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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준] 수상한 마네킹  

  

  

  

W.Cantata  

  

  

  

BGM - Freetempo - Mistake  

  

  

  

여기쯤 인것 같은데.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는 조그마한 옷가게를 발견했다. 저기인가? 추위에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며 문을 열었다. 손안에 잡힌 손잡이가 차갑다. 문을 열자 바른지 얼마 안된 페인트 특유의 냄새가 가게 곳곳에 배어있었다. 준면은 속으로 벽면에 「EXO」라고 적혀있는 엉성한 글씨체를 비웃었다. 글씨 더럽게 못쓰네. 차라리 옆에 늑대라도 그리는 게 덜 웃기겠어.   

  

  

  

  

" 왔어?! "  

  

  

  

  

라고 외치며 카운터 앞에서 졸고 있던 민석이 용수철 마냥 튀어나왔다. 민석이 가게를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내 사랑스러운 엉덩이를 마구 두들겼다. 아니 무슨 내 엉덩이가 장구냐고. 덩기덕쿵더러러럭.   

  

  

  

  

"역시 우리 준면이는 모쏠이라 그런지 너무 착ㅎ.....어 루한아! 우웅...나 차 탔어 지금 가고 있으니까 좀만 기다려."  

  

  

  

  

어어 금방갈게. 시끄러운 벨소리가 울리자, 멍청이같이 킬킬거린 민석은 콧소리를 있는 대로 내며 통화를 하면서 가게를 뛰쳐나갔다. 딸랑- 거리는 가게 문의 종소리가 경쾌하다.   

  

  

어 그래. 준면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애써 누르며 마네킹 마냥 뻣뻣하게 손을 흔드는 시늉을 했다. 물론 자세히 보다면 그게 가운데 손가락이라는 것쯤은 금방 알겠지만.  

  

  

  

  

빠큐 머겅.   

  

  

  

  

명색이 형이라는 김민석 게이 새끼는 중국인 애인이 생겨서 여행을 간다며 오픈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옷가게를 일주일 동안 맡겼다. 애인 이름이 루...루한이던가. 며칠 전 집 앞에 잠깐 있는 걸 봤었는데 얼굴도 작고 키도 크고 무슨 연예인같이 잘생긴 중국인이었다.  

  

  

단 김민석만 보면 헤벌쭉 거리는 모습이 좀 모자라 보이고, 가끔 맛있는 만두를 보듯 음흉한 눈빛이 불안했지만 아니 근데 뭐 어쩌라고. 어쨌든 커플이잖아 시발. 존나 모쏠은 아무 말이 없다.   

  

  

  

  

  

  

그렇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이 농담으로 보이는가? 나도 농담이었으면 좋겠지만 이건 존나 현실이다. 지극히 현실이라고. 인간 김준면은 불행하게도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뒤 뽀뽀라곤 엄마와의 뽀뽀가 다인 순수 그 자체 스무살 꽃다운 천연기념물이다. 그렇다고 내가 못생겼냐고? 노노. 절대 그렇지않다.   

  

  

거울로 대충 봐도 하얀 피부, 진한 쌍꺼풀, 단정한 옷차림, 키가 크진 않지만 좋은 비율의 몸. 아 잘생겼어. 게다가 성격 좋아 공부 잘해 어? 운...운동은 아니고 암튼. 고등학생 때 말 그대로 엄마친구아들, 엄친아로 고딩때 학교 여학생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그니까 발렌타인 데이같은 무슨 무슨 날들에는 사물함과 책상이 꽉 찰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백받은 적도 사귄적도 없었다.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참트루라 나도 어이가 없었다. 너무 어려운, 고급스러운 이미지라서 다가가기 어려운 건가 싶어 나름 친근한 st를 강조해봤지만 별 소용없었다. 게다가 내가 고백을 하려는 순간에도 꼭 누가 방해하는 것처럼 이상한 일만 벌어졌다.  

