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가 변화를 알아차렸던 날은
그가 나를 떠나갔던 그 날 이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생겼다며
추하지만 목소리 하나만은 아름다운 나와 함께한 지난 날들이
더 이상흔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며 떠나갔었습니다
그는 떠났습니다
*
그가 떠난 후의 며칠간은
그 전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뚱뚱했고
고기 반찬을 좋아했으며
얼굴에 바르는 것은 스킨과 로션이 전부였습니다
그 날도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을 고기반찬과 함께 먹었으며
식사가 끝난 뒤에는 설거지를 하고 양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왠지 그날따라 제 얼굴이 더 하얘진 것 같고
더 갸름해지고 여려보였습니다
기분 좋은 착각이라고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후에 생각해보니 기분 좋은 변화였습니다
그것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착각이 아니라
기분 좋은 변화는 계속 되었습니다
바뀌는 제 모습에 신이 나 스스로
생전 시도해보지도 않았던 다이어트라는 것을 처음 해 보게 되었고
먼 곳에 있는 동생에게 물어가며 화장품도 사 모았습니다
그간 저주받았다고 생각했던 제 하체도
이제는 제법 각선미라는 것을 자랑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기뻤습니다
눈도 커 지고 코도 오똑해지고 턱도 갸름해지고
외모에 관심이 없던 제가 생각해도 이 것은
놀랍고 기분 좋은 변화였습니다
*
*
지금은 그렇게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 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저는 누가 봐도 예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예쁜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제 옆에는 명문대 출신의 남자친구가 있고
저 역시 예전만큼 공부에 충실하지 않아 학점 관리는 소홀해 졌지만
좋은 학교에 재학 중입니다
전 성공한 사람입니다
저는 성공했습니다
*
예전에 절 떠난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차였던 그 당시에는 덤덤했는데
왜 이렇게 떨리고 답답하고 무섭고 서럽고 서운하고 억울한 지 모르겠습니다
*
"그래 살 빼고 고치더니 옆에 돈 많은 놈 꿰차고 웃기지도 않게 뻗대고 다니더라니까. "
"벌레같은 년."
*
예전부터 의문으로 여기던 것이 있었습니다
왜 가족들은 제게 변화가 생기기 전에
스스로 변화를 만들도록 부추키지 않았을까요?
제가 사고로 누워있던 대학교 새내기 시절
제가 잃은 기억은 무엇이었을까요?
*
이제 답을 알 것 같습니다
*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어렸을 때부터 약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약때문에 제 외모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을 테지요
*
완전하게 떠올랐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는 동네에서 예쁜 아이로 유명했었습니다
주변의 사랑만을 받고 자랐던 저는
날이 갈수록 오만해졌던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그런 단순한 문제에 의한 성격 장애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제 이상한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점과
어린아이답게 자랑하기 좋아하던 그 시점이 맞물려
어린아이답게 자랑하기 좋아하던 그 시점이 맞물려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주변의 모든 걸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저 혼자 온갖 기괴한 일들을 벌이고 다니는 것을
아버지께서 알아채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을 겁니다
얼굴은 부풀어 올랐고 살은 쪄가며
먹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지고
예전처럼 주변이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영특했던 제 머리를 믿고 공부를 하니 성적도 쭉쭉 올랐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외모에 신경쓰지 않고 공부를 하니 성적이 잘 오르는 구나.
자랑스러운 우리 딸 대학 가기 전까진 꾸미는 건 일체 안 된다."
...법처럼 따랐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흘러 명문대에 합격한 뒤
그래도 추한 모습의 제가 어머니로서 안쓰러우셨는지
이제 약을 그만 복용해도 되겠다고 말씁하셨습니다
약을 그만 둔 지 3개월만에 사고를 당했고
꼼짝없이 병원에 누워있었습니다
"안 되겠어요...기억을 지워주실 수 있나요?"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이
부분 부분 기억이 사라져 이상한데도
그런가 보다 하면서 살았습니다.
마치 학생 때로 돌아간 것 처럼 부모님말씀에 순종적으로 따르는 추한 딸
부모님의 소개에 의해 만난 이도 그였고요
하지만 부모님께서 해외로 가 버리신 뒤 바로 이별 선언을 했던 것 같습니다
시기가 얼추 맞는 것 같아요
*
제 회상은 끝났습니다
제 발 밑에 벌레처럼 기고 있는 진짜 벌레를 보고 있으니
제 삶이 지나가면서 눈물이 납니다
불쌍한 나
변화는
부모님께서 떠난 뒤 약을 끊으면서 생긴 거라는 거까지 깨닫고 말았습니다
동생도 그들도 모두 밉습니다
날 유리벽에 가둬두고 조롱한 느낌입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 어떻게 변할 지 모르는 날 두고 간 그들의 잘못입니다
가둬 둘 것이라면 끝까지 가둬두어야 했습니다
나는 이 벌레를 제일 먼저 밟았고
이제 다음은 그들의 차례입니다
내게 벌레를 붙여주고
세상이지만
세상이 아닌 곳에 가둬 둔 그들에게 복수하러 갈 것입니다
*
나는 쾌감에 울부짖습니다
소리지르는 벌레의 목소리도
고왔던 제 목소리도 더 이상 아릅답지 않습니다
*
이 블랙코미디도 이제 끝났습니다
나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나는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