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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오빠는 무슨 일 해?”
“말하면 알아?”
“이런 데서 일한다고 나 무시해?”
“아아... 그건 아니지. 아마 너도 들으면 깜짝 놀랄 걸.”
검게 칠해진 속눈썹이 내려앉은 긴 눈이 나를 샅샅이 훑었다. 세 살 배기 어린 애도 알아챌 법한 노골적임이었다. 은근한 시선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붙어 앉은 여자에게 속삭였다. 분을 칠해 창백해진 낯에 주홍색 전등빛이 어렸다.
“나는 거짓말을 해. 생각보다 수입이 짭짤한 일이지. 그래서 돈도 많고 여자도 많아. 거짓말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오빠는 말을 이상하게 하더라. 어린 애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어린 애 취급 맞는데. 너같이 온실 속에서 하늘하늘 자란 애는 알면 다치는 얘기라서 그래.”
문득 독한 염색제의 냄새가 비강을 파고들었다. 어릴 때 멋도 모르고 흡입하던 본드와 비슷한 냄새였다. 발끝을 곧게 세운 하이얀 발톱을 살살 쓸던 브러쉬를 느리게 떼어내자, 빨갛고 진득한 액체가 뭉근하게 끌려 올라왔다. 감각적이네. 무엇이 감각적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자 발톱에 페디큐어를 발라 주면서 페티쉬를 느낀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홍색 불빛에 반사되어 더 새빨갛게 보이는 반고체 상태의 물질이 마음에 들 뿐이었다.
하룻밤 상대에게까지 내 사정을 꼬박꼬박 보고할 필요는 없었기에 말을 돌리고 괜히 하던 짓에 집중하는 척을 했지만, 여자는 제 얼굴이 아닌 발끝에 시선을 고정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번엔 빨간 것 말고, 새까만 색으로 칠해진 손톱이 다가와 턱을 뭉근하게 쓸어 올렸다.
“아. 이런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자기 일이라는 그 거짓말이 뭔데? 혹시 방금 말도 거짓말이야?”
“아니. 지금은 일하는 거 아니니까 거짓말도 안 하지.”
헤에, 진짜? 여자의 멍하게 풀어진 얼굴에 웃음기가 어렸다. 그게 좋은가. 까만 손톱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 얼굴에 못 이기는 척 시선을 주었다가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늘어지는 정적 사이로 그와 꼭 같이 늘어진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지분거렸다.
“나는 오빠가 거짓말 하는 게 싫어.”
“안 한다니까.”
“지금도 거짓말이지. 눈칫밥만 십 년이야, 내가. 모를 것 같지?”
“그래…? 그럼 내가 숨기는 게 뭔데?”
“나랑 일하고 있잖아, 지금.”
눈칫밥이 십 년이라더니, 눈치가 있긴 있네. 방에 들어온 후로 한 번도 똑바로 마주하지 않았던 여자의 눈을 곧장 마주했다. 화려한 눈화장 위로 눈웃음을 치는 여자의 시선에는 장난기가 잔뜩 어려 있었다. 그럼 그렇지. 눈치를 채긴 무슨, 그냥 한 번 부려 본 객기가 분명했다.
“그래, 일하고 있지. 그럼 돈 좀 벌게 해 줘야 하나.”
내 말에 응하듯, 긴 손가락이 빨간 매니큐어 병을 뱀처럼 휘감아 가져갔다. 노골적인 시선을 쏟으며 내 무릎 위에 올리고 있던 다리를 올려 반대편 무릎 위로 꼬는 모습이 삼류 에로 영화처럼 시야에 가득 담겼다. 하는 짓도 참.
“귀엽네.”
“어머! 귀엽대. 오빠가 더 귀엽지만, 일단은 고마워.”
진부하다 못해 꼴 보기 싫을 정도로 흔해 빠진 동작들을 나열하는 여자에 장단을 맞춰 주며 허리에 팔을 감았다. 새빨간 입술을 겹쳐 오는 여자에게 거짓으로 점철된 시선을 주었다. 따뜻하고 여유롭게, 애정을 가득 붓는 것으로 착각하도록.
