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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을 텍스트로 저장하지 말아주세요.
이 차는 밤, 뜨겁게.
written by. Bubble



희한한 남자


 열은 그렇지 않아도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백현을 바라보았다. 


 "지, 진짜?"


 찬열의 물음에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 진짜 멀쩡해요? 밤새 그렇게 아프다고 끙끙 거린 사람이?"
 "멀쩡해요."


 찬열이 다시 경악했다. 정말로 한 마디 보탬 없이 동트기 직전까지 땀을 뻘뻘 흘리던 백현 때문에 찬열은 차라리 응급실에 보낼 걸 그랬다는 생각을 조금 하며 수건을 적시러 방과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기 바빴다. 그러다가 너무 피곤해 침대 맡에 기대 깜빡 잠이 들었고, 날이 밝는 느낌에 눈을 뜬 찬열이 마주한 건 초롱초롱한 눈으로 제 앞에 앉아 저를 빤히 쳐다보던 백현의 얼굴이었다.


 "열은 다 내렸어요? 어디 좀 봐요."


 그러면서 찬열이 제 이마를 불쑥 백현의 이마에 갖다 대었다.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백현이 흠칫 놀라며 눈을 치켜떴지만, 찬열은 거짓말처럼 열이 내린 백현을 의아해하며 곧 다시 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백현은 정말 금방이라도 죽어버릴 것처럼 아파보였으니까.


 "……미안해요."
 "에에?"
 "초면에 너무 큰 신세를 진 것 같아서……."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수줍은 얼굴을 하고 붉은 입술을 벙긋거리는 백현의 모습에, 찬열은 순간 저도 모르게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걸 느껴버렸다.


 "아니에요! 멀쩡히 나았다니 다행이죠, 뭐."
 "……."
 "그런데 어쩌다 우리 집까지 온 거에요? 우리 집이 워낙 외진데다가 앞으로는 황무지 같은 못쓸 밭이요, 뒤로는 멧돼지가 산다는 소문도 있는 야산이라…… 하하. 어지간해서는 일반인이 여기까지 들어오는 일이 별로 없는데."
 "그게……."


 차마 그 산으로 가던 길이었다고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머뭇거리는 백현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찬열은 그 동그란 눈으로 대답을 갈구하는 시선을 보냈다.


 "저, 사실은 갈 데가 없어서요……."
 "네? 갈 데가 없어요?"
 "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어쨌거나 갈 곳 없는 것은 사실이니까. 백현은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 삼았다.

 찬열은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멀쩡하다고 말하고 열이 내린 것도 직접 확인했지만, 어쨌거나 찬열의 눈에 백현은 아직 곧 죽을지도 모르는 환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하루 열 시간 이상을 밖에서 보내는 찬열에게는 사실 집이 좀 넓고 휑하기도 했다.


 "그럼 당분간 여기서 지낼래요?"
 "……정말요?"


 뜻하지 않은 수확에 백현이 눈을 끔벅거렸다.


 "집이 없으니 당연히 직업도 없을 거고. 벌이도 없겠고……. 밥이나 청소는 잘 해요?"
 "아, 저……. 해, 해볼게요!"


 허둥거리는 백현을 보며 찬열이 웃었다. 어쩐지 밥이고 청소고 제가 다 가르쳐야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지만 괜히 웃음이 났다. 복실거리는 강아지 한 마리를 들인 기분이었다.


 "백현이랬죠?"
 "어어?"
 "왜, 아니에요?"
 "아니, 그거 제 이름인데……. 어떻게 알았어요?"


 놀란 얼굴로 백현이 물었다. 간밤에 제 입으로 중얼거린 것도 기억을 못하는 걸 보니 정신을 놓을 정도로 아팠던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렇다고 그런 걸 굳이 입 밖으로 꺼낼 찬열은 아니었다.


 "백현, 맞아요?"
 "네, 맞아요."
 "무슨 백현?"
 "……그냥 백현이요."
 "아아, 백-현? 몇 살?"


