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출 예약
호출 내역
추천 내역
신고
  1주일 보지 않기 
카카오톡 공유
https://instiz.net/writing/411568주소 복사
   
 
로고
인기글
필터링
전체 게시물 알림
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물거품 전체글ll조회 1043
※팬픽을 텍스트로 저장하지 말아주세요.
이 차는 밤, 뜨겁게.
written by. ChanRhan


늙은 나무의 전설


 생 처음 연구소에 병가를 낸 찬열과 아직 정신이 얼떨떨한 백현, 그리고 심통 가득한 표정의 종인은 반대쪽 거실 벽과 화면이 꺼진 텔레비전을 멍하니 바라보며 나란하게 앉아있었다.


 "현아."
 "응?"


 찬열이 슬쩍 백현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저기. 이건 내가 절대 너나 저 녀석을 비난하거나 비하하거나, 뭐 그런 건 아닌데 말이야……."
 "뭐야. 지금 나보고 저 녀석이라 그런 거야?"
 "시끄러워, 김종인."


 백현이 계속 말하라는 뜻으로 찬열을 쳐다보았다. 찬열이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 입을 뗐다. 눈은 여전히 정면에 고정된 채였다.


 "왜 우리집이 점점 늑대 보호소가 되어가는 거 같지?"
 "……아."


 찬열의 말에 백현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이번엔 종인을 쳐다보았다. 종인은 백현의 눈빛에서 무언의 의미를 읽고는 눈을 크게 뜨며 손사레를 쳤다.


 "설마 나보고 나가라는 건 아니지? 안 돼, 나도 갈 데 없어."
 "넌 다시 스위스 숲으로 돌아가면 되잖아."
 "말했잖아! 널 데려가기 전까진 아무데도 안 가."
 "난 안 가." 
 "그럼 나도 안 가."
 "김종인!"


 늑대 둘의 상당히 유치한 말싸움을 지켜보던 찬열은 그만 하라는듯 백현의 뒷통수를 쓰다듬었다.


 "돌아가지 않는 건 그렇다 치고……. 저 녀석은 이런 인간 냄새나는 집은 별로라더니."
 "그것도 말했을텐데, 혹시 내가 한눈 파는 사이에 백현이가 슬쩍 도망가 버리면 안 되니까 내 눈 앞에 둬야겠다고."
 "현이는 도망가서 또 시커먼 늑대한테 잡히는 것보단 우리집에서 나랑 오순도순 사는 게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은데……."


 태평하니 말을 늘어놓는 찬열의 모습에 종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슬쩍 말아쥐었다. 사이에 낀 백현이 안절부절하며 종인의 바짓자락을 잡아당겼다. 물론 그 옷 역시 찬열의 것이었다. 


 "저 박찬열 나부랭이가 어제 날 보고 덜덜 떨면서 세상 떠나가라 소리지른 일은 다 잊어버린 모양인데."
 "잊다니? 어지간해서 그런 무식한 짐승을 마주친 일은 잊기 힘들지."
 "너 진짜 한 판 붙어볼래?"
 "미쳤냐? 멀쩡한 인간이 늑대랑 싸우게? 난 질 것 같은 게임은 안 해."
 "에이, 진짜!"


 종인은 찬열을 이기지 못 하고 답답함에 겨운 소리를 내며 대문을 나가버렸다. 백현은 걱정스런 눈으로 , 종인의 뒷모습이 아닌 찬열을 바라보았다.


 "왜?"
 "……저러다 종인이가 진짜 너한테 해코지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현이 너도 늑대라며. 저 무식한 놈이 나 공격하려 들면 네가 막아줘야지, 난 네 집주인인데."
 "하지만……."


 찬열이 백현을 보고 씨익 웃었다. 종인의 말에 거짓이 없다고 믿어볼 때, 제가 종인과 연적 비스무리한 관계만 되지 않는다면 적어도 종인이 그간 백현을 맡아준 저를 '공격하지는'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물론 딱하게도 백현은 그런 종인의 마음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지만.


