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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 어느 날 나타났다 01 | 인스티즈  

   

   

   

   

   

   

   

" ...야, 용준형! "   

   

" ....왜.. "   

   

   

요섭이 준형의 이름을 낮춰 불렀다. 잠긴 목소리로 대답을 한 준형이 마른세루를 했다. 때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였다. 공고는 다니지 말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할 수없이 바짝 성적을 올려 보통 수준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됬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싶지 않아 어머니께는 성적이 어쩌다 못나왔다며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려 했건만 성적이 예상외로 조금 잘 나온 바람이다.    

   

옆자리인 요섭이 소근소근 준형을 불렀다. 사각사각하고 연필이 쓰이는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 간간히 의자 끄는 소리에 파묻혀 세상 모르고 자던 준형이 요섭의 부추김에 못 이겨 끌려나왔다. 선생님이 안 계신 틈을 타 밖으로 나온 요섭이 이제야 살 것 같다며 기지개를 켰다. 아, 요섭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만난 친군데, 친화력이 너무 좋은 바람에 얼떨결에 친구가 되버렸다. 지금은 좋은 친구지만, 뭐 어쨌든.   

   

   

" 어차피 너도 야자 안 할 거잖아. 놀이터에서 뻐기다가자. "   

   

" 교문을 어떻게 넘어. "   

   

   

졸린 눈으로 주머니에 손을 꽂아 놓은 준형이 불평하듯이 요섭에게 칭얼댔다. 요섭은 걱정말라며 미리 확보해놓은 퇴로가 있다고 했다. 전쟁도 아니고 뭔 퇴로야, 하고 단맛이 덜 가신 입을 다신 준형이 툴툴대며 요섭을 따랐다.   

   

   

" 난 키가 작아서 그렇고, 넌 들어 갈 수 있겠어? "   

   

개구멍으로 빠지려다만 요섭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준형이 몰라, 하고 시원찮게 대답했다. 나 먼저 간다, 벽 넘던지 알아서 와. 하고 선 작은 체구로 쏙 빠진 요섭이 준형앞을 가로막은 담벼락을 툭툭쳤다.   

   

   

" 넘어올... 소리 낮춰...! "   

   

   

바스락 바스락, 나뭇잎을 밟는 소리가 세줄 슬리퍼를 질질 끄는 소리와 겹쳐 들렸다. 곧 막대기가 땅에 질질 끌리는 소리도 들렸다. 여러번 야자 탈출을 시도한 덕에 이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챈 요섭이 다급하게 준형을 불렀다.    

   

   

" 야, 빨리 기어와! "   

   

" ...뭐? "   

   

   

귀를 후비적대며 사방을 둘러보던 준형이 눈을 크게 떴다. 키도 작은게 무슨 지보고 기어오래. 코웃음을 치던 준형이 코너를 도는 야자 감독 선생님의 대머리를 보고는 얼른 구멍으로 뛰었다.   

   

   

" ...야! 양요섭! 도와줘!! "   

   

" 손잡아. 당긴다. 하나, 둘...! "   

   

   

낑겼던 준형의 몸이 퍽, 하고 시멘트 바닥위에 나동그라 졌다. 요섭이 얼른 일어나, 가자며 까진 손을 보고있는 준형을 재촉했다.   

   

   

" 거기 누구야! 잡히면 가만 안둔다이! "   

   

   

대머리를 한 야자 감독 선생님이 헐레벌떡 뛰어와 요섭과 준형이 빠져나간 구멍을 허리 숙여 살펴보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마음속으로 선생님! 죄송해요! 를 외치는 요섭을 뒤로 학교가 있었다.   

   

   

" ...헉..헉.. 야, 조금...만...쉬었다가자...헉... "   

   

" ..흐으...숨차....그래도 꽤 멀리 왔으니... 괜찮을거야...흐으.. "   

   

   

준형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달리던 요섭을 붙잡고 무릎에 손을 올려 헉헉대었다. 요섭도 얼굴을 조금 찡그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    

   

   

" ..어디 앉아있을데 없냐? "   

   

   

준형이 가쁜 숨을 진정 시키고 일어섰다. 여전히 숨이 차는지 요섭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선 말했다.   

   

   

" ..저기, 구멍가게 앞에, 가자. "   

   

   

요섭이 앞장서고 준형이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는 얼핏봐도 작은 노점상의 옆 벤치에 요섭과 준형이 걸터앉았다.   

   

   

" 야, 한개 필래? "   

   

" ...어? 난 생각 없는데. "   

   

" 아이, 같이 하자. "   

   

   

요섭이 생각없다는 준형을 부추겼다. 하는 수 없이 알았다며 요섭이 건네주기를 기다렸다. 잠시 안 주머니를 뒤적이던 요섭이 아, 하고 탄식을 했다.   

   

   

" 야, 구멍 빠져나오면서 흘렸나봐. "   

   

" 아 씨, 그럼 여기서 살꺼냐? "   

   

" 기다려봐, 나 지금 삼천원 있거든. 깎아달라 하면 되. "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잠시 기다리라는 요섭이 주머니를 뒤적였다. 꼬깃꼬깃한 삼천원을 꺼내든 요섭이 노점상 주인을 불렀다.   