 찬열이 나이를 물었고 백현은 다시 대답을 망설였다. 제가 살아온 햇수를 찬열과 비슷하게 환산하면 몇 년이나 될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입술을 살짝 벌린 채 머뭇거리던 백현이 찬열에게 되물었다.


 "그쪽은 몇 살인데요?"


 다소 도전적으로 튀어나간 백현의 말에 찬열은 눈썹을 살짝 올려 떴다가, 이내 넉살 좋게 웃어보였다. 그러고보니 여태껏 저만 백현에게 질문을 퍼부은 것 같았다. 


 "저는 스물아홉, 이름은 박찬열이에요."


 찬열의 대답을 듣고 백현은 잠시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찬열이 백현보다 덩치가 더 큰 탓도 있었지만, 얼굴만 슬쩍 보더라도 제가 찬열보다 나이가 많아보일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훨씬 더 어려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저도 스물아홉이에요."
 "어, 동갑이네? 그럼 말 놓자, 우리."


 그러면서 찬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현은 땅에서 불쑥 솟아난 나무라도 보는 기분이었으나 놀란 내색을 감췄다. 일어선 찬열은 생각보다 훨씬 더 키가 컸다. 


 "씻었어? 지금 몇 시지? 밥 먹을래?"


 또한 말을 놓은 뒤의 찬열은 놓기 전보다 훨씬 시끄럽기도 했다.


 "어어……."


 찬열은 제가 침대에 기대 잠들었던 자리 앞에 여전히 앉은 자세인 백현을 손수 일으켜 화장실로 떠밀고 주방으로 가 부산스럽게 이것저것 달그락거렸다. 자취로 시작한 독립 생활을 십여 년 가까이 하고 있으니 웬만한 살림은 가정주부 못지 않았다. 살림 실력과는 별개로, 별다른 식재료가 없는 탓에 아침 식사 준비는 계란 프라이 두 개로 그쳐야 했지만. 그래도 간만에 집에 다른 사람의 온기가 감돌아 찬열은 괜시리 신이 났다.

 한편, 화장실에 밀려 들어간 백현은 여기서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사방이 막힌 작은 방에, 한 쪽 벽면은 제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는 큰 유리로 덮여있는 모습이 꽤나 섬뜩했다. 슬쩍 화장실 중앙으로 한 발을 딛은 백현은 맨발에 느껴지는 물의 감촉에 이크하고 놀라며 발을 뒤로 뺐다. 


 "다 씻었어?"


 찬열이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는 멀뚱히 서있던 백현을 다 씻은 것이라 생각했는지 들여보낼 때와 마찬가지로 휙 잡아당겨 빼냈다. 


 "나 씻고 나올게, 가서 밥상에 앉아있어. 배고프다고 먼저 먹으면 안 된다!"


 잽싸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백현은 찬열이 남긴 말을 한 마디, 한 마디 다시 되짚었다. 그리고 그 말에 따라 식사가 차려진 좌식 밥상 앞에 다소곳이 앉아 찬열을 기다렸다. 가만히 앉아있으니 닭이 낳은 알의 냄새가 기름냄새와 함께 스멀스멀 백현의 코를 찔렀다. 곧 찬열이 백현과 마주보고 앉으며 수저를 들었다.


 "뭐야, 진짜 기다리고 있었어?"
 "기다리라고 했잖아."
 "장난이지. 현이, 의외로 순진하네."
 "어어?"


 백현이 찬열을 따라 숟가락을 들다 말고 찬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너 의외로 순진하다고. 먹지 말랬다고 진짜 기다리고 있고."
 "아니, 그 전에."
 "그 전에? ……장난? 현이?"


 찬열이 좀 전의 제 말을 되풀이했다. 현이라는 부름에 백현이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이번엔 찬열이 의아한 얼굴로 백현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백현이라며. 백, 현. 아니야?"
 "어……. 하지만 현이라고 불린 적은 없었어."
 "에? 그럼 뭐라고 불렸는데?"
 "백현."


