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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XX/택엔] 첫사랑 보관소 | 인스티즈

 

 

 


첫사랑. 말만 들어도 마음 속 한구석 어딘가에서 간질간질한 느낌이 피어오르는 단어.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짊어질 아픔으로 남을 수도 있는 존재.









[ 첫사랑 보관소 :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보관해드립니다.]





학연은 대기업의 사원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특이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 취미라고 하기엔 이미 학연의 삶에서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해버렸지만.

첫사랑을 보관하는 일. 학연이 회사일을 마치고 저녁 즈음에 퇴근을 한 후부터 시작되는 일이였다. 처음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단지에서 시작했지만, 점점 사람이 많이 몰리는 탓에 근처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빌렸다. 사람들은 첫사랑과 헤어지고 나면 학연을 찾아와 첫사랑과의 기억이 담긴 물건들을 학연에게 맡기고 갔다. 어떤 때는 대여섯살 쯤 되보이는 어린 꼬마아이가 자신의 집을 찾아와 상자를 내민 적도 있었다. 학연은 밝은 미소로 아이의 머리를 스다듬어주었고, 이건 자기가 잘 보관하고 있겠다며 아이에게 밝게 웃어주었다. 아이를 돌려보낸 학연이 집에 들어와 상자를 열어봤을 땐, 서툰 솜씨로 그려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한 쌍의 그림이 보였다. 학연은 그림 하나하나를 꺼내보며 피식-웃었다. 귀여워. 이렇게 풋풋하고 예쁜 첫사랑의 기억들을, 사람들은 왜 버리려고 하는 것일까. 학연에게 물건을 맡기고 간 사람들 중에서는 한참 뒤에 학연을 다시 찾아와 물건들을 도로 가져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대로 버려두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학연은 아무리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아픈 첫사랑이라도 그것의 소중함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사람들이 버리고 간-다신 찾으러 오지 않을 사람들의-물건들까지 깨끗하게 정리해 올려두었다.







철컥, 끼익-


" 어서오세요."


늦은 저녁,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학연이 책상 위로 얹어놓듯이 엎드린 머리를 들곤 제 사무실 들어오는 남자를 주시했다. 손에는 조금 큰 갈색 상자를 둘고 쭈뼛쭈뼛 학연에게 걸어오는 남자의 표정은 마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 어두웠다. 하긴, 깨져버린 첫사랑의 기억을 보관해주는 자신의 업무상 해맑은 손님이 올 리가 없지만. 남자는 들고있던 갈색 상자를 아무 말 없이 내려놓았다. 맡기시는거죠? 학연이 상자를 받아들며 물었다.


" 아니요. 버려주세요."


..네? 학연이 시선을 남자에게로 옮겨 당황한 듯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흔적도 안 남게, 없애주세요. 다소 당찬 말이였지만 학연은 남자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고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끝이 좀 안좋았나보네. 학연은 속으로 측은하다는 생각을 하며 애써 미소지었다.


"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아주 소중한 기억이에요. 소중한 기억을 흔적도 없이 버리는건 너무 잔인하지 않을까요?"
" ......."
" 전 보관하는 사람이지, 기억을 태워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시 찾아가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제가 잘 보관하고 있을게요."


싱긋 웃어보이는 학연에게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곧장 학연의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학연은 남자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굳게 닫혀버린 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동안 학연을 찾아왔던 사람들은 대부분 소중하게 잘 보관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가곤 했지, 이렇게 무작정 없애달라는 손님은 처음이였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증이 생긴 학연이 남자가 내려놓고 간 갈색 상자를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여러개가 쌓여 두터워진 편지지, 여자가 선물로 준 것으로 예상되는 운동화 한 켤레, 그리고 한 곳에 모아놓은 편지지와 달리 유일하게 구석탱이에 꽂아놓은 작은 편지 한개. 학연은 이게 뭘까,하는 심정으로 편지를 열어 몇줄 안되는 내용을 읽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마지막줄에 의해 남자의 사정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었다. 나 다른 사람 생겼어. 그랬던거구나. 여자가 못됐네. 아직 첫사랑과의 이별의 아픔을 겪어보지 못한 학연은 편지를 읽으며 미간을 찌푸리다 실소를 터뜨렸다. 첫사랑의 아픔을 겪어보지도 못했으면서, 사람들의 깨진 첫사랑을 보관해주고 있는 자신이 어딘가 모순된듯 해 보였다. 그러고보니 웃기네. 학연이 터진 웃음을 입가에 매달고선 의자에 등을 기대며 기지개를 켰다. 뭐, 첫사랑의 아픔은 아니더라도 첫사랑의 아름다움은 마음껏 만끽히고있잖아. 띠리링-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학연은 상체를 일으켜 휴대폰을 집었다. [운이♥] 사랑스러운 두 글자가 화면을 채웠다. 흐흥. 학연이 기분좋은 콧노래를 짧게 흥얼거리며 수신버튼을 눌렀다. 사랑하는 내 애인, 그리고 나의 첫사랑.


