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필코 산책을 나가지 않을 거예요. "성우야"
"..." "산책 가기 싫어?" (외면) ".. 요지부동이네."
(눈치) ..이제 포기했겠죠? "그래.. 너 위해 가는 건데 당사자인 네가 싫다니 안 가야지.. 아, 아니야. 주인은 괜찮답니다.."
"그래도 있지.. 바람도 쐬고 꽃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너도 좋지 않아..?
..아님 말구.." 산책 가고 싶다는 말을 참 길게 하는 주인이에요. * 전에 말했 듯이 저도 산책 참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나가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또 만났네요!" "..."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었겠죠.
(반갑)
..(한숨) "아.. 네.." 물론 주인은 여전히 경계하지만, "성우야.. 우리 갈까? 아니 가ㅈ" "저 아랫집에 삽니다! 여기 우리 대니랑!" "네.. 그럼 안녕히계ㅅ" "강아지 귀엽네요! 허스키 맞죠?"
"네에.." 주인이 쩔쩔매고 있어요. 자꾸 주인이 불안해보여요. 다시 봐도 마음에 안 드는 남자인데,
(반갑) 대닌가 뭔가, 자꾸 밑에서 거슬리네요. 조막만한 게. "가끔 놀러가도 되죠? 이름이 뭐예요?" "..죄송합니다." 주인은 다급하게 줄을 당겨 집으로 향했어요. 점점 빨리 걷더니, 결국 다리에 힘이 빠진 건지 풀썩, 주저앉았어요. "후..괜찮다, 괜찮다." 양 볼을 꾹 누르며 애써 자기를 위로하는 주인의 눈 주위가 발갛게 물들어있어요. 저는 그런 주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안을 수 있도록 해줬어요. "..미, 흐.. 미안해 성우야.. 너 산책도, 제, 대로 못, 시키고.." 저를 한품 가득 끌어안고 나서야 눈물을 터트리는 주인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는 게 그저 답답하기만 해요. 나는 괜찮다고, 산책과 주인은 비교할 대상도 되지 않는다고 다독여주고 싶은데. "아직은 안되나봐 나.. 아니라고 생각해도, 아닌 게 확실한 것 같은데도 이래. 진짜 한심하다.." 아니에요. 주인을 이 지경으로 만든 그 사람들이 나쁜 거예요. 이렇게 주인이 자책할 때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 집에 들어와 겨우겨우 씻은 주인은 밥도 먹지 않은 채 잠들어버렸어요. 그런 주인을 보며 저는 결심했습니다. 띵동- 그 남자, 꼭 사과하게 만들 거라고.
"윗집입니다." * 그런데 문을 연 사람은 뜻밖의 인물이었습니다.
(반갑)
"쥬잉 업써. 나가써. 대니랑 놀으러 온 거야?" "..그건 아닌데, 놀아줘야 돼?" 강아지일때 모습을 채 숨기지 못한 남자가..아니 어른이가 꼬리가 떨어질 듯 흔들며 말했어요.
"안 노라줘두 대. 근대 노라줘두 대. 근대 노라주면 대니 더 조아." '이건 놀아달라는 거잖아..' 하기야, 대니는 죄가 없죠. 지나치게 발랄한 주인이 문제지. 큰 맘 먹고 놀아주기로 했어요. "알겠어. 놀아줄게. 나 뭐하면 되냐."
(비장) "이거, 장난감.." 벌컥
"다니엘, 주인 왔다!"
대니는 강아지로 변해 현관문으로 곧장 달려갔어요. "어이구, 대니 잘 있었어? ..근데 그쪽은 왜 여기에?"
"..아." "오늘은 미안했어요.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 반인반수 키우는 사람 찾기가 좀 힘들어야죠. 반가운 마음에 들이댄 건데. 지금 주인 좀 어때요?" 남자는 꽤 진심인 듯 했어요.
"다행히 미안할 일인 건 아시네요. 덕분에 뻗어서 자고 있습니다." 아, 그래요? 하며 대니를 쓰다듬던 남자는 "두 분 다 이름을 안 알려주시니 저부터 말할게요. 저는 황민현이고, 몇 번째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얘는 대니. 오늘 일은 진심으로 사과할게요.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약속드릴 수 있어요. 그래도, 명색이 이웃인데 좀 친하게 지내줘요. 대니 친구해줄 겸 자주 좀 놀러오고."
"..그건 생각해보겠습니다. 생각보다 일찍 사과해주셨네요.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목적은 달성해서." 꽤 말이 잘 통해서 피 튀길 줄 알았던 대화가 일찍 끝났어요. 저 남자,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일지도 몰라요. *
"대니야, 형아 무섭지?"
(끄덕) "정말 사랑하면 저렇게 돼. 내 생각엔, 얼마 못 가서 들킬 것 같네. 어떤 면에서는 강아지보다 사람 경호원이 더 낫거든."
"어떻게 되려나, 저 충직한 허스키." * 오늘도 무사히 집에 돌아왔어요. 오늘은 꽤 피곤했는지, 평소보다 컸을 제 기척에도 까무룩 자고 있는 모습이네요. 주인은 자는 것도 예뻐요. 나,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주인을 보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지금 이렇게 사람의 모습이지만, 주인에 대한 마음은 그대로인데. 아니, 오히려 점점 더 커져만 가는데. 제 딴에는 예고편으로, 주인이 저를 강아지라고 칭할 때마다 토라진 척을 해요. "옹강아지!" 또는 "우리 강아지!" 하면, 짖거나 무시하거나 하는 방법으로요. 저, 사실 주인이 좋아하는 그냥 강아지 옹성우가 아닌 걸요. 아니 어쩌면 아예 그 반대일 지도 몰라요. 무섭고, 두려운 인간. 당신이 사랑하는 옹강아지의 반은 이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고민하고 있어요. 주인은 까맣게 모르고 있겠지만.
"이름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인의 이름을 불러봤어요. 아주 나지막하고, 작게.
"으응.." 대답하듯 잠꼬대를 하는 주인. 이대로 주인이 깨어날 때까지 사람으로 있어볼까 생각도 하지만, "으음.. 성우야? 어딨어.."
..역시 저도 아직은 아닌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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