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보냈다. 아침 일찍 온 이태용과 이민형은 교태전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내 짐을 가지고 먼저 가 있는 상태였다. 이따 나가기 쉽게 하려 함이었다. 이제는 작은 가방에 가져가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담을 차례였다.
"그리고 그 팔찌,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준 거 아니야. 떠나자, 나와."
어제 이민형의 말을 떠올렸다. 아무 의미 없이 준 거 아니라는 그 말을. 대체 무슨 의미로 준 것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괜한 김칫국은 마시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내 생각에도 이것이 맞는 것 같았다.
좋아해서 그런 것 보다는, 친구니까. 친구로서 내가 힘든 것이 싫어서 내가 힘들 때 언제든 바로 청나라로 데리고 가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민형은 그럴 것이다. 계속 혼자 생각하려니 생각이 꼬인다 싶어, 자시 가방을 바라보다 방을 둘러보았다.
처음 왔을 때 간단하게 와서 챙길 게 얼마 없을 줄 알았는데, 어느새 국왕이 준 물건들은 비었었던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어떤 것을 챙겨야 하나 싶어 방을 둘러보다 옷부터 챙겨야겠다 싶어 서랍을 열었다. 그런데,
장갑 두 쌍과 담요 두 개.
하나는 이동혁이 궁에 들어오기 전 내게 정인이라며 고백을 했을 때, 하나는 입궁한 후 국왕이 내게 내린 것이었다. 이 두 개의 물건들을 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대체 두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람을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은 아니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좋아한 척을 한 것은 아니었다는 그런 말이다. 그저 나의 판단력 없는 미성숙한 감정으로 인해 두 사람에게 상처를 줬고, 또 줘야 한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다.
"마마!"
그 두 사람을 생각하며 한숨을 푹 내쉬고 있을 때였다. 내가 행복한 게 좋다던 어영이는 이민형을 도와 내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제 가야 하는건가. 그 장갑과 담요를 보다, 결국 하나씩만 챙겼다.
궁에서 입던 것이 아닌 흰 사복을 입었다. 옷을 입을 때 보인 붉은 저고리는 국왕을 연상케 했지만, 이렇게 붉은 색의 옷에 의미를 두고 입을 일이 앞으로 있을까 싶어 입었다.
"어영아"
"예 마마?"
"옆으로 와서 걸어."
뒤에서 따라오는 어영이를 불러 나와 나란히 걷게 했다. 혼자 걸어 나가는 이 궁에서 외롭고 싶지 않았다. 늘 내게 과분한 사랑을 주던 두 사람을 등지고 청나라로 간다는 것은 내게 있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아직 해도 채 안 뜬 시간에, 나는 간다. 밖으로. 청나라로.
"중전마마, 이 시간에 어디를 …"
궁 정문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대신들이었다. 나를 미워하던 그 사람들. 이 시간에 왜 궁에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국왕과 숙의를 이으려 죽어라 노력했던 그 사람들이었다.
"제가 어디 가는지는 왜요."
"…예?"
"좋은 정치질 하십시오."
"……"
"어린 년 뒤에 업고서는."
차라리 궁을 지키고 있던 병사 대신에 그들이 말을 걸어준 것이 다행이었다. 자연스럽게 빠져나갈 수 있었으니까.그리고는 그들을 지나쳐 왔다. 아무리 내가 신분이 더 높다 한들, 정치를 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는지 그들을 벙쪄서 저들끼리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래, 대통령의 부인이 국회의원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마마, 타세요."
어영이가 궐 앞에 이민형이 준비해 놓은 가마의 문을 열었다. 나는 그 안을 가만히 쳐다만 보다 등지고 있던 궁을 다시 쳐다본다.
많은 일이 있었던 대한민국의 대궐아
이제는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게 해 다오.
*
"왔냐."
"으으 추워."
물가였다. 배가 떠 있는 물가. 꽤 큰 배였다. 그저 나룻배와 같은 형상을 가진 것이 아닌,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지붕도 있고 한지가 붙은 창문도 있는 그런 배였다.
"주인님, 이제 출발할 듯 싶습니다!"
