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의 계절 -
Prologue.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커다란 액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집사로 추정되는 여자가 내어준 차는 이미 원목 테이블 위에서 미지근하게 식은 지 오래였다. 낯선 집안에 발을 들일 때부터 바짝 긴장하였으나 벽면 가득 걸린 가족사진 속 익숙한 얼굴을 본 순간 머릿속은 하얘졌다. 중년 부부 뒤에 서서 부부의 어깨를 짚은 채 웃고 있는 세 명의 남자. 그 중 둘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왼쪽에 선 남자는 황민현... 그리고 저 애는 이름이 뭐더라. 퍼뜩 떠오르지 않는 이름에 가슴이 답답해지려는 찰나, 그의 이름이 떠올랐다. 강다니엘. 쉽게 각인될 법한 이름인데도 학교에서는 크게 접점이 없던 지라 떠올리는데 한참 애를 먹었다.
“짐은 저게 다예요?”
여자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 시선을 떼고 그녀를 바라보니 턱 끝으로 현관문 앞에 있는 내 짐을 가리킨다. 모서리가 깨진 캐리어 한 개와 그 옆에 덜렁 놓인 커다란 짐 가방 하나.
“아……. 많이 단출하죠.”
“짐은 올려다 드릴 테니 저를 따라오세요.”
여자의 말에 재빨리 일어나 무릎에 올려두었던 모직코트를 집어 들고 그녀의 뒤를 따른다. 거실은 어찌나 넓은지, 한참을 걸은 후에야 2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다다랐다.
“여기가 큰 도련님 방이에요.”
복도를 중심으로 가장 먼저 나타난 방을 지나며 여자가 말했다. 열린 방문 덕에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깔끔하게 정리된 모노톤의 실내가 시선을 끌었다. 그런 나를 의식한 것인지, 집사는 조금 더 빠르게 걷는다.
“여기 이 방이 막내 도련님 방, 그리고 제일 안쪽이 둘째 도련님 방입니다.”
굳게 닫힌 방문 앞에 서서 내뱉는 여자의 말에 머릿속은 점점 복잡해진다. 아직 거실에서 보았던 가족사진에 대한 의문이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채였다. 사진 속 나란히 선 두 사람은 형제일까. 설마.
“저기요.”
여자가 뒤를 돌더니 의아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 저기 그 가족사진 속 세 사람이 형제…….”
금세 미간을 구기고는 한참을 고민하던 여자는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꽤 날선 목소리로 되물었다.
“왜요?”
“아뇨. 그냥…….”
혹시나 말실수라도 한 건가 싶어 바닥만 보고 있을 때, 열쇠 꾸러미로 문을 여는 소리가 귀를 타고 흘러들어왔다.
“여깁니다. 아가씨가 머물 방.”
말끔하게 정리된 방문을 열어젖힌 채, 여자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쉬세요.”
말을 끝마치고 문을 닫고 나가려던 여자가 갑작스레 뒤를 돌아보더니 나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
진영은 신발을 벗어던지고는 거실로 뛰어 들어왔다. 원래대로라면 먹고 싶은 메뉴를 읊으며 가방을 내던지는 것이 수순이지만 오늘은 제 앞을 막고 있는 투박한 짐 더미에 말문이 막혔다. 진영은 제 앞을 막고 있는 캐리어를 슬쩍 발을 뻗어 밀고는 여전히 가방을 멘 채, 멀뚱멀뚱 짐 더미를 들여다보았다.
“김집사님. 이 짐 뭐야? 누구 왔어?”
진영은 이제 막 거실에 내려온 여자를 향해 물었다.
“아, 회장님이 말씀하셨던, 그 친구분 따님이십니다.”
“아 벌써 왔어? 나 배고파. 오늘은 일식.”
진영은 등에 맨 책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다. 책가방이라 해봤자, 그 안에 든 거라고는 태블릿PC가 다였다. 식탁으로 향한 진영은 냉장고를 열어 그대로 찬물을 들이켰다. 금세 다가온 집사가 진영을 황급히 제지했다.
“도련님, 큰 도련님이 싫어하시는 거 아시잖아요.”
“뭐 어때. 형 없잖아.”
“그래도 습관 되면 안 좋습니다.”
진영은 투덜거리며 물병을 내려놓고는 거실에 던져둔 책가방을 들고 제 방으로 향했다. 층계를 오르던 진영이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층계에서 내려오는 여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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