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열
04
영민과 여주의 만남을 글로 써보라 한다면 아마 맨 첫 장에는 열두 살 무렵, 으로 시작할 것이다. 그래 영민과 여주는 열두 살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된 걸 확인했던 순간인 1학기 첫날에 만났다. 영민과 여주는 태초부터 그런 놈년들이라, 여전한 성질머리를 가지고있었는데 영민이 생글생글거리는 얼굴로 인기를 몰고있는 반면 여주는 조용히 책을 보고있던 그 순간부터 파멸이 시작된 거였다.
부모님의 검정 세단을 타고 교문 앞 일찍이 내린 여주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한 영민의 눈이 마주한 건 잠깐이었다. 그 잠깐에 스친 그 눈길이 둘을 벼랑으로 몰아넣을지는 몰랐었지. 그저 영민은 잠깐 생각했다. 아 - 부잣집 아가씨라도 되는 모양이구나 하고. 그에 반하여 여주는 아무 생각없이 고개를 돌려 학교로 향한 것을 보면, 둘의 성격에 대해서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여주가 먼저 도착하면 5분도 되지않아 영민 또한 교실로 들어섰다. 적막이다. 공기의 흐름은 마치 맹수라도 본 것 마냥 기겁했고 평소 같았으면 그저그럴 초등학교가 보통 때완 달랐다. 이른 만남이다. 조금이라도 더 늦게 만났더라면, 그랬더라면 …
"안녕."
"응."
"난, 나는 임영민인데 너는,"
"김여주."
영민의 말을 끊은 여주가 잽싸게 이름을 읊었다. 말이 끊겼더라도 기분 나쁜 내색 하나 보이지 않은 영민이 해사하게 웃으며 여주의 앞자리에 앉았다. 옆자리, 옆자리에 앉을 위인은 아니지. 아마 하늘의 농간이라면 농간일 거다. 둘은 영원히 옆에서 손을 잡거나 옆자리에 앉을 만한 인연은 되지 못할 거라는.
영민의 웃음에 짧게 입가에 미소를 지은 여주가 눈을 내리깔곤 책을 바라봤다. 그래, 둘은 처음부터 이런 모양새였다. 한 놈은 참새마냥 쪼아대고 다른 한 놈은 목석같은 모습을 하고있으니, 그래도 둘은 지치지 않았다. 태초부터 그렇게 빚어난 것들이다. '태초'라는 것을 모른다면 바뀌었을지 모르는 운명이라지만 그렇지 않았다. 둘은 익숙하게 서로를 갉아먹었고 빨아들었으며 기생했다. 전혀, 서로를 보듬어주거나 서로의 목숨에 도움이 될 만한 인물들은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몸에 나쁜 걸 사람들은 더 좋아하는 법이니까.
"여주야"
"왜?"
"우리, 오래 친구하자."
"응. 그래. 오랫동안 친구해."
초등학교 졸업식 날 이른 저녁에 놀이터에서 했던 약속이 꼭 금기의 약속이라도 된듯이. 그 말 한마디가 둘을 꽁꽁 얽어맸고, 성인이 될 무렵까지 둘은 서로를 갈구했으나 탐하지 않았다. 아니. 탐했으나 - 그렇지 않은 척했지. 영민은 어떨지 모르지만 여주는 좀 다른 상황에 놓여있었다. 제대로 된 친구란 건 영민뿐이던 여주에게 모든 친구는 다 서로를 원하고 입맞추며 만지고 또 …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이 관계가 정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은 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였으며 그걸 깨달았을지라도 여주는 묵언했다. 그 관계의 지향성은 어쩌면 여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민은 철저히 여주의 말 아래에, 발 아래에 놓여져있었으며 친구로서, 사랑했으므로.
