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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동우가 몸을 일으켰다. 두 동생은 아직까지 자고 있었다. 시각은 새벽 네시 반, 현우와 신우는 동우보다 여섯 살 터울이 차이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고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누워계신 지금 당연스럽게도 가장 몫은 동우였다. 동우는 한참 달게 잠을 자고 있는 동생들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분명히 애들인데, 아직 어리광부려야 할 나이인데도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동생들은 동우의 마음에 짐이었다. 엄마가 계셨다면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셨을 테지만 엄마도 이년 전부터 쭉 병원에 누워만 계신다.
잘 자, 우리 천사들.
동생들의 뺨을 쓰다듬어 주는 동우의 얼굴이 착잡했다.
누군가가 묻곤 한다.
왜 오토바이를 훔치는 건데?
생사가 달린 일이라고 하기에 너무나도 거창한 짓이다. 그러나 동우는 언제부턴가 들키면 꼼짝없이 유치장 신세를 지는 줄 알면서도 오토바이를 하나 둘 훔치기 시작했다. 우선 팔아버리면 잡히지 않는다. 그 판돈으로 병원비를 내고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내고 동생들 급식비를 내고, 동우 자신의 학비를 내도 어느 정도 돈은 남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약을 사는 것이다. 실은 잘못된 짓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원비는 생각보다 훨씬 큰 액수였고 동우가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버는 돈은 그것의 절반도 못 되었다. 오토바이라도 훔치지 않으면 꼼짝없이 병원에서 쫓겨나야 할 판이다. 명수가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자신이 거절했다. 남에게 손을 벌리는 것, 동우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명수도 무어라 말을 하지 못했다. 명수가 동우에게 꽤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꽤 아이러니한 사실이었지만 모두가 동우에게 상담이나 고민을 말하곤 한다. 늘 유하고 밝은 성격이었던 동우가 이런저런 상담에는 퍽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그 당사자인 동우 자신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을 참 싫어했다. 의외로 다른 아이들과 동우를 비교해 먼저 어른이 되어버린 쪽은 동우 쪽이었다. 아마 그 이유는 동우가 남을 잘 헤아릴 줄 아는 만큼 스스로의 상처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동우는 춤을 췄다. 어린 시절부터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에 처음으로 시작했던 춤이 점차 장래희망으로 굳혀지며 각종 대회에서 곧잘 상도 탔다. 동우는 꽤 훌륭한 댄서였다. 현우와 신우가 태어나고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와 이혼을 했던 동우의 어머니는 항상 잘 웃지 않으셨다. 누구보다 자상했던 아빠, 아버지의 외도는 동우에게도 동우의 어머니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동우는 항상 엄마가 웃었으면 했다. 매일 제게 밝게 웃어주던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 하루는 TV의 가수를 보고 따라했다. 그때였다. 엄마가 조금이지만 웃으면서 우리 동우 잘한다, 고 칭찬을 해 주셨다.
아, 엄마가 웃었다.
그 이후부터 동우는 춤을 추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집념이었을지 몰라도 언젠가부터 동우에게 춤이란 그 누구보다 간절하고 바라는 길이었다. 주변의 비난에도 재능있는 어린 댄서는 스스로에 대해 자신이 있었고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겠다는 사명감에 가득 차 있었다. 열여섯의 가을에 일어났던 사고만 아니었더라도.
항상 일로 바쁘셨던 엄마는 이상하게 밤이 늦어도 오지 않으셨다. 야근을 하신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한시 반, 동생들을 재운 동우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몇 번이나 해도 받지 않았다. 마음이 불편해 동우는 그 날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우려는 곧 현실로 다가왔다.
병원에서, 눈을 꼭 감은 엄마.
그 손에는 아들에게 주려는 댄스 슈즈가 꼭 들려있었다. 동우는 새벽 늦게 연락을 받고 달려간 병원에서 억장이 무너진다는 심정이 어떤 건지 제대로 느껴야 했다. 엄마를 잠자게 만든 트럭 운전사는 즉사했다고 했다. 가난했던 그의 집안으로 몇 푼 받지 못한 합의금과 함께 동우는 동생들을 붙잡고 그 날 사흘 밤낮을 울었다. 수술을 해도 엄마의 경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엄마는 항상 누워 있었고, 식물인간이라고 했다. 호흡기 장치에 몸을 의지해 숨을 쉬고 있는 엄마를 볼 때마다 동우는 괴로워졌다. 수술비는 어마어마했고, 수술비를 대자 돈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버지께 찾아가도 봤지만 이미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아버지는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나몰라라 하는 식의 아버지를 보고, 동우는 큰 상처를 받았다.