" 여보세요, 운아!"
' 차학연. 뭐하고있었어.'
" 그야 당연히 내 취미생활 하고있지. 맞다 운아, 아까 어떤 손님이 왔다 가셨는데 이것저것 담긴 상자를 주더니 아예 없애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잘 달래줬지. 그 사람 가고 나서 상자 열어봤는데, 대충 보니까 여자가 바람났나봐. 안타깝다, 그치."
' ...응.'
" 우린 절대 그러지 말자. 우린 평생 사랑할거니까, 그치."
' .......'


뭐야, 왜 대답이 없어? 학연이 금세 날카로워진 어투로 쏘아붙이듯 말하자 택운이 어딘가 힘이 빠진 목소리로 어.하고 대답했다.


' ....근데, 너 오늘도 바빠?'
" 음...응! 밀린 업무도 있어서 집가면 또 해야되거든. 내일은...내일두 바쁠 거 같다."
' ...알았어.'


뚝. 택운이 제대로 끝나지도 않은 대화를 어정쩡하게 끊어버렸다. 항상 눈이 돌아갈정도로 바쁜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며 저를 달래줬던 택운이였는데, 오늘은 그 다정함이라곤 온데간데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한 기분에 휩싸인 학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턱을 괴고 손가락을 볼에 까딱까딱 두드렸다. 그러고보니 택운이 얼굴 못본지 일주일이 넘었네. 요즘들어 더 보고싶다했더니. 그거때문에 화난건가? 근데 내가 딴남자 만난다고그런 것도 아니고, 바쁜걸 어떡해. 학연은 보고싶다거나 만나자는 말을 항상 직접적으로 하지 못하는 택운을 떠올리며 아니겠지,라고 중얼거리다 잠시 눈을 붙였다.