고등학생이 되어 서로의 집에서 잠을 청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자취를 하게 된 영민의 집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주의 옷가지와 용품들이 널브러져 있었으며 심지어는 속옷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놀러와 누구의 것이냐는 물음에 영민은 작게 웃으며 누나 거야, 하는 게 다였지만. 둘은 좀 불건전한 친구였다. 여주와 영민의 첫키스는 아마 고등학교 1학년이 아니었을까. 반 친구들이 난리를 쳐대며 드라마 키스신을 봤을 때였을까, 아니면 말을 섞고 지냈던 지영이가 너 키스 해봤어? 하고 물었을 때였을까. 그 날 하굣길에 여주는 영민의 손목을 붙잡고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민아, 키스 해봤어?"
"응."
"나도 해볼래, 나도."
"해보고 싶어?"
"응 그러니까 - 우리 키스하자."
달빛이 그렇게 밝은 날은 아니었다. 보름날이 지난지는 언 일주일이 지났던 때라 달님은 홀쭉해지던 시기였으므로. 여주를 바래다주는 길은 좀 멀었고 늘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지나가는 걸 좋아하는 여주 탓에 장소 또한 사람이 드문 골목이었을 거다. 뭘 알고나 말하는 건지. 자신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조용하고 차분한 투로 키스를 하자고 하는 여주를 보면. 아, 영민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헛웃음을 친 영민이 표정을 굳혔다.
"장난치는 거야?"
"넌, 내가 장난치는 애로 보이니."
입을 맞추게 된 건 여주의 두 손이 영민의 뺨을 어루만졌을 때였다. 고래가 헤엄치던 파도가 일렁여 영민을 단숨에 잡아먹었다. 숨을 쉬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건 얼마든지 상관없는 일이었다. 숨을 쉬지 못한다면 공기방울을 쓰면 되는 일이었고 아가미를 만들면 되는 일이었다. 영민은 늘 그렇게 여주가 자신을 멍청한 눈으로 집어삼킬 때 헤어나갈 방안을 만들곤 했는데. 이날부로 둘의 사이에 더이상 출구란 없었다.
영민이 여주의 입에 입을 맞추고 뒷목을 감싸안는다. 떨리는 여주의 눈꺼풀은 차츰차츰 가라앉았지만 손길은 애석하게도 예민한 편이었다. 영민의 뺨을 잡고있던 두 손은 시체마냥 떨어졌고 간신히 허리춤의 셔츠를 잡았다. 영민이 숨을 쉬기 힘들게 할 때마다 손가락이 움찔거렸고 영민이 고개를 틀었을 땐 손이 새하얘질 만큼 셔츠를 꽉 잡았더랬다.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손길에 키스를하던 영민은 간간하게 바람빠진 웃음소릴 내었고 때마다 여주는 영민의 눈을 마주했다. 그래, 영민은 눈을 감지 않았다. 여주를 보기 위해서. 그 순간에 그런 매너는 필요하지 않았기에.
"영민아, 아- 영민아,"
"응."
"너무 좋아."
"… 뭐가."
"내일도 키스해줘. 내가 하고싶을 때마다 하자."
미쳤구나, 정말 미쳤구나 싶었다.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웃던 영민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곤 여주의 머리카락을 빗어내린다. 그럼 여주는 뭣도 모르면서 영민에게 입을 맞추고, 혀를 움직이는 건 영민이 될 거다. 고개를 트는 것도. 중간중간 멈춰주는 것도. 치열을 훑어내려 여주의 움찔이는 손을 느끼는 것도 영민이 될 거다. 주도권은 영민에게로 옮겨지고 버거워하는 여주를 벽에 기대게 하여 얼굴에 입술을 댔다가. 다시 키스를. 그럼 그제야 여주는 영민의 허리께를 둘러안는다. 한쪽 손으로는 무의식적으로 허리를 간질이고. 둘은 진득한 키스를 그렇게 했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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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핫 안녕하세요 이번 글은 회차라기보다는 오래 기다려주신 여러분께 작은 선물 같은 겁니다
짤막하게나마 글을 올려야 할 것 같았어요
다시 말하지만 미열은 콜멘과 암호닉을 같이 쓰지않기 때문에 콜멘에서 암호닉을 신청하셔도 미열 암호닉 명단에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그 점 생각해주시고 암호닉을 신청...하시든지 마시든지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