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슨 소리냐면
" 무슨 소리야? 내 방에서 뭔 큰소리가 ㄴ "
내 목숨이 끝나는 소리.
시골쥐와 나
* * *
/
정적이 흘렀다.
" 세운아... "
내가 정세운이 무서울때만 나오는 성 떼고 이름부르기.
" ..... "
정세운은 문을 열었던 그 순간부터 시간이 멈춘듯 그대로다.
뭔 말이라도 해 쥐새ㄲ..세운아...
그거 있지, 말 안하면 더 무서운거
" 아하하하 기타가 살짝 부딪혔네! 멀쩡해 이거봐! "
이광현은 누가봐도 어색한 톤으로 수습하려는듯 떨어진 기타를 들어올렸다.
뽀각
맑고 둔탁한 음이 퍼졌다.
응 이게 무슨 소리냐면 기타 헤드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내 목숨도 부서지는 소리.
기타를 치는 사람들은 알만한 상황이다. 기타 헤드가 부서진것..
그 허탈함..
" 어..어... "
이광현은 상당히 당황한듯 보였다. 저 떨고있는 손이 그걸 말해준다.
" 아... "
정세운이 긴 침묵 끝에 소리냈다.
" 세운아 미안해 정말 내가 기타 새로 사줄..상황은 안되고, 어 그러니까 "
내가 태어나서 가장 당황했던 순간 중 상위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구원의 눈빛으로 이광현을 쳐다보니
' 그냥 닥치고 있어 ' 라고 말하는 입모양을 똑똑히 봤다.
이광현이 처음으로 현명해보였다.
" 괜찮아 "
예 ? 제가 잘못들었나요 ?
" 뭐? "
이광현도 놀란눈치였다.
" 다시.. 수리하면 돼.. "
안그래도 졸려 보이고 힘없어 보이는 애가 힘없이 말하니까 진짜 다죽어가는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이였으면 불같이 화냈을지 몰라도 정세운은 정말 침착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의외로 착한 인간이였다.
물론 그 생각은 다음날 부터 바꼈지만.
그 날을 이후로, 정세운은 이 사건으로 나를 매우 괴롭혔다.
내가 정세운에게 실수하는 날이 있으면
" 괜찮아, 기타 부서지는 것보다 아픈일이 있겠어? "
라며 나를 위로하곤 했다.
그때 정세운의 무서움을 알고나서 정세운에게 심한 장난을 안한다.
나를 위해서라도
/
2. 블랙 집착증
이광현은 블랙에 매우 집착한다.
머리가 일단 블랙. 현재 고3인 우리에게 당연한 말이긴 하지만.
시계도 블랙, 교복도 블랙. 여기까지는 평범해보인다. 그런데,
이광현을 봐왔던 지난 8년동안 모든 사복이 블랙이었다.
핸드폰도 블랙, 케이스도 블랙, 가방도 블랙, 필통도 블랙, 샤프도 블랙, 지우개도 블랙
더 얘기하자면 머리가 아프다. 이광현에게서 블랙을 찾아볼 수 없는곳은
흰 양말과 치아. 그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정세운도 정상은 아니다. 얘는 남방 집착증...
그래도 온몸을 남방으로 채우고 다니진 않으므로, 덜 정상이다.
3. 시골쥐의 매력
내 입으로 말하기는 이해가 안가지만
나는 이광현, 정세운을 좋아하는 여자애들을 알고있다.
대놓고 좋아하는애가 있고, 나한테 말해주는 애 그리고 숨기고 있지만 티가 나는애
이렇게 구분 가능하다.
정세운은 여자를 헷갈리게 한다.
이게 무슨말이냐면, 정세운은 앞서 말했듯 의외로 착한놈이다.
정세운은 사람과 말할 때 절대 눈을 다른곳으로 돌리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봐주고, 적당히 반응해주고.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사람이다.
또 웃을때 눈밑에 보기좋은 주름이 생기는것도.
그러니까 내말은 여자들이 딱 오해하기 좋은 놈이라는 거.
솔직히 말하면 정세운이 못생긴 얼굴은 아니고,
그런 남자가 머리도 좋고 다정하고 웃어주는데 어떤 여자가 안좋아하겠냐.
