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
: an incurable romantic
: 기약없는 로맨티스트
10
어디까지, 사랑일까
- 적지 않은 분량이니 시간적 여유가 될 때, 읽어주세요! 이번 회차는 3인칭 시점입니다.
고 삼에게 여름방학은 말 그대로의 방학이 아니었다. 방학임에도 학교에 나와서 선생님과 대학상담부터 자기 소개서 첨삭과 보충 수업까지 들어야 했으니까. 방학이 온전한 방학이 아니었다. 때문에 여주는 잠시나마 꿈 꿨던 지루하게 늘어지는 늦잠과 남준이와의 여행을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남준이는 얼마나 착실한지 아침 잠도 많은 애가 하루 아침에 변해서는 일찍 일어나, 여주를 깨우고 가장 이른 시간에 시작하는 국어 보충을 들으러 갔다. 여주는 잠결에도 자신을 깨우는 익숙한 목소리에 졸린 눈을 겨우 뜨고 방을 벗어나는 남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주는 때때로 지나치게 단정하고 정돈된 동글동글한 남준이의 뒷통수와 너른 등과 이불 속에 널브러진 제 모습과 상반되어, 잠깐씩 우울감을 맛보기도 했다.
여주네 담임 선생님은 여주만 보면, 네가 꿈이 없다고 했으니 부모님 말씀이라도 들어야 한다며. 부모님과의 상담을 닦달했다.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여주의 부모님은 좀처럼 전화를 받으시는 일이 없었고, 심지어 어쩌다 한 번 받을 때도 매니저가 대충 얼버무리며 통화를 끊었다고 했다. 때문에 선생님은 여주를 잡으며 부모님이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되느냐, 바쁘신 건 알지만 하나 뿐인 딸에게 너무 무관심한 게 아니시냐. 등의 물음으로 여주를 이리저리 흔드셨다. 여주는 그때마다 저도 연락이 잘 안 돼요. 라고 답하려다, 제 답을 꾹꾹 삼켜내기 바빴다. 그 대답을 하고 나면, '두 분 다 영화를 찍고 있다는데 그 영화는 대체 언제 촬영이 끝나는 지도 모르겠고, 가끔씩 새벽에 차 소리 들리면 그때 들어와서 잠시 뒤에 나가시는 게 전부예요.' 라는 것까지 전부 다 우수수 답해야 했기에. 여주는 그냥 제가 잘 말씀 드릴게요. 라는 답만 간신히 내뱉고는 자리를 벗어나는 수밖에 없었다.
여주는 제 부모에게 물질적인 것 외의 무엇을 기대했던 적이 없었다. 이미 제 부모가 자신에게 마음이 떠난지, 오래라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성인이 되면 그간 받아뒀던 생활비와 용돈으로 독립할 생각 뿐이었다. 여주에게 엄마아빠는 그냥 저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사람들. 딱 그 정도의 표현이 알맞았다. 여주는 제 엄마와 아빠가 서로에게 애정이 없다는 걸, 아주 어릴 적부터 무의식적으로 느껴왔다. 그래서 엄마아빠랑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없었고. 여주의 부모는 가끔씩 여주가 잠든 틈을 타서 방문을 살짝 열었다 닫는 것으로 모든 애정을 표했다. 하지만 방문 너머의 인기척으로 상대의 마음을 진작하기에 열아홉은 너무 어렸다.
10 - 1
남준은 제 앞에서 보충 수업을 듣는 여주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작게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손이 느려 필기를 하는 데에도 한참이 걸리는 여주는 수업 시간 내내 바쁘게 움직이는 편이었다. 그런데 오늘 여주의 오른 손은 평소보다 느리면 느렸지 결코 빠르지 않았다. 그리고 여주 저도 모르게 이따금씩 마른 숨도 푹푹 내쉬고는 했다. 남준이의 옆자리에 앉은 우석이는 남준이에게 여주를 가리키며 왜 저러냐는 눈짓을 했지만, 남준 역시 명쾌한 해답을 몰라 고개만 내저을 뿐이었다. 요즘 저도 경찰대학교 진학 문제로 인해,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바쁘게 지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아침에 여주를 깨우는 것과 겹치는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얼굴을 마주할 일이 적어졌다. 사실 아침에 여주를 깨우는 것도 제 부족한 잠을 줄여가며, 자청한 일이었다. 푸, 푸. 얕은 숨을 내쉬며 잠에 든 제 동갑내기 애인을 보는 게 그토록 신이 나는 일인 줄, 미처 몰랐기에. 남준은 제 엄마의 부탁으로 여주를 깨우러 들어간 여름 방학 보충 시작날을 기점으로 여주의 기상을 책임졌다. 여주 본인도 모르는 얼굴을 남준, 자신은 알 수 있다는 게. 괜히 속 어딘가를 간지럽혔다.
