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대회 당일 날이었다. 하는 것도 없으면서 꼴에 설레는 내가 미웠다. 왜 운동을 못하게 태어났는지 생각을 하다 보니 학교에 도착했다. 친구들과 같이 등교하는 학생들. 나는 친구들과 등교를 꺼려한다. 내가 친구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다. 진짜. 그냥 내가 혼자 가는 게 편하고, 내가 남에 맞춰 그 시간에 꼬박꼬박 나가는 게 힘들 뿐. 하지만 변백현과 오세훈이 등교하는 걸 보면 왜 저는 세훈이와 등교를 못 하는가? 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변백현과 오세훈 등교하는 걸 보면 그날 운이 안좋다. 시발 슬럼프 생겼어. 근데 어쩌나 지금 등교하면서 봤는데.
"어어? 도경숭!"
"경수 안녕."
변백현 시발! 저 새끼 일부러 나 아는 척한 거야! 변백현이 오세훈을 뒤로하고 나에게 달려온다. 아 오지마 지금까지도 충분히 마음 아팠으니깐!
"경숭이 반티 입으면 귀엽겠다!"
응 시발. 입고 세훈이한테 잘 보일 거야.
"너도 입으면 귀... 귀엽겠다."
그렇지? 히히. 바보같이 웃는 변백현에게 인사를 하고 빨리 반으로 올라갔다. 아, 오늘 일진 존나 구려.
반에 올라가 날 반겨주는 친구는...
"도경수우우!"
뭘 기대합니까? 김종대.
"아, 꺼져."
"도경수 나 반티 입으니깐 귀엽지?"
우리 반티는 그냥 검은색 바탕에 빨간 리본 넥타이가 그려져있는 반팔 티였다. 윽, 김종대가 입으니깐 징그러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올려 의사를 표현해주고 자리에 가 반티로 갈아입었다.
"아 도경수 존나 귀여워."
두근.
"존나 유치원생 같잖아!"
두근두근.
오세훈은 참 사람을 들었다 놨다 잘 한다. 얘가 나 싫어하나? 생각이 들 때 저렇게 떡밥을 주시면... 물됴기 바로 물잖아여!
"도경수가 뭐가 귀여워. 그냥 길 가는 초딩이네."
내가 전생에 변백현한테 죄를 진 건가? 왜 갑자기 끼어들어서 불타는 내 심장에 물을 끼얹고 지랄인 거지?
"변백현 너 순천으로 와라 묵사발이 뭔지 보여주마 시발 새끼야."
아, 도경수가 나 죽이려고 해! 개 처럼 뛰어다니는 변백현을 마취 총으로 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1초에 3번씩 했다.
운동장으로 나오라는 방송에 아이들은 방송을 안 들은 것처럼 아주 천천히 운동장으로 나갔다. 그래 남고에서 무슨 체육대회야 존나 땀내나기만 하지. 하지만 세훈이한테서 나오는 땀은 성수야. 나는 시방 한 마리의 짐승이여! 그렇게 세훈이가 땀 흘리며 축구를 하는 상상을 하며 운동장으로 나갔다.
"경수는 내 옆에 앉아야지. 그렇지 경수야?"
"응!"
내가 웬일로 변백현 옆에 앉는 걸 환영하냐면.
"귀요미 경수 안녕~"
오세훈이 있기 때문. 변백현이랑 오세훈이랑 같이 앉아있는 게 짜증 났다. 그래서 세훈이 옆으로 갈려고 했는데...
"경수야 어디 가. 내 옆에 앉아!"
아... 시발 존나 도움 안 돼... 변백현 질투 존나 심하다! 세훈이 옆에 앉는다고 세훈이가 닳어? 응?
"어... 응 그래."
히히 경수야~ 계속 내 옆구리를 찌르는 변백현이다. 짜증이나 째려보려고라도 하면. 왜 내가 뭘? 하며 눈 가리고 아웅이다. 그렇게 변백현의 공격들을 무시하고 세훈이를 감상했다. 와 잘생겼다...
