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동우는 손에 들린 트로피를 꾹 쥐었다.
동우와 호원은 둘이 나란히 대회에 나갔다. 처음은 팀전이었지만 다음은 개인전이었다. 느낌대로 추는 동우의 춤사위와는 반대로 호원의 춤 스타일은 세련되고 섬세한 면이 있었다. 상반되는 둘의 성격과는 정반대의 특징이었지만 자연스럽게 둘은 경쟁하게 되었다. 둘은 처음 개인전이 열린다고 했을 때 당황했다. 주최측에서 팀전이 끝나고 무작정 연다고 선언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들은 호원은 자신은 나가지 않겠다고 했지만, 동우가 좋은 경험이 될 거라며 설득했고 결국 둘은 겨루게 되었다. 그것도 결승전에서 나란히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동우는 우승을, 호원은 준우승을 차지했다.
호원이 말을 하지 않는다.
동우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호원을 바라보았다. 동생이지만 항상 조금은 동경하고 있었다. 저가 갖지 못한 섬세함과 특유의 세련된 맛이 있는 호원의 춤은 정석대로 추는 것 같으면서도 동우와는 다른 깔끔함이 있었다. 가끔 호원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정말이지, 너무 멋있어서 동우 자신도 모르게 아무 말도 없이 멍하게 쳐다보았던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 … 호야, 화났어? "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동우가 묻자, 다행히 화 안났어요. 하는 짧은 대답이 돌아온다. 그런데도 호원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것을 보자 너무나도 불안해졌다. 동우는 어쩐지 불안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어졌다. 호원은 항상 저에게 참 다정했는데, 얼마 전부터 이런 저런 안 좋은 소문이 들려왔어도 호원과 명수(호원은 몇 달 전부터 친구라는 애를 데리고 왔는데, 그게 명수였다. 정말 잘 생긴 명수는 동우를 보자마자 그냥 마음에 든다며 엄청나게 잘해줬고 친절하게 굴어서, 동우는 명수가 절대호감이었다)는 좋은 사람이었으므로 동우는 호원을 절대 신뢰했다. 물론 동우에게는 친절했지만(사실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사람은 얼마 없었긴 하지만) 밖에서는 전혀 다른 사실은 당연히 모른 채로.
" 다음엔 호야가 우승할 거야, 그냥 운이 조금 나빠서- "
" 아뇨. "
호원은 단호하게 동우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서는 대답했다.
형은 정말, 정말 잘 췄어요. 이번은 분명히 내 패배였어요. 짤막했지만 그 안에는 화가 나지 않았다는 증표가 포함되어 있어, 동우는 이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표정 풀어, 응? 호원을 구슬렀지만 돌아오는 건 이번에도 침묵 뿐이라, 조금은 서운해졌다. 그때, 호원이 입을 열었다.
" 형이랑 겨루고 싶지 않았어요. "
" … 응? "
" 형은 춤추는 게 가장 멋있고, 제일 형다워 보이니까. "
당신은 내 우상이었으니까, 그래서 겨루기 싫었어요. 그런데 그러지 못해서 화가 나요.
그러고서 들었던 목소리가 지독히도 다정해서, 동우는 저도 모르게 심장이 뛰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렇게 장동우가 남몰래 이호원을 가슴에 담았다. 호원이 말한 그 한 마디가, 고스란히 동우의 심장에 담겼다.
지금도
내가 네 우상일까, 호원아?
동우는 서글퍼져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꼭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둘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동우는 오토바이를 훔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하게 호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호원과 시선을 마주하자 황급히 피해버렸다. 호원은 한동안 동우를 그대로 응시하다 갑자기 시선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곧 동우의 손을 덥석 부여잡자, 동우가 눈을 크게 떴다. 뭐라 말할 새도 없이 호원은 동우의 손을 잡은 채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불이 켜졌고, 가로등의 불빛을 피해 달리는 호원에게 얼떨결에 이끌려 같이 달리던 동우는 큰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오토바이 주인이 자신을 붙잡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은 새벽녘의 거리를 정신없이 달린다. 깜깜해진 가운데서도 군데군데 켜진 가로등의 불빛을 피해서, 동이 트기 바로 전의 거리를 잔뜩이나 휘젓고 다녔다. 숨을 헉헉 내쉬었다. 체력이 부치고 힘이 든다. 지금 호원이 저를 위해 이런다는 자체가 미안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했던 것은, 동우는 지금 이 순간에서 그 이전의 무엇과도 비할 바가 못 되는 최고의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 당신은 내 우상이었으니까, 그래서 겨루기 싫었어요.
나, 아직 네게 추하지 않은 걸까.
괜한 기대가 생겼다. 잔뜩 퇴색된 본연의 동우 안에서 아직까지 살아있던 호원에 대한 마음이 괜시리 다시 뛰어댔다.
호원은 계속 달리다가, 저 먼 구석까지 가서야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
추하지?
동우가 호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네 우상이 아니라 타락한 한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겠지, 동우는 그 사실이 한없이 서글펐다. 꾹 깨문 입술에도 울음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슴이 마구마구 아파왔다. 커다란 바늘이 동우의 심장을 아프게도 찔렀다. 호원은 그때와도 같이 입술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 호원이 동우를 응시했다. 그게 부담스러워서, 호원의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지 않아 동우는 다시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그러나, 곧 호원의 목소리가 나지막히 동우의 귀를 파고들었다.
" 많이 변했어요. "
" 하지만, 추하진 않아요. "
덤덤하게 말하는 얼굴도, 목소리도 이 년 전과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아니, 어른스러웠지만 조금은 소년의 티가 묻어났던 과거와는 명백하게 다르다. 저보다 어린데도 확연한 남자다움이 물씬 풍겨나는 호원의 모습에 동우의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어댔다. 동우의 시선이 마구 흔들린다. 호원은 그런 동우에게 조금씩 다가섰다. 동우는 호원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때보다 훨씬 남자다워진 얼굴, 조금 더 굵어진 목소리, 그리고….
" 당신은, 여전히 내 우상이니까. "
그때와 같은 말.
정말, 정말로 이호원이었다.
동우는 왈칵 울음을 터트리는 제 몸과, 점점 저에게 다가오는 호원을 막지 못했다. 분명히 호원에게 보이기에 제 모습은 너무나도 부끄럽고 창피스러운데, 그런데도 그 말이 너무나도 기뻐서, 행복해서 제 감정을 주체할 줄 몰랐다. 제게로 천천히 다가선 호원이 저를 끌어안았다. 새벽이라 춥고 바람이 부는데도 그 품이 너무나 따스했다. 호원에게 안겨 흐느끼는 동우가 그것을 놓치기 싫어 꼭 끌어안았다. 서로를 품에 안은 그대로 호원이 동우의 고개를 들게 했다. 아아, 이호원이다. 정말로 이호원이다.
" 키스,해도 돼요? "
물어오는 호원의 질문을 거역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는 편이 더 알맞을 것이다.
이내,
둘의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