의 8할을 가져간 내 첫사랑.
* * *
고등학교 내내 나의 별명은 껌딱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애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애달프도록 쫓아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에 그 애는 나에겐 백마 탄 왕자님이고 티비에 나오는 멋진 연예인 같고... 암튼 그랬었다. 그때는 순진해서 그 애가 조금만 여지를 줘도, 집에 가서 혼자 그 행동과 말들을 곱씹으며 침대 위를 뒹굴고는 했었다. 속된 말로 혼자 썸타고 연애하고 헤어지고 다 했었다는 뜻이다. 그 애는 그런 나를 보면서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구구절절 미치도록 애절한 짝사랑은 아니었어도,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닌 적은 없었다. 그런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서 몇 번을 고백하고 몇 번을 차인지 모른다. 축구공이 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이 차여서, 주변 애들이 좀 받아주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결국 그 애는 저만 보는 해바라기 같은 나를 두고, 전교에서 제일 예쁘다고 소문난 계집애랑 사귄 건 안 비밀이지만.
둘은 너무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고, 나는 그들을 질투할 뭣도 아니었기에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여자친구가 있는 그 애를 보면서도 포기가 안 됐었다. 학교가 끝나면 둘이 손잡고 데이트하러 나서는 것을 보면서도 그랬다. 맞잡은 손을 볼 때마다 가슴이 따끔거리는 듯 아팠지만, 그 애가 행복하다니 내가 더 할 말은 없었다. 어차피 대학 가면 다 헤어지게 돼 있어, 나는 그때를 노리면 돼. 하는 얄랑한 마음도 없잖아 있었기 때문에 더 포기가 안 되는지도 몰랐다.
고삼 때는 같은 대학에 가려고 안 되는 머리까지 써가면서 미친 듯이 공부만 했다. 그 애는 운동이면 운동 얼굴이면 얼굴 공부면 공부 뭐든 빠지는 거 없이 잘하는 엄친아였고, 나는... 그냥 글로 먹고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진 문학소녀 정도로 해두면 될까. 아무튼... 교내 백일장이니 뭐니 글을 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가서 상을 휩쓸고 다녔지만, 그 외에 딱히 뛰어난 건 없었던 것 같다. 공부 머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얼굴이 뛰어나게 예쁜 것도 아니고... 자기 객관화가 너무 잘 돼 있는 나로서는 애초에 우리 둘이 같은 대학을 간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포기가 안 됐었다. 당시 내 좌우명이 포기는 배추 셀 때 하는 말이다! 였으니 말 다 한 거 아닌가?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지 생각보다 수능은 잘 쳤다. 글을 쓰고 싶어 나갔던 백일장에서 탄 상들은 고스란히 내 스펙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다고 해도 그 애와 같은 대학에 갈 수 있는 성적은 아니었기에, 나는 원서를 넣는 내내 울상이었다. 친구들은 그 정도 점수면 대박 쳤으니까 된 거 아니냐며 대학 가면 더 좋고 멋진 남자 널렸다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때 내가 머리가 좀 돌았는지 걔가 원빈보다 멋져 보이고 그랬었다. 지금 졸업사진을 꺼내 봐도 솔직히 넘사벽으로 잘생기긴 했더라.
암튼, 불같았던 수능이 끝난 뒤라서 그런지 다들 수험표 팔랑거리며 멋부리고 놀러 다니기 바빴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모두들 하교하고 조용한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교무실을 나섰다. 내가 갈 수 있는 대학 이름과 내 점수 등이 적힌 종이를 들여다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는데,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 애가 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너무 의외의 인물이라 당황할 겨를도 없었다.
"어? 뭐야. 집에 안 갔어?"
"가려다가, 가방이 교실에 아직 있길래."
"아, 고마워."
"대학 상담?"
"아, 어... 아무래도 너랑 같은 대학은 못 갈 것 같아."
"그건 당연한 거고, 그래도 잘했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달린 그 애는 슥슥 자연스럽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상치도 못한 칭찬과 스킨십에 놀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자 그 애는 조금 멋쩍은 얼굴을 해 보였었다. 그렇게 집에 가는 길 내내 내 손에 들려있던 종이를 들여다보던 그 애가 S대를 포기하고 나와 같은 대학에 원서를 넣은 것은 불과 며칠 뒤의 일이었다. 그 일로 학교는 발칵 뒤집어졌지만, 유일하게 단 한 사람만이 뭐가 문제냐는 듯 태연했었다.
암튼, 결국 과는 다르지만 그 애와 나는 같은 학교에 새내기로 입학하게 되었다. 그즈음, 그 애는 고등학교 내내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내 빌어먹을 짝사랑의 역사도 이쯤에 끝났어야 했는데, 나는 징하게도 스무 살 무렵까지 그 애 꽁무니만 쫓아다녔다.
뿅 |
이거 그냥 시간이 왔다 갔다 해서 헷갈리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현재는 스물아홉임니다... 나이가 좀 많구... 그래서 과거를 자꾸 회상하구... 재미는 좀 없구... 스토리는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쓸 것이구...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하구... 이만 줄이겠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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