  

  

  

  

"나 너 좋아해 유리야."  

  

"미안해 준면아. 나... 10분전에 남자친구생겼어."  

  

  

  

  

헐.  

  

  

망설이다 고백을 하면 그 여자애는 10분 전에 남자친구가 생겼거나, 고백을 하기 위해 날짜를 잡으면 갑자기 여자애가 전날 이사를 한다거나 고백문자를 보내면 여자애의 핸드폰이 고장 나서 확인을 못 한다거나 등등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항상 일어났다.  

  

  

아. 이건 필히 평생 솔로로 살라는 하느님의 뜻 인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체념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아 거지같은 내 인생.  

  

  

  

  

  

딸랑-  

  

  

준면이 카운터 앞에 멀뚱멀뚱 앉아 있자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큰 상자를 끙끙대며 끌고 왔다. 자기 키보다 더 큰 상자를 끌고 오느라 힘든지 땀을 뻘뻘 흘렸다. 아 힘들어. 깔끔한 검은 정장을 빼입은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남자였다. 남자는 혼자서 무겁다고 찡찡거리며 마치 자신의 수고를 알아 달라는 듯 주먹을 말아쥐어 팔다리를 통통 쳐댔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황당함에 준면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 ....아? "  

  

" 김준면씨 되시죠? "  

  

" 맞는데요. "  

  

" 택배입니다. "  

  

  

  

  

아 택배였구나. 요새는 유니폼도 안 입고 정장만 입고 일하나보네.   

  

  

  

" 아니 근데 전 택배시킨적없는데요? "  

  

" ....아 몰라요. 전 그냥 배달만 해주는거니까 받으세요. "  

  

  

  

  

남자는 준면의 말에 팔자 눈썹을 하고 입을 우물거리다 귀찮은 듯 상자를 대충 밀어 넣고 나갔다. 뭐 김민석이 시켰겠지. 형이 시켰을 거란 생각에 준면은 상자를 안쪽으로 밀며 들어갔다.  

  

  

아니 근데 왜 이렇게 무거워!?! 안에 도대체 뭐가 들어있길래. 준면은 힘겹게 끙끙거리며 상자를 카운터쪽으로 밀었다. 몸이 상자에 밀리는 게 느껴졌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정말이다.   

  

  

  

10 분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준면은 조심히 상자의 테이프를 뜯었다. 에어컨인가? 진짜 크네. 찌이이이이익-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렴 상관없었다. 안에 도대체 뭐가 있는지 궁금했음으로.   

  

  

  

  

"뭐야. 마네킹이네."  

  

  

  

  

  

마네킹이었다. 그것도 진짜 잘생긴. 마네킹치고 굉장히 잘생긴 비주얼에 깜짝 놀랐다. 훤칠한 키와 탄탄한 바디라인, 넓은어깨, 뚜렷한 이목구비의 남자 마네킹이었다. 게다가 오똑한 코와 말랑해 보이는 입술, 바스락거리는 진짜 머리 같은 회색머리는 사람 같아 보이기에 충분했다.  

  

  

요새는 마네킹도 사람같이 나오는구나. 사람인 줄 알고 깜짝 놀란 준면은 콩알만 해진 심장을 조용히 진정시켰다. 나대지마 심장 새끼야. 뭐 딱히 잘생겨서 그런 건 아니고. 준면은 마네킹을 빤히 쳐다보다 입힐 옷을 찾기 위해 카운터 뒤쪽에 있는 조그마한 창고를 열심히 뒤적였다. 근데 마네킹 귀가 빨개진 것 같은 건 착각이겠지. 킁.  

  

  

  

  

찾았다. 잘생긴 마네킹에게는 멋있는 옷을 입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뒤지고 뒤져 가장 괜찮은 옷을 찾았다. 제일 신상인 아가들. 파란색계열의 체크패턴 셔츠와 검정 모직코트, 포인트로 군밤 장수같은 모자까지.   