"타. 이제 출발할거야."
이민형의 그 소리에 이태용이 내 손을 잡고 서는 내가 배 위에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이 배에는 나 말고도 몇몇 인원이 타 있었는데, 아마 이민형과 이태용의 몸종으로 보이는 듯 했다. 그들은 이제 출발한다며 바삐 움직였다.
중국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린다고 했다. 처음 들었을 때에는 힉 했지만, 본래 대한민국 배로도 가장 가까운 곳이 열 두 시간은 기본 걸리니 그러려니 했다.
장판이 깔린 작은 방에 앉아 생각했다. 지금 이동혁은 무얼 하고 있을까. 국왕은 내가 없어진 것을 알았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생각들이 제멋대로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걱정 돼?"
"…응."
안 되면 거짓이었다. 그저 한 양반 집의 아내가 없어졌다고 해도 그 마을이 발칵 뒤집힐 참인데, 한 나라의 국모가 없어졌다고 생각을 해 보자. 나라가 뒤집힐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남 걱정만 하고 살면 네 걱정은 언제 하고 사냐?"
"…"
"좀 쉬어."
그 말을 끝으로 이민형은 방 문을 닫고 나갔다. 이미 깔려져 있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녹이니 몸에 힘이 저절로 풀렸다.
희미하게 보이는 창 밖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에게 부는 겨울바람이, 부디 차지 않기를.
*
아침부터 국왕은 늘 그랬듯 중전의 처소를 찾았다. 교태전, 그가 궐 내에서 강녕전 다음으로 가장 자주 가는 곳이었다.
"…?"
그리고 그는 이상한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제가 오면 늘 인사를 하며 "마마꼐 전해드리겠습니다." 하던 그녀의 몸종, 어영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재현은 몇 초 고민하다 결국 교태전 안으로 들었다.
교태전의 첫 문을 열고 들어가니, 궁녀들이 있었다. 왜 아무도 나오지 않았는가 보다는 늘 그녀의 옆에 있던 어영이가 어디 갔느냐가 우선이었다. 그는 문 앞에 있는 여러 궁녀들에게 물었다.
"중전이 안에 있는가."
그러자 그 말에 궁녀들은 본인들끼리 눈치만 볼 뿐 그 누구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 했다.
"한 번만 다시 물을 것이다. 중전이 안에 있는가."
"…사실 그것이 저희도 이제 들어가 보려던 참이라……."
그 말에 재현이 한 번 코웃음을 쳤다. 허-, 오늘은 본인이 좀 늦게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이 됐는데도 어영이가 없으니 교태전 안을 아무도 들어가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나가."
그 말을 들은 궁녀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교태전 밖으로 하나 둘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왕은 안에 있을 그녀를 향해 웃음을 비운 얼굴에 다시 웃음을 담고는 문을 열었다.'
"중ㅈ…"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휑한 빈 방이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방을 천천히 한 번 둘러보았다.
자신이 주었던 여러 물건들도, 그녀가 가져온 작은 여러 것들도 모두 없었다. 최소한의 짐만 챙겼음에도 그의 눈에는 무엇이 없어졌는지 다 알 정도였다. 그런 그가 당황스러워 잠시 생각을 하다 어이가 없는 듯 웃음을 지었다.
팔찌.
그 팔찌였다. 국왕의 머릿속에 잠시 스쳐지나간 그것. 오른쪽 손목에 차고 있던 청나라의 황제가 몇몇에게만 주었던 팔찌. 그 연회에 초대되었던 그는 단번에 누가 그녀를 데려갔는지 알아차렸다. 그 곳에서 한국인은 딱 세 사람밖에 없었다.
국왕인 그와, 이태용, 이민형.
팔찌를 가진 사람들, 청나라의 입국절차 없이 바로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
목적지가 청나라인 것을 알아차린 그가 그녀를 찾으려 교태전 문 쪽으로 걸어나가려 할 참이었다.
"…전하."
"무엇입니까."
