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법이... 뭔데?”
형은 틀어막은 입을 풀어 주었다. 입이 자유롭게 되자마자 묻는 말에 준비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준비물이라니.... 불길한 생각이 슥 지나갔다. 설마.. 또 그건가...? 준비물 이란 소리를 듣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 하며 머리가 쭈뼛하게 선다. 또 날 그렇게 괴롭히겠다고? 됐어! 싫어! 몸을 바둥 거린다. 짧은 욕지거리와 함께 다가온 형이 서늘한 표정으로 우리 콩 밖으로 나가기 싫구나..? 혼잣말처럼 속삭인다.
“...아..아니..아니야. 해. 한다고”
그래.. 그래야지. 그래야 착한 콩이지. 톡톡 내 볼을 가볍게 두들기곤 그 준비물이 가득 든 가방 하나를 가져온다. 찌이이익 거친 쇳소리와 함께 지퍼가 열린다. 형은 그 속에 손을 넣고 아.. 어떤게 좋을까..? 짧게 끝나는거...? 오래 걸리는거.. 단순한게 좋을까.. 복잡한게 좋을까....? 난 그냥 빨리 끝내는 걸로 하면... 안될까...? 조심스럽게 형에게 제안한다. 형은 대답 대신 입꼬리만 살짝 올린다. 한참을 뒤적거리다 옳지 이거지. 그것을 꺼내고 나에게 다가온다.
***
“....야 좀 이상하잖아. 나쁜 남자가 아니라 변탠데 이건?”
“내가 형인줄 알아? 음란한 생각만 하니까 이상하게 들리지”
***
“자..잠깐 이 상태로? 너무 한거 아냐? 적어도 손이라도 풀어 주라고!”
“그럼 무슨 재미야. 이쪽이 좀 더 스릴 넘치고 짜릿하지. 안그래?”
역시 저 새끼는 미쳤다. 미친게 분명하다. 이 꼬라지로 뭘 하자고...? 안돼 절대 못해 벌떡일어나서 뛰쳐나가고 싶지만 칭칭 팔다리가 묶인데다가 나중에 돌아올 보복이 두려워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할 말이 많지만 하지 못하고 낑낑 거리는 나를 보며 형은 빙글 빙글 웃는다. 지금 상황과 안 어울리는 평온한 미소와 함께 내 앞에... 지난 번 보다 더 잔인한 보드게임을 내려..
***
“뭐라고...?”
한창 흥미 진진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듣던 형이 맥을 끊는다. 아 뭐야 완전 몰입했었는데 흥 다 깨졌잖아.
“그 상황에서 그게 왜 나오냐?”
“에이~ 형하고 좀 매치가 되게 만들어 보라면서. 아까는 변태 어쩌고 하더니 왜 건전하게 가니까 심심하냐? 조용히 하고 들어봐봐”
나하고 매치가 된다고 그게...?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다문다.
***
보드게임을 내려놓으며 룰은 이미 알고 있지? 그 상태로 세가지 게임을 하고, 이기면 널 풀어 준 뒤에 자유시간을 주고 지면 내 뜻 때로 오늘 단 둘이 재미있게 노는 거야. 신나서 카드를 섞는다. 이게 말이 돼? 다리는 그렇다 치고 손은 풀어줘야 게임을 해도 할거 아니야. 따지고 싶은건 많지만 어쩔 수 없이 응한다. 처음엔 꼼짝 못하고 졌지만 이게 여러번 반복 돼다 보니 점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힌다. 두고 보자 임대갈. 오늘은 반드시 내가 이기고야 만다.
***
“....야 나쁜 남자가 아니라 비열한 남자잖아 그건. 비열도 아냐 정신적으로 아픈 놈이잖아.”
“비열이나 나쁜이나 미친놈이나 거기서 거기지.”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데?”
그 다음이야 뻔하지. 아무리 내가 뛰어나도 팔을 재대로 못 쓰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플레이가 가능하겠냐? 지는 거지. 그리고 형은 날 풀어 주지 않고 괴롭히는 거야. 너그럽게 대하다가고 맘에 안들면 또 나랑 그 말도 안돼는 게임을 해서 날 휘두르고. 거기 까지 들은 형은 아 뭐야~ 나한테 뭐라고 하더니 너도 뭐 없는 거잖아. 막장이네 개막장. 김빠진 얼굴이다. 얼씨구 아까 형이 말한 스토리 보다는 훨씬 탄탄하구만 뭘.
“안 그럼 이건 어때?”
형이 그렇게 마음에 안들면..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 주면 돼지 뭐.
***
“...형 오늘 어디 가?”
