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코베리 - 좋은 이유
뭘 입을까, 뭘 입어야 되지. 이렇게 많은 옷 중에 입을 옷 하나가 없다니.
오늘은 웬일로 성운이가 깨우기도 전에 눈을 떴다. 눈부시게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나의 설렘을 배가 되게 하기에 충분했고, 세수를 하고 나와 마주친 성운이는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해가 서쪽에서 떴는지 확인해야겠다며 거실로 향했다.
성운이와 약속시간까지 약 한 시간 전인 지금, 10시 2분. 밥을 먹은 후 이 옷 저 옷 입어보며 옷만 고민하다가, 결국 자잘한 꽃 그림이 그려진 흰 원피스에 옅은 베이지색 코트를 입기로 결정했다. 얼굴에 쿠션도 몇 번 두드려 보고, 유튜브로 봐뒀던 데이트 메이크업을 따라해보려 핑크색 섀도우도 눈두덩이에 발라주고, 포인트는 볼터치라는 유튜버의 말이 떠올라 입에 경련이 일도록 인위적인 미소를 지으며 볼 위에 두어번 두드려주었다.
깜빡-
꺼졌다 켜지는 불빛에 잠시만- 이라고 짧게 대답한 뒤 마무리로 립스틱도 발라주었다. 아, 맞다 가방. 급하게 핸드폰과 지갑만 쑤셔 넣은 가방을 멘 뒤 방문을 살짝 열자
“ 가자. ”
씨익 웃는 성운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나온다.
“ 신났네, 신났어. ”
“ 응, 완전 신나! ”
차를 타려고 차 문 쪽으로 걸어가 손잡이에 손을 뻗자 내 앞으로 서는 성운이.
“ 운전 너가 해- ”
아, 여기 미국이지... 나와 성운이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고, 나는 반대편으로 돌아 조수석에 탔다.
“ 시내까지 두 시간은 걸리는데, 얘기도 못하고. ”
“ 괜찮아, 밖에 구경할게! ”
성운이랑 마주볼 수가 없어서 얘기도 못하고, 두 시간동안 창밖만 바라보고 있게 생겼다.
“ 넌 맨날 혼자 이렇게 다니겠네. 외롭겠다. ”
잠깐 나를 보며 괜찮아, 하고 또 살짝 웃는 성운이. 이럴 때보면 너 진짜 어른 같아.
“ 오오- 미국이다! ”
“ ... 너 계속 미국이었어. ”
밥부터 먹기로 하고 괜찮은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처음 와보는 미국의 시내는, 한국의 시내와 비슷했다. 햄버거집, 피자집, 레스토랑, 카페. 지금 내 눈에는 식당 밖에 안 보인다.
“ 아, 그거 여기 있어? ”
“ 응? ”
“ 파이브가이즈, 먹어보고 싶었는데! ”
성운이는 잠시만, 하고 핸드폰을 꺼내들어 입을 삐죽 내놓고 만지작거렸다. 가끔 집중할 때 나오는 입이 쪼꼬만 병아리 부리 같아서 웃으며 핸드폰에서 시선을 뗄 때까지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 왜 그렇게 봐- ”
“ 귀여워서. ”
내 말이 끝나자 갑자기 살짝 굳어진 성운이의 표정에 오히려 내가 당황해버렸다.
“ 기분 나빠..? ”
“ 아, 아니. 아니야. ”
당황해서 그런 거구나. 내 눈을 피하면서 코를 쓱쓱 만지는 성운이가 너무 귀여워서 다문 입 사이로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 가자, 차타고 가야 돼. ”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내가 먹고 싶어 했던 햄버거 집을 가자며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성운이의 옆으로 살짝 달려가 붙어서 걸었다.
여전히 내 눈을 피하면서도 수줍게 올라간 네 입꼬리가 보였어. 나 오늘 진짜 행복해, 성운아.
“ 피클 빼고! ”
“ Bacon burger, hold the pickles, please. "
" 영어 좀 한다? “
“ 몇 년을 살았는데- ”
이렇게 얘기하고 10분 정도 기다렸을까, 주문한 햄버거 세트 두 개가 나오고 우리는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 대박, 감자튀김. ”
“ 맛있어? ”
“ 응, 정말 진짜 완전 대박 리얼 헐. ”
그건 또 어디서 나온 말이냐며 큭큭 웃는 성운이에게 내 친구가 맨날 하는 말이라고 하나하나 알려줬다.
“ 정말, 진짜, 완전, 대박, 리얼, 헐. ”
“ 정말, 대박? ”
“ 아니! 정말, 진짜, 완전. ”
감자튀김을 몇 개 집어 먹고 햄버거 봉지를 열었는데 역시나. 당황스러운 크기의 햄버거가 등장했다. 나는 뭘 하나 먹어도 얌전히 먹는 법이 없기 때문에 햄버거는 진짜 친한 친구랑만 먹으러 오는데, 최대한 신경을 써 봐도 이 사이즈가 감당이 안돼서 결국 이미지 따위 포기하고(원래 없었지만) 마구잡이로 밀어 넣었다.
“ 애야 애, 다 묻히고 먹어. ”
“ 흐흥- 모꼬 따끄께(먹고 닦을게)- ”
입 안에 햄버거를 가득 넣은 채 입만 살짝 가리고 겨우 말하자 성운이는 휴지를 집어 내 입가에 가져갔다. 입 주변을 살살 닦아주며 뭐라 중얼거리는 성운이 입이 잘 안보여 응? 하고 다시 묻자 아니야- 라며 콜라를 집어 든다. 뭐야 싱겁게.
“ 쇼핑하자, 쇼핑! ”
내 한 마디에 한참을 돌아다녔는데도 마음에 드는 게 없어 쇼핑 포기를 선언하려고 하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 귀도리! ”
“ 응? 뭐야? ”
“ 이거 미국에도 있구나, 봐봐. 이케- ”
성운이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베이지 색 귀도리를 머리에 얹고 예쁘게 정리해서 메어주었더니 매장 거울을 보며 자기 머리를 몇 번 만진다. 그러고는 똑같은 색의 귀도리를 집어들어 나에게 메어준다.
“ 너가 더 잘 어울려. ”
“ 그럼 이거 사자! ”
그렇게 열심히 돌아다니다보니 벌써 어둑어둑해진 하늘에, 아쉬움만 남아 걷다말고 멈춰 서 버렸다.
“ 아쉬워. ”
“ 다음에 또 오자. 아니, 더 재밌는 데 가자. ”
놀이공원에서 떠나기 싫어 떼쓰는 아이를 달래듯 내 머리에 한 손을 올리고 나와 눈높이를 맞추며 다음을 기약하는 성운이에 왠지 더 떼를 쓰고 싶어져 입을 삐죽 내밀고 시선을 피했다.
“ ... ”
시려웠던 오른손에 온기가 느껴졌고,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맞잡은 두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나 너 좋아하나봐.
Epilogue.
또 다 묻히고 먹어, 26살이 아니라 26개월 같은 성이름. 다 먹고 닦겠다는 말을 무시하고 휴지를 집어들어 입가를 닦아주었다.
" 나 없으면 누구랑 살래. "
" 응? "
" .. 아니야- "
그러니까 나랑 계속 살자.
안녕하세요 여러분 ㅠㅠㅠ 너무 늦었죠 ㅠㅠㅠㅠ 요즘에 일이 많아서(핑계) 계속 미루고 미루다보니... 너무 늦게 찾아오게 되었네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 앞으로 열심히 할게요! 그래두... 댓글 많이 달아주시구... 암호닉 신청은... [암호닉] 이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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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밍 데이 하핫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