마지막 보충 수업이 끝나고, 우석이는 여주 옆자리의 아리와 먼저 자리를 벗어났다. 여주는 저를 걱정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도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 아직 제대로 가방을 챙기지도 않았다. 그 모습을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남준은 제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는 여주의 가방을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문제집. 여기. 필통은? 여기. 이거 필통 열린 거 아니야? 아. 그러네, 그 지퍼 채우면 돼. 저기 떨어진 펜 너꺼 아니야? 아, 맞네. 힘없는 대화가 몇 번 오가고 남준은 여주의 가방을 챙겨, 제 다른 쪽 어깨에 걸쳤다.
"우리 데이트 갈까."
"너 오늘 입시학원 가잖아."
"하루 안 가도 잘 해서 괜찮아."
남준은 경찰대학교 특성상 체력조건이 따르기에 여름 방학을 시작하며, 조건에 맞추기 위한 입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학원은 100M 달리기부터 1000M 달리기까지. 또 일 분에 윗몸 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는 몇 번을 하는 지. 좌우 손의 악력은 몇이나 되는지. 그런 것들을 측정하며, 일정 커트를 넘기는 단련을 하는 곳이었다. 남준은 줄곧 빠진 적 없던 학원을 지금까지 잘 해서 괜찮다는 저답지 않은 말로 핑계를 만든 뒤, 오랜만에 제 애인의 손을 단단하게 감쌌다. 여주는 저보다 두 마디는 큰 제 애인의 손을 목숨줄이라도 되는 듯, 힘주어 잡고는 아예 남준의 팔뚝에 기대다시피 했다. 남준은 제게 기대는 여주에 남모를 안정감을 느꼈다. 제게 기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제가 큰 사람이 된 것 같았기에. 하지만 그 안정감은 얼마 가지 못했다. 최근 악력 훈련으로 생긴 손바닥 위의 굳은살이 걱정 되었기 때문이다. 남준은 아무렇지 않게 제 손을 잡고 있는 여주를 내려다보고 그보다 밑에 있는 맞잡은 손을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남준 혼자 제 까슬하고 못생긴 손바닥을 바쁘게 걱정 중이었다.
"그, 손 놓고 갈까?"
"헐. 왜?"
남준의 손을 놓고 갈까? 라는 조심스러운 물음에 여주는 되려 당황하며, 맞잡은 두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헐. 왜? 라는 물음까지 더해서. 작은 손에 바르작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낀 남주는 여름 바람에 자꾸만 흐트러지는 여주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답했다. 손에 굳은 살 너무 많아서, 너 살 긁힐까봐. 여주는 가만히 제 머리를 넘겨주는 손길을 받다가 남준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맞잡은 손을 풀어 확인이라도 하듯 손을 뒤집었다. 남준의 말대로 여리진 않더라도 곧던 손이 제법 이곳저곳 부르터 있었다. 어떤 굳은살은 건조하게 일어나서 제법 쓰리기도 했고 또 어떤 굳은살은 생기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여전히 붉은기가 낭창했다. 여주는 걸음을 옮기면서도 남준의 손을 이곳저곳 살피며 만졌다. 남준은 그런 제 손을 만지면서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여주의 얼굴을 빤히 살피며 걸었다. 남준 제가 보기에도 제 손이 못생겼고, 좀 징그러웠기에. 혹시나 싫어지면 어쩌나 싶어서. 하지만 여주는 남준의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손바닥 위의 자국들을 복잡한 마음으로 어루만지고 있었다. 곧던 손이 이렇게 아프게 된 게 속상하기도 하고, 이런 아픔도 견디면서 꿈을 이뤄나가는 남준이 부러워서. 저와 동갑인데도 한참이나 어른 같아서. 괜히 몇 분째 손만 만지작거렸다. 손 못 생겼지. 아니. 완전 어른 손 같아. 그게 뭐야. 뭐긴, 멋지다고. 최고야. 김남준. 거짓말. 진짜인데? 손 잡고 있다가 아프면, 바로 놔도 돼. 에이. 내가 이 손 먼저 놓을 날은 없을 걸.
"방금 좀 심장 아팠다."
"갑자기?"