"야 도경수 왜 나 안 봐. 오세훈만 얼굴이냐?"
변백현이 정색을 하며 화를 낸다. 왜 적반하장이야? 어이없네.
"내가 뭘."
"됐어 말을 말자."
변백현이 정색을 하고 1학년 아이들의 계주를 본다. 사실 보는 건지 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생각할수록 어이없네. 아 내가 너무 세훈이를 뚫어져라 봐서 그런가... 그렇게 어색한 공기 속에서 2학년 계주가 시작된다는 방송이 들렸다.
"야... 도경수...! 나 응원해라...?"
"어? 어엉? 응!"
변백현이 왠지 모르게 씁쓸한 미소로 운동장으로 뛰어나간다. 뭐야 쟨 사람 측은지심 생기게... 응원해주지 뭐. 변백현은 응원을 안 해도 잘 뛸 놈인 건 안다. 엄청 빠르니깐. 하지만 저렇게 부탁하는데 뭐...
"세훈아, 변백현 응원하러 앞으로 가자."
"엉? 그래 가자."
세훈이가 내 어깨에 팔을 올린다. 으아 설레! 세훈아... 세훈이의 매력에 또 심취해버린 나는 변백현이고 응원이고 다 생각나질 않았다. 흐흐, 후니가 내 어깨에...!
"야! 도경수!! 나! 응원! 하라고!!!"
운동장에 서있는 변백현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아오 귀청 떨어지겠네. 예예~ 세훈이가 내 어깨에 팔 올려서 질투나냐? 그래도 난 후니에게 내 어깨를 내어줄 거야. 내 영혼까지 빼가라 세훈아.
변백현은 달리기를 잘해 마지막 주자로 뛰게 됐다. 우리 팀이 이길 거 같아. 뿌듯한 생각을 하며 첫 번째 주자를 보는데...
"도경수우! 나 응원해!!!"
뭐야 누가 김종대 저 새끼 첫빠따로 넣었어? 시발 말아 먹었네. 탕! 총소리가 나고 김종대는 열심히 뛰... 뛰려고 노력했다. 푸흐흑! 아 시발 존나 웃기네! 세훈이는 바닥과 한 몸이 되어 박장대소를 했다. 근데 저건 운동 못하는 내가 봐도 개웃긴다. 김종대가 내 앞으로 뛰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안면근육으로 뛰는 사람처럼 뛰어왔다. 안면근육만은 우사인 볼트네. 그래도 응원은 해줘야겠지...?
"기... 김종대... 종사인볼트...!"
응원했긴 했다. 존나 소심하게. 널 응원하기엔... 내가 너무... 쪽팔린다 종대야... 결국 김종대는 청팀에게 뒤처졌다. 하지만 그 뒤로 우리 팀은 승승장구했다. 이대로 일등을 하나 싶었는데. 마지막 주자 앞이 박찬열이었다. 아 진짜 이거 순서 누가 짰는데? 응?
"박찬열 호구 새끼야!!! 존나 다리는 장식품이냐? 그 정도 다리를 가졌으면 잘 뛰 댕기기라도 해야지 씨이발! 좀 달리라고!"
열이 뻗쳐 나도 모르게 존나 소리 질렀다. 근데 진짜 화남. 쪽팔리지도 않는다. 세훈이는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꺽꺽 웃으며 카카오스토리 동영상을 찍고 있다. 세훈이 웃음은 왜 이렇게 러블리하냐... 그렇게 멍을 때리고 있는데 변백현이 바통을 받았다. 미친, 박찬열 거의 반바퀴나 차이 나게 달렸네? 하지만 변백현은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바통을 받고 뛰었다. 변백현이 졸라 잘 뛰긴 하나보다. 거의 반바퀴 차이 났던 게 이젠 거의 따라잡을 거 같다. 그렇게 막상막하로 뛰는데 변백현과 청팀 주자가 우리 앞으로 뛰어온다. 변백현이 입모양으로 '응원해!'라고 말하는 거 같아 바로 소리를 질렀다.
