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하리만치 깨끗하게 닦아놓았던 창문에
하얗게 낀 성에사이로 비춰오는 밝은 아침햇살에
눈을 뜬 민석이 채 뜨지못해 인상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불을 몸에서 걷어내자 느껴지는 한기에
다시 몸에 이불을 돌돌 싸맨 민석이 바람이 새어오는
창문께를 보며 이불을 몸에 감싼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따뜻한 온기가 도는 손을 들어올려 창에 서린 서리를 손으로 대충 닦아내자
이젠 익숙하리만치 펼쳐진 창밖의 풍경이 민석의 손이 지나간 사이로 들어난다.
꽤나 밝은 바깥풍경에 울리지않은 알람이 의아해져 휴대폰 화면을 켜자
알람이 울리기까지 아직 10분이 남은 시간이였다.
오랜만에 알람에 의지하지 않은 채 스스로 일어난 것 치곤
개운한 느낌이라 애벌레처럼 이불로 몸을 싸맨 채 창밖을 바라보다
따뜻한 입김을 불어 서리가 녹아내린 부분을 채워넣는 의미없는 행동을 한 후
몸에서 이불을 걷어 낸 민석이 방문을 나선다.
"일어났어?"
"아주머니는?"
곧 민석이 일어날 시간이라는 걸 알고있는지
대충 이미 차려져있는 식탁에 김이나는 국그릇을 내려놓던 경수가
민석을 보며 맑게 웃어보인다.
"오늘은 좀 일찍 나갔어. 여기 반찬 다 차려놨다고
국이랑 밥만 데워서 먹고 가래."
"그래..?"
"일로와서 앉아. 밥먹게"
국그릇을 식탁의 마주보는 자리에 하나씩 놓은 경수가
전자레인지에 돌려놓은 밥을 꺼내와 민석이 앉은 자리앞에 건네었다.
개운한 기분과는 다르게 입맛이 돌지않는지 민석이
별 감흥없이 식탁을 바라보다 젓가락을 집어들어 밥을 깨작거린다.
아직 민석과 약간 어색한 것인지 괜히 숟가락 한가득 밥을 뜬 경수가
반찬을 얹어 입에 집어넣곤 물과함께 씹어 삼켜내려간다.
"팍팍 좀 먹어. 초상났냐"
"..."
"보는 나까지 입맛 떨어진다."
"..미안해."
"미안 할 건 없고."
무엇이 아직까지 그렇게 불편한지
민석이 경수를 대하는 태도는 여지껏 조심스럽기 짝이없다.
무표정으로 눈을 내리 깐 경수가 숟가락을 자리에 놓곤
의자를 끌며 일어난다.
작은 소란에 눈을 올려 경수를 바라 본 민석이
마주치는 시선에 젓가락을 놀려 반찬을 깨작거린다.
"집으로 가 봐."
"응?"
무슨 소리야.
경수의 말에 젓가락질을 하던 손을 삐끗 한 민석이
반찬을 집느라 내리깔았던 시선을 들어올려 경수를 바라봤다.
"이만 집에 가봐도 돼."
"...아..미안해.. 내가 너무 오랫동안 폐를 끼쳤지?"
"그런 뜻 아냐."
"응..?"
상황파악이 안된다는 표정을 여실히 짓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이곳에 있겠다는 뜻을 내비치면 자신을 성가시게 보지 않을까,
고민하는 민석이 앞으로 어디로 가야하나 짧은시간 작은머리를 굴리는 소리가
경수에게까지 들리는 듯 해 작게 웃어보인다.
"루한."
"...?"
"치료 끝났나봐."
"뭐어..?"
갑작스런 경수의 말에 심장을 얻어맞은 듯한 느낌에,
바보같은 소리를 낸 민석이 주체할 수 없이 뛰는 심장때문에
먹었던 밥을 토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들은건데.. 치료 다 끝내고 요양중인 것 같아.
치료 끝난지 꽤 된 것 같은데 이제서야 소식 들었어.
그니까 넌 이제 루한의 집에 가서 생활하고있으면 어떨까 싶어서.."
"..."
"여기가 편하면 여기 있어도 절대 상관은 없는데..
루한이 돌아와서 텅 빈 집을 보면 쓸쓸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상태는 어떻대..?"
"그건 나도 잘 몰라. 그냥 이제 어느정도 생활 할 수 있다는 소식만 들었어.
우리 아빠가 루한네 부모님한테 들은 거라던데
고작 담당형사일 뿐인데 이 이상 물어봐봤자 이상하게 생각 할 것 같아서
더는 못 물어봤대."
