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아름다운, 그런 별이 되세요. 당신.
세번째 이야기 : 일장춘몽(一場春夢)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행복한 꿈은
깨고 나면 더욱, 날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애당초, 행복한 꿈은
꾸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길에 휩싸인 궁궐이 순식간에 타들어가며 잿더미로 변하여갔다.
하늘이 붉었다.
W.Avalon
차씨 가문이 몰락하였다. 반역을 꾀하였다고 하였다. 역모죄라고, 그리 이야기하였다. 학연은 몇시진 전인 신시(申時)까지만 해도 자신이 택운과 노닐었던 마당에 흩뿌려지는 검붉은 피에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착잡한 표정을 한 채 포박을 당하는 부모님과, 그 앞을 막아서다 칼에 베여 피를 토해내는 덕구아범.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찢어질듯한 비명소리가 높다란 하늘에 가득 울려퍼졌다. 환한 달빛만으로는 부족한 것 인지 병사들의 손에 쥐어진 수 많은 횃불들은 이 아비규환을 학연의 머릿 속에 자세히도 각인 시키며 활활 타올랐다. 학연의 유모는 일그러진 얼굴로 숨이 넘어 갈 듯이 울면서도 학연을 이끌었다. 도련님은, 도련님이라도 사셔야합니다, 제발. 학연의 머리 끝이 담장과 맞물릴즈음, 학연의 키가 5척 정도 되었을 때 벌어진 사건이었다.
택운은 학연이 좋았다. 말 수가 적고, 집 밖을 나서는 것보단 방 안에서 서책 읽기를 더 좋아하던 자신과는 다르게 학연은 강가에 가는 것을, 꽃 밭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택운은 자신과 다른 학연의 쾌활한 성격을 무척이나 좋아하였다. 동글동글한 어여쁜 눈도, 자신보다 약간 작은 몸집도, 해맑게 웃는 모습도. 택운은 학연을 좋아했다. 점차 자라 난 그 감정은 좋은 벗, 그 이상의 의미였다.
연화국(蓮花國)의 젊은 황제는 유능했다. 호기롭고, 냉철한 성격이었다. 그러한 황제를 언짢게 여기는 반(反)세력은 실과 바늘의 관계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게 존재하였다. 택운은 학연이 사람을 피하여 산에 들어가고, 딱 십년이 지난 해에 어린 나이에 관직에 올랐다. 택운은 학연의 아버지와 절친한 벗이었던 자신의 아비를 등에 업으며 그 세력의 중심에 섰다. 자신이 좋아하던 학연이 명랑한 모습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외의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오직 그 뿐이였다, 택운에게는.
매 년 정월대보름. 정기적으로 나서던 사냥에서, 재환은 한 소년을 발견하였다. 미묘한 아이였다. 처음 마주한 얼굴이건만,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하였다. 건방지었다. 헌데, 자신을 올려다보는 눈이 어여뻤다. 재환은 입가를 매만지며 소리 없이 웃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
대답하기 싫은게냐?
…….
그래, 그렇다면 내 다른 질문을 하마.
…….
내 이곳에 너를 보러 자주 들려도, 괜찮겠느냐?
소년이 고개를 내저었더라도 어차피 제 멋대로 행동하였을 재환이었지만, 재환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모습에 흡족한 웃음을 띄웠다.
다음에는 꼭 너의 이름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삶이 무료하던 찰나, 재미진 것을 발견하였다.
황제가 저를 찾아온다고 하였다. 점점 그 횟수가 잦아진다고도 하였다. 택운이 아랫입술을 이로 짓이겼다. 생각보다 황제는 웃음이 많은 자라는 말에, 택운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학연의 앙상한 팔을 붙잡았다.
학연아, 니가 해주어야 할 일이 생긴 듯 하다.
…응.
아까부터 무언가를 망설이던 택운을 짐짓 모르는체 하던 학연이었다. 예상하였다는 듯 웃어보이는 학연의 미소가 슬퍼, 택운은 마주 웃어 줄 수 없었다. 왠지 불안한 느낌이 가슴 깊숙이에서 들끓었지만, 택운은 말을 아끼었다.
황제가 남색을 즐긴다하였다. 궁에, 도성에, 온 나라에 삽시간에 퍼져 나간 소문은 점차 살을 덧대어가며 한 없이 불어나갔다. 황제가 남자에 홀려 미쳤다고 하더이다. 재환은 호탕하게 웃었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 아니더냐.
응? 너 또한 그리 생각하지 않느냐. 순식간에 웃음기를 거두어 낸 재환의 눈이 매서웠다.
흥미로운 모양새의 아이에게 가졌던 호기심에서, 단순하였던 관심이 호감으로, 그리고 그 이상의 감정으로. 오묘한 그 감정들은 복잡하게 버무려지며 재환을 유혹하였다.
폐하. 혹…, 그 아이에게 연심(戀心)을 품으셨나이까.
연심, 연심이라…
…….
아, 그런가보오. 내가, 내가 그 아이를 마음에 품었나보오, 상선(尙膳).
재환이 나른한 미소를 띄웠다. 재환의 옆에 서 있던 상선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세자때부터 재환을 보필 해왔었지만, 근래의 재환의 모습은 낯설게만 느껴졌었다. 이토록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던가. 달콤한 독을 집어 삼키는 재환에, 상선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태양을 끌어내릴 작은 소년. 부디 감정에 휩쓸리지 마소서, 폐하. 상선은 눈을 감았다. 이미, 늦었구나.