"변백현! 우리 변사인 볼트! 변백현이 최고다!!"
그 발악이 스타트라도 된 거처럼 변백현이 청팀 주자를 앞질렀다. 앞지른 순간 변백현의 배에 하얀 끈이 닿았다.
결국 우리 백팀이 승리했고 변백현은 나 잘했냐며 자꾸 몸을 비벼온다. 하지만 행복했다. 아 개 행복해.
"변백현 잘했어. 시발 달리는데 존나 멋졌어!"
"진짜? 나 그럼 맨날 달리면서 살까?"
변백현이 감동 먹은 듯 진지하게 말을 꺼낸다. 뭐래. 웃으며 변백현에게 쿨피스를 줬다.
"마셔 인마. 선물이다."
"도... 도경수...!"
나 이거 안 마실 거야. 우리 집 가보야 이건. 변백현이 우는 시늉을 하며 쿨피스를 휴지로 닦는다.
"우리 소중한 쿨피스... 때 타면 안돼."
그리고 재미없는 남고의 축구시합이 열렸다. 세훈이가 축구를 나간다니! 허억 허억. 숨이 가빠진다.
"도경수."
"아 왜."
"너무해."
변백현이 짜증을 낸다. 얜 또 왜 갑자기 그런다냐.
"뭐가."
시선은 올곧게 운동장에서 뛰어다니는 세훈이를 보며 말했다. 변백현은 그게 마음에 안 드는지 손으로 내 얼굴을 잡아 자기 쪽으로 돌린다.
"왜."
"너...진짜..."
변백현이 한숨을 쉬며 내 얼굴을 잡은 손을 다시 내린다.
"짜증 나."
변백현이 화가 났나 보다. 괜히 신경 쓰여 세훈이가 뛰는 것도 못 보고 애꿎은 신발코만 탁탁 쳤다.
"야... 왜 그래..."
"..."
"내가 뭐 잘못했냐...? 있으면 미안."
"..."
"야 말 좀 해봐..."
"도경수."
"으응?"
"그냥 주위 좀 둘러보라고."
엥? 웬 주위? 주위를 살펴봤지만 뭐 별 이상한 점은 없었다. 코파는 박찬열은 있었지만.
"바보야 그 주위 말고."
"응? 그럼 뭐?"
옆에도 좀 봐줘. 변백현이 말을 꺼낸 순간 전반전이 끝났다는 소리가 났다.
세훈이가 친구들의 격려와 음료수 등을 받으며 스탠드로 올라온다.
"경수야 이거 마셔."
세훈이가 내게 음료수를 준다. 왠지 받으면 안되는 기분이었다. 알 수 없는 기분에 찜찜했다.
"아 나 목 안 말라. 아까 물배 체웠거든 하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변백현이 살며시 웃는 걸 봤다. 변백현이 웃는 걸 보니 내 기분도 살짝 풀어지는 기분이 든다.
"후반전 시작할 거 같다. 나 갈게?"
"엉 잘 가버려."
"세훈이 힘내!"
후반전이 시작되고 세훈이를 보려는 내 마음과 다르게 행동은 변백현과 말을 하고 있었다.
"야 나 합기도 졸라 잘해."
"그래서?"
"그래서 내가 이 어깨가 된 거다."
변백현이 킥킥 웃으며 내 어깨를 만지작거린다. 시발 이게 일부러...!
"아 우리 됴도르! 쏴리!"
맞는 거 보면 아픈 척은 거 같다. 뭐야 얘... 그 마조..? 막 그런 거 아니야...? 맞는 거 좋아하는 거 같아! 그렇게 변백현과 열심히 대화를 하다 보니. 후반전 마저 끝나버렸다. 세훈이가 생각나기 시작하고 세훈이를 보니 울상이다. 헐 왜 울상이지? 설마 하고 점수판을 봤는데... 아... 졌네...?