“어디 가긴 어딜 가겠어 미팅 잡힌 거지. 계약 문제라서 좀 차려 입어야 돼.”
“..아 그래?”
평소답지 않게 빳빳한 차림이다. 머리에 힘도 주고. 나갔다 온다. 집 잘 지키고 있어. 평소처럼 입을 맞추고 나선다. 오늘따라 입술이 닿은 곳이 차갑다. 얼얼하게 마비가 돼는 느낌이다. 입술이 닿은 곳을 손가락으로 더듬거리며 쇼파에 앉는다. 춥다. 덜덜 몸이 떨려와 몸을 감싸 안고 그대로 눕는다. 눈이 시큰 시큰 아파와 눈을 감는다. 잠깐 눈을 감으려고 했던 건데, 그대로 푹 잠들고 말았다. 자고 일어나니 상태가 더욱 안 좋다.
감기에 걸린 것 같지도 않고.. 다른 이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몸이 무겁고 온 몸에 냉기가 돌아 부들 부들 떨린다. 바로 생각나는 사람이 형밖에 없어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라고 생각하고 입을 벙긋 였는데 목에서 나오는 소리는 어으...아... 신음 소리다.
“진호야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응...어.. 흠흠흠 아...아니...”
겨우겨우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답을 한다. 알거다 형은 내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아무리 갈고 다듬어 봐야 꺼끌꺼끌해진 목소리를 숨길 수 없었으니까. 잠으로 잠긴 소리와 상태가 안 좋아서 거칠어진 목소리를 귀신처럼 구분해 내는 사람이니까. 평소 형이라면 푹 자고 있어? 다정하게 말했을 거다. 하지만 오늘의 형은 아. 그래 알았어. 나중에 집에서 보자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안다 형이 요즘 바쁘다는거.. 그래서 잠깐 내 전화를 미뤄 둘 수 있다는거. 그런 데도 눈물이 난다. 익숙해 져서 일까? 형에게 받는거. 필요할 때 언제나 달려 오는거.. 아님.. 뚝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는 내 귓가에 ‘요환씨 누구야?’ 형의 전화기 너머 들리던 목소리가 제생 된다. 요환씨 누구야? 요환씨 누구야? 요환씨.. 누구야? 목소리가 머릿속에 징징 울린다. 형은.. 과연 그 대답에 뭐라고 대답했을까? ‘어 아무것도 아냐.’ 듣지 않은 형의 목소리가 더 심하게 울려온다. 생각하니 말자. 눈물을 거칠게 닦아 내고 비틀 비틀 욕실 안으로 들어간다.
들어가서 세수도 하고.. 땀에 절은 몸도 씻으려 했다. 내 계획과 다르게 그대로 쓰러졌던 것 같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건 평소라면 형이어야 하는데, 익숙한 욕실 풍경이다. 아..으.. 피가 난 것 같진 않은데 그래도 쓰러지면서 부딪쳐 받은 충격으로 혹이 생긴 것 같다. 아.. 아파. 아프니까 눈물 나잖아. 울기 싫은데. 질질 눈물을 흘리며 몸을 씻은 후 부들 부들 떨면서 밖으로 나와 침대 속에 폭 들어간다.
자고 일어나 돌아누웠을 때. 당연하게 형이 있고 난 형의 품안에 파고 들어가 어제 왜 안왔어.. 나 사실 많이 아팟는데... 찡얼거리려고 했다. 하지만 형은 없다. 파고 들어가는건 이불속 돌아누운 내 볼에 닿는건 차가운 벽. 손으로 이마를 짚어 본다. 어제보다 더 열이 오른 것 같다. 벌써 아침 8시. 전화.. 할까 형한테...?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단축번호 22번. 형은 당장 0번으로 바꾸라고 난리를 부렸지만 난 꿋꿋이 아니 형은 22번이어야 되. 우겼다. 펄펄뛰는 형을 놀리며 즐거웠던 시간이 떠올라 또 눈물이 핑 돈다. 전화 거는걸 포기 하고 내려놓는 순간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형 왔어?”
콩 나왔어~ 하는 말없이 들어온 형은 문을 열고 들어와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피곤한 얼굴로 넥타이를 끌어 내린다. 내 물음에 어~ 대답하며 셔츠를 벗는다. 옷을 갈아입고 수척해진 얼굴로 털썩 침대에 눕는다. 형. 안으로 들어가 꼭 안는다.
“진호야.”
“응”
“..미안한데 내가 좀 피곤해서.”
“...어.”