  

  

패션센스 한번 죽여주네. 마네킹의 비주얼과 잘 어울려 뿌듯함에 헤실헤실 웃음 나왔다. 아 엄마가 멍청해 보인다고 이렇게 웃지말랬는데. 크흠. 민망함에 준면이 괜히 헛기침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 아 빨리 옷이나 입혀여."  

  

  

  

  

투덜투덜거리는 남자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 잘못 들은 건가. 방금 누가 아 빨리 옷이나 입혀여 라고한것같은데. 갑자기 느껴지는 공기의 싸늘함에 준면은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걸 느꼈다. 아무도 없는데. 아뭐야 엄마.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사실 준면은 평소 귀신이라면 끔찍하게 싫어(무서워)했다. 당연히 공포 영화는 꿈도 꾸지 못했다. 어찌나 심한지 수학여행 공포 체험때는 설사약을 일부러 먹어 폭풍설사를 핑계로 참여하지 않을 정도였다. 준면은 덜덜 떨며 천천히 뒤를 돌아 가게 여기 저기를 살펴봤지만 역시나 준면 이외의 사람은 찾을수 없었다. 가게안에 있는거라곤 옷과 마네킹, 거울이 다였다.  

  

  

  

  

"내가 잘못들었겠...지."  

  

  

  

  

준면은 애써 잘못 들었을 것이라고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며 마네킹에 옷을 입혔다. 꼼꼼히 단추까지 다 채우고 마네킹을 바라보았다.   

  

어우 때깔이 곱다 고와. 잘생기긴 진짜 더럽게 잘생겼네. 옆에서 사진을 찍을까 핸드폰까지 들었지만, 너무 오덕같아 보일까봐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준면은 쇼윈도에 있던 다른 마네킹을 빼버리고 이 잘생긴 마네킹으로 바꾸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딸랑-  

  

  

  

  

"어서 오세요."  

  

  

어색한 목소리로 엉성하게 손님을 맞이하는 준면의 모습에 풉. 하고 비웃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작게 울렸다.  

  

  

  

  

*  

  

  

  

  

이상했다. 그것도 조금도 아니고 아주 많이. 목에 두른 빨간 목도리를 푸르며 문을 열고 들어온 준면은 가게의 어딘가가 어제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평소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준면은 주변의 물건이 바뀌거나 달라지는 것을 빨리 눈치채는 편이었다. 준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게를 살폈다. 옷도 제자리에 있고, 거울도있고... 아 이거뭐야.  

  

  

  

  

"이상하다. 이거 안그랬는데."  

  

  

  

  

어제 새로 들여놓은 마네킹이 문제였다. 어제만 해도 아래로 곧게 내려가 있던 팔은 허리 위에 살포시 얹어있었고 씌어놓은 군밤장수 모자는 바닥에 구르고 있었으며 가르마 모양도 바뀌어있었다.  

  

  

....이거이거 너무 이상한데?! 혹시 도둑이 들어왔었나. 히익. 다급하게 카운터로 달려가 금고를 확인해보았지만, 어제 계산한 것 그대로였다. 뭐야. 괜히 기분이 이상해져 마네킹을 노려봤다.   

  

  

  

  

"너 뭐야."  

  

  

  

  

두 눈에 힘을 주며 손으로 아이투아이를 해댔지만, 마네킹은 아무 말 없이 앞만 응시할 뿐이었다. 괜히 신경에 거슬린 준면은 쿵쾅거리며 가게 안을 뱅글뱅글 돌면서 걷다가 뜬금없이 야!! 라고 소리 지르며 마네킹을 노려봤다.   

  

  

역시나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 뭐야 괜히 오바했네. 머쓱해진 준면은 괜히 심술이 나서 멀쩡한 마네킹을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놈의 가발 새끼. 왜 이렇게 진짜같이 만들어놔서 사람 놀래게.   

  

  

  

  

" 아 아파."  