뱀의 것과 같이 차갑고 긴 혀를 얽으며 열기에 달뜬 눈동자와 마주한다. 검은 눈동자 위에는, 예의 장난스런 눈웃음이 거두어진 뒤였다.
너는 졌구나, 일을 하겠다고 했으면 그 말에 책임을 져야지.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부터가 내 거짓말의 시작이다. 네가 궁금해 했던 내 일의 시작.
너의 가식이 끝났을 때, 나의 진정성도 끝났다. 아까 네가 던졌던 어리숙한 상상은 얼추 맞아 떨어져. 나는 너와 함께 일을 할 것이니 말이야.
FAKER
- 문태일의 순간들 -
후리와, 이 곳에 발을 들인 것은 꽤 오래 전이었다. 물론 그 때야 순전히 하룻밤의 외로움을 달래려던 의도 뿐이었으니 지금과는 상황이 좀 달랐지만. 그 때 후리와를 관리하던 여자는 밑도 끝도 없이 어린 내게 손을 뻗었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 뿐인 내 어느 구석을 보고 접근했는지는 아직까지도 의문이었다. 내게는 부도 명예도 없었지만 여자는 돈이 넘치도록 많았고 더 이상의 돈벌이는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가진, 나와는 아주 정반대의 의도에 적당히 맞아 떨어지는 먹잇감일 뿐이었다.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 그 어린 날 이후로 나는 후리와에 발목을 묶인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를 대신할 아이들의 발목을 잡아대고 있었고.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불 붙인 대마초를 입술 새에 물고 멍하니 시간을 때우는 것만큼이나 나를 만족시키는 일은 없었다. 근 몇 주간을 내내 바쁘게 살아 왔으니 이 정도의 여유는 지당했다. 흰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리고 머리만 내어 놓았는데도 온몸이 달달 떨렸다. 오랜만에 부려 보는 여유라 그런가, 대마초도 내게 낯을 가리는 모양이었다.
지금 나는 벌거벗은 몸 위에 오로지 대마초 연기 하나만을 걸치고, 후리와의 중심에 위치한 가장 고급스러운 방의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손끝으로 어루만진 붉은 공단 시트의 감촉이 보드라워 연신 헛웃음이 났다. 별 이유 같지도 않은 이유로… 돈이 좋기는 한가 보다. 물끄러미 눈을 들어 바라본 천장에는 색색이 늘어진 비단과 함께 박제된 뱀과 사슴의 머리가 걸려 있었다.
그 여자도 참, 취향도 독특하지. 죽은 동물을 뭣하러 천장이며 벽에 진열해 두는지 모를 일이었다. 나를 처음으로 미미라고 부르던 여자였다. 이 골목의 숱한 죽음들 사이에 별다를 것 없이 끼어든 지 오래였지만 나를 나락으로 끌어내린 그 손길과 목소리는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증오였고, 그리고 애정이었다. 차가운 바닥을 긁으면 고작 한 오라기 정도 나올 법한 하찮은 감정이었다.
열아홉, 어리고 여렸던 나이의 나를 데려와 쾌락의 강에 빠뜨려 놓은 그녀는 그 날로부터 채 오 년을 채우지 못하고 제 독기에 부식되어 삭아내렸다.
그녀가 죽던 날 밤, 나는 악마를 보았고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방 안 가득 어지러이 펼쳐진 술병 사이에 몸을 웅크리고 굳은 여자는 해괴한 몰골로 목을 맨 채 나를 맞이했다. 신기하게도, 죽음이 완연한 얼굴의 한 가운데에 박힌 눈동자는 또렷이 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그 눈과 마주하고 곧바로 느낀 건, 아직 어렸던 내가 감당하기에 그보다 더한 충격은 다시 없을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별다를 것 없이 죽어버렸다고는 했지만, 그녀의 죽음은 내가 본 수많은 끝 중에도 극악이었다. 왜 그리도 괴상한 취미를 갖게 되었을까. 그녀는 앉은 채로 목을 맸다. 그러니까, 제 목에 감은 밧줄을 제 손으로 끌어당겼다는 말이었다. 의지력이 강한 여자인 것은 알았지만 이런 해괴망측한 일까지 해낼 줄은 미처 몰랐던 나는 시체처럼 뿌연 빛을 띄는 동공과 마주한 순간에도 그녀가 못된 장난을 치는 것이라고만 여겼다. 가까이 다가가 목에 거의 파고든 밧줄을 확인하고서야 울렁이는 속을 게우며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뛰쳐나왔던 과거가 아직도 선연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수많은 술병에는 하나같이 거대한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다. 지독하게도 도수가 높은 술이었다. 그녀가 매일 밤 내 목구멍으로 흘려 보내곤 했던. 내가 먹은 것이 뱀 술이었음을 깨닫고 나서, 나는 속을 게워내는 것을 다시는 멈출 수 없게 되었다.