   

   

" 할아버지~ "   

   

" 어, 그래그래.. 뭐 줄까. "   

   

   

준형이 벤치에서 일어나 요섭의 옆에 붙었다. 하, 따뜻해. 요섭이 노곤노곤하다는 표정을 짓는 준형을 보고 피식했다.   

   

   

" 말보루 하나 주세요. "   

   

" 뭐, 말보리? "   

   

   

노점상 주인 할아버지가 되물었다. 그러자 요섭이 귀를 여는 할아버지의 귀에 찰싹 붙어,   

   

   

" 말.보.루.요! "   

   

했다.   

   

" 학생 아녀? "   

   

" 에이, 괜찮아요. 그러지말구, 하나 주세요. "   

   

" 삼천원. "   

   

" 아저씨, 좀 비싸게 받네요. "   

   

" ....삼천원 맞어! "   

   

   

재수없게, 틱 내뱉은 말을 뒤로 요섭이 담뱃갑을 확 낚아챘다. 아저씨, 받아요. 어차피 학생들에게도 담배를 파는 곳은 극히 드물어 속는셈치고 그냥 샀다.    

   

   

" 자, 물어. "   

   

   

멀뚱멀뚱 요섭을 보는 준형에게 요섭이 뭐냐는 표정을 짓고선 담배를 하나 꺼내들어 굳게 닫은 준형의 입술 사이로 꾸겨넣었다.   

   

   

" 대. "   

   

   

화르륵, 불이 타올랐다. 살며시 담배의 끝을 대자 알싸한 연기가 퍼졌다. 요섭도 준형에게 하나를 주곤 제 껏도 입에물었다. 후우, 한 쪽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요섭이 말 없이 담배만 뻑뻑 펴댔다. 준형은 소신이 있어 자신이 공부를 하지 않고 놀아도 담배를 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발랑까진 친구를 둔 덕에 흐름을 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콜록대면서 담배를 폈다.   

   

   

" .. 뭘 봐요? "   

   

   

요섭이 하늘을 보다말고 고개를 휙 돌렸다. 왠 성인 남자가 요섭의 뒤에 가만히 서있었다.   

   

   

" 아저씨, 불만있어요? "   

   

   

씨발 진짜 재수없네, 요섭이 낮게 욕을 읊조렸다.    

   

" 학생이, 담배피면 안되. "   

   

" 아저씨 나 알아요? 왠 참견이야. 확 씨. "   

   

   

까칠하다 못해 쌩 양아치 짓을 하는 걸 보던 준형이 야야, 그만해. 하고 말렸다.    

   

   

" 이 동네 경찰이거든? 쪼그만게. "   

   

" ...씨, 튀어! "   

   

   

요섭이 담뱃불을 지져 끄다말고 혼자 내달렸다. 뭐해 빨리튀어! 메아리 치는 요섭의 외침을 듣는 둥 마는 둥 준형이 자신이 경찰이라는 한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 친구따라 강남가냐? 하기 싫음 이리 내. "   

   

   

경찰이라는 남자가 준형이 이로 꽉 물고있던 담배를 비틀어 끊어냈다. 뭐야 아저씨,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은 준형이 한발 짝 뒤로 물렀다.    

   

   

" 아저씨, 경찰 맞아요? 왜 안 잡아. "   

   

" 너 같은 애들 하루 이틀보냐? 얼른 학교 다시 들어가라. "   

   

" ..어, 어떻게 알아요? "   

   

" 뭘 어떻게 알아, 이 전방 몇미터만 순찰해도 니 놈 교복이 어디 학교꺼고 딴 놈 교복이 어디 학교꺼인지도 다 알아, 학교마다 야자하는 시간도.. "   

   

" 아 그, 그만해요! 알았으니까 제발 가요 아저씨. "   

   

" 연설 들을래, 야자시간에 밖에 나와서 담배필래. "   

   

" 아저씨, 멍청이에요? 당연히 밖에 나오지. 아저씨 눈에만 안 걸리면 되잖아. "   

   

" 아, 아니..! "   

   

   

아차, 말을 잘못했네 싶은 두준이 급한 표정으로 뛰어가려던 준형을 붙잡았다. 아저씨, 이거 놔아아! 요섭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공부하러 가니까 이거 놔라구요오!!   

   

   

준형이 발악할수록 두준이 더욱 준형의 팔을 움켜쥐었다.   

   

   

" 이름이 뭐냐. "   

   

" 알거 없어. 아저씨는 몇살인데? "   

   

" 스물둘. "   

   

" 아저씨, 나 일년 늦게 들어왔거든? 원래 나 합법적으로는 펴도 되. 신경 꺼. "   

   

" 야, 이름 뭐냐고! "   

   

   

말을 마친 준형이 앞머리를 휘날리며 헐레벌떡 뛰었다. 헥헥, 뛰다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신 그 머저리같은 경찰새끼 안 봐야지, 했다.   