  

  

  

  

아 아파. 아 아파. 아 아파. 머리를 마구 쥐어뜯고 있는데 남자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온몸이 경직되고 얼어붙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ㄱ....귀신? ..진짜 귀신인 거야? 귀신인 거면 맞다고 말 좀 해봐! 지릴 것 같으니까.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다 못해 쩌억 갈라지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잠깐. 붙잡았다고?! 히익!!  

  

  

  

  

"저기요. 저쪽 옷 좀 주세요."  

  

  

  

  

손님이었다. 그것도 팔에 깁스를 한.   

  

  

  

  

"아 손님 이시구나! 잠시만요."  

  

  

  

  

놀래라. 팔 때문에 아파서 그런 거네. 준면은 얼굴로 쏟아지는 땀을 닦아내며 손님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 손가락끝에는 그 잘생긴 마네킹이 있었다.   

  

  

이..이거다요? 네. 다 마음에 드네요. 하하하 그러시구나. 귀신 때문에 혼이 다 빠져버린 듯 준면은 멋쩍게 웃으며 어색한 톤으로 하하거리며 웃다 마네킹의 옷을 벗겼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네. 손님이 가게를 나가자마자 긴장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김준면 멍청아 귀신같은 게 있을 리가 없잖아 하하! 미친 새끼! 손바닥으로 머리를 쳐대며 병신같이 낄낄거렸다.   

  

  

  

  

"아 빨리 옷 입히라고. 부끄럽게 진짜."  

  

  

  

  

미친. 귀에 돌비사운드로 들리는 저 음성은 뭔데. 하기스 매직팬티 하나 장만해야 될 것 같은 이 싸한 느낌은 뭐지. 무서움에 지릴 것 같음을 느끼며 뒤쪽에 있는 마네킹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 살료줘요!  

  

  

  

  

마네킹에는 청소할 때 가끔 입던 분홍색 앞치마가 둘려있었다. 마치 소중한 무언가를 부끄러워 감추기 위해 두른 것처럼. 물론 착각이겠지만. 앞치마 속 노란 곰돌이는 해맑게 웃으며 마치 준면을 비웃는 것 같았다.   

  

  

무섭지 찌질아?! 그게 의도였다면 넌 존나 잘한 거다. 침을 꿀꺽 삼켰다. 덜덜 떨리는 다리로 말 그대로 덜덜 떨면서 마네킹을 향해 한 발짝- 내디뎠다. 내가 지금 무서워서 떠는 거 아니다 걍 오줌마려운 거다.  

  

  

순간 마네킹의 눈썹이 움직였다. 꿈틀.  

  

  

아니 잠깐. 꿈틀이라고?  

  

  

  

  

"뭘봐. 마네킹 처음봐?"  

  

  

  

  

오 주여. 준면은 그대로 바닥으로 꼬꾸라지며 정신을 잃었다.  

  

  

  

  

*  

  

  

  

꿈속이었다. 아닌가 현실인가. 눈앞이 울렁거렸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손바닥으로 볼따구를 찰싹 때렸다. 꼬집어 봐도 아프지 않은 걸 보니 아마도 꿈속인 것 같았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주위를 돌려보았다. 어디가 땅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공간 속에서 끝없어 보이는 분홍빛 길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한 발짝 떼었다. 여긴 또 어디야.   

  

  

  

얼마나 걸었을까, 길 끝에는 코트를 입은 키가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뭔가 익숙한 뒷모습에 나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어디서 봤더라. 내가 아는사람 중에 저렇게 뒷모습이 완벽한 사람이 있던가?  

  

  

김민석은 다리가 짧으므로 당연히 아니고. 옆집 사는 경수..? 미안하다 경수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걸음을 빨리하자 어느덧 눈앞에 남자의 뒷모습이 가까웠다. 왠지 모를 설렘에 긴장되었다. 아니 근데 왜 설레. 난 게이도 아닌데 미친놈아. 소녀팬 마냥 수줍게 그 넓은 어깨를 두드렸다.  

