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향기가 퍼지는 순간
.............있잖아, 사랑해.
사랑해 백현아. "
-
" 종인아. "
" 응, 그래. "
어린 나이에 그를 찾는건 너무나 힘든 일이였다.
기본적인 신상정보만 가지고 사람을 찾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았기에 그가 안치된 곳도 평범하진 않았다.
완전히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는 납골당.
그는 그런 사람이였다.
4년.
그를 찾아오는 것 까지 총 4년이 걸렸다.
백현이가 떠난지도 4년이 되는 날이다.
그 날 그렇게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지만,
우린 서로 연락조차 할 수 없었고.
" 백현이는...? "
" 모르겠어.... "
나와 경수만 이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그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장례식을 치루는 날 하루를 제외하고는 여태껏 한번도 보지 못했다.
이젠 교복보다 정장이 더 익숙해져버린 시간 속에서
우리는 한 적도 없는 약속을 계속 지키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 들어가자... "
" 먼저 들어가, 난 다시 납골당에 가야할 것 같아.
깜빡하고 하지 못한게 있어. "
감기기운이 있는 경수를 먼저 집으로 들여보내고 차에 다시 시동을 걸었다.
.
" Please remain in your seat until the aircraft comes to a complet shop... "
덮고있던 담요를 정리하고 작게 기지개를 펴자
오랜 비행탓에 몸이 뻐근해, 몸 이곳저곳에서 소리가 난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이렇게 돌아온걸까.
의문이 들었다.
"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
" 당신때문에.... "
한국 행 비행기를 타기 전 그의 아버지를 만났다.
몇 년 사이에 그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항상 자신감이 넘치던 낮고 단호한 목소리와
상대방을 뚫어버릴 듯한 눈빛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 당신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랑 헤어졌어. 평생. "
"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
" 당신이 원하는대로 나랑 헤어졌어. "
" 한국으로.. 돌아가도 막지 않으마. "
자신의 아들이 죽어버린게 슬픈걸까.
아니면 자신의 뒤를 이어줄 후계자가 없다는게 아쉬운걸까.
그는 나에게 쪽지를 하나를 내밀고 돌아갔다.
처음엔 뭔지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가 있는 장소가 적힌 주소였다.
택시를 잡아타고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4년씩이나 흘러 얼굴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도착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가가 촉촉해진다.
무표정이였던 얼굴은 잔뜩 찌푸려지고, 안그래도 내려가 있는 눈꼬리가 더욱 아래로 쳐졌다.
천천히 걸어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으아....! "
앞만 보고 걷다가 앞에 계단이 있는 것을 모르고 발이 걸려 넘어졌다.
심하게 다치진 않았지만 손과 무릎이 쓰라려온다.
먼지가 뭍은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나 걸어가자 앞에 사람들이 보인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문을 지키고 있었고, 내가 다가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문을 열어준다.
" 문, 닫아주세요. "
감정이 실려있지 않는 건조한 말투로 말을 하자 대답없이 조용히 문을 닫는다.
깊게 숨을 내뱉고 눈을 크게 떴다.
박찬열.
나의 선생님.
" 흐윽.....흡.....으..... "
다리에 힘이 풀려 기어가듯 그의 사진이 걸려있는 기둥으로 향했다.
고개를 들어 사진을 보니 무표정한 그의 얼굴이 보인다.
" 하, 선생님....나 다쳤어. 손도 까지고 무릎도 아파...
나 치료 좀 해줄래요? "
" 새로온 보건선생님 안녕, 나 다쳤는데 치료 좀 해줄래요? "
" 이리와. 여기 앉아. "
눈물이 흘렀다.
" 아파....나 아프다고!!...아악!!!! 박찬열!!!! "
" 악!!! 따거!!!!!!! "
" 쉿. "
아무리 발악을 해도, 눈물을 흘려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목소리조차 생각나지 않는 옛 기억만 생각날 뿐.
" 나 선생님이 너무 보고싶어.... "
" 치료 다했어. 가. "
" 나 앞으로 보건실에 맨날맨날 올꺼예요, 선생님 보러. "
" 앞으로 매일 찾아올께... "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여기서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그의 곁으로 가고싶었다.
그를 보고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문이 열렸다.
" 박찬열.....? "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 얼굴을 찌푸리자 앞에 있는 남자가 걸음을 멈춘다.
" 변백현. "
.
말없이 잔을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 오랜만이다. 어디서 뭐하고 있었냐. "
" 4년만에 만났으면서 울지도 않고, 무드없는 새끼. "
내 앞에 서 있었던건 4년의 시간이 흐른 김종인이였다.
더 성숙해지고 날카로워진 모습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고,
흡사 박찬열과 많이 닮아있는 그 눈동자에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김종인을 바라보기만 했다.
" 도경수는. "
" 감기때문에. 집에 있어. "
" 합쳤냐. "
" 응, 1년 전에. "
축하한다. 살짝 웃으며 소주를 채워 넣은 잔을 가볍게 들자
고개를 옆으로 까딱하며 자신의 잔을 든다.
목으로 넘어가는 술이 달다.
달콤한 음료수를 마시는 기분이다.
" 집에 갈께. "
" 어디로 가게. "
" 내가 살던곳. "
" 딴 곳으로 새지 마라. "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걸었다.
자연스럽게 몸이 기억하는 데로 향하자 그와 같이 있던 아파트 앞에 있었고,
떨리는 손으로 비밀번호를 눌렀다.
경쾌한 울림과 함께 문은 열렸고,
그리웠던 냄새가 코 끝에 닿았다.
천천히 신발을 벗고 방으로 향했다.
그와의 추억이 잔뜩 남아있는 이 곳을 어떻게 해야할까.
어질러져있는 그와 내 물건을 정리해 침대 위에 올려다 놨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욕탕에 물을 잔뜩 받았다.
따뜻한 물로 가득 채워진 그 곳에 옷을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갔다.
그리고 옆에 있는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
" 김종인. "
" 왜."
" 지금 어디냐? "
" 경수랑 집. 왜, 벌써 사고쳤냐? "
" 아니, 심부름 좀 시키려고. "
" 뭔데. "
" 뭐 적을 만한거 있냐. "
" 기다려봐. "
뜨거운 수증기로 인해 호흡이 힘들다.
깨질 것 같은 두통을 애써 무시한채 김종인을 기다렸다.
" 어, 말해. "
" 엑소아파트, 1동 503호. "
" ...치킨 먹고싶냐. "
" 1시간 후에, 찾아와줘. "
" 왜. "
" 119 아저씨들도 데려와. "
" 씨발, 너 진짜!!! "
뚝. 끊어지는 전화에 힘없이 웃고 휴대폰을 내려놨다.
눈에 보이는 물이 빨갛다.
휴대폰도, 화장실 바닥도.
팔목도 빨갛다.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눈을 감으니 거칠어진 숨소리가 귀에 들려온다.
벌써 많은 피를 흘렸는지 아프다 못해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다.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 선생님. 사랑해. "
이름.
박찬열을 사랑하는 변백현.
사유.
보고싶어 선생님.
끔찍한 고통과 동시에
그리웠던 소독약 향기가 퍼졌다.
" 쭈글쭈글 해져서 와야지. "
" 싫어. 그럼 선생님만 젊어서 안돼. "
" 보고싶었어. "
" 나도 보고싶었어. "
" 사랑해. "
" 사랑해. "
-
지금까지 소독약 향기가 퍼지는 순간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려요.
epilogue로 찾아뵙겠습니다.
정말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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