"약속한 거야. 손 먼저 놓기 없기로."
"약속까지는 안 했는데?"
"어쭈."
하지만 여주가 생각하는 그 어른스러운 남준 역시, 결국은 제 동갑내기 애인이 먼저 제 손을 놓을까. 제 손이 못생겼다고 싫어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열아홉이었다. 남준은 요즘 들어 알게 모르게 여주에게 소유욕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당장 학교 아이들만 해도 여주에게 많은 관심이 있었다. 단순히 연예인의 가족이라서. 그래서 이런저런 평가도 오갔고, 그 평가 중에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도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남준의 귀에는 어째 긍정적인 평가만 들려왔다. 애초에 남준 본인이 부정적인 평가는 말도 안 된다며 멀리하는 것도 있었지만. 아이들은 부모님 덕분에 훌륭한 유전자를 받고 태어나 부모님만큼은 아니지만 빼어난 용모를 가진 여주에 대해, 아닌 척 관심이 많았다. 여주 성격 자체가 워낙 낯을 많이 가려서 가까이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다들 친해지면 좋겠다. 속으로 생각하고 있을 만큼. 하지만 정작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여주는 위와 같은 사실을 몰랐고, 그 옆의 주인공의 애인인 남준이만 한 번도 표한 적 없는 날을 세우고 있었다. 오랜 시간 같이 지냈으면서도 왜 진작에 이런 사이가 되지 못했을까에서 출발한 본인의 성찰과 제가 봐도 말갛고 자그마한 애인이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또 이미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시선과 관심을 받으며 살아온 여주의 지난 시간에 대한 불편함. 남준의 그런 불편함은 제가 지금껏 봐온 여주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도 보았을 거라는 데에서 출발해서 끝없이 몸집을 불리다가, 그래도 저만 아는 여주의 모습이 하나 둘 늘어가면서 다시 작아졌다.
제가 좋아하는 연두색 이불을 여름이고 겨울이고 놓지 않으며 목 끝까지 덮고 자는 모습이라던가, 제가 잠든 사이 저 몰래 도둑 뽀뽀를 하다가 들켰을 때의 표정이라던가, 작은 어깨를 감쌌을 때 말없이 폭 안겨오는 품이라던가, 낡은 음악실에서 함께 입을 맞추며 엉망인 화음을 만들어냈을 때라던가, 집 소파에서 둘만 아는 시간이 늘어가는 것이라던가. 라는 식의 것들이 애처롭게도 커져가던 남준의 질투심을 잠재웠다. 남들이 듣는다면 남준이가? 내가 아는 그 김남준이? 라고 되물을 정도로, 다 가졌고 무엇도 질투하지 않을 것 같은 그 아이가. 여주 한정으로는 자꾸 더 가지고 싶고, 자꾸 다 제 것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종일 기운이 없던 여주가 걱정이 되면서도, 제가 모르는 이유로 그런다는 것에 속이 조금은 뒤틀렸다. 다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여주는 굳은살이 박힌 남준의 손을 시내에 도착할 때까지, 이렇게 잡았다가 저렇게 잡기를 반복했다.
10 - 2
오락실에 들어가면서 바꿔둔 동전이 바닥을 보이자 남준은 아직 자동차 게임을 하고 있는 여주를 자리에 둔 채로, 동전교환기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바로 보이는 여주의 뒷모습은 게임 속 길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며, 모습을 바꿨다. 학교에서는 그렇게 풀이 죽은 모습이더니, 학교 바깥으로 나오니 또 생생하게 살아나는 모습이었다. 남준은 동전이 다 나온 것도 잊고 여주를 따라 저도 모르게 몸을 이리저리 달싹이고 있었다. 아마 여주에게 다가오는 남자아이가 없었다면, 한참을 더 그렇게 서 있었을 것이다. 여주가 게임 막바지 결승선을 향해 가고 있을 때, 옆에서 농구를 하던 남자 하나가 남준이 앉아 있던 옆의 자동차 게임기에 앉았다. 여주는 갑자기 다가온 인기척에 남준인 줄 알고 고개를 돌렸다가 낯선 얼굴에 다시 게임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여주 옆자리의 남자 아이는 여주에게 게임 훈수를 하나 둘 두기 시작하며, 여주가 쥐고 있는 핸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지 안 죽어요. 남자의 말대로 커브에서 뒤집어질 뻔한 여주의 자동차는 가까스로 살아났고, 여주는 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주 옆자리의 남자는 정말 운전이라도 하는 것처럼 진지한 여주를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며, 다음 라운드로 진출한 여주를 도와 게임을 함께 하고 있었다. 거기서는 핸들 완전 왼쪽으로 돌려요! 어어, 앞에! 어, 그렇지. 이제 거기서 그 브레이크 밟고 점프해서 저기 반짝이는 거 먹어요. 오. 잘하네.