  

  

  

  

「저기....누구세요?」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꿀꺽.   

  

  

  

  

「누구긴 누구에여. 네 마네킹이지 븅신아.」  

  

  

  

아악 시발!!  

  

  

  

  

  

  

  

다시 현실세계로 복귀했을 땐 해가 진지 오래인지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소파 위에 누워있던 준면은 로딩 중인 정신과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며 일어났다. 담요는 언제 둘렀지. 분홍색 담요에 그려진 노란 곰돌이가 익숙하다고 느끼며 지금 이게 무슨 일인지 파악을 했다.   

  

  

도대체 언제 잠든 거고 왜 잠잔 거지. 내가 졸려서 잤나? 어제 12시간 잤는데? 아니 근데 꿈은 왜 이따구지? 수맥이 흐르나? 여기가 자리가 안 좋은가보다. 김민석한테 가게 옮기라고 해야겠다. 준면은 곰곰이 생각을 하다 문제의 마네킹을 노려보았다.   

  

  

아니 노려보려고 했다. 안타깝게도 마네킹은 그 자리에 없었다. 처음부터 아예 이 자리에 없던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나 찾아? 뭘그렇게 뚫어지게봐."  

  

"엄마야!!"  

  

  

  

  

그 마네킹이었다. 그것도 살아서 움직이는 마네킹. 그는 삐딱한 자세로 벽에 기대고 있었다. 그는 머리에 쓰여 있는 군밤모자가 마음에 드는지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거울을 보았다. 역시 잘생겼네. 배고플 때만 라면 끓여달라며 찾던 엄마를 불러대며 준면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엄마!!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무서운 듯 준면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어이구. 우리 준면이 무서웠쪄?"  

  

  

  

  

우쭈쭈. 그가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천천히 준면에게 다가왔다. 바닥에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준면은 놀란 다람쥐같이 앙증맞았다. 풉. 덜덜 떠는 준면이 웃긴지 그가 웃었다. 준면 앞에 쭈그려 앉은 그는 얼굴을 감싸고 있는 손가락을 벌려 놀란 두 눈과 마주했다.   

  

  

짙은 회색 눈동자가 달빛에 비쳐 반짝였다. 두근두근. 이런 기분은 처음이야. 준면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간질거림을 느끼며 심한 두근거림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마..마네킹이 무슨 말을 해 미친새끼야."  

  

" 진정하는데 라마즈 호흡법이 도움이 된다고 그러더라. "  

  

" ..뭐? "  

  

" 네이버에 쳐보니까 1분에 12회 정도 천천히 호흡하라던데. 이렇게 천천히. 임신할 때 하는 호흡법이지만 미리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야. 뭐 나중에 하게 되겠지만. "  

  

  

쓰으으으흡. 그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숨을 들었다 내쉬었다를 반복하는 시늉을 했다. 어우 근데 좀 출출한 것 같기도 한데 먹을 거 없어? 배가고픈 듯 손으로 배를 통통 쳐댔다. 뭐야 이 변태새끼는.  

  

  

  

  

"신고 할꺼야. 배고프면 콩밥이나먹어, 변태새끼야!"  

  

"난 저딴 허접한 마네킹이 아니야. 인간도 물론 아니고."  

  

  

  

  

뭐?? 인간도 아니라고? 돌겠네. 그럼 좀비냐? 뱀파이어? 아니면 늑대인간? 마법사?! 호모와트인가 호구와트인가에서라도 왔니 미친놈아?! 그럼 나도 개구리 초콜릿 한 번만 먹어보자. 포토카드 덤블도어면 니가 갖고 스네이프면 내가 갖는다. 왜냐, 스네이프는 존나 멋진 내 남자거든! 인간이 아니라 주장하는 말하는 마네킹에 멘탈붕괴가 온 준면은 이제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이름은 오세훈. 본명은 에로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에로스 몰라? 무식한인간아! 쯧쯔. 에로는 당신이 좋아하는거고. 에로스는 큐피트, 사랑의 신이라고. "  

  

  

  

  

크흠. 자기 입으로 신이라, 아니 무려 사랑의 신 에로스라 주장하는 세훈의 꽤나 부끄러운 말에 어이가 없어 준면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 그...그걸 어떻게 믿어? "  

  

" 너."  