연화국(蓮花國)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하였다. 봄에는 목련과 벚꽃이, 여름에는 금낭화가, 가을에 피는 국화와 겨울에 핀 군자란. 사계절 내 내, 언제나 꽃이 만개한 곳. 삭막한 궁 안에서 항상 무미건조 하였던 학연이 유일하게 해사하게 웃어보이는 곳이였다.
연못에 조약돌 장난을 치며 쪼그려 앉은 학연의 옆으로 재환이 다가 섰다. 학연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재환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저리도 어여쁘게 웃어 주는 황제. 학연은 연못 아래로 내던져진 조약돌이, 저 아래에 쌓여 있을 수 많은 조약돌들이, 힘 없이 베여 죽어버린, 무언가를 위하여 희생 되었을 수 많은 자들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마치, 제 아비처럼.
학연아.
…예, 폐하.
연아, 어여쁜 나의 연아.
…….
곱고 고운 나의 연아.
…예….
부디 곱고 아름다운 것만 보거라….
…….
이처럼, 너처럼. 어여쁜 것만.
재환의 뒤로 활짝 핀 꽃들이 아름다웠다. 학연은 택운을 떠올렸다. 궁에 들어오기 전, 택운이 했었던 말을 떠올렸다. 운아, 나는 어쩌면 좋으냐.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뜬 학연이 자신의 허리를 끌어 안는 재환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재환의 품 안이, 지나치게 따스하였다. 벗어나기 싫을 정도로.
궁인(宮人)들의 비명소리가 초승달이 높다랗게 뜬 하늘에 울려퍼졌다. 뻐꾸기가 처연히 우는 밤이 되겠구나. 재환이 낮게 웃었다. 뛰어 다니는 발자국 소리들과 비명소리들. 어두워야 할 밤하늘이, 온통 붉은 색으로 환하게 비추어졌다. 재환은 제 앞의 자그마한 소년을 바라보았다. 제 소년을. 칼을 쥔, 제 소년을.
할 수 있겠느냐?
…….
울지 말거라.
…….
네가 울면, 내 마음이 아프지 않느냐.
재환은 웃고, 학연은 울고 있었다. 웃어야 할 것은 저이고, 울어야 할 것은 황제이거늘. 학연은 주체 할 수 없이 터져나오는 울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칼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리에서 일어 선 재환이 학연에게로 걸어갔다. 비틀비틀, 흔들리는 몸뚱아리가 안쓰러웠다. 끅, 끅 입술을 깨물고 울음소리를 삼켜 내는 학연의 앞으로 재환이 마주 앉았다. 손이 차구나. 학연의 손 위로 재환의 손이 포개어졌다. 학연은 결국, 목 놓아 울음을 터트렸다. 재환은 여전히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서워하지 말거라.
…….
이 또한 내가 다 해주마.
…….
달빛이 너를 예쁘게도 비추어주는구나.
…….
질투가 나.
…폐, 폐하….
감히 태양조차 온전히 소유하지 못했던 것을.
달빛이 집어 삼켜버린 너는 너무나도 아름다워, 나의 눈가가 시리구나. 재환이 힘이 풀린 학연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 놓지 말거라, 놓으면 안돼. 눈물 범벅인 얼굴을 한 학연이 고개를 내저었다. 제발, 제발.
미안하구나.
제발, 재환… 제발….
너에게 피를 묻혀, 정말로 미안하다.
…….
어린 날의 너에게도, 미안하다.
자신의 손을 억세게 쥔 재환의 손에서 학연이 손을 빼내려 애를 썼다. 재환은 환하게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흘려보내었다.
푹, 재환의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 재환이 울컥 토해 낸 피가 학연의 새하얀 침의를 적셨다. 꺽꺽, 서럽게도 우는 학연을 재환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토닥였다. 울지 말아. 가파른 숨을 몰아쉬는 재환을 끌어 안은 학연이 피가 묻은 손으로 재환의 머리를 쓰다 듬으며, 악을 내지르며 오열하였다. 따스하였던 재환의 품이 차게 식어갔다. 학연은 뒤 늦게 깨달은 가여운 제 사랑에, 절규했다. 아무렇게나 부서져버린 문 틈 사이로 걸어 들어온 택운이 눈을 감았다. 한참을 재환을 안고 우는 학연의 구슬픈 울음 소리를 들으며, 택운은 칼을 바닥에 내던졌다.
행복한 꿈을 꾸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행복한 꿈은, 깨고 나면 더욱 날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애당초, 행복한 꿈은 꾸는 것이 아니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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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오늘 글은 너무나도 마음에 들지가 않네요@_@.. 다섯시간을 친구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온갖 욕을 하며 난리를 치다가 결국 그냥 올리게 됩니다. 차마 구독료를 받기에도 너무 민망한 글이지만, 끙..
으아, 이게 뭐죠? 뭘까요.
드디어 세 편의 단편이 끝이 났네요. 레퀴엠도 쓰고 있답니다!
..오늘 글의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것은, 제 대장님의 노래 뿐이네요. 대장님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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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았다는 한마디의 댓글이더라도, 정말 감사드려요! 어떤 댓글이더라도 다 예뻐 보인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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