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열
01
영민아.
응.
우리 키스할까.
왜.
하고싶어.
그러자 그럼.
원래 친구끼리는 이러는 거예요, 친구잖아요. 친구는 다 이렇잖아요. 어긋난 사고 방식은 비정상적 관계의 톱니바퀴였다. 열아홉의 미성년. 이제 막 열아홉에 들어선 둘은 봄날의 우정을 빌미로 하굣길 골목에서 나이와 걸맞지 않은 진득한 입맞춤을 했다. 영민의 주머니에 꽂혀있던 휴대폰 액정에는 '희진이'라고 저장된 밋밋한 이름이 떴고 진동이 울렸다. 여주가 영민의 와이셔츠를 쥐었다. 영민은 아무렇제 않게 휴대폰 배터리를 분리시킨다. 영민의 여자친구인 희진이 다음 날 아침부터 고래고래 화를 낼 것이 뻔했지만 그런 걸 상관하지는 않았따. 둘은 그런 사이였고, 항상 상식의 범주를 벗어났으므로.
*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신발을 구겨신은 채로 대문을 열면, 집 앞 복도에는 영민이 등을 기대어 서있다. 그대로 영민을 모른 체하고 등굣길에 오르려는 여주의 팔을 낚아채서는 신발장 벽에 걸린 구두주걱을 들어 구겨신은 여주의 신발을 똑바르게 신겨주어야만 평범하지 않은 둘의 등굣길이 시작된다. 그걸 부모는 아는지 모르는지, 거실에서 큰 목소리로 다녀오렴. 하고 외치는 게 다였다. 대문을 닫자마자 급하게 여주의 턱에 입을 맞춰오면 짜증 섞인 투로 영민을 밀어낸다.
"싫어, 좆같애 영민아."
"왜 좆같아 여주야.
"아침 댓바람부터 뽀뽀하는 거 싫다고 그랬잖아."
"난 좋아하는 거 알잖아."
"수염 방금 깎고 뽀뽀하면 아파서 싫댔잖아. 말 좀 들어."
영민에게 톡쏘아 붙이곤 휴대폰에 온 문자를 확인한다. 같은 학생회인 김재환에게서 온 아침 인사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렇게 인사하는 거 힘들지도 않은가. 여주가 생각했다.
휴대폰 자판을 꾹꾹 누르고 그의 문자에 인사 겉치레로 답장을 보내면, 그제야 자신의 발걸음이 너무나 느려 엘레베이터에서 영민이 기다리고 있단 사실을 자각한다. 급하게 영민만이 들어있는 엘레베이터에 몸을 실으면 욕을 짓이기는 목소리가 들린다. 임영민이다.
"아침부터 좆같게 왜 욕 해."
"니가 욕하는 건 되고?"
"내가 욕하면 내 기분은 안 좆같으,"
"난 좆같아 여주야. 김재환이랑 연락해?"
"너도 박희진이랑 사귀잖아."
"근데?"
"너 진짜 좆같다 영민아, 친구사이인데 이런 것까지 관리해야 하니."
쿵. 큰소리가 난다. 영민이 머리를 엘레베이터 유리창에 박으며 나는 소리다. 인상을 팍 찌푸린 영민은 휴대폰으로 쉴 새 없이 오는 연락에 신물이 난 상태다. 아마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박희진이 영민에게 소리를 빽, 지를 것이고 그럼 여주는 그런 영민과 희진을 같잖다는 듯 쳐다보겠지. 아- 희진이 뺨을 때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영민은 그런 상황을 환멸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김여주의 시선을 받아내는 상황.
"영민아,"
"응"
"박희진 생각하지 마."
영민이 웃는다. 속으로는 저게, 하곤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여주의 잔잔한 눈길이 영민에게 닿는다. 저 눈동자를 볼 때면 영민은 꼭 발가벗은 것만 같아서 그래서 줄곧 귀가 빨개지곤 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 취기 가득한 눈으로 임영민을 집어삼키고. 여주는 다시 고갤 돌렸다.
