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꼬, 펀치 - Say yes
지금 이대로
02
한 번도 생각해본적 없다, 들을 수 없게 된 이후로는. 듣지 못하는 것에대한 단점은 항상 생각하고 느끼는데, 장점은,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본적이 없다. 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 원두를 갈았다.
들을 수 없게 된 이후로 하는 유일한 취미였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는 거의 매일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곤 하셨는데, 그 향긋한 냄새에 취해 한 번만 마시게 해달라고 아빠를 졸랐지만 커피는 어른들이 마시는 거라며, 좀 더 커서 아빠랑 같이 마시자 라는 아빠의 말에 의기소침했었다. 어느 날 아빠가 화장실에 간 사이 아빠의 머그잔을 살짝 들어 한 모금 마셔본 커피는, 향긋하고 은은한 원두의 향과 다르게 입 안가득, 코 속까지 느껴질 정도로 쓴내가 나는 약 같았다. 고등학생 때는 입시 준비때문에 믹스커피를 질리도록 먹어봤지만, 아빠가 즐기는 그 커피는 입에도 대본 적이 없다. 지금도 커피를 직접 내려먹기는 하지만 내 커피는 마지막에 설탕 한 스푼이 꼭 들어갔다,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는 증거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커피를 내리고 마지막 설탕 한 스푼, 한 손에는 흰색 바탕에 푸른 글씨로 Luceteㅡ라틴어로 ‘밝게 빛나다’라는 뜻이다ㅡ라고 새겨져있는 가장 좋아하는 머그컵, 다른 손에는 벌써 네번째 읽고 있는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있어줄래요’를 들고 이 집에서 가장 맘에 드는 2층으로 걸음했다.
좋다. 성운이 오기 전까지 이러고 있어야지.
아, 피곤해죽겠다. 오늘은 현장에 나갈 일이 많았다. 디자인 맡은 곳 가서 사진 찍고, 고객이랑 미팅하고, 구상 다 끝났는데 방향을 바꾸고 싶다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이게 고객들 신뢰 쌓는 일은 맞나. 평소 같으면 혼자 쳐박혀서 술이나 마실텐데 오늘은 위로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에 그나마 기분이 약간 나아졌다.
삑삑삑삑삑삑-
뭐하고 있을까, 이름이는. 이름이가 못 듣는 걸 알고는 있지만 한 번 흥얼거려본다, 성이름~~ 성이름~~~~
거실이랑 주방에 없고, 화장실은 불 꺼져있고, 방문은 불이 꺼진 채 열려있고. 순간적으로 약간의 불안감을 느꼈다. 아냐, 2층에 있을거야.
2층에 올라가자 바닥에 쓰러져있는 이름이 보였다. 그 순간 나의 뇌 속에 있는 모든 사고회로가 정지되었다.
“ 이름아! ”
불러봤자 들리지 않는 걸 알지만, 이름이의 이름을 부르며 곁으로 달려갔다. 쓰러진 이름이의 등을 오른손으로 받치고 왼손으로는 이름이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흔들었다.
“ 으으으응- ”
멈추었던 사고회로가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름이는 거의 울 듯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나를 보며 뭐하냐고 말했고, 그제야 나는 이름이를 받치고 있던 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칠칠이, 잘 거면 방에 들어가서 자야지, 왜 바닥에서 자고 있어. 그리고 커피 마시고 그렇게 푹 자는 사람이 어딨어. 라며 핀잔을 주자 이름이는 나를 장난스럽게 째려보았다.
“ 그럴수도 있지! ”
잔소리 했다고 삐진 척을 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 잠시만. 순간 아까 이름이 눈을 떴을 때의 장면이 상상돼서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너무 가까웠어. 이름이는 멍 때리고 있는 내 얼굴 앞에 작은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건네왔다.
“ 널 위해 해줄 일이 생겼어. ”
“ 뭔데? ”
“ 너 커피 좋아해? ”
아침 6시에 깨워준다면 모닝커피를 만들어주겠다고 신나게 말하는 이름이가 귀여워서 웃으며 좋다고 말했다.
“ 아, 나 설탕은 안 넣어. ”
“ 오, 어른이네. ”
“ 설탕 안 넣으면 어른이야? ”
“ 설탕 안 넣으면 쓰잖아. 우리 아빠가 쓴 거 잘 먹거든. ”
얘 왜이렇게 “ 귀엽지. ”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온 말에 당황해서 이름을 바라보니 다행히 못봤나보다.
이런 것도, “ 좋네. ”
아침에 나를 깨워준 성운이를 위해 커피를 내려주고, 배웅해준 뒤 집안 청소를 하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며 놀고. 이런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아침과 저녁은 성운이와 함께하지만 점심 때는 혼자있으니 입맛이 없어 밥을 거의 거르게 되었다. 휴식도 너무 오래하면 독이 되는 건지. 집 밖으로 안 나간지가 꽤 돼서 답답한 마음만 있었다, 하지만 혼자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하면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기를 4일째.
그나마 성운이가 오면 밥도 같이 먹고 같이 얘기도 할 수 있어서 좋은데 오늘따라 축 쳐져 밥만 깨작거리는 성운이에게 차마 나 심심했다며, 수다를 떨기 시작하기가 좀 그래서 저녁만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깜빡- 이거 전등이 깜빡인건가 내가 눈을 깜빡인 건가. 전등이 다시 한 번 깜빡- 했다. 전등 고장났나.
“ 성운아 이거 전등, ”
성운이를 부르면서 문을 열자 방문 앞에 살짝 웃으며 서있는 성운이.
“ 너 부른거야. ”
“ 그냥 문 열고 들어와도 되는데. ”
성운이는 어떻게 여자애 방을 함부로 들어가나며 자기 손으로 내 머리를 약간 헝끄러트렸다.
“ 집 안에만 있으니까 심심하지. ”
“ 응,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심심해. ”
“ 너~무너무너무 심심하면 내일 나랑 데이트할래? ”
성운이의 웃음, 딱 그만큼 내일 날씨가 맑았으면 좋겠다. 진한 하늘색에 구름 한 점 없는, 아니. 구름 딱 하나, 하성운만 있는 그런 날이었으면 좋겠다.
성운이의 데이트 신-청-☆ 좀 분량이 짧아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겠죠 ㅎㅎ 독자님들, 제가 지금 시험기간이라 아마 이 글 이후로 시험 끝날때까지는 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ㅠㅠ 한 2주..?정도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더 알찬 내용으로! 그리고 암호닉 신청을 받아볼까 하는데요,,, 아무도 안해주시면 슬플 것 같기 때문에 많이많이 해주세요❤❤ 사랑합니다 알러뷰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