교태전 안으로 들어오던 누군가와 마주쳤다. 궁녀를 한 명도 데리고 오지 않았으며 들어올 떄 본인이 왔음을 알리지도 않는 무례한 사람. 숙의였다. 그녀는 텅 비어버린 방을 보다, 그 가운데 서 있던 국왕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 그녀가 아무 말 않자 그녀를 지나쳐 교태전을 나가 중전을 찾으려 했던 그였는데,
"…놓으시죠."
숙의에게 팔목이 잡혔다. 본인의 몸에 누군가가 손대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하던 그였다. 물론 중전이 그랬다면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사람은 중전이 아니었다. 숙의였다.
놓으라는 그의 말에도 그녀는 그의 손목을 잡고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당돌하게 쳐다만 보았다. 대체 국왕이 뭐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자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찾지 마세요."
"지금 뭐라고 했어."
"찾지 마세요, 중전마마."
어린 것이 당돌하다 생각했다. 그는 그녀의 손목에서 자신의 팔을 빼내며 입을 열었다.
"찾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 교태전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이동혁!!!"
다급하다는 듯 언성을 높여 말을 한 그녀였다. 그런데 우습게도, 국왕의 발걸음이 멈췄다. 숙의는 지금이다 싶었는지, 하지 않던 말을 모조리 하기 시작했다.
"그년의 정인입니다. 전하께서도 잘 아시겠지요 그자를."
"…"
"중전이 궐에 들어오기 전부터 서로 사모해오던 사이였습니다."
"…허?"
"그렇게 뻔뻔한 자를 어찌 궁에 또 들이려 하심인지요. 제 발로 나갔으니, 찾지 마세요."
재현이 교태전 문을 등지고 자신을 바라보는것이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줄 알았는지 그녀는 말을 다다다 내뱉었다. 재현은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한 채 그녀의 말이 끝나기만을 가만히 기다렸다. 중간에 한 번 허. 하고 웃을 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대체 그런 년을 뭐하러 찾으려고 하ㅅ…"
"압니다."
"…예?"
"안다구요."
그녀의 말을 잠자코 듣고만 있던 그가 여전히 표정은 풀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안다구요. 그런 그의 말에 그녀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물었다. "그게 무슨 ㅁ…"
"이동혁과 중전이 그런 사이라는 것쯤은, 나도 안다고."
그의 말에 숙의는 몸이 굳었다. 알고 있었다니, 그가 이동혁과 그녀가 그런 사이인 것을 알고 있었다니. 그리고 그는 쓴 웃음을 지은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간다.
"내가 예부터 태어나고 커온 대궐입니다. 내 집에서 일어나는 일 하나 쯤 내가 모르겠습니까."
"……"
"대체 왜 이리도 나와 중전을 가만히 두지 못 하여 안달인겁니까."
"…"
"그 년? 상식이 없으신가. 욕을 하실 거면 백성의 편에 서서 하세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말하던 그가 다시 표정을 굳혔다.
"역사상 가장 외로운 비가 될 것입니다."
"……전하…."
"기록에는 그깟 사내인 국왕의 눈길조차 받지 못한 여인이라 적힐 거예요."
"……"
"다시 백성의 편에 서십시오."
그 말을 한 후 그는 교태전을 나왔다.
백성의 편에 서라는 말, 다시 백성으로 돌아가라는 말이었다.
즉, 폐비였다.
교태전을 나온 그는 내금위장을 포함한 그녀를 찾는 데 도움이 될만한 모든 사람들을 불렀다. 그리고 말했다. 중전을 찾으라고.
다 알고 있었는데 왜.
그러면서도 눈감고 있었는데, 어디로 갔어. 무엇이 또 너를 힘들게 해서….
장갑을 보았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녀가 손에 끼던 장갑. 검은 색 장갑. 평소 이동혁이 끼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교태전에 이동혁이 자주 드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모른척 했다. 내가 원해서 한 혼인이니까. 그저 옆에만, 중전의 자리에 앉아만 있어 달라고.
너무 많고 큰 것을 바란 것일까, 내가 너무 부담을 줘서 그런 것일까. 모든 것은 다 내 탓이다.
바람이 이렇게도 찬데, 어딜 간 거야.
*
"이민형?"
