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15
우리 회사는 웬만큼 알아주는 필기구 회사이다. 그 중 우리 부서는 필기구 디자인팀이다. 그래서 2주에 한 번씩 요즘 필기구들은 어떤 디자인으로 나오나 여러 팬시점을 돌아다니면서 시장 조사를 한다. 근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이 날은 어느 누구도 먼저 시장 조사를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그 이유는 뽑힌 두 사람을 시장 조사에 이어 야근을 덤으로 시키겠다는 정 과장님의 올바르지 못한 생각이기때문이다. 하.. 누가 걸릴까. 심장떨리는 지금 이순간에도 입을 쉬지않고 놀리는 이재환씨.
"와! 이게 말로만 듣던 사다리 복불복??? 진짜 기대된다! 어서 시작해요, 차 선배!"
"자, 오늘은 재환씨도 처음 껴서 하는거네? 처음 걸렸어도 야근은 꼭 해야하는 거 알지? 그럼 시작한다?"
A4용지에 얽히고 설킨 줄을 눈으로 따라가는 정 과장님, 학연선배, 원식선배, 나 그리고 이재환씨. 그리고 보너스라도 받은 듯 신나하는 네 사람. 물론 나를 제외하고..
"재환씨는 걸렸는데, 왜 이렇게 좋아해요?"
원식선배는 자기들과 같이 신나하는 이재환씨가 이해안된다는 얼굴로 물어보았다.
"첫 외근이잖아요! 아 설레! 외근 한번 해보는게 제 사회 생활 로망이에요!"
로망은 얼어죽을. 아직 사회 초짜라 외근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나.
"오모오모. 별빛씨! 또 걸렸네? 별빛씨! 오늘도 고생해!"
결과 발표 나자마자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멍을 때리고 있는 나에게 어깨를 쳐주며 힘내라는 말을 해주고 가는 학연선배, 원식선배, 그리고
"오늘도 걸렸네. 안 걸리는 날이 없어. 하여튼."
하면서 내 머리를 한번 쓱 쓰담아주고 가는 정 과장님. 정 과장님의 예상치 못한 손길에 놀란 나는 정 과장님에게 눈을 돌렸는데,
"별빛선배! 우리 이제 나갈까요? 자! 갑시다! 얼른!"
내 코 앞에 있는 이재환씨. 뭐가 그리 신난지 어서 나가자며 내 가방, 장갑, 핸드폰을 손수 챙겨주고는 내 등을 떠밀며 부서실을 나갔다.
"저희 다녀오겠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역시 이재환씨의 입을 쉴 새가 없었다.
"우리 걸어갈까요? 차 타고갈까? 버스? 별빛선배는 어때요? 선배가 원하는 대로 해요!"
"차 있어요?"
걸어가기도 귀찮고, 마침 그 날이였던 나는 기분도 우중충하고, 허리도 아픈 탓에 차가 있냐고 물어봤다.
"남자라면 당연히 있죠! 제가 모시겠습니다. ○별빛씨."
하고 윙크를 해주는데, 눈에 벌레들어간줄. 그래도 차까지 에스코트 해주는 이재환씨를 보면서 뭔가 대우 받는 느낌이였다. 왠지 모르게 흐뭇했다. 차 문까지 열어주고, 안전벨트까지 직접 해주고 낯선 남자의 매너에 나 혼자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왜 이러지. 그 날이라 그런가. 차를 몰고 우선 유명 마트를 찾아갔다. 차에서 내리고 팬시점이 있는 3층을 가기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우와! 여자랑 마트 온게 얼마 만이야. 이러니까 꼭 부부"
"그런 얘기 할거면 입을 다무는게 나을 듯 싶네요."
하고 씽긋 웃어주니, 뭐가 좋다고 헤헤 웃는가 싶더니 나에게 어깨동무를 한다.
"뭐에요? 이거 내려놓죠?"
내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얘기를 하니까, 내 미간에 있는 주름을 손으로 꾹 누르더니,
"쓰읍, 여자가 인상 쓰면 못 써요. 갑시다."
분명 팬시점으로 향하고 있던 내 발은 어느새 이재환씨 때문에 딴 길로 새고있다. 도착한 곳을 보니 아기 용품점?
"와.. 진짜 귀엽다. 그쵸?"
이재환씨는 애기 신발을 이리 저리 만지면서, 나에게 묻고 있다. 에휴. 어차피 남는게 시간이니까, 나도 구경이나 해야지.
"그러게요. 귀엽다."
"어머. 신혼부부이신가 봐요? 너무 잘 어울린다."
예상치 못한 아기 용품점 점장 아주머니의 말씀이였다. 나는 바로 부정할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렇죠?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우리 애기 신발 좀 보려고 왔어요."
하면서 날 보고 씩 웃더니, 잠시 풀렀던 어깨동무를 다시 하고선 손에 힘을 준다. 망할 이재환. 설레게 하면 어쩌자는 거야.
댓글 많이만ㅇ히 달아줘서 고마워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