핸들에서 손을 떼지 못해서일까. 여주는 제 옆에서 추근덕거리는 남자를 쉽게 떨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볼 이유가 없는 남준이 다시 제자리로 향했다. 긴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와 여주 뒤에 선 남준은 일부러 여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보란듯이 제가 여주를 조종하기라도 하듯 몸을 기울였다. 여주의 옆자리 게임 좌석에 앉아있던 남자가 흥미롭게 남준과 여주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곧이 곧대로 느끼던 남준은 하마터면 저도 모르게 여주의 어깨를 그러쥘 뻔한 걸 겨우 참아내고, 여주의 게임 화면에서 시선을 옮겨 아예 남자를 대놓고 노려보았다.
"운전에 소질 있네."
"진짜? 나 게임 하면 되게 잘 할 스타일인가봐! 그치?"
"응. 잘 하는데. 지금도?"
남준은 여주의 게임을 보고 있지도 않으면서, 보고 있는 척 대꾸해주었다. 남자는 여전히 그런 남준과 여주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남자는 책가방을 들고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고서 이 근처 어디 학교 아이들일 거라는 생각을 했고, 어쩐지 분위기가 닮은 두 사람에게 자꾸만 눈이 갔다. 여자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는 남자아이가 게임기기를 옮겨다니면서도 여자를 제 품에 가두고 움직이는 모습이 간지럽기도 했고, 은근하게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는 녀석들의 눈길이 여자에게 닿기도 전에 차단해버리는 남자의 경계가 너무 제 것을 보호하는 티를 내서. 괜히 시비를 걸고 싶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남자가 괜한 시비를 걸기도 전에 남준은 제 애인의 곁에 딱 붙어서서 떨어지지 않았다. 남자는 덩치가 좋은 남준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얇은 반팔 위로 얼핏 비추는 잔근육들이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남준은 남자의 속사정 따위는 궁금치 않았다. 남준의 머릿속에는 애초에 오락실을 오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만 그득했다. 방학을 맞은 고등학생들은 게임방 아니면 피시방, 노래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특히 이곳 시내 게임방은 남자 아이들로 드글거렸다. 사실 남준은 게임방에 들어오는 순간 그것을 깨달았지만, 이곳이 마음에 들어 동그란 볼을 배싯배싯 올리며 웃는 제 애인을 보고 도로 나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여주의 게임 화면 위로 게임오버 라는 글자가 뜨자마자, 남준은 여주의 팔뚝을 아프지 않게 잡았다. 근래 이런저런 고민으로 살이 내린 여주의 몸이 금세 남준의 힘에 휘청였다. 남준은 게임 기기에서 내려온 여주가 넘어지지 않게 잡아준 뒤, 다시 여주가 아는 제 표정을 해보였다.
"500원 넣고 다음 레벨까지 간 거면, 진짜 잘 한거야."
"진짜?"
"응. 김우석도 그렇게 못해."
"오. 다음에 보면 자랑해야겠다."
"동전 더 있는데. 하고 갈래?"
필요 이상으로 가깝게 여주를 끌어안은 남준이 한참이나 고개를 숙여, 이번에도 필요 이상의 귓속말을 했다. 동전 더 있는데, 하고 갈래? 하지만 여주는 다정한 제 남자친구의 물음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남준은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이런 스킨쉽을 잘 하지 않았다. 여주는 남준의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나가자고 답했다. 남준은 조금의 미련도 없이 바닥에 내려둔 가방을 챙기고는 평소보다 조금 더 힘주어 여주의 손을 잡았다. 제 굳은살이 신경 쓰여, 애매하게 손을 잡았던 전과는 달랐다. 오락실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남준의 몸이 홧홧했다.
10 - 3
"기분 안 좋아?"
"내가 왜 안 좋아. 기분 좋아."