 "하지만 찬열아아. 난 종인이랑 싸우면 못 이겨. 종인이는 진짜 늑대란 말이야."
 "걱정하지 마."
 "응?"
 "내가 볼 땐 저 녀석이 절대 널 못 이길 거야, 아마."


 그러면서 찬열은 의아해하는 표정의 백현을 두고 또 웃었다. 아아, 마치 유치원생들의 사랑놀이를 보는 선생님이 된 기분이었다. 찬열이 한 번 더 백현의 뒷머리를 어루만졌다.


 "찬열아."
 "응?"
 "미안."
 "왜, 또."


 백현이 배꼽 위에 양손을 놓고 그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 정말로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면서 못 한 것 뿐이야."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가능한한 오래 찬열에게 속일 생각이긴 했었지만, 백현은 그 말은 살짝 접어두었다. 왠지 지금은 그래야 될 것 같았다.

 찬열이 나긋한 표정으로 백현을 바라보았다. 간밤의 사건은 가히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온 일이었기에 같이 앉아있는 이 순간이 아무렇지도 않다면 조금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또 우물쭈물 말을 꺼내는 모습은 저와 한 달을 함께한 그 현이가 맞아서 찬열은 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괜찮아."
 "……."
 "현아, 정말 나한테 미안하면."


 찬열이 두 손으로 백현의 뺨을 감싸쥐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도 백현이 늑대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백현 자체의 체질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백현은 항상 찬열보다 몸의 온도가 조금 높았다. 찬열의 손에 백현의 따뜻한 체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한테 그렇게 미안하면, 돌아가지 마."
 "……응?"
 "김종인 따라서 너 살던 데로 돌아가지 마."
 "가지 마……?"
 "응."


 쫓겨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던 상황에 돌아가지 말라니. 백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찬열이 백현의 뺨을 꾸욱 한 번 눌렀다가 손을 뗐다. 발그스레 해진 볼이 괜히 보기 좋았다.


 "가지 마.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보름날마다 내가 물수건도 빨아오고 에어컨도 틀어줄게. 에어컨이 뭐냐하면……. 아니, 어쨌든 이젠 집에 나 혼자 있으면 좀 허전할 것 같아."


 그러면서 찬열이 웃었다. 백현도 찬열의 말을 천천히 이해하고는 따라서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진짜? 진짜 네가 가지 말라고 한 거다? 나중에 딴 소리하기 없어!"
 "그래, 그래."
 "종인이가 나 끌고 가려 해도 네가 잡아야 돼, 응? 나중에 막 이제 됐다, 가라, 그러면 안 돼!"
 "알았다니까요, 알았어."


 찬열이 몇 번을 대답해도 백현은 뭐가 그리 좋은지 헤실헤실 웃었다. 그리고는,


 "……혀, 현아."


 아주 빠르게 백현이 찬열의 턱 끝에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저는 계속 웃고 있는데 되려 붕어처럼 눈만 끔벅거리며 당황한 찬열의 모습에 백현의 눈꼬리가 점점 아래로 쳐졌다. 


 "별로야?"
 "어어?"
 "종인이는 기분 좋을 때 그렇게 뽀뽀해주면 무지 좋아하는데……. 너는 싫어?"
 "뭐? 너 그 녀석한테 막 뽀뽀하고 그래?"


 이번엔 백현이 찬열을 보고 눈을 끔벅거렸다. 제가 방금 뽀뽀를 한 건 찬열인데 왜 종인에게 뽀뽀를 했느냐고 묻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막 하는 건 아니지만."
 "그거 하지 마."
 "어?"
 "김종인한테 뽀뽀하지 마. 별로야."


 그러니까 김종인이 별로라는 건지, 김종인한테 뽀뽀하는 게 별로라는 건지, 제 뽀뽀가 별로라는 건지 백현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찬열의 표정이 꽤나 단호해서 백현은 더 물어볼 생각을 접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우, 이거, 이거 알고보면 늑대가 아니라 순 여우 아닌가 몰라……."
 "으응?"


 얼굴 가득 잡다한 궁금증을 담는 백현에게 찬열이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그것보다, 네 얘기나 마저 해 줘."


 찬열이 털썩 거실바닥에 드러누우며 눈을 감았다. 잠시 망설이던 백현도 곧 찬열의 옆에 따라누웠다.

