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비밀
세훈x준면
w.BM
늘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퇴근할 때만 해도 있던 세훈은 잠이 들어 눈을 뜨면 없었다. 대신에 2, 3일에 한 번씩 종류를 달리하는 식사와 메모지가 있었다. 메모지의 내용은 주로 식사 거르지 말고 잘 챙기라는, 단순한 내용이었다. 이따금씩 세훈은 없고, 잘 차려진 식탁만 있는 것을 보고 있자하면 전래동화 속 우렁 각시가 생각나기도 했었다.
어쨌든 세훈이 차려놓고 간 식사를 먹고 나면 일하러 가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남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로 아무리 자도 부족한 것만 같은 잠을 자곤 했다. 그래도 잠자는 것이 질려 요즘에는 책꽂이에 있는 책들 중에서 흥미를 끄는 것을 가져와 읽거나, 동생 종인의 방에 있는 음반CD를 가져와 크게 틀어놓기도 했다. 그것들은 종인의 취향이라기엔 무엇인가 어색한 잔잔한 클래식 이었는데, 틀어놓고 듣다가 지루함에 까무룩 잠이 든 적도 꽤 적지 않게 있었다.
이런 식으로 무의미한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일하러 갈 시간이 되어 있었다. 출근해서 정신없이 컵을 돌리며 일하고, 퇴근할 때쯤이면 세훈이 데리러 나왔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따지면 하루 중 세훈을 보는 시간은 꽤 짧았다. 그것이 썩 좋은 것은 아닌 것만 같아 몇 번이고 아침이 밝으면 깨우라고 일러두었음에도 세훈은 듣는 시늉도 하질 않는 것인지, 여전히 혼자의 힘으로 눈을 뜨고 나면 세훈은 집에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누군가 가볍게 몸을 흔드는 손길에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세훈이 웃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방에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 비춰지는 햇빛으로 인해 세훈의 하얀 피부가 더 눈부시게 빛나는 것 같았다. 잘 잤어요? 다정하게 물어오는 목소리와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는 투박하지만 다정한 손길이 나른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멍하니 보고만 있으니, 일으켜 세우려는 강인한 손길이 느껴져 정신을 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방을 나서는 뒷모습이 낯설어 뒷머리를 긁적이며 따라나섰다.
방을 나오니 여느 때처럼 작은 밥상이 있었고, 그 위에는 두 사람 분의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근데 너, 요리는 언제 배웠어?”
“그게…….”
“응?”
“음, …종인이요. 종인이가 해주던 거,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거죠.”
“아, 그래…….”
종인이가 요리를 잘 했었구나. 처음 안 것 같은 사실에 놀랍기도 했지만, 조금 기분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저 마냥 곱게만 자랐을 것 같은 세훈이 요리를 잘하는 것이 궁금해 물어보았던 것이, 괜히 물어본 것 같았다. 식욕이 없어진 것 같아 슬며시 숟가락을 내려놓으려니, 내 눈치를 살피던 세훈 역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세훈도 나도 아무런 말없이 밥상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한참의 침묵 후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세훈이었다.
“형.”
“…….”
“나와 김종인은 사귀는 사이였죠.”
“응.”
“그렇지만, 김종인은 날 사랑하지 않았어요.”
“…….”
도대체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미간을 찌푸리고 있으려니, 세훈은 별다른 반응을 기다리고서 한 말은 아니었는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형은 날 좋아하죠.”
“뭐?”
“ ‘P.S. I LOVE YOU’ 잘 마셨어요.”
세훈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것 같았다. 내 동생도, 동생의 애인도, 전부 내 생각과는 다른 사람들인 것 같아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는 세훈에 대해 알게 된 것이 없는 것만 같은데, 세훈은 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치부를 들킨 것 마냥 뜨끔해, 열이 오르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려다 본 세훈은, 숟가락을 다시 들고서 이미 식은 찌개를 떠먹고 있었다.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세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참, 달력이 아직 2010년도 것이기에 바꿨어요.”
“아…… 고마워.”
“오늘이 며칠 인 줄은 알죠?”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보는 말갛게 웃는 낯이 마냥 순수한 또래와 다를 것 없어 보여 같이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밤에 일하러 가서 아침에 집에 돌아오고 하다 보니 날짜 감각이 많이 무뎌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동생이 죽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것쯤은 알고 있었다.
***
일을 하러 가게에 도착하니, 사장님께서 특별히 마련한 종업원들과 사장님의 지인 몇몇을 불러 작은 파티를 준비 중이었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마시고 놀자는 취지로 진행된 파티이기에 나와 찬열을 비롯한 바텐더들은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쉴 새 없이 떠들고 마시며 흥이 나면 무작위로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춤을 추기도 했다. 좋은 날이니 만큼 다들 즐거워 보였다. 물론 나도 매우 즐거웠고, 내 옆에 앉은 찬열도 즐거워 보였다.