오락실을 벗어난 두 사람은 그 뒤로도 이곳저곳을 들어가, 서로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물건을 사주고 장난을 치며 사진도 여러장 찍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남준은 일정 간격 이상 여주에게 떨어지지 않았고, 심심치 않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오늘따라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잦은 남준은 스스로도 통제하지 못하는 자신이 싫어지려던 찰나였다. 여주는 그런 남준을 데리고는 결국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차피 곧 있으면 집으로 들어가야 할 시간이었다. 남준의 땡땡이가 들키지 않게 입시 학원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들어가야 했기에. 남준은 그런 여주의 생각을 모른 채로 공원까지 묵묵히 걸어오다가, 제게 기분이 좋지 않냐고 묻는 여주의 물음에 정신을 차렸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는데도 티가 났던 모양이다. 남준은 부러 보조개가 파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여주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공원 언덕을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계단 하나에 먼저 올라가서는 남준과 눈높이를 맞췄다. 씁, 거짓말. 하나도 무섭지 않은 목소리에 남준은 실없이 웃음이 나왔다. 진짜인데.
"진짜라서 하루종일 그렇게 옆에 붙어서 안 떨어졌어?"
"그건 남자친구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래도 평소에는 그 정도 아니잖아."
"그럼 이제는 평소에도 그 정도 할게."
"... 이제 너가 얼라야?"
"내가 얼라하지. 뭐."
남준은 저와 눈높이를 맞추겠다고 계단을 올라간 여주가 참을 수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러니까, 이런 모습은 나만 아는 거잖아. 여주는 저대신 아이가 되어버린 것 같은 남준에게 이제는 네가 얼라냐며 놀렸지만, 남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제가 얼라를 하겠다는 답과 함께 짧게 입을 맞췄다. 공원에서의 스킨쉽이 처음도 아니면서 순간 놀란 여주는 남준의 너른 어깨를 아프지 않게 밀어냈다. 하지만 남준은 조금도 밀리지 않으며, 제 어깨를 내리치는 작은 주먹이 마냥 귀엽다는 생각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중증이다. 진짜. 남준은 단단히 여주에게 코가 꿰었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이 사랑에 처음부터 안달냈던 입장이 아니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지금은 이 사랑을 깨닫지 못했으면 지금 이 시간이 무엇으로 채워졌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남준은 여주의 목 언저리에 제 얼굴을 묻고는 더운 숨을 내쉬었다.
"네가 너무 좋은데, 어떡하지."
"좋아해줘야지. 뭐."
"내가 널 좋아하는 만큼 좋아해주면, 감당은 되고?"
"어?"
"평소보다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고 뭐라 하면서. 내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헐. 변태."
"그러니까 좀,"
"좀 뭐."
"그냥, 좀 알려줘."
"뭐를."
얼만큼 표현해도 되는지. 얼만큼 표현해야 너가 안 도망갈 건지. 너를 좋아하는 내가 낯설어서, 이게 내가 맞나 싶으니까.
남준은 제 뒷머리를 찬찬히 쓸어주는 여주의 손길에 대답 대신 고개를 더욱 묻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고는 제가 안은 탓에 흘러내린 티셔츠 때문에 자꾸만 시야에 들어오는 목덜미를 조금은 아프게, 힘주어 물었다. 동시에 여주의 몸이 남준의 쪽으로 기울었다. 야! 남준은 여주의 언성에도 제 흔적이 남아있는 목덜미를 바라보다, 제 한쪽 목덜미를 여주의 눈앞에 보였다. 너도 해. 남준은 제가 이렇게나 아무 대책없이 상대방의 몸에 흔적을 남겼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랐다. 그래서 너도 똑같이 하라고 말했다가, 금세 그 말을 거두고는 사과를 했다. 미안해. 허락없이는 안 되는 것이었다.
"... 진짜 미쳤나봐."
"싫어? 싫으면 다음부터 안 그럴게. 지금도 미안해. 내가 너무 성급ㅎ,"
"누가 싫대? 그게 아니라, 이렇게. 어? 막, 공공장소에서 그러면 안 되잖아!"
"알았어. 다음부터는 공공장소에서 안 그럴게."
"... 너도 목 줘."
"여기. 그리고 지금 공원에 사람 우리밖에 없어. 괜찮아."
"괜찮기는, 목이나 내놔."
서로의 것이라고 표식을 남기고 싶은 미성숙한 아이들이 조금은 어른 흉내를 낸, 어느 여름밤이었다. 지나가다 그 모습을 목격한 길고양이 하나는 야옹. 하고 우는 것도 잊은 채로, 제가 걸어온 길을 돌아갔다.