 늑대인간들이 모여사는 마을의 이야기, 그 속에서마저 따돌림 당해야 했던 백현의 이야기, 보름마다 정해진 약을 먹지 않으면 몸이 끓어오른다는 이야기, 언젠간 닥치겠지만 언제가 될지 모르는 성년식 이야기…….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신기하고 또 무섭기도 한 말들을 끊임 없이 들으며 찬열은 연신 '아아' 라든가 '오오'와 같은 추임새를 넣었다. 뜨거운 한낮의 해가 지고 캄캄한 밤이 될 때까지도 백현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자정이 넘어 찬열이 잠이 들고나서야 백현은 슬쩍 일어나 대문을 열고 나왔다. 기어이 토끼 사냥을 했는지 종인이 한 손에 목이 비틀린 산토끼 한 마리를 들고 대충 마당 바닥에 앉아있었다.


 "마침 잘 나왔어. 달이 남중할 때까지 나오지 않으면 들어가서 업고라도 나오려 했으니까."
 "……."
 "다리 한 짝 먹을래?"
 "날 데려가려고 온 게 아니구나."


 백현의 말에 종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들었던 토끼를 한쪽으로 휙 던졌지만 당연히도 죽은 토끼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지? 카이 너, 날 데려가려고 온 게 아니야."
 "나 원 참, 우리 백현이는 이렇게 머리가 나쁘다니까. 김종인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무슨 일이야?"


 더이상 말을 피해봤자 소용 없다는 걸 깨달은 종인이 백현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말이 한 걸음이지, 훌쩍 다가온 종인 탓에 둘 사이는 고작 손 한 뼘 정도 떨어졌을 정도로 가까웠다. 백현이 뒤로 물러나기 전에 종인은 잽싸게 백현의 팔을 붙잡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엉겁결에 종인에게 폭삭 안긴 꼴이 된 백현이 움찔거렸다.


 "백현이 너, 쫓긴다."
 "뭐?"
 "늙은 할아범이 나무기둥에 남아있던 전설을 풀어냈다나봐."
 "……그래서?"
 " '모두를 구(救)하거나 모두를 멸(滅)할 것이다. 구하려거든 스스로가 희생하게 되며 멸하려거든 적과 아군을 비롯한 자의 목을 치게 되니.' "
 "……."


 백현이 파르르 몸을 떨었다. 종인이 팔에 힘을 더 주고 백현을 꽉 안았다.


 "잘 들어, 백현아."
 "……."
 "크리스와 첸이 널 쫓고 있어. 나도 자세한 건 몰라. 그 놈들이 움직일 계획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난 바로 널 찾아 떠나왔거든. 크리스가 널 쫓는 건 네가 모두를 멸할 수 있기 때문이야. 네가 만약 적과 아군을 비롯한 자, 크리스를 죽이면 우리 라이칸스로피는 모두 소멸하게 돼. 크리스는 그걸 막으려고 널 쫓는 거야. 그리고 네 손에 제 목이 동강나는 걸 막기 위해 널 죽이려 들겠지. 첸은 반대로 모두를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널 쫓으려 해. 모두를 구한다는 건, 우리가 라이칸스로피라는 운명에서 벗어나 평범한 인간과 섞여산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네가 스스로 희생해야 해. 그 말은 네가……."
 "죽어야 된다는 거구나."
 "……."
 "결국 어느 쪽이든 내가 죽게 되어 있어. 그렇잖아. 내가……. 내가 크리스나 첸과 싸워서 이길 가망은 없으니까." 


 종인의 품 속에서 백현의 얼굴이 공포에 딱딱하게 굳어갔다. 이건 그저 무리에서 나온 동족에게 잡혀 성년식을 강제로 치루게 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산 속 깊은 곳, 아주 크고 늙은 나무에 남아있는 전설, 혹은 예언. 억겁의 세월을 거친 동안의 연구 끝에 '보름달에 하얀 털을 가지고 난 늑대'로 시작한다고 알려진 그 예언을 백현은 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기껏해야 제 저주 받은 운명에 대한 동정 정도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종인이 읊어준 전설의 실체는 한 마디, 한 마디 백현의 뇌리를 파고들고 있었다. 