"나랑 있을 땐 우리 둘만 생각하는 거야."
"알아."
"그게 아무리 우리랑 관련된 거라구 해도, 출입금지야 영민아."
응, 알아 여주야, 영민이 몸을 돌려 여주의 머리카락에 입맞췄다. 여주의 표정에는 일말의 일렁임도 없었다. 돌멩이가 던져진 호수는 무슨, 영겁의 시간을 그렇게 살아온 호수 마냥. 파동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것처럼. 그 안에는 어떤 생명체가 있을지 모를 호수처럼.
소문이 헛돌았다. 김여주와 임영민이 사귄다는 소문이. 여자친구까지 있는 영민과 그의 오랜 친구 김여주에 대한 소문은 덜 자란 애들이 씹기엔 좋은 가십이다. 이런 소문은 고등학교 입학 초에도 자자했다. 둘이 붙어다니는 행색이나 임영민의 말에 곧이곧대로 웃어주는 김여주나. 그덕에 임영민을 좋아하던 여자애들은 용기도 못 내곤 했는데, 그 소문이 뜨거운 냄비처럼 식어버린 건 입학한지 열흘이 가까워졌을 때였다.
발렌타인데이,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 여주는 이 날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기업의 상술이라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자기는 사탕보다 초콜릿을 더 좋아하는데 왜 발렌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날인지에 대하여. 물론 성별이야 상관없어진 게 지금이라지만 텍스트 그대로의 정의가 싫었다.
열일곱의 발렌타인데이는 풋풋하기도 했지만 들끓음이 없을 리 만무하다. 여주와 영민이 사귄다는 소문이 자자한 한창, 둘의 사이가 확실치 못하다며 기어코 여주를 불러 초콜릿을 건네겠다며 떠벌리던 강심장이 있었지. 그걸 글쎄 임영민이든 김여주든 못 들은 건지 알면서도 모른 체한 건지 모를 일이지만 14일이 되기 일주일 전부터 고백을 하겠다며 선포를 하고 다닌 사실을 둘은 몰랐다.
"여주야, 나 너 좋아해."
"…"
"니가 임영민이랑 사귄다던데 진짜야? 아니면 나랑 사귀자."
"… 걔랑 안 사귀어."
"어? 그, 그럼,"
"근데 너랑은 더 안 사귀어. 와꾸를 보고 말 해 병신아."
복도 한 복판에서 초콜릿을 건네며 쩌렁쩌렁하게 말하는 남학생을 보고, 여주는 쟤가 과연 날 좋아하는 게 맞긴한가에 대한 고민을 순간에 수십 번이나 했다. 남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이, 내가 남들 눈초리 속에서 사는 걸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새끼가. 아, 아니면 일부러 날 열맥이려는 건가.
"차라리 사귀었으면 임영민이랑 사귀겠지."
"야 너 말이 좀 심하."
"저 새끼 와꾸 좀 봐. 존나 잘생겼잖아."
여주가 해사하게 웃었다. 교실 안에서 머리를 빼꼼히 내놓은 채로 상황을 관음하던 임영민조차도 정상은 아니었으니. 이 공간에 있는 세 명이 당분간의 가십이 될 게 뻔했다. 게다가 이 상황을 천진하게 보고있는 임영민이라니. 재밌는 소재가 아닐 리 없다. 덧붙여 피아노타일까지 하면서 중간중간에 욕을 지껄인 애인데. 그리고 '임영민'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여주의 입에서 나옴과 동시에 고개를 들어 여주와 눈을 마주치며 환하게 웃는 게 끝이었다. 낄낄대는 웃음을 커튼 콜으로다가.
안녕하세요 오애오입니다. 중간에 오타 수정했습니다. 불편하셨을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이 글은 새로 암호닉을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