 백현의 단호한 대답에 찬열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뭐라 대답을 해야할 지 몰라 멍하니 백현의 얼굴만 바라보던 찬열은 백현이 젓가락을 상에 떨어뜨리는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 똑같이 생긴 젓가락을 한 손에 한 개씩 들고 양손으로 콩자반을 집으려 애쓰는 백현을 보다가 찬열은 아하고 무릎을 탁 쳤다.


 "너 혹시 외국에서 살다 왔어?"
 "어? 뭐, 말하자면 그렇지."


 찬열이 '그럼 그렇지'하는 얼굴로 혼자 씨익 웃었다. 


 "지구상엔 워낙 많은 국가와 문화가 존재하다보니- 네가 살던 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성하고 이름을 따로 불러."
 "으응."
 "그런데 너는 성인지 이름인지 백현 하나 밖에 없는 거 같으니까……. 그냥 성은 백하고 이름은 현해서 현이라 부를게. 그래도 되지?"
 "으응……."


 백현이 여전히 양손으로 콩 한 알을 잡는 데에 열중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찬열은 피식 웃음이 나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제 젓가락을 들어 콩을 집는 모습을 백현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이렇게- 집는 거야."


 단번에 콩을 집어 입으로 쏙 넣는 찬열을 보며 백현이 입을 떡 벌렸다. 


 "어떻게……?"
 "잘 봐. 여기 손가락이랑 여기 손가락에 이렇게 잡고……."


 찬열이 한 번 더 콩을 집어먹는 모습을 백현에게 보여줬다. 정말 놀란 얼굴로 제 손가락 끝을 좇는 백현의 시선을 느끼고 있으니 별것도 아닌데 괜히 우쭐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셋째 손가락으로. 응, 그렇지, 그렇지."


 젓가락이 도착하기 전에 입이 먼저 마중나가긴 했지만 찬열의 도움을 받아 백현도 첫 콩의 맛을 보았다. 지난 세월 동안 입에 맞지 않는 풀을 먹는 연습도 무던히 했건만 이건 풀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기도 아닌 식감에 백현이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의 젓가락질 수제자가 콩을 씹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찬열이 물었다.


 "왜, 맛이 별로야?"
 "이게… 뭐야?"
 "콩이야. 처음 먹어봐?"
 "콩?"
 "영어로는 soybean. 학명은 Glycine max MERR."
 "……."


 백현은 더이상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굳이 콩을 더 집어먹으러 애쓰지도 않았다. 


 "이건 닭의 알을 익힌 거지?"
 "아아, 응. 계란 프라이야."


 찬열의 대답에 백현이 좀 전보다 조금 더 자연스럽게 젓가락을 놀려 프라이를 잘라 입에 넣었다. 콩보다 훨씬 나은지 백현의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서렸다. 또 한 번 괜한 뿌듯함을 느끼며 찬열도 서둘러 밥을 입에 넣었다.

 아침 식사를 끝낸 뒤 찬열은, 외국 어디에서 왔든 청소나 설거지는 당연히 할 줄 알겠거니 했지만 모른다고 말하는 백현의 얼굴이 너무나 진심 같았기 때문에, 귀찮은 티를 여과 없이 드러내는 백현을 이끌고 청소와 설거지를 대강 알려준 뒤에야 겨우 출근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열 시에는 집에서 나가야 다른 직원들에게 구박받지 않을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데 벌써 아홉 시 반이 훌쩍 넘어있었다. 왠지 퇴근하자마자 바로 출근하는 기분이었다.


 "알았지? 청소기, 그래, 그거. 그거는 내가 주말에 돌릴테니까 너는 하지마. 수세미에 세제 짜는 방법도 모르는데 청소기 맡겼다간 큰일 생길 것 같아."
 "알았다니까. 그런데 너는 지금 뭐 해?"
 "나? 옷 갈아입잖아." 
 "왜?"
 "일하러 가야되니까."