그 때의 검은 방에도 어김없이 걸려 있던 사슴의 머리와 눈이 마주친 나는 오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정신이 혼미해짐을 피할 수 없다. 입이 바싹바싹 말라왔다.
하얀 이불을 사브작대는 어린 여자의 움직임에 곁눈을 주다가 독한 연기를 한 모금 더 빨아들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뱀을 닮은 여자였다. 지난 밤의 기억이 물밀 듯 밀려들어왔다. 눈빛이며 손길마저도 묘하게 그녀와 비슷한 여자였다. 이렇게 경계심 없이 나와 한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제외하고였지만.
연기가 휘돌아 나간 머릿속은 정신 없이 붕붕 떴지만 청각은 분명히 예민해지고 있었다. 소리가 났다. 사각대는 이불 소리는 아니었다. 고즈넉하게 창호지가 몇 겹씩 발라진 나무 문 밖에 누군가 있었다. 멍한 정신을 좇으려 고개를 휘휘 저었다. 문태일, 많이 유해졌구나. 아무리 익숙한 침실이라고 해도, 이런 곳에서 대마를 무는 게 아닌데.
빛이라고는 빨간 비단 커튼 너머로 투영되어 붉게 변한 햇빛이 전부인 이 침실과 달리 복도는 아직까지도 형형색색의 조명이 꺼지지 않은 채였다. 새벽 서너 시쯤 되었으려니, 한창 장사를 할 시간이긴 했다. 하얀 창호지 너머로 어렴풋이 붉은 빛이 비추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너머 문 앞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나를 잡아 죽이려고 찾아온 사람은 아닌 모양이었다. 얼핏 보아도 건장한 사내의 것과는 거리가 먼, 마른 등이었다. 나도 모르는 새 손가락에 감겨 있던 여자의 칠흑같이 검은 머리칼을 풀어내고 침대에 대강 올려 두었던 가운을 걸쳤다. 잠시간 빨아들이지 않고 입술 새에 물고만 있던 대마를 강하게 들이켰다.
“여기서 뭐 해?”
그림자의 주인은 어린 여자 아이였다. 열 일곱쯤 되었으려나. 기척 없이 문을 여는 것은 쉬웠다. 예민해빠진 약쟁이 꼬마들과 살면서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에는 도가 튼 지 오래였다. 긴 머리가 헝클어진 그 애는 척추가 전부 튀어나올 정도로 깡말라 있었다. 토끼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는 그 눈동자는 귀신을 보는 듯했다.
마치 그 때 어두운 방 속의 나와 같이 지당히 제 앞에 없어야 할 것을 보는 눈이었다.
“놀랐나? 미안. 여기서 일하니?”
“…아니요.”
“어. 말 할 줄 아네. 그럼 너도 이 쪽?”
“아니거든요.”
“아니긴. 멀쩡히 말하고 있으면서.”
“…….”
“여기서 일하는 것도 맞는 것 같고.”
내 말에 반항을 하듯 입을 꾹 닫은 아이는 좀처럼 다문 입을 열지 않았다.
산발이 된 머리 하며, 비쳐 보이는 팔뚝에는 새빨간 손자국이 가득했다. 언뜻 보아도 눈에 선한 광경에 절로 혀를 찬 나는 그 애의 맞은편에 등을 붙이는 수밖에 없었다. 아까까지는 저 침실 안에서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던 여자가 최선의 타깃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린 모양이었다. 나와 함께할 사람은 내 눈 앞에서 새빨간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이 아이가 될 것이었다.