   

   

" 야, 빨리 와! "   

   

" 아, 미안! "   

   

   

요섭이 담벼락 옆에서 숨 죽여 소리쳤다. 교문앞에서 학주가 떡하니 서 있었다. 젠장, 아깐 없더니 이게 뭐야. 하는 수 없이 학교 앞 문구점을 돌아 담벼락에 도착한 준형이 먼저 빠져나간 요섭의 손을 잡고 낑낑 대며 빠져나왔다. 이럴 때만 키가 좀 작았으면 좋았을걸. 으윽, 뒷 발로 시멘트 바닥을 밀어내며 빠져나온 준형이 넘어져 손을 흙 바닥에 집었다.    

   

   

" 아 씨, 아퍼. "   

   

" ...야! 뛰어! "   

   

" 뭘 또 뛰어?! "   

   

   

요섭이 넘어진 준형을 보다 옆에서 누군가 다다다다 달려오는 느낌에 옆을 돌아보니 형체만 봐도 학주였다. 이 씨발, 왜 이렇게 꼬여! 준형을 내버려두고 요섭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뜀박질을 했다. 아파죽겠는데 쟨 또 뭐래. 또 뛰라니 체력이 남아도나, 미쳤구만. 혼자서 중얼거린 준형이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으으윽, 하며 일어섰다.   

   

   

" 어딜갔다 와?!!! "   

   

" ...악! 선생님! 죄송해요! "   

   

   

헐, 뒤늦게 요섭의 의도를 알아챈 준형이 매로 정신없이 맞았다. 아야, 악! 따끔거리는 사랑의 매를 듬뿍 얻어맞은 준형이 마지막으로 학주가 온 힘을 다해 스매싱한 엉덩이를 움켜쥐고 방방 뛰었다.   

   

   

" 아야, 쌤, 이제 도망 안칠게요. 으으으. "   

   

" 내가 한 두번 속아?! 운동장 10바퀴 토끼뜀! "   

   

" 쌤! "   

   

" 빨리 빨리 안해?! "   

   

   

붕 하고 매를 높게 든 학주의 위압감에 준형이 너무하다는 대답을 하고선 씨발! 하며 뛰었다.   

   

   

" 똑바로 안해?! "   

   

   

양요섭 의리없는 놈, 키 작아서 좋겠네. 귀 끝을 잡고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던 준형이 학주의 고함 소리를 듣고 씨발! 하고 조용히 소리치며 토끼 뜀을 했다. 몇몇 반에서 드르륵 하고 창문 여는 소리가 들리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학주가 뭘 쳐다봐 구경났어?! 라고 또 고함을 치자 하나둘씩 쑤욱 쑤욱 고개를 창문에서 내빼고 창문을 닫았다. 후악, 하며 온 힘을 다해 토끼뜀을 뛰었다. 마지막 고비가 보였다. 온 힘을 다해 토끼 뜀을 끝내고는 교문앞에서 풀썩 쓰러졌다. 헉헉, 다시 생각해도 양요섭 새끼는 비열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농땡이 치더니, 잘 한다. "   

   

"...헉, 헉, 왜, 따라와, 헉, 헉. "   

   

   

운동장에 대자로 뻗어 숨을 훅훅 내 쉬는 준형을 보고 경찰이라는 아까 그 놈이 웃어댔다.   

   

   

" 크크, 니 쫓아왔지. 뻔하지 뭐. 레파토리가 어딜가나 이 꼴인데. "   

   

" 아저씨.. 좀 닥쳐. 그리고, 헉, 이름, 헉. "   

   

" 이름? 윤두준. "   

   

" ..그래, 윤두준... 아저씨, 그만 가. "   

   

   

어느 새 등과 머리의 뒤에 묻은 흙을 모두 탈탈 털어낸 준형이 코웃음을 치며 두준을 바라보았다.   

   

   

" 아저씨, 나한테 관심있어? 스토커짓 하지말고 일이나 해! "   

   

" 아까 보니까. 요섭이라는 니 친구. 완전 쌩 양아치더만, 덕분에 자주 생각나겠어. "   

   

" 씨발... "   

   

   

눈을 천천히 감고선 욕을 낮게 읊조린 준형이 뒤로 돌아섰다. 윤두준 씨발, 윤두준 씨발, 저 새끼만 없었어도 이 짓을 안했는데!   

   

크게 웃는 두준의 메아리가 들리자 준형이 귀를 꼭 막고 교실로 뛰었다.   

   

  

  

  

  

  

------  

  

글의 분위기상 담배를 넣을 수 밖에 없었어요 ㅋㅋㅋㅋㅋ오글거려도...어쩔수업삼....   

   

   

   

   

   

   

[윤용] 어느 날 나타났다 01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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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ㅋㅋㅋㅋㅋㅋ재밌네요.ㅋㅋㅋㅋㅋㅋ너무 귀여워요.ㅋㅋㅋㅋㅋㅋㅋ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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