눈을 뜨니 저녁쯤이었다. 언제 잠이 든건지, 아까 누워있다 그대로 잠들었나 보다. 어제 이민형이 왔다 간 후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밤을 지새우다시피 했다. 눈 밑에 올라왔던 다크서클은 면경을 보니 좀 없어진 것 같기도 하고. 배 위에서 자서 불편할 줄 알았는데, 나름 푹 잘 잤다.
창문을 열어 밖을 보니 배가 멈춰 있었다. 육지 같은데… 문을 열고 이민형을 부르니 이태용이 그릇을 들고 가다 그것을 자신의 몸종에게 맡기고는 내게 달려온다.
"잘 잤어?"
"응 덕분에?"
웃으며 이태용과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이민형이 저 멀리서 빨리 안 오면 밥 없다며 재촉하기 시작했다. 아니, 거 참 좀 늦을 수도 있지 사람이 밥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니야.
이민형을 따라 배에서 내려 식당에 들어갔을 떄였다. 문 밖에서 누군가와 얘기를 하며 붙잡혀있는 그가 왜 안 들어오나 싶었지만 배가 고프다는 이태용의 말에 발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테이블에 앉아 국수같은 것을 먹는데, 이태용이 뭐라 말하더니 밥을 구해 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엇이냐는 듯 물으니 그가 입을 열었다.
"밥을 먹어야지!"
그의 귀여운 모습에 이태용을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했다. 진짜 잘생겼는데 냉미남이라 좀 무서웠었는데. 그 때. 하며 웃다가
“뭐 하냐? 아주 수줍어 죽을라하네”
“아니거든?!”
"뭘, 수줍어서 기절하려 하더니만”
“뭐라는 거야! 아니라니까?”
“와 곧 이제 두 번째 정인 되겠다. 그치? 사람 많은 저잣거리에서 이러고 있으니 서러워서 사나 내가.”
그러다 문득 이동혁이 이태용에게 한 질투가 생각이 나 갑자기 밀려오는 추억에 묵묵히 고개를 처박고 밥을 퍼먹어야 했다.
"…다 먹었으면 가자."
밥을 먹지도 않은 이민형이 들어와서는 다 먹었으면 가자고 재촉한다.
"너 아직 밥 먹지도 않았잖아!"
"속이 별로 안 좋아."
"야 그래도 밥은 먹어야 ㅎ…"
"싸갈게. 빨리."
갑자기 재촉하며 내 손을 잡아 이끄는 이민형이 이상해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식당을 나가려 하는데,
"중전마마."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모른 척 지나가려 했는데, 어느새 아씨보다는 이 소리가 익숙해 진 것인지 중전마마 하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가시지요,"
"…안 가요."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를 쳐다보니, 그는 내게 어떡할래. 하며 물었다.
"…전하께서 말씀만 나누자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나누신 후에는 어떻게 하셔도 상관 없다고…."
고민하는 내 표정에 아까 말을 꺼냈던 사람이 말했다. 자세히 보니 내금위장이었다. 그의 말에 나는 이민형을 보며 말했다.
"미안해. 갔다가, 갔다가 다시 가자. 청나라로."
"그래."
그는 내 말을 전적으로 따랐다. 어차피 다시 오게 된다 해도 이곳에 묵을 것이니, 이민형은 이태용에게 숙소를 잡아 제 몸종들을 재우라 명했다. 그리고는 내금위장에게 말한다.
"국왕에게 전해. 중전 지금 한국 간다고."
"…"
"대신 나도 함께, 우리 배로 따로 간다. 뭘 믿고 애를 혼자 보내."
그의 말에 내금위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한국행 배를 탔다.
넓은 배에 이민형과 나, 그리고 내금위장이 붙여준 여러 명의 병사들 뿐이었다. 내금위장을 포함한 몇몇 사람들은 본인들의 배를 타고 우리 뒤쪽에서 바짝 붙어 오고 있는 중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배를 탄 거면, 열 두 시간은 족히 걸렸을 터인데, 그만큼의 시간을 배 위에서 다시 보내야 한다니 어차피 밤이고 해서 차라리 자는 것이 빠를 것 같았다.