"아.."
"빨리먹고 챙겨. 학교가야지.
루한 집 갈거면 학교 마치고나서 대충 짐 싸고 가도 돼."
"..."
"방학식인데 그렇게 축 쳐져있으면 어떡하냐.
신나서 방방 뛰지는 못 할 망정"
시간이 많이 흘러 어느덧 겨울방학식이 다가왔다.
그 동안 루한에 대한 소식은 듣지 못했다.
민석이 루한의 어머니에게 모진 행동을 당했던 그 날
한국에선 치료가 어려웠던 탓인지 루한이 미국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호전이 되자 중국에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는 소식까지.
원래 루한의 국적이 중국이여서 편의를 생각해서 그런것도 있고
부모를 따라 한국에 온 것도 있지만
학업에도 신경을 써야했던 루한의 요양차 중국으로 간 것일거라고 경수가 말을 해주었다.
물론 경수는 루한이 학업에 그렇게 신경쓰는 편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루한이 미국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은 민석은 세상이 끝난 것 처럼
울기도 하고 자살소동을 벌이려고 하기도 하는 둥 경수의 속을 뒤집어놓는 행동을
했지만 이내 체념한 채로 경수를 따라 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평범한 생활에 적응 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루한이 중국으로 아예 간 것이 아닐거라고
치료가 끝나고 몸이 다시 회복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 올 거라고
민석을 달래 온 경수지만 사실 확신하진 못했다.
경수 본인도 현재 루한과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였기에.
"입 맛 없어. 바로 씻을래"
"그래그럼."
젓가락을 놓고는 방으로 들어가는 민석.
경수가 둥글둥글한 눈매를 들어올려 그런 민석을 바라보다
혼자 조용히 웃음지었다.
기분 좋은 아침이였다.
"민석아, 마치면 운동장에서 만나자!"
"응. 빨리 들어가"
경수네 교실 앞 복도에서 헤어진 민석이 자신의 교실로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잠깐동안 학교를 나오지 않아 민석이 자퇴를 한 줄만 알고있던 친구들이
어느날부터 다시 돌아 온 민석을 변함없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무슨일이 있었던 거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그냥 대충 아파서 못 왔던 거라고 둘러댔지만
난감해보이는 민석의 표정에 더 이상 캐묻지않고 그냥 넘어가주었다.
비록 담임선생님께 한 소리 들었지만 경수의 아버지가 지금껏 있었던 일을 살짝 귀띔해놨는지
크게 혼이나진 않았다.
"일찍왔네 김민석"
"방학식인건 귀신같이 알고 오늘따라 눈이 일찍 떠지더라고"
"귀여운놈"
뒷문을 열고 민석이 제 몸만한 가방을 메고 들어오자
바로 민석을 반기는 친구들.
"아까 백현이 왔던데"
"백현이가? 왜 또?"
"몰라"
종대랑 같이 매점을 다녀왔는지 빵을 베어먹고 있던 찬열이
감흥없이 내뱉더니 빵을 먹고있는 종대를 흘끔 보고는
민석을 툭툭 치고는 낙타흉내를 내며 빵을 먹는다.
"큭큭..."
민석이 숨죽여 웃자 뭔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린 종대가
찬열을 보고는 급격히 흥분한다.
"뭐야 너, 왜 그러고있어!"
"뭐가. 빵 먹을 땐 개도 안건드려"
"아니 왜 내 흉내 내면서 먹냐고오!"
"니 흉내낸거 아닌데. 낙타가 제 발 저리네"
종대가 자리에 빵을 집어던지고 일어나자
웃긴지 빵을 제대로 삼키지도 못하면서 웃던 찬열이
상황파악을 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도주한다.
"잡히면 죽는다!!"
찬열과 종대를 웃으면서 바라보던 민석이 아까 전
백현이 다녀왔다는 찬열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수를 통해 친해 진 백현에게 민석도 자신의 반 친구인
종대와 세훈과 찬열을 소개시켜줬는데,
그 이후부터 백현이 이상하게 민석의 반에 자주 찾아오기 시작했다.
민석은 그냥 새로사귄 친구들이 좋아서 찾아오는 거겠지, 하고 쉽게쉽게 넘겼더랜다.
복도로 나오자 종대에게 응징을 당하고 있는 찬열이 보였다.
덩치 큰 놈이 얻어맞고 있는꼴이 웃겨 피식피식 거리며 백현과 경수의 반 앞으로 가자
어떻게 알았는지 백현이 창문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다.