*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비가 쏟아지는 날이였다. 이제 막 회사일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온 학연이 아직 초저녁임에도 불구하고 잔뜩 흐려져 어둑어둑한 하늘을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씨이, 엄청 많이오네. 비 오는거 싫은데. 학연이 한숨을 쉬며 옆으로 메고있던 가방을 열어 안을 뒤적거렸다. 어... 어? 내 우산. 가방 안에서 만져지는 거라곤 서류들과 지갑뿐. 이런 때를 대비해서 항상 우산을 들고다니는 학연이였는데, 아침에 늦잠을 자는 바람에 급하게 뛰쳐나오느라 그만 깜빡했나보다. 학연이 구겨진 인상을 더욱더 짓눌렀다. 으앙. 사무실까지 어떻게 가지. 학연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지는 굵은 빗줄기를 한참동안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운이...운이 보고싶다. 이 상황에서 백마 탄 왕자님처럼 택운이 짠!하고 나타나 저에게 우산을 씌워준다면 정말 좋을텐데. 학연이 다시한번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메고있던 가방을 자신의 머리 위로 들었다. 그리고는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다행히 사무실이 회사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닌 덕분에 미친듯이 달린 학연은 약 5분만에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짧은 시간이였지만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에 흠뻑 젖어 물에 빠진 까만 생쥐꼴이 됐지만. 학연은 물줄기가 흐르는 어깨를 손으로 탈탈 털어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어버린 옷, 가방덕에 그나마 덜 젖었지만 공기를 가득 채운 습기 때문에 땀범벅이 된 앞머리. 학연의 꼴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였다. 학연은 무거운 몸뚱아리를 겨우 이끌고 물줄기를 떨어뜨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제 사무실이 위치한 2층에 다다른 학연이 문을 열러 문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툭,하고 발에 걸려오는 것에 제 발 앞에 놓여진 장애물을 향해 시선을 내리꽂았다. 갈색 상자. 영업시간을 착각한 손님이 놓고가셨나보다-하고 생각한 학연이 상자를 집어들고 사무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물기를 대충 털어낸 학연이 갈색 상자를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이번엔 뭐가 들어있을까. 뭐 서로 선물해준 목걸이나 반지, 옷가지들, 그리고 편지 한뭉텅이겠지 뭐. 학연은 뻔하다는 듯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학연은 그렇게 뚜껑을 걷어낸 채로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신이 예상했던 대로 상자 안에는 작은 보석이 반짝반짝 빛나는 반지와 맨투맨, 그리고 한 쌍의 커플의 환한 미소가 돋보이는 사진 여러장이 들어가 있었다. 다만, 그것이 모두 학연이 택운에게 선물해줬던 것들이라는 사실은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 학연은 동그랗게 커진 눈을 한참동안 상자에서 떼어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일까, 이게. 택운이가 왜. 항상 자신이 좋을대로 이끌려주던 택운이 왜. 갑자기 벅차오르는 감정에 학연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뚜껑을 잡은 손은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불안한 학연의 눈동자도, 무거운 빗줄기가 쏟아져내린 학연의 어깨에도. 젖은 옷의 물방울들이 단단하게 모여 제 몸을 옥죄어오는 듯 했다. 어제 저녁의 택운과의 통화가 학연의 머리속을 스쳐가듯 떠올랐다. 어제도 내일도 못만난다는 말에 잔뜩 힘이 풀린 목소리로 서운해하던 그. 생각해보니 한두 번이 아닌 일이였다. 항상 바쁘다는 핑계로 택운과의 시간을 자주 거절해버린 자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지친 걸까. 제가 택운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비수를 꽂았다는 사실이 죄책감으로 바뀌어 학연의 온 몸을 쿡쿡 찔러왔다. 멍청이. 힘들면 말을 했어야지, 멍청이... 갈색 상자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투명한 액체가 투둑, 툭, 떨어졌다. 어쩌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꾹꾹 눌러담은 택운보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런 택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의 진심을 항상 내쳐버린 자신이 더 멍청한 게 아닐까. 학연은 무언가가 자신의 목구멍을 꽉 막은 듯 쉽게 나오지 못하는 말을 겨우 끌어냈다. 미안, 미안해... 학연은 흐느끼듯이 심하게 떨리며 새어나오는 말을 멈출 수 없었다. 미안해 택운아...미안해... 학연은 그렇게 자신과 택운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담은 상자를 앞에 두고 한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깨져버린 첫사랑의 아픔. 학연은 처음으로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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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이고 ㅠㅠ이거 독방에서 밨어요 ㅠㅠㅠ 지쨔 ㅠ너무좋다 ㅠㅠㅠ 독방에서 작가님추천대로 어쿠스틱 콜라보 첫사랑보관소를 들으면서 읽었는테 풋풋하지만 가슴아픈게 ㅠㅠㅠ 찌릿찌릿하네요 ㅜㅜ 너무 잘읽었어요 감사합니다 ㅠ
10년 전
단풍나무
아아 그 소재쓰니는 저 아니에요! 주워가라고 하시길래 너무 좋아서 줍줍했습니당... 잘 살리지 못한거같아서 약간 아쉬운데 잘읽으셨다니 감사드려요!
10년 전
독자2
아이고그만 실례를 해버렸네요민망해라 그래도 풋풋하고 따뜻하고 조금 감상적이게 만드는 좋은 글이었어요 그래도 너무너무 고마워요!!
10년 전
독자3
아...ㅠㅠㅠㅠㅠㅠ아련우울하네요ㅠㅠㅠ안그래도 밖에비와서 감상적이었는데 상태저격당햇어여 재밌게보고가용
10년 전
독자4
아련해요..마지막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처음으로 첫사랑의 아픔을 겪는 학연이라니..역시 첫사랑은 안 이뤄진단말이맞나봐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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