"미안해 이민형.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었다."
그는 웃어보이며 들어가라고 했다. 병사 두 명이 방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와 문을 닫기 전에 그에게 인사를 했다.
"이민형!"
"왜."
"잘 자!"
이민형은 가던 길을 멈춰 뒤돌아 나를 보았고, 내 인사에 웃음으로 화답했다.
"잘 자라."
그렇게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한국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국왕이 나를 반기겠지. 그런 그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나와야 하나 생각을 했다.
아니, 그의 얼굴을 보고서도 내가 나올 수 있을까 대궐을.
아 몰라.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오늘 하루종이 잠만 자네 싶었지만 다시 눈을 감았다.
잠을 청했다
*
네가 없어졌다고 했다. 네가 궐에서 없어졌다고. 심지어는 교태전의 물건들이 몇 개 없어진 채로.
궐을 나갔구나.
힘들었던 것일까. 몇 개월간 해오던 궐 생활이. 하기야 갑작스레 들어온 영악한 후궁을 보면 그럴만도 하다 싶었다.
마음을 차분히 먹기로 했다. 가만히 앉아 촛불 몇 개의 밝기에 의지한 채 자신의 도포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이동혁 바보. 진짜 얄미움.’
‘손이 예쁜 이동혁은 밥이 맛있는 곳을 안다.’
늘 가지고 다니기만 했지 네가 내 혼인 소식을 듣고 집 앞에 온 날. 그 이후로 펼쳐 보지는 않았던 한지였다. 현재의 너를 사랑하는 것에 충실하기 위해서. 전의 추억은 아픔만 가져옴을 안 후 보지 않던 한지였다.
내 작은 세상에 와 준 네게 감사했다.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네게 감사했다. 낯선 이곳에서 날 사랑해준 네게.
그리고 이불 속에 들어가 눈을 감았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가지런히 먹고
잠을 청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현대로 보내야 할 너였기에,
오늘은 새벽에 눈이 오지 않을까 싶다.
*
"어우 추워…"
이상하게도 꿈을 꿨다. 초간택에 참가했을 때, 이동혁을 처음 만난 날, 이민형과 이태용과의 저녁식사, 이동혁과의 하루, 국왕과의 혼인식, 이동혁의 노란 국화와 눈물, 국왕의 사과 눈싸움, 이민형과의 떠남까지. 몇 개월 간 꾸지 않던 꿈을, 오늘에서야 꿨다. 이곳에서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몸을 웅크렸다. 이불을 목 끝까지 올린 채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몸이 좀 따듯해졌다 싶으니 목이 말랐다. 일어나기는 너무 싫었다. 얼굴이 시려웠기 때문에. 이불 밖의 공기는 꽤 찼다.
"이민형!!"
하는 수 없이 크게 이민형을 불렀다. 앞에 병사들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다시 청나라로 가면 안 볼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이민형은 대답이 없었다. 분명 물을 갖다 달라고 하면 툴툴거려도 갖다 줄 그였기에, 다시 그를 크게 불렀다.
"이민형!!!"
그러자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왜 나무와 신발이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지?
"누굴 그렇게 불러!!"
엄마 목소리였다.
팟-, 눈을 떴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내 방 천장이었다.
! 작가의 말 ! |
벌써 애몽 완결을 쓸 날이 코앞까지 왔네요 ㅠㅠ.. 네, 바로 다음 편이 완결입니다 헝헝. 완결은 아마 현대에서 남주 찾는 거겠죠?! 제게 돌을 던지지 마세요 T^T.. Q&A는 화요일이나 수요일 밤 11시 좀 넘어서 올릴 예정이예요! 많이 봐 주세요!!
오늘 좀 늦었죠? 헝헝. 쓸 것도 많고 움짤 업로드도 잘 안 돼서 ㅠㅠㅠ 오타 많을 수도 있으니까 감안하시고 봐 주세요! ㅠㅠㅠㅠ! 제가 사실 독방 서치를 쵸금 자주 하는데 ㅠㅠ 좋아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랑해요 헝헝.
♥ 늘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