침대에서 나온다. 아.. 배고파. 밥 먹어야지. 부엌으로 나와 혼자 밥을 먹는데, 몸이 안 좋아서인지 목에 밥이 막혀서 넘어가지 않는다. 국을 후루륵 마시고도 안 넘어가서 찬물을 벌컥 벌컥 마신다. 겨우 겨우 넘긴 밥이 형의 핸드폰 벨소리에 올라오고 ‘...어.. 나야.’ 다정한 형의 목소리에 몸서리 친다.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 속안에 있는걸 다 게워낸다.
“형.”
“응.”
“나한테 할말.. 없어?”
다시 한번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형에게 다가간다. 형은 아니 그런거 없어. 진호야 미안한데 아까도 내가 말했지만 내가 피곤해서... 뒤척이는 형을 두고 거실로 나가려다 다시 안으로 들어온다.
“...거짓말.”
“어?”
“피곤한게 다야? 나 보기 싫은건 아니고?”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네가 보기 싫어?”
거짓말. 다 거짓말. 알고 있다. 형한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거.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만나게 된지 알수 없지만 한 두달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형은 달라졌고, 달라진 형에게 소중한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거. 참고 참았다. 그럴 수도 있지 뭐. 한번쯤은.. 한 눈 팔수도 있지. 우리가 벌써 몇 년인데.
***
“잠깐.”
“왜?”
“야 우리가 몇 년 짼데 라니. 그럴수도 있지 라니. 정말 그렇게 생각해?”
형이 울컥한다. 뭐야 어느 부분이 마음에 안드는 건데? 내 물음에 아니.. 난 그렇게 생각 안하니까 너 정말 그렇게 생각 하냐고. 부루퉁한 모습에 웃음이 난다. 아 진짜 그냥 가정이잖아 가정. 형을 다독인다. 내가 그렇게 생각 한다는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잖아 안그래?
“....그..렇긴 한데. 정말 너 그렇게 생각 하는거 아니지?”
“그래. 여기서 그만해?”
“..어..? 아니 계속해봐. 그래서?”
***
좀 더 잘해 준다면 내가 노력한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노력도 해보고 말도 붙여 봤지만 형의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묻고 싶었다. 뭐야 문제야? 뭐가 문젠데? 내가 뭘 고쳐야 돼? 치밀어 오르는 마음을 내리누르다 보니 몸이 탈이 난 모양이였다. 속이 턱턱 막히는 느낌. 형이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지만 막상 눈앞에 보이면 숨이 턱턱 막혀온다. 보고 싶지만 보고 싶지 않은 마음. 임요환 개새끼야 네가 인간이냐? 잘 먹고 잘살아라. 형의 곁을 떠나면 모든게 해결될 문제지만.. 형을 보면 어떻게 하면 나에게 돌아올거냐고 묻고 싶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를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낯설어진 형의 말투. 눈빛. 온기. 향기. 모든게 변했는데. 난 형의 사소한 변화를 다 감지하는데.. 내 눈빛과 말투 온기 역시 바뀌었을 텐데.. 형에 대한 맘이 변하지 않은 나는 형의 변화를 느끼는데 나에 대한 맘이 변한 형은 나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나 보다. 시바아아아알. 길게 말을 늘이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바닥이 엉덩이에 닿는 순간 눈물이 흐른다. 내 자신이 쪽팔리게 초라해서 눈을 가린다.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내 목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온 형이 묻는다. 몰라서 물어? 머리로 생각하고. 입으론
“...아니”
대답한다.
“그래?”
그래? 그래라고? 평소 같았음 너 나한테 그렇게 말했을까? 아니었겠지.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 그 질문부터 나왔을 거야. 넌 아직 내가 아픈 것도 모르는 구나? 가슴은 싸늘하게 식고 머리는 뜨겁게 달아오른다.
“형.”
“응.”
“.......나.. 알고 있는데.”
언제까지. 모른척 하고 있을순 없는 일이다.
“뭘?”
“...형한테 다른 사람 생긴거.”
***
거기 까지 딱 말하고 입을 다문다. 열심히 경청하던 형은 뭐야? 여기서 끊어? 장난쳐? 난 그럼 뭐라고 대답하는데? 다음은 다음엔 뭔데? 내가 써내려간 이야기속 임요환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방방 거린다.
“이 다음은”
“..이 다음은?”
“60초 후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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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제가 진지하고 치명적인건 정말 정말 못써서요 ㅠㅠ
치명적인 임을 써보고 싶은데 잘안돼네요 ㅠㅠ
오랜만에 찾아와도 반겨주셔서 감사하구요
ㅠㅠㅠ
부족한 글 귀엽다고 해주시는 분들 모두 새해에 큰복 받으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endif]--> 〈o:p>〈/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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