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닥, 까닥. 홍빈의 기다란 검지 손가락이 곱게 접힌 무릎 위를 일정하게 두드렸다. 생각에 잠긴 이마 부근에는 미세한 주름이 져 있다.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인연이었으므로 그다지 관계가 끈질기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넘겨주기에는 아까운 인물이었다. 택운은.
홍빈은, 어렸을 때부터 소유욕이 강했다.
원래 재환이 양보하기를 좋아하는 착한 심성의 아이인 반면에, 홍빈은 제가 한 번 가지게 된 무언가는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 했다.
하물며 작은 꽃 한 송이 하나도, 줄기를 꺾어 못 쓰게 만들지언정 남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라고는 하지 못했다.
천성이 그랬다. 남 줄 바에야 차라리 망가뜨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지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홍빈은 황성에서 꽤나 권력 지분이 높은 편이었다. 학연에게 반기를 드는 자들은 모조리 홍빈의 뒤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늙은 대신들은 어렸을 때부터 황성의 높은 자리에 올라 저들을 이끌었던 홍빈에게 은근한 야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청하 님, 어찌하여 태양의 뒷통수를 치지 않으시는 겝니까. 청하라면 그를 끌어내리기에 적합하실텐데 말이지요.
그러면, 홍빈은 그저 입술을 끌어당겨 웃기만 하였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홍빈의 모습에 당황하여 몸을 내뺀다.
당신들이 그러니 안 되는 것입니다. 아직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태양을 치는 것은,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니.
도통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것들은 홍빈의 입 안에서 조용히 사그라지곤 했다.
' 택운이라는 자에게, 이복 형제가 있다고 하옵니다. '
' ……. 태양께서……. 택운을 안는 조건으로, 그 이복 형제를 찾아주시겠다고 합니다. '
' 현재, 태양이 보낸 수족 하나가 한성으로 향한 것 같습니다. '
' 그 이복 형제는, 한성의 의금부에 갇혀 있는 것으로 파악……. '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 했다. 입에서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마음만 먹으면 강제로라도 사람을 품을 수 있는 권력을 가졌으면서, 굳이 조건까지 받아주었다? 그, 차학연이?
택운에게 정말로 마음을 빼앗기기라도 한 것인가. 본디 목적이 그것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시종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그 느릿한 동작에 시종이 재빨리 홍빈의 앞으로 다가갔다.
귀를 이리 가까이. 조금 머뭇거리다 홍빈에게 귀를 내어준다.
몇 년 동안 홍빈을 지켜왔으나, 홍빈 특유의 그 서늘함은 아직까지도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름에, 살짝 몸이 떨려왔지만 아무렇지 않은 체 하며 예, 하고 대답하였다.
홍빈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 아래에서도 잃지 않던, 그 웃음이. 여전히.
" 그 수족을, 죽여라. "
" ……. "
" 그리고, 그 수족 대신 네가 그곳으로 가라. "
" ……. "
" 가서, 그 놈을 찾고. 다시 내게 소식통을 전하여라. "
어쩐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만 같구나.
섬뜩하게 흩어지는 홍빈의 말 한 마디에 결국 수족의 몸이 살짝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형형하게 빛나는 홍빈의 눈 끝자락. 위험한 일을 꾸미고 있다. 제 윗 분은.
" 예,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
그리고, 저는 결국 그 말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 네 이복 형제를 찾으러, 나의 수족이 떠났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
" ……. "
" 그런데, 살아있음이 확실한 것이냐? "
학연의 다정한 말투에도 택운의 등은 돌려진 채 미동이 없었다. 학연은 다시금 부드러이 웃는다.
지금 택운이 행하고 있는 것은 반역임에 틀림이 없었지만, 무슨 연유인지 화가 나지를 않았다.
치솟은 하얀 어깨가 사랑스러워서인지, 아니면 이 모습 마저도 너에게 지독히 잘 어울려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택운아.
다시 조심스럽게 그 이름을 불렀다. 그저 이름을 불러본 것 뿐인데, 예상과는 달리 너의 몸이 서서히 돌려진다.
천천히, 안개 속의 꽃잎처럼 뒤집어졌다.
" 죽지 않았습니다. "
" ……. "
" 죽지 않았을 겁니다. "
" ……. "
" 죽지, "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
덤덤하게 말을 이어 내려가는 택운의 모습에, 제 어릴 적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만 같아 학연은 잠시 눈을 비볐다.
' 어마마마-! 아바마마-! '
' 저하,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
'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입니까! 어찌, 어찌하여……. 죽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어마마마는! 아바마마는……. '
' 돌아올 수 없으십니다. '
' ……. '
' 그러니, 강해지셔야 합니다. 차기 태양께서는. '
어렸던 나에게, 너무도 가혹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해진다.
택운의 어깨에 손을 올려 본다. 볼 품 없이 말라 있었다.
나비의 몸통에 돋아난 날개 같구나.
부질없는 말을 해대며, 눈을 감았다.
여전히, 밤은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