그것은 바로 나.
아니 무튼, 정세운과 대화하는 여자애들의 눈빛을 보면 그렇게 나와있다.
말을 이렇게 해서 정세운이 막 인기 되게 많은것처럼 보이는데
그런건 아니고, 그냥 딱 소수만..소수..
왜냐면 정세운은 딱히 여자애들이랑 친하게 지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어색하고 말안하고 이런 정도는 아니고 적당히,
평범하게 반에 잘 스며드는 그런 놈이다.
그와 반대로 이광현.
얘는 진짜 인싸다 핵인싸.
옷만 스쳐도 다 친구다 얘는.
다른 반이랑 합쳐서 수업을 듣는 합반 수업때도, 운동을 할때도
어딜가나 모두가 '이광현 친구'다.
정세운이랑 다르게 여자애들과 골고루 친하고 장난도 잘친다.
햄찌같은애가 애교도 많고 활발하니
그걸 보고 좋아하는 여자애들은 분명히 있을 것.
것보다 얘는 진짜 웃기는 애다.
정세운은 아무것도 아닐정도로, 얘는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어느날은 이광현이 어떤 여자애를 수업시간에 빤히 쳐다보는걸 봤다.
그 여자애는 학교마다 한명씩있는 공주님. 나쁜말로 하면 공주병 걸린 친구였다.
지루한 수업시간에 계속 졸고 있던 나는, 왠지 흥미로워 그 상황을 계속 지켜봤다.
드디어 이광현이 연애를 하는것인가.
그 여자애도 의식을 한건지 이광현을 힐끔 힐끔 본다.
대망의 쉬는 시간.
기다렸다는 듯이 이광현은 벌떡 일어나 그 여자애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자애의 표정은 왠지 설렘이 가득해보였다.
나는 잠을 포기한채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 저기 공주야 " ( 이름을 공주 라고 칭하겠다. )
" 어 왜? "
마치 예상못했다는 표정으로 이광현을 쳐다보는 공주가 재밌었다.
새침하네.
" 그.. "
이광현은 부끄러운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쥐새끼가 약을 잘못먹었나?
" 그 연필 혹시 볼 수 있을까 ? "
? 이게 무슨 소리지
" 연필...? 이거? "
공주는 들고있던 연필을 들어보았다.
" 어 이거, 어디서 난거야? 어디서 살 수 있어? "
" 뭐? "
나조차도 이 상황이 이해가 안가는데 공주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 우리 학교 앞에 팔아? 이런거? 한번도 본적없는데.. "
" 아니.. 인터넷에서 묶음으로 산거야.. "
" 아 진짜? 혹시 그 사이트 이름 좀 알 수 있을까? "
그렇게 몇분 대화를 주고받다가 원하는 답을 얻었는지
그 누구보다 해맑게 자리로 돌아가는 이광현을 보았다.
" 야 이광현 너 사이트 주소 그런걸 왜물어봐? "
" 어? 아 들었어? "
니가 등신짓 하고있는데 못들었을리가.
" 저 연필 진짜 신기해, 원래 연필 앞부분 살색이잖아 "
" 근데? "
" 저거는 검정색이야 진짜 신기하지않냐? 완전 예뻐 "
그래, 맞다 내가 잊고있었다. 블랙에 미친 놈이라는 걸.
아니 그냥 이광현 미친 쥐새끼라는거.
이광현 미춌지 우예
요즘은 연필 디자인이 다양하게 나오는데
앞부분이 검정색인 연필을 보고 마음이 뺏겼나 보다.
" 히힛 "
이런걸 친구로 둔 내 속이 타들어가는 중인데,
이 쥐새끼는 좋다고 실실 웃는다.
저 멀리서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정세운은
다가와서 우리 앞자리에 뒤를 돌아 앉았다.
" 뭔 얘기해? 이광현 왜이렇게 신났어 "
으응 얘 머리가 많이 다친거 같아.
" 뭐? 검정 연필? "
그러니까 우리 빨리 절교하는게 좋을 것 같아.
" 아 진짜 웃기네, 이광현 진짜 대단한놈 "
정세운은 얘기를 듣고 배를 잡고 웃더니
이광현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아주 신이 났다.
나는 그 자리를 조용히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