  

  

  

  

갑자기 확 가까워진 세훈의 얼굴에 준면이 침을 삼켰다.  

  

꿀꺽.  

  

  

  

  

  

"모태솔로잖아."  

  

  

  

시발. 어떻게 알았지. 내가 방금 대화 도중 모태솔로라고 말한 적이 있나? 내가 나 김준면은 여자라곤 엄마손 붙잡아본 게 다인 모태솔로입니다! 라고 광고를 하고 다녔나? 아니면 냄새가 나나? 솔로면 냄새도 나는거야?! 킁킁.   

  

충격에 휩싸인 준면의 표정이 만족스러운 듯 세훈이 슬쩍 웃었다. 세훈이 손가락을 부드럽게 튕기는 소리가 울렸다. 딱-  

  

  

  

  

"그래서 내가 이 불쌍한 모쏠 베이비준면이를 구원해 주십사 친히 하늘에서 힘겹게 왔다는 거 아니겠어. 굳이굳이 힘들게 마네킹으로 있던건 뭐겠어? 다 24시간 감시하면서 어떤점이 연애를 못하는 이유를! 알아보려고 그런거지."   

  

  

  

  

대박.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구원해주기 위해 내려왔다는데 손해 볼 건 없다고 판단했다. 정신병자든 신이든 어쨌든 날 도와준다는 거니까. 고민 끝에 준면은 세훈을 믿기로 하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되는데? "  

  

" 음...... "  

  

  

  

꽤나 복잡한 생각을 하는 듯 세훈은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생각. 생각을 해보져. 두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대며 눈을 감았다. 은근 기대되는 대답에 준면은 강아지처럼 두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사실 처음부터 이미 생각해놓은 세훈은 슬쩍 눈을 뜨며 마치 방금 막 떠올린 듯 어색한 말투로 답했다.  

  

  

  

  

"아-하! 좋은 방법이 이제야 떠오르네!"  

  

" 뭔데? "  

  

" ...나랑 사귀자. "  

  

  

  

....나니? 먼저 예쁜 여자들과 소개팅을 시켜준다든가, 여자들이 싫어할만한 성격이나 외모의 몰랐던 문제점을 지적해준다든가 등등 뻔한 대답을 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다른 대답에 준면은 멍청이처럼 어버버거렸다.   

  

  

  

  

"나랑 사귀자고. 솔직히 내가 얼굴도 반반하고. 어? 내가 하늘에 있을때 인기가 얼마나 많았는데. 사귀면 내가 손해면 손해지 너가 손해가 아니란 말이야. 연애의 연자도 모르는 준면이를 위해서 내가 특별히! 연애는 바로 이런것이다라는걸 다 알려줄테니까 사귀면 된다고. 오키?"  

  

"....음...."  

  

"...뭐야. 지금 싫다 이거야?! 나 참내 자존심 상해서 진짜! 싫으면 남은 평생동안 솔로로 쓸쓸하고 고독하게 살아도 돼. 뭐 자기 선택이니까. 그럼 난 이ㅁ..."  

  

"아 사귀면 되잖아 사귀면!!"  

  

" 그럼 일단 손부터 잡아. "  

  

  

  

  

  

손잡는게 연애의 시작이니까.  

  

  

  

  

세훈이 구렁이가 담 넘듯 능글맞게 말을 늘어놓다 준면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걸 잡으면 그토록 꿈꾸던 스물둘 인생 첫 연애의 시작이구나. 왠지 모를 기분에 가슴이 울렁였다. 씨익 웃고있는 세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나랑 애인 사이가 되는 건가.  