“너 여기서 일한 지 얼마 안 됐구나.”
“…….”
“여기선 아무한테나 막 목소리 들려주면 안 돼.”
“…….”
“그 여자는 말 할 수 있는 사람한테는 잡일 안 시키는데. 몰랐어?”
“…….”
“여기서 마음대로 말해도 되는 건 나 같은 손님들이랑, 그 쪽 언니들 뿐이야. 저어기 방 안에서 쿨쿨 자고 있는 저 언니 같은.”
“…….”
“근데 넌 아니니까 조심해야지. 말을 하고 다니니까 그렇게 다치는 거 아니야.”
“손님 아니구나.”
“나? 누가 봐도 손님 아닌가? 여기서 일하는 남자는 없는 걸로 아는데.”
“그 옛날 얘기를 한 두 달 다녀가는 손님이 어떻게 알아요.”
“뭐야. 꼬마 생각보다 오래 있었나 보네. 용케 멀쩡히 버틴 것도 신기하고…. 너 여기서 진정제 맞는 거 싫지.”
투명한 비닐 같이 하늘거리는 소맷자락을 걷어낸 팔뚝에는 어김없이 수도 없는 주사 자국과 멍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다. 갑작스레 손을 뻗어 팔뚝을 어루만지는 내 손길에 화들짝 놀라 팔을 뿌리쳐 내는 아이에게 최대한으로 미안한 얼굴을 지어 보였다.
“아. 혹시 보여주기 싫은가?”
“당연한 거 아니에요? 막 팔 만지고 이러는 것도 싫어요. 아저씨는 누구신데 여기 계신데요.”
더럽게도 당찬 꼬마였다. 할 말은 다 하는구나. 어려 보이는데 이런 무서운 곳에서 어떻게 잘도 버텼다 했다.
“몸에 막 손 댄 건 미안하지만… 너야말로 왜 여기 있는데? 이 복도는 군일하는 애들이 막 들어오면 안 되는 걸로 아는데. 혹시 방에 불이 꺼져 있다고 손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제야 당황한 듯 입술을 감쳐 무는 아이의 낯빛이 새파래졌다. 윗니에 잔뜩 짓눌린 입술에 하얗게 핏기가 가셨다. 아직 애는 애네. 이 정도 다그치는 걸로도 충분했다. 궁지에 몰린 토끼 같은 얼굴은 아주 딱 좋은 먹잇감이었다.
좁은 복도의 양 쪽 벽에 기대어 서로를 마주보고 앉은 그 애와 나의 거리는 간단히 눈빛과 목소리만을 가지고도 겁을 먹게 하기에 충분했다. 피 나겠다. 천천히 손을 뻗어 검지 손가락 끝으로 새하얘진 입술을 살살 풀어냈다. 어젯밤 뱀을 닮은 여자에게 지었던 것처럼 다정하게 일렁이는 눈을 하고 그 애를 달랬다.
“안 되겠네. 그렇게 이 복도에 들어와 보고 싶었으면 그 여자한테 말을 해 보지 그랬어. 이 쪽 일로 넘어오면 복도에 들어와도, 마음대로 말을 하고 다녀도 아무도 안 막을 텐데.”
“그건 싫어요. 그리고 그 여자는… 아니에요. 어쨌든 저는 싫어요.”
경기를 하듯 벽 끝까지 물러나 몸을 붙인 아이가 나를 잔뜩 경계한다. 맞아, 그 여자는 이제 없지. 군일하는 애들이 더 이상 벙어리가 아니란 것도 안다.
여자의 이야기는, 아이가 '이 쪽 일'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다 벼랑 끝까지 밀려난 게 뻔해서, 일부러 걸려 들라고 던져 본 말이었다.
“알아. 그러니까 여기서 나가자. 이런 복도에 다시는 발 들이지 말고. 근데 이름이 뭐야?”
“제가 그걸 왜 말해요.”
“싫으면 계속 여기서 살든가.”
“……김여주요.”