 종인이 품에서 백현을 떼어놓고 두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너무 겁먹지 마. 그래서 내가 이렇게 널 먼저 찾아온 거야. 실은 그 놈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널 데리고 다른 곳으로 피할 생각이었는데 네가 이곳에 남을 의지가 강해 보이니까, 이렇게 된 이상-."
 "……."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백현이 넌 내가 지켜."


 백현은 대답 없이 종인을 한참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문득, 종인과 이곳을 떠나 더 깊숙하고 더 안전한 곳으로 숨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건 결코 누군가에게 잡혀 죽을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었다. 이윽고 백현이 입을 열었다.


 "카이."
 "김종인이라니까."
 "응. 종인아."
 "왜, 나 지금 너무 멋져?"


 백현이 피식 웃었다. 종인이라면 조금 믿어볼만 했다.


 "넌 날 지켜줄 수 있을 만큼 강한 거지?"
 "당연하지."
 "좋아. 그럼 크리스든 첸이든 내가 이 집에 있는 게 들켜버리면,"
 "그 놈들이 너한테 털끝 하나 손대기 전에 내가 먼저 죽여버릴까?"
 "아니. 넌……."
 "난?"


 백현이 좀 전보다 조금 더 힘있게 웃어보였다.


 "그렇게 되면 넌, 찬열이를 지켜줘."


 그래, 백현은 사실 지금, 제가 죽을 것보다 찬열이 무고하게 상처를 입지 않을까 더 걱정되었다. 


 "……박찬열 나부랭이를?"
 "넌 할 수 있잖아. 그렇지?"
 "그럼 넌? 백현이 넌?"
 "……."
 "……."
 "……종인아……."


 종인은 백현만큼이나 끔찍하게 달을 싫어했다. 허나 보름이 갓 지나 충분히 큰 모양의 달이 남중에서 내뿜는 달빛과, 그 달빛을 곧이 받으며 제 눈 앞에 서있는 백현과, 그 백현이 가느다랗게 제 이름을 불러오는 목소리가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워서 종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좋아, 좋아! 그렇게 하면 되잖아! 나 원 참, 그 인간 따위가 뭐라고."
 "고마워."
 "대신 너도 하나 약속해."


 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인이 입술을 말고 눈을 도르륵 굴리더니 말을 꺼냈다.


 "앞으로 박찬열한테 뽀뽀하지 마. 금지야."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둘다 뽀뽀를 금지했으니..... 백현이는 누구에게 뽀뽀 하나요?ㅋㅋㅋㅋㅋㅋㅋ 다들 귀여운 와중에..... 참 이야기가....와우!!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허류ㅠㅠㅠㅠㅠㅠ프롤로그부터 읽고 왔어요ㅠㅠㅠㅠ대바규ㅠㅠㅠㅠ백현이는 죽을 운명인가요ㅠㅠㅠ안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뭐라 정리를 해야할지...ㅠㅠ크리스와 첸으로부터 찬열이를 보호해주라는 백현이말이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하고...ㅠㅠㅠㅠㅠ또 자기가 지켜줄 수 있을만큼 강하다는 말을 하는 종인이도 멋있고...ㅠㅠ찬열이와 종인이가 서로 질투하는 것도 귀엽고ㅠㅅㅠ..!!!제발 찬백행쇼ㅠㅠ근데..또 백현이가 늑대라 오래살면...ㅎ..쨋든 진짜 재밌어요ㅠ♥♥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
와..저방금눈물을찔끔흘렸어요.. 찬열이를지켜달라고말하는백현이의마음이너무예쁘고ㅠㅠ 백현이를향한카이마음도감동스럽고.. 백현이운명이가혹해보여서슬프고.. 작가님멋진글감사합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4
카이멋있다....ㅜㅜㅜㅜㅜ백현이의 운명이가혹해요ㅜㅜ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확인 또는 엔터키 연타


이런 글은 어떠세요?

전체 HOT댓글없는글


처음이전2401
전체 인기글
일상
연예
드영배
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