** Talk **
안녕하세요. 겨울입니다! 되게 오랜만에 글을 쓴 것 같아요. 사실 체감상으로 더욱 그랬던 것 중 하나가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전처럼 조금씩 쓰기보다는 한 번에 몰아쓰려고 해서. 그렇게 느낀 것 같아요. 저는 지금 글이 제 생각대로 표현되는 것 같지 않아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글의 방향을 생각하고 있는 시점이에요. 글이 흔들리지 않게 제가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하니까요. 글이 이런 고민을 안겨줘서 너무 싫다가도 그래도 글을 써야 하루에 무언가를 했구나. 생각이 들어서. 어찌됐든 글은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매달리다보니 글이 길어졌네요.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과 함께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같이 글을 써주셔서 고마워요. 어떤 피드백이든 달게 받고 있습니다. 조금 뒤에 사담으로 찾아올게요. ㅎㅎ 뭐랄까. 여러분은 아니라고 느끼실 수도 있지만, 저는 뭔가 독자님들과 되게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해요. 함께한 시간이 늘어가고, 작품이 하나둘 늘어가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지더라구요. 뭔가 우리는 특별한 게 있는 것 같다고. 정말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아무것도 모르지만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해서, 저는 그게 참 귀하고. 소중하고. 그렇습니다. (사담에서 하려는 이야기를 여기서 중얼거렸네요!) 아, 그리고 다정한핀잔 제본 관련해서 질문해주신 것도 잠시 뒤의 사담을 통해서, 말씀 드릴게요!
반듯한 남준이가 흐트러지는 시간과 남준이의 커져가는 마음에 대해서 보여드리고 싶었던 회차예요. 잘 전달 되었기를 바랍니다. 오타 및 비문은 다시 한 번 수정할게요. 그럼 오늘도 감사합니다.
RoMantic
낭만적인 사람들
For U
*혹시 신청을 하셨는데 없으신 독자님은 댓글로 말씀해주세요 ㅜ_ㅜ 저의 실수일 테니까요... (울무룩)
명탐정코코 / 담담 / 10041230 / 두유망개 / 가로세로 / 봄봄이 / 정꾸기냥 / 꾹후 / 요를레히 / 또이 / 정별이 / 밀키 / 정꾸 / 슈멬이 / 퐁퐁이 / 호비호비 / 무네큥 / 인생진리 / 고짐 / 바다코끼리 / 1218 / 보고싶다 / 슙슙해 / 하리하리 / 망순이 / 일구구삼 / 새우버거 / 체리 / 담이 / 춍춍 / 비트윈티 / 저장소666 / 꾸꾸야 / 수달 / 넌나의책장 / 초코아이스크림2 / 뷰뷰 / 병아리 / 새싹이 / 뜌 / 녹차맛콜라 / 박스 / 첫사랑 / 0415 / 찜찜 / 곰세마리 / 지니 / 보성녹차 / 봉이/ 0221 / 우연운명 / 고로케 / DS / 김안녕 / 울샴푸 / 블랙 / 다람이덕 / 굥기 / 호두 / 공배기/ 김짱구 / 토끼정 / 꽃소녀 / 계란말이 / 슈가베이비 / 청보리청 / 토끼 / 아듀 / 챈 / 민슈가천재짱짱맨뿡뿡 / 한겨울 / 은하 / 구구 / 방긋 / 김다정오빠 / 청포도 / 비행기/ 리본 / 또또 / 홀리 / 깨방정 / 파이리츄/ 도리도리 / 도산 / 꿀레몬청 / 사용불가 / 김볼살 / 핫초코 / 달보드레 / 진수야축구하자 / 윤기와 산체 / 수수밭보리꽃 / 주니사랑 / 연키민 / 별이 보낸 편지 / 두번째봄 / 빈틈 / 레드 / 땅위 / 아달램 / 해나 / 여운 / 지민이랑 / 복숭아모찌짐 / 젤리츄츄 / 김태형와이프 / 야끙 / 차일드 / 보라도리 / 짐느러미 / 별이 보낸 편지 / 딸기빙수 / 방소 / 빵빵맨 / 퍼플 / 우리은행 / 바나나 / 토마토마 / 츄파츕스 / 단비 / 낮누 / 핀아란 / 침침아좋아해 / 화이트초코 / 원더 / 땡구 / 또비또비 / 0309 / 두부 / 자몽슈 / 새글 / 토토로 / 짐니제이/ 야끙 / 윙즈쥰
겨울이 너무 겨!울! 하고 왔어요. 정말 날씨가 차가워요ㅜㅜ 다들 건강 유의하세요! 저는 몸 튼튼합니다! 걱정 마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