“그래. 저 언니가 깨어나면 가서 말해. 너를 뒷문으로 내보내 주지 않으면 해독제는 주지 않겠다고, 어젯밤에 나와 함께 마신 술은 뱀 술이라고. 이번엔 말해도 돼.”
생생한 기억이었다. 고작 반 년도 지나지 않은 최근이었다. 김여주가 어쩌다 다시 후리와에 기어들어가게 되었는가, 왜 하찮은 동네 개들과도 같은 우리에게 보내졌는가 따위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반 년 전, 대마에 거하게 취해 선심 쓰듯 던졌던 내 호의는 새벽의 감성 팔이보다 못한 것이었고 그 새벽의 샛별보다도 덧없는 찰나의 불빛 같은 것이었다. 대마에 취한 내가 빈틈을 남기고 오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까맣게 잊고 살던, 내 손으로 놓아주었던 먹잇감이 도로 굴러들어온 것일 뿐이었다. 소리 죽여 귓가에 속삭이던 김용식의 불쾌한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 년이 고집이 어찌나 센지, 진정제를 백 방을 놓아도 바락바락 대드는 년이야. 손님 방에 집어넣으려고 하면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약 맞고 정신 빠져 있을 때에도 할퀴고 꼬집고, 아주 지랄 발광을 하데. 너희들이 돌려 먹던 뽕을 맞히던 알아서 정신상태 좀 뜯어고쳐 줘. 이 개 같은 년, 손님들을 물게 할 순 없으니까.’
‘그래서 지금, 나보고 대신 물리라는 거네.’
‘값 쳐 줄게. 몇 달만 고생 좀 해. 까놓고 말해서 니들한테도 나쁠 건 없잖아. 이런 어린 여자애를 어디서 구해. 마음대로 갖고 놀면서 저 지랄 맞은 성질머리만 좀 죽여 놓으면 된다고. 정신머리도 적당히 나가게 해 놓으면 더 좋고, 반 병신을 만들어도 되고.’
미친 놈. 말을 섞기도 불쾌해 대답 없이 김여주에게 손짓을 했던 내게 징그럽게도 누런 이를 내보이며 웃은 김용식은, 새파랗게 어린 여자애를 정액받이로 넘겨 놓고 가는 주제에 누이 좋고 매부 좋을 일을 한 것마냥 생색을 냈었다.
지랄 맞은 공기가 텁텁하게 들러붙는 여름의 시작이었다. 멀찌감치 계단 끝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여자애가 김용식의 손에 끌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옮겨져 왔을 때, 그 애와 눈을 마주친 나는 기억 저편에 가라앉아 있던 반 년 전의 새벽을 똑똑히 기억해 냈다. 그리고 김여주에게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척,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김여주는 어리석을만치도 순수하게 나의 장단에 맞추었다. 스물 셋이라고 나이를 속이면서, 나를 테스트했다.
‘아무리 봐도 열 여덟 정도밖에는 안 돼 보이는데, 이미 용식이 형한테 다 들었어, 꼬마야. 여기서까지 장난칠 생각은 하지 마라.’
내 대답에 눈을 빤히 마주쳐 오던 여자애는 쓰디쓴 비소를 지으며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 년 전 새벽, 색색의 초롱 불빛 아래서 본 그 애의 모습이 선연히 떠올랐다. 늘어지는 몸을 바로 세우려 이를 악 물던 것도, 뿌옇게 흐려지는 시야 탓에 눈가를 찌푸리던 것도 똑똑히 보았다.
그럼 그렇지, 이 애는 그 날 새벽에도 모르핀을 잔뜩 맞고 도망쳤던 게 분명했다. 그 멍한 정신에 어두운 시야로 무엇을 제대로 보았을 리 없었다. 언뜻 내 얼굴을 기억해 냈다고 해도 내가 시치미 떼면 그만이었다. 그 날의 나는 그 애에게 한 줄기 구원이었을지도 몰랐다. 물론 썩은 동아줄을 내려주는 일은 맨 정신의 나였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애를 도와주려다 나까지 이 꼴이 났으니, 지금 비가 다 들이치는 지하실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김여주의 시선을 무시할 이유는 충분했다.
