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쟁 속에서 모든 싸움을 지휘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난 자연스럽게 총과 칼을 잡았다.
당연한 것이였다.
아버지는 항상 내게 말했었다.
빼앗는 싸움이 아니라 지키는 싸움을 하라고.
살생을 위한 전쟁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전쟁이여야한다고.
그렇게 아버지는 조용히 생을 마감했다.
-
" 뭐하고 있어! 달려!! "
" 김종인! "
씨발. 작게 읊조리며 욕을 내뱉던 남자가 달리면서 총기를 난사한다.
후퇴를 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뜨거워진 그의 총구는 멈출 줄 몰랐다.
오랜 전투덕에 너덜너덜해진 옷 사이로 잘잡힌 근육이 보였지만 한껏 찡그린 얼굴이 앳되보여
그가 어른이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투소총을 사용하던 그가 탄환을 장전할 시간이 부족했는지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꺼내어
자신을 추격하는 적들의 머리에 정확하게 명중시킨다.
" 저거저거...달리는 중에도....지 애비를 닮아 천재가 분명하다니까. "
" 이쪽! "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전투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던 아이는
군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않아 영급장교에게 까지 소문이 퍼졌고,
그들은 그의 전투를 확인하자 마자 그를 하사로 임명했다.
13세. 김종인.
그가 군에 들어온지 2년이 채 안되었을 때의 이야기다.
0년도.
올해가 되자마자 죽은 원수로 인해, 그를 보좌하던 사람이 원수가 되었다.
그래서 다시 0년도가 되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년도는 10년을 채 넘지 못했고,
제대로 된 주먹질 조차 하지 못하는 멍청한 고위급들은 자신의 목숨하나 지켜내지 못한채 하루하루를 벌벌 떨며 살아가고 있었다.
태어나는 숫자보다 죽어가는 숫자들이 많아 군에선 점점 입대 나이를 낮췄고, 인간은 그에 맞게 빠른 속도로 진화해갔다.
성장이 매우 빨라진 인간들은 9세가 되면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1년 후 10세가 되는 날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성인남자의 모습이 되고,
적어도 50세가 될 때까지는 육체적인 변화가 없다.
그리고 성인이 되는 그 순간부터 50년 까지는 건장한 성인 남성으로 살아가다가 후에 천천히 노화가 진행된다.
김종인이 살고있는 시대는 그러했다.
최대치까지 올라간 인간의 진화.
그리고 전쟁.
이 어수선한 세상이 짧지 않았음을 알려주고있다.
**
" 마실래? "
" 됐어. "
거의 이기고 있었는데. 중얼거리며 얼굴 옆에 있던 술잔을 손으로 가볍게 밀었다.
아까 후퇴할 때 장면이 눈에 아른거려 이를 아득 깨물자 옆에 앉은 박찬열이 내 어깨를 두어번 토닥인다.
그렇게 딱딱하게 위로해도 소용없다며 눈썹을 치켜올리고 째려보니 뭐가 웃긴지 크게 소리내어 웃는다.
나무를 이용해 임시로 만들어 놓은 길다란 의자가 눈에 띄어 걸어가 앉았다.
지독한 놈. 쫒아와 조용히 앉는 박찬열의 눈을 쳐다보며 욕설을 지껄이자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는다.
웃으면서 사람을 죽이고 피를 보며 즐거워 한다는 미친놈.
전투를 제외한 모든 생활 중에서 내 유일한 말동무였다.
" 야..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아냐? "
" 몰라. "
" 수류탄을 딱! 던지면서, 야! 피해 이 새끼들아! "
" ...... "
재미없는 새끼. 박찬열은 마지막 그 한마디와 함께 내 뒷통수를 내리쳤고, 물을 마시고 있던 나는 덕분에 사래가 들렸다.
" 콜록...아 씨...컥...너 이리와...이..개새끼... "
" 내일 살아서 보자고! 난 자러간다! "
유유히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씩씩대다가 아무런 이득이 없는 짓인 것 같아 물잔을 바닥에 두고 숙소로 향했다.
다른 곳에 비해 높은 병력으로 꽤 큰 건물이 숙소로 지정이 되었고, 보통 한 방에 열 명 정도가 생활하지만
어릴 때부터 혼자 생활한 버릇과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결국 작은 독방을 얻어냈다.
먼지와 피로 더럽혀진 몸을 빨리 씻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문을 여는 순간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 숨을 죽였다.
한동안 계속되던 그 소리가 멈추고, 본능적으로 권총을 잡은 뒤 방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 하? "
어이없게도 방 안에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침대 모서리에 머리를 박은 듯, 이마가 잔뜩 부어있는 상태에서 울먹이는 아이와
들고 있던 권총을 다시 집어넣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버린 나.
그 둘만 존재할 뿐이였다.
**
" 됴? "
아이가 내게 뱉은 첫마디였다.
작은 몸에 비해 커다랗게 뜬 눈은 신기한 것을 발견한 것 처럼 물체를 따라 도르륵 굴리듯이 쳐다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가끔 나를 보며 싱긋 웃을 뿐 별다른 행동을 하진 않았지만 난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만약 적들이 보낸 아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문 앞에서 조용히 지켜본지 벌써 몇시간째.
" 됴.... "
" 응? "
잠깐 졸고있는 사이에 아이가 내 앞으로 다가와 깜짝 놀라며 뒤로 한발 물러나자 울먹거리며 손을 펼쳐 잼잼 거린다.
안아달라는 포즈인지 나를 보며 팔을 쭉 내밀다가 길게 하품을 한다.
찬바닥에 아예 드러눕는 아이를 한참동안 보다가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금새 잠이 들었는지 조용히 눈 감고 숨을 쉬는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은 뒤,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해야할까.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를 어린 아이를.
-
오랜만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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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