동우는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병원비에는 택도 없었다. 근근히 나오는 돈으로 어느 정도는 해결했지만 눈덩이처럼 커지는 엄마의 병원비는 점점 늘어만 갔다.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동우는 열일곱이 된 지 얼마되지 않아 집을 내놓아야 했다. 엄마가 재수술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재수술에도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다. 돈은 바닥이 났고, 얼마 남지 않은 돈을 보증금으로 동우는 빌라 월세를 얻었다. 그렇지만 아르바이트로 저 모든 것을 대기에는 그야말로 택도 없었다. 친척들도 도와주지 않는 마당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결국, 동우는 그렇게 원하고 원했던 댄스 크루를 제 발로 나와야 했다.
어른들이 말했던 것처럼,
춤 나부랭이 따위에 매달리기엔 돈도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동우는 오토바이를 절도하기 시작했다. 절도 2범, 장동우의 이름 옆에 붙은 별명이다.
동우는 어느새 어느 가정집 앞에 서 있었다.
동우의 손에는 만능키가 있었고 바로 오토바이를 훔칠 수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들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동우는 서서히 오토바이에 다가섰다. 시간은, 새벽 다섯 시 하고도 반이었다. 오토바이에 서서히 손을 올리면서 동우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있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댄스 크루를 나가던 날, 뻔뻔하게 호원의 앞에서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호원은 동우와 같은 크루에 있던 친한 동생이었다. 호원은 동우보다 더욱 섬세하게 춤을 췄다. 대단한 실력에 박수를 치다가도 서로 경쟁했던 지난날이 무색하게 동우가 제 발로 크루를 나가겠다고 하자 누구보다 말렸던 사람이기도 했다. 사실 학교도 그만두려 했지만, 동우의 사정을 알게 된 학교가 겨우 학비를 줄여주었던 덕분에 자퇴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냥,
형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형은 춤추는 게 가장 멋있으니까.
그 말에 호원은 그렇게 말했던 것 같은데, 어째서 난 이렇게 변해 버렸을까.
친지들에게 폐를 끼치는 걸 가장 싫어했던 동우는 어느 새 범죄란 것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 있었다. 약을 배운 것은 성규와 우현을 만난 다음부터다. 우연히 오토바이를 훔치는 것을 들키고 나서 아무 말 없이 약을 권하던 그들의 모습에 마리화나를 받아든 뒤부터 그들과 친해졌다. 그리고 호원에게 오토바이를 훔치는 모습을 들킨 것은 그로부터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형?
그 날도 새벽이었다. 오토바이를 절도하던 도중 눈이 마주친 존재는 다름아닌 이호원이었다. 놀란 표정이 금새 실망에 물들었다. 그 모습에 동우는 덜컥 두려워졌던 것 같다. 누구보다 믿고 신뢰하던 애였는데, 춤을 추면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지만 그만큼 서로를 인정했던 둘이었다. 그랬던 둘이, 한 쪽은 절도를 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그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성규가 재밌는 1학년이라며 호원과 명수, 그리고 성열을 소개해주었을 때,
" 반가워요, 형. "
오랫만이네요.
늘 자신을 보면 웃던 호원은 웃음짓지 않았다.
그 뒤로 동우는 의외로 명수와 친해졌지만 호원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다녔다. 그 사건이 호원에게도 동우에게도 너무나도 치명타였기 때문이다. 끼릭, 시동을 걸었다. 성공이다. 동우는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이제 그대로 도망치기만 하면 된다. 그럼 영락없는 완전 범죄인데, 그런데.
" 호야. "
이렇게 만나네.
1년 전의 사건과 동일한 상황이다.
마주친 눈은 여전히 웃고 있지 않다. 동우는 호원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지만, 사실 전혀 여유롭지 않았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그 누구보다도 이런 일이 두번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는데, 결국에는 일어나고 말았다.
있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동우는 다시 미소지었다. 그것이 은근히 서글펐다.
그것은 이제 더 이상 이전의 순수했던 맑은 미소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