호스를 타고 흘러나온 물이 그릇을 휘감고 하수구로 빨려 내려갔다. 물도 더럽게도 안 나오네. 밖에 나가서 비에 씻는 게 낫겠다. 어제 먹고 놔둔 중국집 그릇을 씻어내 보려 애쓰던 이동혁이 쥐고 있던 호스를 바닥에 집어 던졌다.
“성질머리 하고는… 이리 줘 봐. 잘 봐라, 동혁아.”
이른 아침 동이 트자마자 기어들어와 잔뜩 취한 발음으로 모두를 깨운 정재현이었다. 눈치는 빨라서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지겹게도 멀끔한 얼굴은 대마를 문 채였다. 정재현은 중독이랄 만큼 매일같이 대마를 푹푹 빨아 대곤 했다. 나라고 무어라 잔소리 할 형편은 아니었지만 대마를 물었을 때의 정재현은 정말이지 꼴 보기 싫을 정도였다.
대마가 제일 간지 난다는 이유로 줄창 피우는 것이 분명했는데, 막상 피울 때면 세상 추태가 따로 없다는 게 문제였다. 백 번을 피워도 이성이 흐려질 뿐인 나와는 달리 정재현은 한 밤중에 시끄럽게 웃어대지를 않나, 여기저기 사람을 두드리고 다니질 않나, 난리를 쳐 댔다. 온갖 비관적인 척은 다 하면서 가라앉아 있던 평소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밥 때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리고 겨우 진정된 그는 어젯 밤의 추태에 대해서는 입을 싹 씻으며 저와 한 몸처럼 때깔 좋은 수트를 차려 입고 있었다.
호스를 받아 든 정재현의 얄상한 손이 둥근 고무의 끄트머리를 짓뭉갰다. 보이냐? 기세가 등등해서는 보조개를 푹 패며 웃던 정재현이 납작하게 눌린 호스를 타고 물총처럼 쏘아져 나오는 물줄기를 마구 흔들었다. 이태용한테 배운 거로구만. 이태용은 살림에 도가 튼 애였다.
평소에 일이라고는 잘 돕지도 않는 정재현이 그나마 호스 누르는 법이라도 알고 있던 건 저렇게, 애초에 물놀이를 하려고 마음 먹고 기억해둔 것이 분명했다. 애 새끼도 아니고… 다 큰 게 잘 한다.
이동혁은 신났다고 제 얼굴을 가리느라 난리였다. 얼굴을 가리면 뭐 해, 옷이 다 젖는데. 참, 귀여운 놈들이었다. 그 장면을 의미 없이 바라보는 나를 또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 따가웠다.
참다 못해 애써 무시하던 시선을 마주했다.
“왜?”
소리 없이 입술만 둥글게 말았다 폈다. 내가 먼저 물어올 줄은 몰랐는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재빨리 이동혁과 정재현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곧 다시 나를 쳐다본다. 순순히 다시 나를 향하는 걸 보면, 안 보고 있었던 척 해 봤자 이미 다 들켰다는 건 아는 모양이었다.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그 애를 보고 있다가 도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두 바보에게 눈길을 주었다.
“감기 걸리겠다. 동혁이는 옷도 다 젖었네, 벗어서 좀 말려.”
쯧, 혀를 차며 다가가 이동혁의 반팔 티를 벗겨내자 마른 몸이 드러났다. 목이 약간 늘어난 흰 반팔 티 사이로, 곁눈질로 김여주. 쪽을 살피는 얼굴이 보였다
“쟤한테 관심 있냐. 하기야, 너는 한창 피가 끓을 때니까 저 귀신 같은 긴 머리만 봐도 설레고 그럴 수도 있겠다.”
“무슨! 이 형이 뭐라는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 쟤가 괜히 듣고 오해하면!”
시뻘개진 얼굴로 홱 돌아 소리치는 얼굴이 우스웠다.
“쉿. 알았어 알았어. 진짜 다 들리겠다. 난 너한테만 들리게 조용히 말했는데.”
빨개진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 잡고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동혁이, 이럴 때가 제일 귀여워. 내가 네 코코볼 같은 볼을 문지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김여주에게는 마수가 뻗치고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이동혁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촉촉해진 머리칼을 털어내며 구석으로 다가간 정재현이 김여주가 앉아 있던 고물 소파의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그새 좀 말랐네.”