"놀랐잖아!"
"어어, 민석이 안녕! 그나저나 찬열이 왜 맞고있어?"
"맞을 짓 했어"
말 하고는 백현의 교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민석.
그런데 백현이 창문에 내밀었던 머리를 쏙 집어넣더니
뒷문으로 달려나와 찬열과 종대 쪽으로 뛰어가버린다.
그런 백현을 멍하니 보다 입을 불퉁히 내민 민석이 그대로 교실 안으로 들어가
안경을 쓴 채 책을 읽고있는 경수에게 다가간다.
"경수야"
"어어, 놀러왔어?"
"응. 백현이가 나 찾아왔대서 왔는데
쟤 나 오니까 눈길도 안 주더라"
"백현이가 요즘 사랑에 빠져서 그래"
"뭔 헛소리야 넌 또"
안경을 벗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민석을 바라보던 경수가
말을 이었다.
"이제 척하면 척 보이거든"
"뭐래.."
"민석아 매점가자"
아침 제대로 안 먹어서 배고프지?
아침밥을 깨작거리던 민석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지
자리에서 일어나 민석의 손목을 잡곤 매점으로 가기위해 교실문을 나선다.
복도로 나오자 뒤엉켜 실랑이를 벌이던 찬열과 종대 사이로
이젠 백현까지 끼어들어 있었다.
"나 메론빵!"
"우유는 안 먹어도 돼?"
"바나나 우유도.. 사주는 거지?"
바나나 우유도 주세요! 하고 경수를 바라보며
베실베실 웃는 민석이를 못말린다는 표정으로 바라 본 경수가
계산을 한 후 민석의 품에 빵과 우유를 들려주었다.
"많이먹고 살 좀 쪄라. 볼살 어디갔어"
"몰라몰라"
"루한이 너 보면 놀라겠다. 살 엄청 빠져서"
"..."
"넌 통통해야 귀여운데"
요즘은 학교생활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니
많이 활발해진 민석이지만 루한이 미국으로 간 후
마음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살이 쪽 빠져버린 민석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경수.
원체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고 하던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렇게 되어 버렸을까 싶어 경수또한 마음이 편치않았다.
"그래도 너 성격 많이 밝아져서 다행이야.
네가 이런면도 있을줄은 몰랐어"
"..."
"너희 반 친구들 진짜 재밌고 착하더라. 세훈이랑 종대랑
찬열이..라고했나. 걔네한테도 고마워해야겠네."
활발한 성격탓에 백현은 벌써 민석의 친구들과
곧잘 어울려 지냈지만 무뚝뚝한 첫인상을 지닌 경수를
민석의 친구들이 약간 어려워한 탓에 백현만큼 친해지진 않은 경수였다.
"3학년 되면 루한이랑도 같이 놀면 재밌겠다."
"그러게.."
요즘들어 괜찮아 진 것 같다가도 루한의 이야기만 나오면
축축 쳐지는 민석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이내 가까워진 교실 문 앞에
먼저 교실안으로 들어가 보겠다고 말 한 경수가 민석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뒷문을 열고 들어가버린다.
"야아 김민석! 여기서 뭐 하냐.
어? 빵이네. 나 주려고 사왔어?"
아직까지도 장난을 치고 있었던 것인지 빵과 우유를 들고
멍하니 경수의 반 문 앞에 서있던 민석의 뒤에서
갑작스레 어깨동무를 해오는 찬열에 놀라 눈이 떨어져 굴러갈 듯 크게 뜬 민석이
눈 앞 가득 차오는 찬열의 얼굴에 짜증을 온 몸으로 부리며 떨어져나간다.
"야, 민석이꺼 뺏어먹지마!"
"아 왜, 딱 봐도 나 주려고 사온거구만"
"아니거든"
뒤이어 달려오는 종대와 백현을 보곤
어휴..이 비글들.. 하곤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꼽곤
찬열을 피해 반으로 향하는 민석.
//
짤은 찬열이 낙타짤로..
이제 완결까지 한 편 정도 남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너무 침침한 분위기로 간 것 같아
학교로 돌아 온 민석이 위주로 밝게 써 보려고 노력했는데
괜찮은지 모르겠네요..하하
눈치 빠른 분들은 백현이가 사랑에 빠진 상대가
누군지 알아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심미)
이제 빨리 완결내고 텍스트 파일을 만들어야 겠어요
매 화 챙겨봐주시는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