"세훈아! 괜찮아 이거 다음에 줄다리기 잘하면 되지!"
"새끼 난 너 질 줄 알았다. 그래서 늬들 경기 안 보고 경수랑 놀았잖어."
진짜야...? 세훈이가 상처받은 얼굴로 날 본다.
"헐 아니야!"
"뭐래 도경수! 나랑 존나 우리말 나들이했으면서?"
씹망 좆망 시망. 아... 세훈이에게 실망감을 줘버렸어... 도경수 병신 새끼 죽어! 도경수의 H.E.A.R.T 에 큰 어택을 받았다. 아아 나는 살아갈 가치가 없다.
변백현과 오세훈이 줄다리기를 하는 걸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아... 난 호구야... 세훈이가 실망이 많이 큰 거 같은데 줄다리기도 지면 어쩌지? 하는 내 생각과는 반대로 줄다리기는 시작과 동시에 청팀이 콩나물처럼 줄줄줄 우리 쪽으로 끌려왔다.
줄다리기를 이기고 세훈이한테 팔짱을 끼며 들어오는 변백현이 보였다. 햇살에 비춘 둘에 모습은 내가 봐도 잘 어울렸다. 순간 세훈이한테 다가가지 못한 건 저인데 자기가 너무 변백현을 미워했나. 이 공은 세운 원인은 모두 나 때문인 거 같다는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모든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 나는 교실로 들어와있었다.
"변백현 잘못이 아니야."
다 내가 잘못한 거야. 시발 오늘 걔네 등교하는거 봐서 그런가봐. 거울을 보니 저의 얼굴은 눈물범벅에 콧물 범벅이었다. 아 나 이렇게 뛰어온 거야? 순간 창피함이 몸을 휘감았다. 시발 쪽팔린다. 혹여 세훈이가 봤을까 걱정도 된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이 순간에도 세훈이한테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내가 어이없었다. 그렇게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도경수!"
변백현.
"도경수는 울면서 뛰어가도 조낸 빠르다."
내가 존나 뛰어서 니 따라갔는데도 너가 없어져있어서 찾아다녔잖아. 무릎을 모으고 쭈구려있는 내 앞에 변백현이 마주 보고 앉는다.
"울지 마."
변백현이 손을 올려 눈물과 콧물을 닦아준다. 얘는 참 볼 때마다 내게 모순된 행동을 많이 한다. 세훈이 좋아하면서 내가 안 밉나?
"도경수. 넌 왜 니 생각만 하냐."
"뭐."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변백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연다.
"눈치 없.."
"도경수!!!!"
변백현이 말을 잇는 순간 교실 문을 박차고 김종대가 들어온다.
"도경수 왜 울어 내가 막 많이 놀려서 그르냐? 미안해 잘못했어. 다신 안 놀릴게 울지 말란 말이야!"
김종대가 남자답지 못하게 날 안으며 훌쩍거린다. 내가 미안해 경수야 엉엉엉. 다신 안 구럴게 엉엉엉.
"떨어져. 너 때문에 운거 아니야."
진짜? 바로 얼굴 낯이 환해지며 웃는 김종대다. 그럼 나 너 놀려도 되는 거야? 다시 내게 붙어 쫑알댄다.
"김종대 너 때문에 분위기 다 망쳤다."
"내가 뭘!"
"됐고, 도경수 오늘 우리 집에서 잘 수 있냐? 할 말도 있고 그래서 그래."
"나도 나도! 너네 집에서 잘래!"
"넌 안돼. 도경수 되지?"
할 말이라면 분명히 세훈이에 관한 것일 거다. 그래 그냥 이렇게 된 김에 속마음이나 풀자! 해서 잔다 그랬다.
"끝나고 집 가서 입을 옷 가지고 우리 집 와. 우리 집 알지?"
모르면 데리러 갈게. 됐어. 변백현을 뒤로하고 김종대와 함께 다시 운동장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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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바버야... 다음편에 행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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