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새벽,
명수는 눈을 떴다.
종종 있는 일이었으나, 오늘도 역시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일어나자마자 찾은 것은 역시나 대마초였다. 지금으로서는 심신을 안정시킬 만한 최고의 도구였다. 그렇게까지 약을 하면서도 멀쩡한 육체가 신기하다고들 입을 모아 말하는 타인들이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명수는 일어난 순간부터 잠을 잘 때까지 약을 해댔다. 성열과 쌍으로 그러했으니 모두들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원래도 그랬지만 열다섯의 그 사건 후 명수는 정말 죽기 직전까지 약을 해댔다. 호원마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으니 상태가 어땠는지 알 만하다.
그러나, 평소에 심심찮게 해대던 헤로인이 아닌 대마초 한 대라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명수는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기로 했다. 금단 증상으로 고생을 좀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어느 정도 명수에게는 재충전이 필요했다. 문학으로서도, 애정으로서도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지치지 않았다 말한다면 조금은 거짓일 터였다. 성열이 몸을 굴린 이년 간 명수도 충분히 스스로를 망가뜨렸다. 명수는 고로 스스로가 애정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시각을 본다, 7시 반이다.
명수는 기상했다. 푸르스름한 하늘이 새벽과 아침의 경계를 알리고 있었다.
같이 나가자.
무덤덤한 명수의 한 마디에 성열이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반응을 예상한 듯 명수가 다시 말을 반복했다. 같이 가자고. 명수의 표정은 심드렁했으나 단호한 한 마디는 이것이 환청이 아니라는 말을 확연히 성열에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성열은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그런 그의 팔을 명수가 그대로 잡아끌었다. 성열의 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명수가 잠깐 얼굴을 찡그렸지만, 붙잡은 팔은 끝까지 놓아주지 않았다.
놓을 수 없다. 놓아주지 못한다. 평생, 억지로라도 붙잡고 살아갈 것이다.
만약 그렇게, 그렇게 한다면 언젠가는 이성열도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겠지. 성열의 팔을 잡은 채 성큼 성큼 학교로 걸어가는 명수의 심경이 복잡했다.
명수는, 무슨 생각으로 제게 이러는 걸까.
성열은 두려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온전한 몰골이라면 그게 더 이상할 터였다. 자신은 항상 다가올 이별을 위해 한 발 물러서 있었는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단지 명수의 애인 자리라는 허울 좋은 구실 하나에도 너무 기뻐 그것으로도 족했는데, 명수의 생각은 자신과 다른 걸까.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이 저를 흐트렸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답은 나오지 않는다. 성열은 명수가 꽉 쥔 저의 팔을 보았다. 아, 혹시 불쌍해서 그러는 건가. 그래도 나름대로 애인이라고, 옆에 있는 내게 동정이 가서 이년 전의 충동적인 그것처럼 내게 잘해주는 걸까. 아, 그렇구나.
성열이 흐리게 웃었다. 그는 쓸데없이 너무 자상하다.
괜시리, 기대하게 만든다. 저 따위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걸어가는 두 사람의 심경은 몹시도 엇갈려 있었다.
" 너, 도대체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건데? "
학교에 같이 등교한 둘의 모습을 보고 친구들은 물론 학교 전체가 술렁거렸다. 허울뿐인 연애 관계라는 게 거의 기정사실이었던 둘이 함께 등교를 하니 그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둘의 사이를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호원은 무언가를 눈치챘다. 김명수에게는 현재 얼마 전까지 존재하지 않고 있던 이상한 기류가 다시 흐르고 있다. 마치, 낯익은 것 같았지만 묘하게 낯선 기운이었다.
" 글쎄. "
여느 때와 다를 것이 없는 답변,
그러나 그 속에 들어있는 것은 미묘한 후련함이었다. 무언가 하나를 털고 일어난 듯한 명수의 목소리에서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전의 납덩이와도 같은 무거움이 조금이나마 덜어진 것 같았다. 호원은 다시 말했다. 제대로 말해봐, 명수는 유일하게 호원, 그리고 동우에게는 어느 정도 속을 드러내곤 했다. 호원이 묻자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명수가 입을 열었다. 다시, 시작하기로 했어. 다시? 그 " 다시 "라는 의미로서는 분명히‥ 의아한 표정의 호원을 본 명수가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표시였다.
" 너무 오래 기다렸어. "
" 이제.. 되찾아 와야지. "
바라보는 게 다가 아니라, 손이라도 잡아봐야 숨을 쉴 수 있지 않겠어?
호원은 명수의 발언에 그나마 안도했다. 이년 전의 진창이 된 꼴과 다를 것 없는 얼마 전까지의 명수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도와줄까 의사를 물었으나 명수는 단호히 거절했다. 내가 단독으로, 혼자서 행동하지 않으면 안 돼. 아주 오래 걸릴 거고 끝이 나지 않는다는 염두를 미리 생각하고 시행하는 이 계획은 김명수 홀로가 아니라면 절대 해결하지 못할 실타래였다. 그만큼 서로간에는 단단한 벽이 존재했고, 그것을 깨는 자는 오로지 김명수 혼자여야 했다. 이년 동안 성열만을 바라보는 쪽을 택했다면 이제 명수는 비로소 일어서기로 했다. 이기적이었지만 따진다면 그리 많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해해준다면, 들어준다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서로 끌어안는 것도, 성열이 제게 고개를 돌리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이해해주었으면 했다. 자신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있는지,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것만 알아준다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아주 만약, 만약에 이성열이 날 향해 고개를 돌아본다면 그 때는….
"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
다시는, 내 안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명수가 호원을 향해 쓰고 비릿하게 웃었다. 호원은 그때 직감했다. 이전도 그랬지만, 이제 그 누구도 지금의 김명수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이제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바라만 보고 있는 개구리 왕자 흉내는 아무래도 지쳤다. 제 아무리 찢어지고, 크게 상처를 입는다 하더라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진창 위를 굴러도 좋고, 모든 상황이 저에게 악조건으로 돌아가도 좋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성열이 저에게 크나큰 상흔을 수없이 입힌다 해도 멈출 생각이 없었다. Y, 난 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그러니 내게 웃어줘, 나의 Y.
꼬박 이 년만에, 벌어질 대로 벌어졌던 둘의 관계가 비로소 새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EP 1, 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