  

  

두근두근. 다시 심장이 쿵쾅거리며 널뛰기를 해댔다. 머릿속에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 빨리 잡아. 움찔거리며 손을 잡을 듯 말듯 하는 준면이 답답한 듯, 세훈은 툴툴거리며 주저앉아 있던 준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자. 첫 데이트는 어디로 갈까. 가고 싶은 데는 없어?"   

  

  

  

  

나갈 채비를 다 마친 세훈이 준면의 목에 빨간색 목도리를 꼼꼼히 둘러주었다. 가까워진 얼굴이 아까와는 느낌이 좀 더 달라졌다고. 믿기 싫지만 좀 더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자 준면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 어...어... "  

  

  

  

준면은 막상 첫 데이트를 한다니까 어디로 가는 게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아 앞이 캄캄해졌다.   

  

  

  

  

"어 음......"  

  

"영화보러갈까? 데이트 필수 코스는 영화관이지."  

  

"아 그런가? 그래 그럼 가자."  

  

"자고로 영화는 야한 멜로가 제맛."  

  

"..뭐라고?"  

  

"아니 팝콘먹고싶다고."  

  

  

  

  

  

가게 문을 닫고 영화관으로 걸어가는 준면과 세훈의 발걸음은 두근거림으로 가벼웠다. 마치 보이지 않는 설렘이 가득한 분홍빛 길을 걷는 것처럼. 어디선가 달달한 카라멜 팝콘 냄새가 나는것 같기도 했다.   

  

  

  

무슨 장르 좋아해? ...격정멜로. 아 진짜 취향하고는. 내 취향 지금 무시하는 거야? 툴툴거리고 별말 하지않아도 준면과 세훈은 왠지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고 즐거웠다. 마치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것같이 보이는 두 손은 모태솔로 인간과 어딘가 수상한 마네킹의 수줍고 사랑스러운 연애의 시작을 알렸다.  

  

  

  

  

  

  

  

  

  

  

세준행셔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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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좋잖아여..아 진짜 비회원만 아니였어도 신알신..흡..하여튼 꼭꼭 챙겨볼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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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헐ㄹ고마워여 ㅠㅠㅠ번외빨리올릴께요 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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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번외가시..시급해여..저..저에게 번..번외를..윽..뎨뎡..하여튼 번외 기대할게여!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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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감사합니다.ㅜㅠㅠㅠㅠㅇ밤에올릴께여!!♥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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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헐짱ㅇㅣ다.. ...자까님이거 연재하시며·아니대요?ㅠㅠㅠ째러...으ㅡㄱ·ㅇ옥·ㅇ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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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헐감사해여 ㅠㅠㅠㅠㅠㅠ 번외쓴거있는데 곧올릴께여.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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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헐진짜여?ㅠㅠ취향저격이에여.. 세준이들알콩달콩하는거ㅠㅠㅠㅠㅠㅠㅠ신알신하구갈게여!!!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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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사랑해여 ♥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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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아 비회원....신알신하고싶다....다음편은 있는건가여?!구냥 번외만 있는거ㄴ가요! 다 피료없고 사랑하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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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번외만있어여!!ㅠㅠㅠㅠ감사합니다 ㅠㅜㅜㅜㅜ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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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버릇처럼 끝에 여여하는 세훈이 왜때문에 이렇게 귀여워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작가님 잘 보고 갑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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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으잉ㅇ ㅜㅜㅜㅜ감사합니다ㅜㅠ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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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ㅋㅋㅋㅋㅋㅋㅋㅋ에로스 세훈이!!! 세준 만세 행쇼~~~!!!!!!!!!!!!ㅠㅠㅠㅠㅠㅠㅠ너무 재미있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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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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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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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타타
감사합니다♥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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