“일주일도 안 됐잖아요.”
“그러니까. 누가 고혈을 빨아 먹나, 애들이 괴롭혀?”
“아뇨. 출근 안 하세요?”
“나 출근하면 너 맞는 거 아니야? 그런 거면 지금 딱 말해. 여기서 내가 제일 세.”
장난기에 푹 절여진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기지도 않은 말들을 늘어놓는 뻔한 수작질에도 워낙 잘생긴 얼굴 탓인지 한참 낯 가릴 나이의 여자애는 얼굴을 붉혔다. 뭐, 어쩌면 지금 저 애에겐 그 수작질의 타깃이 되었다는 게 가장 설레는 일일지도 모르지.
“아, 아니에요.”
“아, 아니야? 뭐가 아닌데. 내가 제일 센 게? 그건 진짠데.”
“그거 말고요.”
갑작스레 코앞에 들이밀어진 얼굴에 긴장해서 말을 더듬는 어린애의 말끝을 똑같이 따라 하며 장난을 치는 정재현의 눈꼬리가 완전히 접혔다. 순진하게 다 말려드는게 귀엽기는 한데, 정재현도 단순히 귀여워서 장난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팔걸이에 걸터앉은 채로 상체를 뒤로 반쯤 비틀어 한 손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던 정재현이 김여주의 하얀 볼을 다른 손으로 톡톡 치며 웃다가 도톰한 입술을 쭉 내밀었다. 무게중심이 완전히 쏠려 있었다. 김여주의 눈이 크게 뜨임과 동시에 허리를 튕겨 그 애에게서 떨어진 정재현이 장난이야, 하면서 윙크하는 게 보였다.
저건 그냥 갖고 노는 게 아닌데. 정재현이 누구를 마음 먹고 꼬시는 건 오랜만이었다. 그 새로운 상대가 채 다 자라지도 못한 어린 여자애라니. 막강한 연적의 등장에도 이민형이랑 두 번째 물장난이나 치고 있는 이동혁에게 넌지시 중얼거렸다.
“너 그러다 형들한테 선수 뺏기겠다, 곰돌아.”
그 형들이 누구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별 수 없었다. 더럽혀 놓아야 하는 여자애 하나 때문에, 외려 더러웠던 우리의 모든 흔적이 새하얗게 뒤덮여 가고 있었다. 내가 해 왔던 추악스런 세탁질과는 격이 다른 진짜 세탁이고 표백이었다. 그 표백제에 빠져 뒹구는 게 우리에게 생이 될지 독이 될지도 모르면서 발을 들였다.
김여주의 얼굴을 잊은 척 순순히 데려왔던 건 단순한 돈 값 때문이 아니라 그 애를 사라진 여자의 대타로 만들어 버리려는 심보였다. 하지만 이제 그럴 수도 없게 된 것 같았다.
내 이름을 팔아 기껏 빼돌려 놓았던 애를 다시 그 곳에 팔아 넘기는 건 제 자리를 찾는 일일 뿐이라고, 양심에 찔릴 일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는 그 때의 열 아홉 살짜리 병신인 모양이었다. 오 년 전의 독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약해 빠진 들짐승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어쩌면 반 년 전 그 애의 얼굴을 처음 본 순간부터 이미 덫에 걸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와 똑같이 후리와의 질척거리고 시커먼 늪에 발을 묶인 아이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내가 대신해 그 늪에 침식되는 방법만이 남아 있었다.
항상 그렇듯 늪은 한 사람 몫의 몸뚱이를 원할 뿐이다.
살아 숨쉬는 모든 순간마다 거짓으로 점철된 시간을 만들어냈던 혀의 죗값이 다시 내게로 되돌아오는지도 몰랐다. 이제 남은 건, 지난 겨울 그 애를 빼내는 대신 나를 물밀듯이 파고들어온 뱀 독을 숨기는 일 뿐이었다.
눅눅한 공기가 폐를 가득 채웠다. 지겹게도 나를 따라오는 불쾌한 숨은 더 들이키고 싶지 않았다. 숨을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