 찬열의 대답을 끝으로 찬열과 백현 모두 잠시 말이 없었다. 찬열은 문득 자신이 어젯밤에 처음 본 남자에게 집을 맡기고 나가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백현은 정신이 든 지 겨우 세 시간 만에 다시 홀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기, 나는 어제처럼 밤 열두 시는 돼야 올 건데. 괜찮지?"


 찬열이 걱정하는 기색을 띠며 말했다. 낯선 이에게 제 집을 통째로 맡기는 것보다 그 낯선 이를 더 걱정하는 상황이라니. 스스로도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백현이 곧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걱정을 완전히 지우지 못한 채 찬열이 불편하게 자켓을 걸쳤다. 


 "그럼. 다녀올게."
 "응."


 그 대화가 왠지 오늘 처음 본 사이가 아니라 결혼한 부부라도 되는 것 같아 찬열은 또 픽 웃었다. 한 번 더 인사를 하고 찬열이 현관문을 여는데, 거실 가운데에 멀뚱히 서있던 백현이 급하게 현관 앞으로 달려나왔다.


 "저기, 박찬열!"
 "어?"
 "……무슨 일 하는데?"
 "응?"
 "너 무슨 일 하는데!"


 별것도 아닌데 큰소리 치듯 묻는 백현의 얼굴이 조금 발그스레 해 보였다. 찬열은 저게 지금 직업을 묻는 것인가 확신이 들지 않아 아리송한 표정으로 백현만 쳐다보고 있었다. 찬열의 기준에선 직업을 묻는 것이 저렇게까지 큰소리 치며 얼굴을 붉힐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찬열이 대답을 않자 백현은 괜히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뭐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응?"
 "그러니까……. 고맙다고……."


 한참을 옹알거리던 백현이 뱉어낸 말은 '고맙다'였다. 굳이 뭐가 고마운지는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제서야 백현이 얼굴을 붉힌 이유를 이해한 찬열이 웃었다. 어디 외계에서 온 것 마냥 서툰 것 투성이인 줄 알았는데 쑥스러움도 탈 줄 아는 모양이었다. 


 "고마우면 걸레질 깨끗하게 해 놔."
 "응."
 "아, 혹시라도! 또 내 말 듣는다고 열나게 걸레질 하다가 어제처럼 아플 거 같으면 절대 하지마! 절대!"
 "이제 괜찮대도."
 "그러니까 혹시라고 그랬잖아. 그리고 나는 유전자 연구하는 연구소에서 일 해."
 "……아."
 "그럼 집 잘 보고있어, 현아."
 "……응."


 신발코를 바닥에 두어 번 툭툭 치고 찬열이 웃으며 현관문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다가 또 뭐가 생각났는지 뒤를 휙 돌아 아직 거기 서 있는 백현에게 말했다.


 "아, 앞으로는 그렇게 무섭게 박찬열! 하고 소리지르지 말고. 알았지?"
 "그럼?"
 "찬열아, 하면 되잖아. 현아."
 "……응."


 진짜 간다, 하고 찬열이 현관을 나갔다. 자동으로 삐리릭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자물쇠에 흠칫 놀랐으면서도 놀라는 기색을 표현하지 않으며 백현이 조심스레 거실 중앙으로 돌아왔다. 찬열을 잡아먹으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집에 신세만 잠깐 지는 것이니 크게 죄책감은 갖지 않기로 했다. 그 잠깐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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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재밌어여ㅜㅜㅜㅜ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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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제목오타나신거에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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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오... 사실 지금 미리보기 되어있는 부분만 보고있는데도 굉장히 글이 흥미롭네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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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재미있어여ㅜㅜㅜㅜㅜ 빨리 다음편 보러갈거에요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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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우와............흥미로워서 자꾸 보게되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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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우와 진쨔 분위기도 그렇고 작가님 문체라구 하나ㅠㅠㅠㅠ금손이셔ㅠㅠㅠㅠ♥!얼른얼른 댓글달고 다음편 보러가야겠어요ㅠㅠㅠㅠㅠ모든게 서툰 배큥이 귀!여!워!요!♥!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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