한참을 서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생각보다 과음을 하게 되어, 주의 집중력이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대략 시간을 보니 퇴근 시간을 앞두고 있었으나, 다들 분위기에 취해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먼저 일어나는 것이 눈치가 보였지만 얼마 안 있으면 세훈이 올 것 같아 화장실에 가는 체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런 나를 따라 고개를 드는 찬열과 눈이 마주쳤다. 어디 가느냐는 입모양에, 똑같이 소리 없이 화장실 이라고 답하고서 가게 밖으로 나왔다.
온갖 소음과 잡다하게 뒤섞인 술과 담배 냄새로 인해 답답했던 숨통이 트이고, 멍했던 머리가 한결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천천히 심호흡하며 차갑지만 시원한 겨울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그리고 올려다본 서울 밤하늘은 먹물을 뿌려놓은 듯 온통 까맣기만 할 뿐, 반짝이는 것은 가게의 간판들 뿐 이었다. 목 아픈 줄도 모르고 눈을 가늘게 뜬 채로 무슨 오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별을 찾아보려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지만 휘영청 밝은 달만 둥그렇게 떠 있을 뿐이었다. 별이 하나도 없는 밤하늘이라 그런지, 유난히 달빛이 외로워 보였다.
“화장실 간다더니, 여기 있었네.”
“어? 넌 왜 나왔어.”
“그냥, 답답해서. 너도 그래서 나온 거 아냐?”
“맞지.”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옆에서 들린 찬열의 낮은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하늘 위로 시선을 돌렸다. 찬열 역시 나와 같이 밤하늘을 보다가, 날 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다. 술이 완전히 깨지 않은 건지 맑아졌던 시야가 흐릿했다가, 다시 맑아지는 것을 반복했다. 세훈이 올 때가 된 것도 같은데 보이질 않아, 다시 안으로 들어갈까 싶은 생각으로 담벼락에서 몸을 떼었을 때, 나도 모르게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던 것 같았다. 앞으로 넘어질 뻔 했던 것을 찬열이 붙잡아 주었다.
“조심 좀 하지.”
“어어, 아직 술이 덜 깼나. 고마워.”
“부축해줄까?”
“응? 아냐, 괜찮아.”
부축해주겠다며 나서는 찬열을 밀어내는 손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결국 다시 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한 채로 다시 담벼락에 등을 기대니, 내 앞에 선 찬열로 인해 까맣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한참이고 비켜나질 않기에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고개를 드니, 찬열의 단단한 손이 턱을 강하게 붙잡고는 곧장 제 입술을 포개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무슨 일인지 가늠조차 못 할 때에, 입술 사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뜨거운 살덩이에 술이 확 깨는 기분이 들어, 뒤늦게 고개를 비틀며 어깨를 밀어내니, 찬열은 생각보다 쉽게 밀려났다. 찬열은 고개를 숙인채로 있었고, 그 뒤로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 세훈이 서있었다.
세훈의 날선 눈총이, 나인지 찬열인지 알 수 없는 상대에게 꽂혔다. 괜히 찔리는 마음에 아랫입술을 깨물며 불안한 시선으로 세훈을 보았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밤공기에 뒤섞여 들었다.
BGM. 쇼팽 - 즉흥 환상곡(Remix ver.)
표지 제공 - 사랑하는 나의 친구 김까치. 흘려 넘길 줄 알았던 표지 만들어달라는 말을 그대로 실천해준 김까치(또는 지구) 너에게 이 글을 바칠게. 이제부터 가족의 비밀은 너를 위한 글이 될 것이야. 사랑한다 내 친구. 하트하트. 어휴, 오랜만입니다. 번번히 오래도록 기다리게 하는 점, 늘 죄송하고 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글 속의 세훈이란 인물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선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앞으로의 이야기를 기다려달라는 말 뿐... 아니 이 작자가 뭘 얼마나 대단하게 쓸려고 기다리라는 게야! 라는 생각 들 수도 있겠지만 제목에도 있듯이 비밀투성이 글이에요. 복선이랄 것도 없지만 나름 복선이라고 깔아놓은 것도 꽤 됩니다(아마요...?) 나중에 알면 깜짝! 놀라시라고...ㅎㅎ 그러니 그저 베일이 한꺼풀씩 벗겨지는 걸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손이 느리지만 열심히 쓸게요.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답글은 제가 확인하면 하루 정도 지난 것 까지는 답글 해드리는 편이에요. 혹시라도 답글이 없어도 서운해 마셨으면 합니다. 특히 비회원님들ㅜㅜ저도 궁금해요 비회원님들 댓글 ...그런데 빠르면 7시간 지나서, 느리면 하루는 지나야 나와서 저도 매우 슬프고 그럽니다 흑. 참, 저는 요즘 매우 행복해요. 세준 떡밥 풍년이고 세준의 멋쁨을 알아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말이죠. 세준행쇼하세요. 이번 아육대에서도 기대해봅니다... 알러뷰 세준. +아 그리고 혹시 가족의 비밀과 매우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싶은 브금 있다면 추천해주세요...☞☜BM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인스티즈앱 ![[EXO/세준] 가족의 비밀 04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b/4/7/b475ffc5fc5aba18835a79ba1875ac85.jpg)
![[EXO/세준] 가족의 비밀 04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9/e/9/9e9996633f46c6769cdfd0ce11c76b19.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